롯데 호텔이 반나절 만에 웃고 우는 희비가 엇갈렸다.
10일, 롯데 호텔은 한국 표준협회가 주관하는 ‘2014년 한국 서비스대상’에서 종합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고객만족 부문 대상에 이은 2년 연속 수상이었다. 롯데호텔의 송영덕 대표이사는 다음과 같이 수상소감을 말했다.
“앞으로도 지난 40년간 축적된 특급호텔 운영경험과 서비스 노하우를 집약시켜 고객에게 더 큰 사랑과 수준 높은 서비스로 보답할 것을 약속하며, 롯데호텔만의 서비스로 대한민국 관광의 저력과 위상,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선도자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겠다”
2년 연속 대상 수상은, 지난 40여년간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최상급 서비스를 했다는 인정에 다름없는 최고의 명예로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수상소감과는 달리, 송영덕 대표의 마음은 꽤나 복잡했을 듯 싶다. 왜냐하면 수상 당일인 10일 오전, 롯데호텔에 항의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SNS로부터 급격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한 자위대 창설 60주년 행사 소식에 시민들이 진위여부를 묻거나 항의를 해온 탓이다.
자위대 관련 행사를 강행할 경우, 롯데 관련 상품 불매운동이나 대규모 시위, 심지어 폭탄 테러를 하겠다는 사람까지 등장하면서 송영덕 대표이사를 비롯한 롯데호텔 임직원들이 바짝 긴장한 상태에서 오전 10시경에 대책 회의를 열었다.
회의 결론은 장소대여 취소. 최근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는 한일관계와 그에 따른 국민 여론 악화, 그리고 장소를 제공할 경우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안전문제 등으로 결국 취소 결정을 내렸다.
롯데호텔 측은 "현재의 한국민 정서와 반대 시위 등의 안전 상 이유로 부득이하게 장소제공을 취소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일본 대사관측에 통보했다.
최고의 서비스로 한국 관광문화를 이끌어 가겠다는 수상소감을 밝히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일본 대사관이 주관하는 행사를 하루 남겨두고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를 의식했는지 롯데 호텔 측은 급히 사정을 설명하는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에 배포했다.
“국민 정서를 반영해 11일 롯데호텔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일본 대사관 특별 행사를 취소했다. 해당 행사에 대한 정확한 사전 정보나 확인없이 업무를 진행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하다. 앞으로 보다 철저한 확인과 세심한 업무 진행을 통해 금번과 같은 물의를 일으키지 않도록 롯데호텔 서울의 모든 임직원이 최선을 다하겠다.”
그러나 롯데 호텔의 이같은 해명만으로는 뭔가 개운치 않은 의문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1954년 7월 1일에 창설된 일본자위대 기념식은, 매년 6월-7월 사이에 일본대사관 관저에서 내외빈이 초대된 가운데 행사를 가져왔다. 이번 문제가 된 자위대 창설 기념식은, 특별히 '6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기념식 장소가 대사관저가 아닌 롯데호텔로 변경된 것 뿐이다.
그런데 너무 갑작스럽게, 그것도 특급에 속하는 롯데호텔이 불과 행사 하루 전에 일방적으로 취소통보를 하다보니 전혀 예기치 못한 불협화음이 일고 있다.
롯데호텔 측은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자위대 창설 60주년 기념 행사라는 것을 사전에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어느 행사이든 계약단계에서부터 주최측 이름과 취지 목적, 그리고 무대에 걸 플랜카드를 사전에 의논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절차는 비단 호텔이 아니더라도 공식적인 행사라면 계약과정과 진행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하물며 롯데호텔 측이 주장하는 '사전에 몰랐다'고 하는 것은 100% 거짓말이다. 자위대 창설 기념식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악화되니까 서둘러 '취소'라는 악수를 둔 것에 불과하다.
10년 전 2004년 6월, ‘한복, 기모노 논쟁’으로 갑작스럽게 이슈화된 '자위대 창설 50주년 기념 행사'를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 2004년 일본 자위대 창설 50주년 행사장에 집결한 시민단체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 당시 언론 보도 영상 캡쳐 | |
▲ 어떻게 왔냐는 기자의 말에 "걸어왔지!"로 대답하는 황금주 할머니 (황금주 할머니는 2013년 1월 4일 92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 당시 언론보도 캡쳐 | |
그 당시 50주년 기념행사는 롯데호텔이 아닌 신라호텔에서 있었다. 당시 언론에는 신라호텔 앞에서 시민단체와 위안부 피해자 모임을 주축으로 한 '자위대 창설 50주년 행사 반대 시위'가 격렬하게 열렸었지만, ‘신라호텔에서 일본 대사관 주최로 자위대 50주년 행사가 열렸다’ 는 단신으로 보도가 됐을 뿐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그러다 다시 이슈가 된 것이 다름아닌 한복 사건. 2009년 4월13일 한복을 입고 신라호텔 파크뷰 뷔페에 출입하려던 한복 디자이너 이혜순 씨가 “한복이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입장 제지를 당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대국민적 공분을 일으켜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다.
"왜 신라호텔은 기모노는 허용되고 우리 고유의 전통의상인 한복은 안되는가? 신라호텔은 과연 어느나라 호텔인가?"
2004년 당시 일본대사관 주최로 신라호텔에서 '자위대 창설 5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면서 상당수의 일본여성들이 일본의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고 참석했다. 물론 신라호텔에서는 당연히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바로 이같은 상황을 국민들은 비꼰 것이다. 또한 앞서 2008년 9월에 있었던 일본 호텔 교육 행사에서도 기모노 착용이 문제시 되지 않았던 점을 꼬집은 것이다.
당연히 자국의 행사에 자국의 전통의사를 입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의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호텔 측에 있었다. 신라호텔의 경우, 당시 사람들이 빈번하게 오가는 뷔폐 식당이었기 때문에 치마폭이 넓은 한복이 손님들에게 불편을 줄 가능성이 있어 입장제지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변명치고는 설득력이 상당히 약했다.
그럼 기모노의 경우, 의상의 특징으로 인해 걸을 때 걸음폭이 정해져 있어 정해진 공간에서는 빨리 걸을 수가 없는데, 신라호텔 측의 논리대로라면 기모노 또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뷔폐 식당에서는 손님들에게 불편을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기모노는 허용되고 한복은 안된다?
당연히 전 국민의 공분을 살 수밖에 없었다. 덧붙여 5년전에 있었던 자위대 창설 50주년 기념식 장소도 바로 신라호텔이었다는 과거까지 불거져, 그야말로 당시 신라호텔은 항의 전화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결국, 그 당시 이부진 부사장은 피해 당사자였던 이혜순 한복 디자이너를 직접 찾아가 사과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일단락 된 것이 아니었다. 자위대 기념식 문제가 불씨처럼 계속 남아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왜 자위대 창설 기념식 행사를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자위대 창설 50주년 행사에 참가한 나경원 전 의원(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2011년 서울시장 선거 유세에서 이 문제로 집중적인 정치적 공세를 받아 한동안 곤혹스런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당시 신라호텔 공식 트위터에 올라온 사과문 © 삼성 트위터 | |
그런데 이번에는 신라호텔이 아닌 롯데호텔에서 자위대 창설 기념식 관련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지난 날 신라호텔이 겪은 곤욕을 동종 업계인 롯데호텔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큰 행사유치에 눈이 멀어 냉큼 계약을 했다가 행사 하루전에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를 하는, 상도덕 룰로도 있을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일을 행했다.
자위대 창설 60주년 기념식 행사 반대나 시위는 일본과 한국민의 문제다. 그 전에 롯데호텔은 아예 처음부터 국내정서를 설명하고 예약을 거부했어야 옳았다.
외국 공관이 호텔 식장을 빌려 행사를 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자위대'만큼은 별개의 문제다. 일제 강점기 시절, 자위대의 전신인 일본군에 의해 수많은 조선인들이 희생을 당했다. 일본대사관이 다른 문화적 기념식을 갖는 행사라면 롯데호텔이면 어떻고 신라호텔이면 어떠한가. 만약 그런 행사라면 오히려 한국민이 찾아가 축하를 해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위대 기념식은 아니다. 애초부터 예약 자체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 적어도 고객의 감정과 정서를 진심으로 생각했다면. 그러고도 송대표는 오후 서비스 대상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으로 "수준높은 고객 서비스로 대한민국 관광을 세계에 알리는 선도자 역할을 다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결국, 최악의 관계에 있는 한일관계에 롯데호텔은 또하나의 자충수를 두고 말았다. 게다가 이같은 일방적인 취소통보 사실이 11일자 일본언론에 일제히 보도됨으로써 비지니스의 신뢰문제에도 금이 가게 생겼다. 이는 외교마찰로도 비화될 수 있는 문제다. 한국 일본 어느쪽도 명분과 실리를 찾기 어려운 곤혼스런 입장만 남게 됐다.
이렇듯 눈앞 이익에 급급한 호텔 측의 자각없는 결정 하나가, 종국에는 한일관계 악화는 물론 국제비지니스에도 신뢰를 잃는 마이너스 퍼포먼스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