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보기
일본6대일간지 ㅣ 정치 ㅣ 경제 ㅣ 사회 ㅣ 문화 ㅣ 연예 ㅣ 그라비아 ㅣ 스포츠 ㅣ 역사 ㅣ 인물 ㅣ 국제 ㅣ 뉴스포토 ㅣ 뉴스포토2 ㅣ 동영상 ㅣ 동영상2 ㅣ 독자 게시판
섹션이미지
일본6대일간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연예
그라비아
스포츠
역사
인물
국제
뉴스포토
뉴스포토2
동영상
동영상2
독자 게시판
회사소개
회원약관
개인정보취급방침
광고/제휴 안내
사업제휴 안내
소액투자
기사제보
HOME > 뉴스 > 사회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한국은 왜 민족학교를 세우지 않았을까?
[현장] 조선학교의 체육대회에서 느낀 것들...
 
박철현 기자
"야! 빨리 돌려라"
"용철! 바싹 붙어라. 떨어지지 마라!"
"쏴라!!!"

 
9월 초순 도쿄 고마자와  올림픽 기념 경기장을 찾았다. 재일조선학생 중앙체육대회(이하 '중앙체육대회')를 보기 위해서 였다.
 
이 대회는 매년 한번씩 벌어지는 것으로 전국의 초중고급 조선학교가 대부분 모인다. 학생들만 참가하는 대회로는 34회째이지만, 재일동포 일반인 체육대회는 1954년에 처음 열렸으니(78년 18회째를 끝으로 일반인 체육대회는 없어짐) 역사로만 보자면 55년째 개최되고 있는 셈이다.

중앙체육대회가 매년 한번씩 열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조선학교 학생들이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의 전국대회에 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각급 학교에는 축구부, 럭비부, 농구부, 육상부 등 다양한 분야의 운동서클이 있고, 부원들도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이 아무리 서클 활동을 열심히 해도 대회를 참가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쌓은 실력을 발휘조차 못하게 된다. 서클활동의 동기부여(모티베이션)가 사라져 버릴 우려가 있다.
 
즉, 중앙체육대회는 이러한 동기부여를 위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전국의 조선학교 학생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으로써 기능한다.
 
▲ 고베에서 올라온 조선중급학교의 농구부. 가나가와 조중과 붙어서 승리를 거뒀다   © hiroki yamamoto / jpnews
 
조선학교가 일본대회에 참가 못하는 이유
 
조선학교가 일본의 정식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학교교육법' 제1조가 정하는, 이른바 '1조 학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학교는 학교교육법 제83조의 "1조학교가 아닌 그 외의 학교를 각종학교라고 부른다"는 조항에 따라 '각종학교'로 분류된다. 
 
이 각종학교에는 어학계통, 간호계통, 예비교(과외학원)등을 비롯해 인터내셔널 스쿨, 그리고 조선학교 등이 들어간다. 자동차 교습소도 각종학교에 해당될 정도이므로, 1조 학교가 아닌 모든 학교는 각종학교 범위에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90년대만 하더라도 일본에서 벌어지는 전국레벨의 선수권 대회는, 지역예선전은 해당지역의 룰을 따르지만 전국대회는 1조 학교가 출전권을 가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조선학교는 몇몇 한정된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대회는커녕 지역예선조차 출전하지 못했다.
 
중앙체육대회는, 그래서 시작되었다. 
 
또 그렇기 때문에 대회는 약동하기 마련이다. 초급학교 어린이들로부터 고급학교 청소년들까지 1년간 갈고 닦은 솜씨를 뽐내는 공간이다 보니 전력을 다하기 마련이다. 
 
기자가 본 축구시합 <도쿄중급학교 vs 기후현・미에현 욧카이치 연합>의 경기도 그랬다. 도쿄 중급학교 축구부는 약 40여명의 부원인 반면 기후현 중급학교와 미에현 욧카이지 중급학교는 둘 다 서클 부원수가 모자라 연합팀으로 출전했다. 또 연합까지 했는데도 한명이 부족해 옆동네 아이치 중급학교로부터 1명을 빌려 겨우 11명을 채웠다고 한다.
 
사실상 시합전부터 이미 도쿄중급학교의 승리가 거의 결정난 셈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시합에 임한다. 미에에서, 아이들과 같이 올라온 학부모들도 기대어린 눈빛이다.
 
"이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1년간 이날만을 위해서 연습을 했으니까. 사람수가 결정하는 건 아닙니다. 하하하"

▲  빨간 유니폼이 기후현・미에현 욧카이치 연합팀. 열심히 뛰었지만 17-0으로 졌다   © hiroki yamamoto / jpnews

▲ 후반전 설교도 들었지만...  © hiroki yamamoto / jpnews

▲ 점수차가 벌어지자 아예 웃어버리는 욧카이치 선수들의 어머니들   © hiroki yamamoto / jpnews
 
하지만 시합휘슬과 동시에 그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초반 10분은 어떻게 버텼지만 전반 12분 터진 도쿄 중급학교의 첫 골을 시작으로 엄청난 골세례가 시작된다. 3-0, 5-0, 7-0...
 
기자 입에서는 절로 영화 <친구>의 "마니 뭇따 아이가, 고마해라"가 튀어 나왔다. 5-0까지만 하더라도 목소리를 높이며 응원하던 어머니들도 10-0이 넘어서자 아예 폭소를 터뜨린다.
 
"어차피 처음부터 질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좋지 않습니까. 1년에 한번씩 이렇게 같이 모여서 시합도 하고. 내가 다녔던 20년 전엔 훨씬 많아서 더 재미있었습니다만, 요즘엔 학생들 수가 적어져서 많이 조용해졌습니다."
 
실제로 조선학교의 학생수는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전국 약 5만명의 학생수를 자랑했던 조선학교였지만, 2004년에 1만 1천 5백명, 그리고 2008년 2월에는 1만 1천명까지 줄었다. 이대로 가다간 2011년엔 만명선도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것은 한국과 북한이라는 나라를 떠나 재일동포들이 반세기에 걸쳐 온갖 힘을 다해 일구어 왔던 '민족교육'이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도한 시대의 흐름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조선적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에 관한 열의와 그 노력을 보아 왔던 나로서는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하지만 그런 걱정과는 상관없이 아이들의 표정은 밝다. 
 
경기가 끝난 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기후현・미에현 욧카이치 연합팀의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처음에는 우물우물, 아니 울먹울먹거리던 아이가 어느 한순간 갑자기 고개를 들고 "열심히 해서 후회는 없습니다!"라고 또렷한 '조선어'로 답한다. 그리고 팀원들에게 고개를 돌려 "내일 시합은 꼭 이기자"고 소리를 친다. 아! '조선놈' 답다.
 
축구의 경우 90년대 말부터 고교생 레벨의 전국대회 출전의 길이 열렸다. 이로써 지역의 조선고급학교는 예선대회부터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각종학교'는 원칙적으로 출전이 금지되어 있지만 조선학교의 경우 그 특수성이 인정되어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자 2006년 오사카 조선고급학교(이하 '오사카 조고')가 전설을 만들어 낸다.
 
오사카 지역예선을 돌파한 오사카 조고가 16강전에서 강호 구니미 고교를 이겨버린 것이다. 구니미 고교는 2004년 인터하이 전국대회의 우승팀으로 20년 연속으로 전국대회 본선에 진출한 강호중의 강호다. 또 2004년 대활약을 펼친 히라야마 소타는 j리그 fc 도쿄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고 있다.
 
오사카 조고의 8강전 상대는 시가현 대표 야스고교. 밀고 밀리는 접전끝에 0-0 무승부를 기록, 마지막 승부차기에서 오사카 조고는 눈물의 고배를 마셨다. 결국 야스고교는 4강전과 결승전을 승리해 그해 전국축구대회의 우승컵을 안았다.
 
이 대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중 하나가 바로 16강전 구니미 고교를 이겼을 때 해설자가 흥분된 어조로 내뱉은 다음 말이다.
 
"오사카 조고,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구니미는 전국에서 유망주들을 다 끌어모은 강팀입니다. 반면 오사카 조고는 초등학교때부터 그대로 올라온 학생들이랍니다. 그런데 저 학생들이 구니미를 이겼습니다. 이거 정말 대단한 겁니다"
 
중앙체육대회는 3일간 육상, 축구, 배구, 농구, 탁구, 야구, 정구, 럭비(투구), 유술, 권투, 가라데등 조선학교의 서클활동 전종목에 걸쳐 벌어진다. 극진 가라데는 최영의 선생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들어가 있다고 한다.
 
경기에 임해서는 치열함을 보이고 경기가 끝나면 금세 악수를 나누고 친구가 된다. 단결과 우애를 과시하는 장이 바로 중앙체육대회다.
 
하지만 기자는 중앙체육대회가 끝날 때쯤 농구장에서 만난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술 한잔 마신 재일동포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지금은 총련조직원이 아니지만 아이들은 민족학교에 보내고 있어. 왜냐면, 우리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왜 남한은 민족학교를 세우지 않았던 거지?  그리고 지금은 왜 세우지 않는건가? 해방되고 일본에 남은 재일동포들을 위해 학교를 세워줬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인데 말야"
 
▲  그래서일까? 아이들의 유니폼은 그냥 "코리아"라고 적힌 것이 많았다   © hiroki yamamoto / jpnews
 
어린이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라
 
사실 극영화 '박치기'나 다큐멘터리 영화 '디어 평양' 등을 통해 조선학교, 아니 '민족학교'는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또 민족학교는 '영화속' 뿐만 아니라 때로는 현실의 뉴스로 등장하기도 했다. 94년에는 민족학교 여학생들의 치마저고리가 찢겨지기도 했고, 도쿄 조선제2초급학교, 속칭 '에다가와 조선학교'는 도쿄도와 몇년 간에 걸쳐 지루한 법정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나는 하지만, 이런 영화나 뉴스들을 볼 때마다 웬지 불편한 기분에 빠진다.
 
왜냐하면 이것들에서 다루고 있는 조선학교에 대한 인상이 상당히 고정적이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좌우가 없다. 한국의 진보세력은 민족학교를 '웬지 불쌍하고 차별받고 고통받는 이미지'로 정형화시키고, 보수세력은 '조총련계의, 수령론을 교육시키는 빨갱이 양성소'로 몰아부치는 경향이 있다.
 
이 말도 구조적으로 본다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구조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은 아주 당당하며 '빨갱이' 교육 보다는 '민족' 교육을 받는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왜냐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남쪽이냐 북쪽이냐로 단정지을 수 없는 '자이니치'(재일) 만의 특수한 사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을 초월한 '민족교육'의 중요성을, 그들이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혹자는 민족교육, 즉 우리글과 우리말을 쓸 수 있다면, 그래서 선조들의 전통문화를 이어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라고도 말한다. 조선, 아니 '민족학교'에서 일부러 이데올로기를 추출하려 노력하기 보단 일단 아이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 중급학교 여자 농구대회   © hiroki yamamoto / jpnews

▲ 중급학교 여자 농구대회   © hiroki yamamoto / jpnews
▲ 다음 시합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 hiroki yamamoto / jpnews

▲  이겨서 기쁘다는 고베 조중 농구부의 여학생. 고베는 가나가와를 52-36으로 꺾었다  © hiroki yamamoto / jpnews
 

 

 

ⓒ 일본이 보인다! 일본전문뉴스 JPNews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기사입력: 2009/09/28 [21:18]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미국에는 왜 민족 학교가 없을 까요? 웃긴군 09/09/29 [06:39]
사실 일본의 재일 동포 보다 미국의 재미 동포가 더 많습니다. 일본에는 있는 민족 교육이 미국에 없다는 것이 의아하네요. 2PM의 재범과 같이 한국인의 피를 가진 미국인이 한국에 대한 애국심이 없다니 정말 큰일입니다.

한국은 일본에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게 하는 민족 학교를 만드는 것 보다 미국에 우선 만들어야 하네요.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2세들에게 한국인의 우수함과 한국에 대한 애국심을 가르쳐서 미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전도사로 만들어야 합니다. 수정 삭제
맨 아래 사진 미치광이 09/09/29 [08:40]
박기자님이신가요? 생각보다 조숙해 보이시는;; 수정 삭제
민족학교? 해외학교.... 수하네 09/09/29 [09:57]
전세계에는 한국계 해외학교가 30개 있습니다.
그 중 대부분은 중국에 있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일본 등지에 있습니다.
해외학교는 1990년대 말부터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해외 주재원이 늘어난 경우도 있지만,
많은 수가 해외특례입학과 '영어'때문에 간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통계를 통해 해외학교 학생들의 대학진학 현황만 뽑아봐도
0.1초안에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일본에 있는 민족학교는 다른 나라에 있는 해외학교와는 학교 설립의 배경부터 다르고, 특례입학이나 '영어'때문에 다니는 것이 아닌데도
그냥 해외학교의 범주에 넣어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특례입학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아주 소수이지요.
일단 일반적인 해외학교와는 다른
일본에 있는 '민족학교'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정부의 관심과 지원은 요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정 삭제
근데요 저기.. 조선민족학교는 DD 09/09/29 [11:36]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으로부터 지원을
운영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한국인 학교는 따로 도쿄에 있는걸로 아는데요.. 수정 삭제
대한민국은 재외교포를 얼마나 알고, 무엇을 해주었나? 재미교포 09/09/29 [13:07]
이글은 쓰는 저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재미교포 2세 입니다. 제가 단순히 미국에서만 자라난게 아니고, 한국에서도 몇년정도 생활한적이 있기 때문에, 한국어는 어느정도 됩니다. 제가 여기에다 글을 올리는 이유는 '웃긴군' 이라는 님이 무개념 및 무지(無知)에 답해볼려고 합니다. 과연 '웃긴군'님은 미국에 재미교포들이 민족의식(民族意植)이 있는지 없는지를 분명히 알고하는 말입니까? 그러면 물어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은 해외교포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습니까? 해외교포들에게 밥을 주었습니까, 사는데 보태라고 돈을 주었습니까? 제가 이렇게 말하면 아마 이렇게 반박 할겁니다. '니네들은 도망자들 이다, 반역자들 이다 라고. ' 그런데 이거 아십니까? 해외교포들은 가난때문에 미국으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해외로 이민가면 뭐든게 해결된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해외교포들이 타국에서 보통 본토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할 고생을 하며 손에 피, 물집이 나고 굳은 살이 박인 손으로 돈을 법니다. 그렇게 피땀어린 외화로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합니다. 1997년에 일어난 아시아 금융위기때 해외교포들도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다는것을 그 금모으기 운동에 재미교포들과 재일교포들도 포함한 되있다는것을. 그리고 해외교포들이 그래도 내 조국을 도와줘야 된다고 이라고 한국제도 사주고 그러는데…

여기에 사는 많은 한인부모들은 아침 5시에 나가서 밤12시가 되야 돌아옵니다. 그래서인지 자녀들은 거의 부모얼굴을 본적이 까마득하고, 대화조차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한인자녀들이 많습니다. 자라서 학교에 가면 맨 처음 접하는 언어는 영어입니더. 부모하고 이야기할 시간도 없고, 대화도 없으니 영어밖에 못하게 됩니다. 부모들이 생계를 위해 새벽에 나갔다, 밤 늦게 돌아오는데 어떻게 민족교육이 생기고 한국어를 배울까요?
제가 듣기로는 중국과 일본은 이민 3세대들과 외국인에게 자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게할려고 천문학적인 돈은 투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떨까요? 거의 없습니다. 한국은 거의 자국의 언어나 문화를 해외에다 투자하지 않습니다. 사실 놀랄일도 아닌게, 한국은 현재 영어에 광(狂)적으로 미쳐서, 한글를 무시하고 영어로 써 놓았다는것을. 재일 웃기는것은 이명박 정부가 정규교육에 전과목을 영어로 실시하자고 하는거였습니다. 무리겠지만, 명치유신시대의 교육대신 모리 아리노리가 일본어와 한자를 버리고 영어로 다 바꾸자고 하는거랑 비슷합니다. 한국내가 이런판인데 과연 해외교포가 민족교육이 안 수정 삭제
흠... 우드 09/09/29 [13:28]
재미교포님 글을 보니 참.... 민족에 너무 얽매이는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해외에서 고생하면서도 민족을 잊지 않으려 하는 이들에게는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머...그러나 여기서 아무리 말한들 한국정부에 무슨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수정 삭제
일본에선 그리아 09/09/29 [13:37]
그 당시 재일동포들은 국적이 없는 상황에서...일본에게 버림 받고...남한에게 외면 당하고 있던 때입니다.북한은 학교를 세우고 민족교육에 투자를 한것이지요.많은 동포들이 국적을 갖게된 것만으로도 재일동포들은 하나가 되었는데...이데오로기 운운 하면서...편 가르기 좋아하는 우리네의 모럴이 그들을 둘로 갈라놓은것 아닙니까.일본에 살면서 이들의 역사를 알고난 후부터는..민단이냐 조총련이냐 보다는 조선어(한글)를 할 줄 아느냐 못하는냐에 평가를 달리합니다.같은 언어를 주고받는 유대감이 형성하는 모럴은 이데오로기 국적을 떠나 핏줄을 느끼게 되더군요.몇 해전에...민단과 조총련이 한마음 되고자 악수하자마자 일본이 헛기침하니까 이튿날 민단이 바로 철회했죠.그것이 이곳의 현실입니다.
수정 삭제
이어서 재미교포 09/09/29 [13:41]
되있다고 할까요? 한국은 거의 자국의 언어 및 문화투자가 일본과 중국에 비해 미비하며, 두나라에 비하면 아직까지 존재감이 없습니다. 미국 대학들에는 일본어학과나 중국어학과는 있어도, 한국어학과는 별루 없습니다. 왜 냐하면, 관심도 없을뿐더러 학교한테 있어서 이득도 안되고 한국정부나 기업으로 부터 투자도 없기 때문입니더. 존재감도 없고 투자도 없는데, 어떻게 교포 2,3세대들이 배울려고 하고 자긍심을 갇겠습니까? 대한민국은 교포들이 필요할때만 자기민족, 자기조국이고 필요없을때는 반양키, 반쪽바리라고 그러고 대한민국이 투자가 없고, 본토국민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한 힘들다고 봅니다. 수정 삭제
하아... 엘시드 09/09/29 [14:37]
우리가 어려울 때, 70년대엔 정부 차원에서 위문단을 후원 - 조직해서 보내기도 했었죠. 해외교포 특히, 재일교포 사회는 남북한의 세 겨루기가 한참이었고 우린 열세였으니까요. 영상자료로도 남아 있을 겁니다. 그 유명한 김희갑 선생님의 '불효자는 웁니다'를 부르시는 광경이. 물론 관중석에선 다들 눈물짓는...

왜 이 이야기가 나오는가 하면, 냉정히 말해서 우리 혹은 우리 정부는 필요에 의해 교포사회를 돌아본 적은 있어도, 반대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정부 차원의 지원엔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고, 그 한 예로서 누구나 알만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허나, 뭐 냉정히 말하면 개개인도 마찬가지. 제 큰형님 때만해도 일본이나 미국에 친지가 있고, 그분들이 가끔씩 선물로 학용품류를 보내주곤 하면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던것이 이젠 간혹 재일교포 3세가 '쪽발이' 취급을 받기도 하는 상황으로 변했습니다. 서글픈 일이죠.

어쨌거나 여러 측면에서 재일교포 사회에 민족학교란 타 교포 사회의 해외학교 와는 다른 특수성이 있음을 간과해선 안될겁니다. 그렇다고 타 교포 사회에 세울 해외학교가 보다 덜 중요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대다수가 타의에 의해 반세기를 넘게 살아왔음에도 불구 여전히 재일교포들의 지위가 향상되지 않는한, 또한 그로인해 재일교포 3세 4세들이 정체성에 심각한 갈등을 겪는한은 이제라도 정부 차원의 민족학교 건립과 지원은 행해져야 한다고 봅니다. 수정 삭제
박통시절 ..... 태클베리 09/09/29 [15:23]
박통시절 김종필이 일본에 가서 대일원조를 받으며 맺은 한일협정으로 인해서 모든 청구권을 포기했으며 이당시 재일 거류민단 관계자들의 학교 설립요구도 일본측요구 한마디에 묵살했으며 이후 재일교포들을 최소한 대한민국정부에서는 방치 혹은 버렸던거죠...이런일로 당시 독립운동가분들은 밀가루 몇포대에 일제땐 이완용이 해방되선 김종필이 나라를 팔아먹었다며 통곡을 했다고합니다. 수정 삭제
모리 아리노리 그리고 쓰다 우메코 Nicholas 09/09/29 [15:25]
재미교포님이 미국 사는 처지를, 그리아, 엘시드님이 일본 사는 처지를 이야기 해 주셨네요. 그리고, 위 기사가 한반도에 사는 시민들을 처연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1871년 이래, 한반도 중심부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보면 지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다만 현실의 역사는 그것을 당연히(?) 가르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 중심부의 과거 행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알려진 바대로, 유신이후 1871년 일본은 선교사 Verbeck의 제안으로 이와쿠마 사절단이 서양을 배우러 떠나게 됩니다. 이러한 결단은 일본의 근대화의 발판이 되지만 한편으로 서양에 대한 피해의식을 고스란히 이식시키는 결과도 가져오게 됩니다. 그 상징적인 인생을 보여준 인물이 영어공용화론, 일본인 개조론을 들고 나온 정치가 모리 아리노리였지요.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던 그의 삶은 비극이었습니다.

일본에 널리 알려진 쓰다 우메코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녀는 1871년 메이지 유신 정부의 지원아래 7살의 나이에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당연히 그녀가 공부를 마칠 무렵, 외양만 일본사람일 뿐,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두가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 자기를 공부시켜준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 둘째, 피해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는 정부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았고, 당대 헬렌 켈러, 나이팅게일 등과 교우하며, 주체적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재를 기르기 위해 학교를 설립한 인물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반도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된 사람라면, 자기 뿌리에 대한 이해가 자기 삶의 토대를 여물게 하지 않을까 합니다. 결국, 쓰다 우메코의 그것처럼, 첫째는 개인이 판단할 문제지만, 둘째는 그 나라 중심부의 문제입니다. 여러 생각이 있지만, 개인이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나라에 휘둘리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수정 삭제
자신이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라. 웃긴군 09/09/29 [16:18]
재미교포// 나라가 자신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지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나라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라는 말도 모릅니까? 재미교포님은 한국에 대한 애국심이 없습니까? 해외의 살고 있는 해외 동포들의 특징이네요. 해외에 살고 있으면서 한국과 관련된 사업을 하고, 한국 덕분에 번 돈으로 한국에서 거들먹리네요. 이래서 한국인들의 해외 동포에 대한 인식이 나쁜 것입니다. 해외 동포는 한국에 기생하는 기생충입니다. 2PM의 재범이 바로 그 케이스네요.

한국에 돈을 벌러 온 주제에 한국 욕이나 하고, 한국인을 깔보는 그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면 한국인들은 더이상 해외 동포를 지지할 수 없네요. 수정 삭제
하하 재미교포 09/09/29 [17:48]
웃긴군님은 제 글을 잘 이해하지를 못하시는군요. 그리고 님이야말로 愛國心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진정 愛國心있다고 할수있을까요? 님은 앞뒤정황을 제대로 모르고 말을 막하네요. 계속해서 해봤자, 제 손만 아프겠네요.
님의 말은 語不成說 이네요. 수정 삭제
읽어봐도 왜 안만들었는지 답이 없네요.. 09/09/29 [19:32]
우리학교라는 독립영화가 얼마젼 아주 흥행을 했지요.. 저도 봤습니다만.. 그걸 보면서 왜 남한은 민족학교를 세우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그래서 열심히 읽어 수정 삭제
헐... 엘시드 09/09/29 [21:54]
웃긴군님/제가 교포는 아닙니다만, 도저히 한 마디 안하고 갈수가 없네요. 소위 이민 1세대, 혹은 대다수의 교포사회 초석을 마련한 6~70년대 심지어 80년대 초반의 이민자분들께 '한국덕분에' 먹고 살았다... 라는 얘기하면 기가 차서 쓰러지실겁니다.

같은 교포 상대로 장사를 한것까지 그리 치는건 아닐테고, 대체 6~80년대에 해외에서 뭘 가지고 한국 덕분에 먹고 살수 있을까요? 진짜 웃고 말지요... 그 시기엔 국가적으로도 해외 동포에 대해 베푸는 것보다 해외 동포가 국내로 송금하는 외화의 덕이 훨씬 컸답니다.

님께서 주장하신 '한국 덕분에' 먹고 산다 할수 있는 케이스는 90년대 이후에나 발생할 수 있는 이야기고, 그런만큼 알려지지도 않은 약소국가 출신의 이민자로 시련을 겪을만큼 겪은 해외 교포 주류 세대와 그분들의 자손인 3~4세대의 정체성과 민족교육을 걱정하는 논의와 관련해선 핀트가 빗나간 비난입니다.

그저, 근래의 일부에 대한 짧고 왜곡된 소견을 가지고 전체를 폄하하는 우는 범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덧붙여서 님의 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견해 표명에 있어 마치 우리 사회의 대중적 시각인양 '한국인들의... 인식이 나쁜것...' 운운하는 표현은 삼가하셔야 할것 같네요. 수정 삭제
흠님처럼 저도 궁금합니다. Nicholas 09/09/29 [21:59]
민족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갖고 살기 위한 민족교육. 이러한 모토아래 설립된 민족학교. 인터넷에 몇군데 오픈되어 있는 자료를 보니, 1996년 기준 ; 민단(학교수 11), 총련(학교수 149) 초,중,고,대학교를 다 합한 수치입니다. 하지만, 민단의 경우는 초,중,고교가 하나로 되어 있어서, 학원수로만 따지면 11곳이 아니라, 4곳(도쿄1,교토1,오사카2)입니다. 이러던 것이 2006년에 이르러 총련계 학교가 80여개 정도로 줄게 되었다고 합니다. 민단계 학교로는 오사카에 금강학원, 백두학원 건국학교 그리고 교토 국제학원 등이 있고, 각각 한국 정부에서 몇명의 파견교사가 있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민족학교는 점령군인 연합군과 일본 정부의 정책에 따라 출렁이게 됩니다. 1957년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남북한 정부에 거듭 지원을 요청했지만, 어떤 영문인지 무관심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때부터 민족학교는 대부분 북한의 원조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저도 궁금합니다. 그렇다고, 한국에 있는 시민들이나, 해외에 사는 교포들이 이러한 현실을 두고 서로 다툴 이유는 없습니다. 1957년이래 지금까지 한반도의 중심부가 해외교포들을 위한 교육에 무관심했을 뿐입니다. 그것을 중국과 일본에 비교해버리면 창피한 수준이지요. 그게 다입니다. 사실을 알면 한가지씩 고쳐가야 하는데, 한반도 중심부는 그럴 겨를이 없나 봅니다.
수정 삭제
왜그럴까요,,,? 참세상 09/09/29 [22:39]
단적인예로 한중일삼국인이 화와이 사탕수수이민을 가죠.그런데 힘든일을 해도 중국과 일본은 미래를 생각했습니다.중국인들은 힘들게 번돈으로 땅을 사고 일본인들은 자식교육에 모든것을 털어 넣었죠,,,,,그러면 한국인은요,,,그져 하루벌어 하루사는 그런 생각밖에 없었죠,그렇다고 미국사시는 분들을 폄화하기위해 이글을 쓰는게 아닙니다.미국이나 일본이나 다를것 없습니다.

우리부모님들이 고생은 많이 하셨어도 미래를 조금 관가 한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윗분이쓰신글처럼 한국정부는걍 쌩까고 ,,,민단은 일본의 어용집단 같은 모습으로 변모해 있고,,,그나마 정신차리고 미래를 대비한건 총련계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유학시절에 많은 민단,조총련 교포들한테 들은 이야기입니다.

특히 민단쪽사람들의 한국정부,민단조직의 상부층놈들의 행태에 진저리를 치더군요.민단의 전체적인 뜻이 아닌데로 민단 전체의 뜻인양 일본정부의 대책에 걍 예 하고 따라가는 행태,,,문제 많죠,,오죽하면 민단,한인회가 나뉘어졌겠어요,,,

정치적인 면 보다는 민족의 장래,자존심 ,,,이런걸 먼저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말이죠,,,사실 창피한 면이 많습니다.

위에 어느분의 말씀처럼 우리민족끼리,,,라는 화해의 무드에서 장발짱(고이즈미)이 인터뷰에서 그런 움직임에 너무 빠른게 아닌가,,,그렇게 생각합니다.라는 텔레비젼의 인터뷰를 아직 저는 기억을 합니다.

걍 개새끼죠,,,거기에 부화 놔동 했던개 민단,,,아조 개새끼들이 따로 없단 느낌이었습니다.

그져 민단은 자존심이고 나바리고 돈,,돈돈,,,대표적인게 요코하마쇼깅,,,이넘들이 주축이 되서 만든게 ㅅㅎ은행이죠,,? 이사람들은 민족의 미래,자존심 보단 그져 현실안주와 돈이죠,,,

대표적인게 제일동포 모국방문사업때 있는 사람 위주로,,,민단은 영원한 일본의 딱가리,,, 수정 삭제
재미교포는 좀 닥치지? 허허 09/09/29 [23:44]
조승희 때 대통령이 사과하라고 ㅈ랄떤게 니들 아니냐?
한국에 신경 꺼 수정 삭제
허허 당신이 뱉은말 책임질수 있어? 나그네 09/09/30 [03:40]
허허. 당신, 무슨 증거라도 가지고 하는말이야? 아무런 증거나 자료없이 장난으로 뱉은말이면 고소감인데. TV를 잘 안보거나 난독증이 있는거 같군그래. 요즘 말한번 잘못했다 당장 고소감인데... 당신같은 인간때문에 사이버 실명제를 도입하자고 그러는거 아니야. 너는 고소 안당하게 증명할 자료라도 있어? 어린애처럼 억지쓰지 말고, 얼른되봐. 수정 삭제
나그네야... 허허 09/09/30 [12:10]
니가 검색해서 찾아라
개나 소나 고소드립 치는데 코웃음도 안나온다 수정 삭제
깝깝 그리아 09/09/30 [14:26]
민단내부의 권력투쟁도 한국의 정치판을 보는듯 진절머리나고,민단을 유지해 가기위한 원조를 받기위해서라지만 ㅌㅇ교신자들로 득실데는것도 불편하고...전 정권때는 북한국적의 동포들도 한국방문이 가능해져서 자녀를 한국대학에 보내려 준비하고...한국과 사업을 위해 준비해온 조총련계 동포들에게 현 정권이 한국방문을 허락하지 않아서 큰 낭패를 보고 있지요.한국방문 하려면 무조건 국적변경 하라는 이 뜨악한 현실...머지않아 있을 재외국민 투표권실시도 있고하니 계산이 앞서겠지만 해도 너무하지않습니까.우리는 남한이니 북한이니 나누어 표현하지만 북한국적 가진 사람들은 민족교육의 영향에서인지 언제나"한반도"라고 표현합니다.난 이들의 표현이 훈훈하고 정겹게 느껴집니다.그리고 보다 많은이들이 그들의 말을...그들의 마음을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그런 의미에서도 박철현 기자의 이번 포스팅에 감사 드립니다.
수정 삭제
바나나 재미교포는 제발 좀 닥쳐! 지랄리아나 09/09/30 [19:06]
너네 바나나들은 우리 본토출신들 영어 못한다고 얼마나 피눈물나게 갈궈댔니? 그러고서 너네들이 무슨 낯짝으로 우리나라를 씹어대! 그래, 너네들 잘났다. 그래서 교포 1세 년놈들까지 맨날 미국최고, 한국찌질이라고 외치냐? 수정 삭제
친일파가 해방후 정권을 잡았으니 so cllo 09/10/04 [20:31]
그렇지요...지금도 역시 정치,경제,문화,역사,학계...친일파들이 판을 치니 민족학교 세우자 하면 미친놈 취급 받을겁니다...이완용이 손자가 지금 서울대총장아닙니까........ 수정 삭제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맹그로브 09/10/22 [20:26]
친일파 내지는 친일인사들을 그대로 살려두면서 무슨 민족학교...
특히 남한에선... 절대로 있을수 없는 일이지여.. 다카키마사호 (박정희)의
행적을 보면 더욱더 물론 이승만도 마찬가지지만... 수정 삭제
한,일 관계는 한,미,일관계 얼씨구 10/03/07 [12:20]
이미 독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소유문제는 박정희시절의 밀약으로 일본으로 넘겼다. 이것은 미국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던것이다. 법적으로 한국의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해서 남의 나라로 안넘어간다고 할 수가 없다. 세계가 인정해버리면 되는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열강이 이라크가 나쁜넘이다라고 하면, 그렇게 따라가게되듯이. .... 결국, 한국의 역대정부는 일본부역자들을 미국이 뽑은 수반의 하수인으로 재기용하므로서 일본에게 간을 팔던 놈들이 그대로 미국을 향해 만세를 부르게 되었던 억수로 슬픈역사가 되어버린것이다. 그 기득권을 가진 자손들이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 정치(여,야당관계없이) 를 쥐어틀고 있는것이며, 이들의 목적은 자신들의 영달이며, 절대로 과거를 파헤칠수 없게 서로 단결해있다. 삼성이 어떻게 컸으며, 3대세습이 가능한것인가??
민주정권이라는 대중,놈현 정권마저도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그냥 머슴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이런 와중에 무슨 민족운운할수있는가?? 이승만시젊부터 민족얘기를 하면 여지없이 몰아대던 빨갱이타령!! 그러니 일본에 있는 교포를 위해서 민족어쩌구 그런 마인드가 생길리가 있겠습니까? 수정 삭제
참세상님, 틀리게 쓰신 글 수정 부탁드립니다. 우리말사랑 10/04/21 [15:05]
폄화 (X) -> 폄하 (O), 관가(X) -> 간과 (O) 수정 삭제
재밌게 보았습니다 내일할일 16/09/05 [22:35]
한국에서 재일교포에 무관심했던 건 하루 이틀이 아니죠.. 수정 삭제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최근 인기기사
일본관련정보 A to Z
  회사소개회원약관개인정보취급방침 ㅣ 광고/제휴 안내사업제휴 안내소액투자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한국> 주식회사 올제팬 서울 송파구 오금로 87 잠실 리시온 오피스텔 1424호 Tel: 070-8829-9907 Fax: 02-735-9905
<일본> (株) 文化空間 / (株) ジャポン 〒169-0072 東京都新宿区大久保 3-10-1 B1032号 
Tel: 81-3-6278-9905 Fax: 81-3-5272-0311 Mobile: 070-5519-9904
Copyright ⓒ JPNews. All rights reserved. Contact info@jpnews.k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