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2009년 군 전역 직후 일본의 도쿄 외곽에서 잠시 살았던 적이 있다. 마침 전역한 때가 겨울이었는데, 일본의 겨울을 우습게 보고 두꺼운 옷을 그다지 많이 챙겨가지 않았다. 흔히 깔깔이라고 말하는 군용 한상내피가 가장 두꺼운 옷이었다. 혹시나 하고 무심코 챙겨간 그 옷이 일본에서 가장 많이 입는 실내복이 될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일본의 겨울은 한국보다 많이 춥지는 않다. 그러나 바람이 많이 불어 체감 온도는 한국보다 더 낮을 때가 많다. 그러나 정작 일본의 겨울나기를 힘들게 하는 것은 실외와 다를 바 없는 낮은 실내 온도다. '바늘 구멍으로 황소바람(牛風) 들어온다'고, 일본은 정말로 웃풍이 강하다. '저러다 깨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베란다 통유리가 심하게 흔들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웃풍 때문에 집안은 늘 냉골이었다.
일본의 집은 대부분 목조건물이다. 여름에는 시원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겨울에는 단열이 잘되지 않는다. 서양식으로 지어진 고층 아파트나 빌라 역시 한국과 같은 난방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일본의 건축법상 베란다에는 창틀(sash)을 달 수 없어 베란다 창틀과 내부 창틀의 이중구조인 한국의 다세대 주택보다 추울 수밖에 없다. 한국의 이중 창과 일본의 단일창. 그 이유와 차이는 무엇인가?
아파트 베란다는 주택에서 창가 밖으로 조금 튀어 나와 있는 공간으로, 일본에서는 화재나 긴급 상황시 이웃집으로 탈출하는 통로 역할을 겸하고 있다. 따라서 이곳에 함부로 개인짐을 놓아 통로를 가로 막거나 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를테면 공용면적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 가정의 경우 대부분 베란다를 사적으로 활용한다. 베란다에 창틀을 설치하게 되면 전용면적처럼 활용할 수 있어 실 평수가 늘어나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아파트 입주자들의 선호도로 아파트 건립 단계에서부터 외부창틀이 설치되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외부창틀 설치는 겨울 난방 보온에 많은 도움을 준다. 실제로 샷시 사이에 찬 냉기가 곧바로 거실로 침입하지 않게 보온 단열재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같은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외부 창틀 설치가 불법에 해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위험천만한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하루에도 수도 없이 일어나는 지진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살상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즉, 지진이 일어났을 때 외부창틀의 유리가 깨져 인도쪽으로 쏟아지면 사람이 다치기 때문에, 이를 미연의 방지하기 위해 베란다 외부창틀 설치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잦은 지진 때문에 아무리 추워도 베란다의 이중 창틀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의 겨울나기는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까?
일본에는 온돌문화가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추위가 혹독하기로 유명한 홋카이도에서는 1930년대부터 한국의 온돌이 '온도루', '온도루시키'라는 개조 온돌로 일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동시에 '유카단보'라는 바닥 난방법도 개발되었다. 지대와 바닥 사이에 또다른 공간을 만들어서 복사열로 난방을 하는 방식인데 기술문제나 비용문제 때문에 널리 정착되지는 못했다. 설치를 한다 해도, 거실에 일부정도만 설치할 뿐 집안 전체를 데우지는 못한다.
▲ 고타쓰(炬燵) 일러스트 ©www.misaki.rdy.j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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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본의 방한대책은 집 전체를 데우는 것보다 개인이 두꺼운 실내옷을 입거나 발열기구를 이용해야만 한다. 일본에는 누빈 저고리처럼 생긴 '한텐'이라 부르는 실내용 누빈 상의 외투가 있다. 바닥이 차기 때문에 실내용 털 실내화 역시 거의 필수품이다.
개인용 난방기구는 핫팩부터 시작해서, '유탄포'라는 뜨거운 물주머니, 가이로라는 손난로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가장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발열기구는 역시 앞에서 얘기한 '고타츠'다.
고타츠는 사각 테이블 바닥 밑 부분에 전열 기구를 설치한 난방기구로, 테이블 위에 이불을 덮고 또다시 그 위에 또 한장의 테이블을 얹어 테이블 안쪽의 따뜻한 열이 빠져나가지 않게 한다. 이러한 고타츠는 일본 서민층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 겨울 난방기구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일본영화나 드라마, 만화 속의 일본 가정집 겨울 풍경은, 고타츠 안에 두 다리를 밀어 넣고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귤을 까먹거나 나베요리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곧잘 묘사되기도 한다.
또한 이 고타츠 안에 있어도 얼굴 위는 실외와 마찬가지로 춥기 때문에 더더욱 고타츠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래서 일본인구보다 그 숫자가 더 많다는 고양이도 고타츠에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줄 모른다고 해서 이를 가리켜 '네고타츠'(네코:고양이+고타츠)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일본인들에게 많은 추억을 선사했을 이같은 풍경이, 그러나 최근에는 서구화된 생활방식으로 인해 점점 일본 가정집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일본 '오리콘 뉴스'는 일본 원예 농업 협동 조합회 마츠모토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1975년 360톤 가량이었던 감귤 생산량이 최근 약 90톤인 1/4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전했다. 수입자유화를 통한 다양한 종류의 해외 과일들이 범람하면서 상대적으로 수요가 줄어든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근 감귤 산지인 제주도는 수요가 줄어드는 감귤대신 천혜향이나 한라봉처럼 고부가 작물로 농지를 변경하는 경우가 많다.
고타츠 역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 산업성 생산 동태 통계에 따르면, 1990년대 178만대 가량 생산하던 것이 2003년에는 약 90% 감소한 24만 7000대로 대폭 급감했다. 겨울 난방용으로 고타츠를 이용하는 가정집들이 현저하게 줄어든 탓이다. '일본의 겨울'하면 누구나 떠올릴만한 그러한 풍경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주문량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고타츠 생산 관계자에 의하면, 일본가정이 서구화 된 생활문화로 자국내 수요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역으로 해외에서 일본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고타츠 주문이 증가, 수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고유 일본 문화의 대표적 심볼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국내 드라마에서도 여전히 고타츠는 가족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장소로서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처럼, 실생활에서 고타츠 문화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지만, 국내, 국외할 것 없이 일본 생활문화의 상징으로서는 여전한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