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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라이트 요코하마'는 가능할 것인가
[기고] 한중일PD포럼 '모토마치 아파트' 사태에 부쳐
 
정길화 MBC PD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제14회 한중일 PD포럼에서 일본의 동북아 역사왜곡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라 포럼이 일시 파행했다고 한다. NHK히로시마에서 출품한 '모토마치 아파트'에서 일본의 만주침략이 사실과 다르게 묘사됐다며 중국 측 대표단이 항의하며 퇴장한 것(9월 17일 PD저널). 보도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제2차 세계대전 중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이 투하돼 폐허로 변했던 히로시마를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드라마다. 전쟁이나 원폭을 전혀 모르는 초등학교 5학년 류타가 할아버지를 처음으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한다. 극중 류타의 할아버지는 만주 태생의 이른바 ‘재만 일본인’으로, 일본 패전 후 고아가 되면서 중국에서 지내다 1972년 중일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으로 귀환한다.
 
'PD저널'의 보도를 접하고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일본 TV에서 '귀환자' 문제를 다루었다면 필경 '피해자 의식'에 근거하였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것이 작금의 시점에서 한국과 중국측 참석자들에게 용인되기에는 곤란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모토마치 아파트'에서 할아버지의 성장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중국 만주 침략 사건이 나왔지만, 일본의 침략 책임은 언급하지 않은 채 일본의 피해와 고통만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 NHK히로시마 '모토마치 아파트'.     ©JPNews


상영 중 해당 장면이 나오자 분위기가 썰렁해졌다고 하는데, ‘만주침략(만주사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생략된 채 일본이 피해자로 묘사되자 중국 측에서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며 일제히 퇴장했다. 하필 그 다음날이 만주사변 발발일인 9월 18일(83주년)이라는 것도 중국 측의 강한 분노를 견인했다고 한다.

'귀환'이라고 하면 한국 사람들은 사할린 동포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일본인들에게는 2차 대전 후 만주, 한반도 등 점령지역에서 돌아온 잔류민들이라고 인식될 것이다. 1945년 패전 이후 일본인들의 뒷모습을 추적한 이연식의 역사 논픽션 '조선을 떠나며'(역사비평사, 2012)에는 이와 관련한 저간의 사정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자 바로 다음날,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 지역을 공격한다. 대경실색한 일본의 관동군 수뇌부는 열차를 동원해서 고위 관료와 군 관계자 가족을 서둘러 남쪽으로 피신시켰다. 그러나 만주 현지에 있던 100만 명에 달하는 일본인 민간인들에게는 어떠한 대피 명령조차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무수한 일본인들이 소련 지역으로 끌려가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고아들이 대거 발생하게 되었다.

패전국의 민간인들이 만주에서 또는 한반도에서 어떤 상황에 처했을 것인지는 능히 짐작이 간다. 개인적으로 이들이 겪었던 고초에는 인간적인 동정과 안타까움이 들지 않을 바도 아니다. 특히 종전 직후 승전국인 미국은 일본 민간인들을 군부와 분리하기 위해 평범한 일본인들도 군국주의의 피해자였다는 인상을 조장했다. 도쿄전범재판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 전후 70년이 되도록 일본의 영화나 소설에서는 피해자, 희생자 의식에 근거한 '감상적 휴머니즘'이 대종을 이룬다고 한다.

아마도 '모토마치 아파트'도 그런 계열의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중일 PD포럼에서 일본측 주최자인 일본방송인회가 이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출품작으로 들고 나온 행위는 적어도 동북아 역사 문제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나 상대국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겠다.

필자는 이번 포럼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분위기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한국 측 참가자인 나원식 KBS PD는 "일본이 당시 만주를 ‘침략’한 게 확실한데, 그 부분을 단순히 전쟁이 일어났다고 표현했다. 이것이 일반적인 일본인이 갖고 있는 역사관이라고 한다면 매우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기실 사태의 근본원인을 제공한 것은 일본의 침략이었고 민간인 일본인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모토마치 아파트'가 만주가 배경이라 중국 측이 반발한 것이지 만약 한반도가 무대였다면 한국 측이 집단 퇴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사태는 일본의 부적절한 역사인식에 외견상 한국과 중국이 연대해서 포위한(?) 모양새다. 아베 정권 이후 과거사 문제에 각을 세우는 중국의 분위기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다행인 것은 한중일 포럼에는 대화와 토론의 기제가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일 한중 양국의 강도 높은 문제제기를 접한 '모토마치 아파트'의 연출자 오하시 마모루 NHK히로시마 PD는 "내 자신이 일본 사람이라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시인하고, "일본인이 당사자 의식을 가지고 다른 나라 사람의 입장에서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인배다. 그러나 잘은 모르지만 속으로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촌탁된다. 한중일 3개국 공동주최측은 심야 긴급 대책회의에서 마지막날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에 대한 긴급 토론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출품작에 대한 표창장 수여가 중국 측의 요청으로 취소되고, 참가상으로 대체하는 것으로 수습했다. 토론을 제안한 한국 측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갈 경우 응어리 진 것들이 풀리지 않게 되고, 이것은 포럼 정신에도 어긋난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번 '모토마치 아파트' 파문을 보면서 데자뷰처럼 떠오르는 것은 2007년 미국에서 벌어졌던 '요코 이야기' 사태다. 이 작품은 재미일본인이 쓴 영문소설로 '2차 대전 당시 북한 나남 지역에 살던 일본인 모녀 3인이 종전 직전에 일본으로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다'는 경험을 토대로 한 내용이다. 저자가 극히 일부분만 빼고 모두 사실(事實)이라고 밝힌 가운데 이 소설 역시 한국인을 가해자, 일본인을 피해자로 보는 시각에 근거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인들이 일본여자들을 강간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이 책이 미국에서 교과서로 채택된 것.
 
▲ 요코이야기(원제: So Far From the Bamboo Grove)


이러한 본말전도에 재미 한인들이 분노했다. 한일 현대사의 실상을 왜곡하고 있다고 본 동포들은 '요코 이야기'의 수업을 거부하고, 이 책을 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예의 ‘일본인이 희생자’라는 구도, 역사적 상황의 인과관계 대한 인식의 부재 등이 '모토마치 아파트'와 상사관계를 이룬다.

마지막 날인 18일 토론회에서 중국 측 관계자는 "다큐멘터리라면 인과관계를 생각했어야 한다. 앞으로는 작품을 제작할 때 역사를 존중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거의 준열한 나무람의 분위기다. 이번 사건을 접한 이형모 초대 PD연합회장은 "3국의 역사분쟁으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고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도 한중일 PD들은 역사 왜곡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해야 할 것"이라고 소회를 피력했다.

한편 일본방송인회 코노 나오유키 씨는 "'모토마치 아파트'는 일본인이 피해자 의식은 있어도 가해자 의식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라며 "일본방송인회는 한국과 중국을 비난하면서 일본인을 하나로 모으려는 세력에 맞서나갈 것임을 약속한다"고 언명했다고 한다. 각성과 분발의 계기가 되었다는 말씀인데 일본 측의 실천을 기대해도 될 것인가. 이번 제 14회 한중일 PD포럼이 열린 요코하마는, 1968년에 발표되어 일세를 풍미한 일본 가요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로 유명한 곳. 이제 대화와 소통을 상징하는 '그린라이트 요코하마'가 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글을 마치며]자신들이 보기에 불편하고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출품작이 상영된다고 해서 적절한 문제제기와 토론, 대화의 절차를 밟기 전에 먼저 주일 중국대사관에 보고부터 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 측 참가자들. 이러한 처사는 2004년 EBS가 주최한 제1회 EIDF에서 티벳 망명자들을 다룬 '금지된 축구단'(덴마크)이 출품되었을 때와 디졸브 된다. 당시 중국 측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왕모 감독은 바로 본국에 이 사실을 보고했고, 중국 당국은 주한 중국대사관을 통해 이 프로그램에 대한 방송중지를 EBS에 요청했던 것... 그들의 요청은 거부되었고 중국 측 참석자들은 중도에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무튼 대단한 중국이다.

[참고한 글] PD저널 최영주, 한중일 'PD포럼' 관련기사, 이연식, '조선을 떠나며' (역사비평사, 2012) 
 
※ 이 기사는 피디저널(
http://www.pdjournal.com/)에도 동시게재됩니다. 

 
 

[정길화 PD 약력]
1959년 경남 마산 출생. 한국외대 스페인어과 졸업 뒤 1984년 MBC에 입사, 교양PD로 20여 년간 시사교양 및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대표작으로 '세상 사는 이야기', '인간시대', '신인간시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이 있다.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방송대상, 삼성언론상, 한국청년대상, 통일언론상, 한국기자상 특별상, 임종국상, 외대언론인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저서로는 언론인으로 활동한 지 만 25년이 되는 해인 2009년에 쓴 '기록의 힘, 증언의 힘'이 있다. 공저로는 '피디수첩과 프로듀서저널리즘', '3인3색 중국기', '우리들의 현대침묵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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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9/26 [14:42]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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