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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파 '일본적군' 멤버, 37년만에 日송환
29년전 자카르타 미·일 대사관 포격 용의자, 美17년 복역 뒤 日귀국
 
이지호 기자

세계를 무대로 한 여러 테러행위로 악명을 떨친 과격파 공산주의 무장단체 '일본 적군(日本赤軍)'의 멤버 시로사키 쓰토무(68)가 20일, 미국에서의 17년간의 복역생활을 마치고 37년만에 일본에 귀국했다. 그는 29년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일어난 일본 대사관 포격사건의 용의자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이로써 국제수배된 일본 적군의 조직원 가운데 아직 체포되지 않은 이는 7명으로 줄었다.

 

자카르타 미국, 일본 대사관 포격(자카르타 사건) 등 살인미수 혐의로 30년 형을 받고 미국 형무소에 17년간 복역한 시로사키 용의자는 올해 1월 출소했다. 이후 곧바로 강제출국 초치가 진행되어 20일 오후 3시쯤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일본 경찰은 귀국한 그를 체포해 경시청 본부로 이송했다.

 

▲ 일본적군파 시로사키 쓰토무, 일본 경찰에 체포돼     ©일본 후지TV 캡처

 

 

일본 경찰에 따르면, 그는 1986년 5월, 자카르타 일본대사관 인근 호텔 실내에서 포격을 감행해 사람을 살해하려 하고, 실내에 발화장치를 설치해 호텔을 불태우려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일본 TV아사히 온라인판 'ANN뉴스' 영상

 

일본 경시청 공안부는 '자카르타 사건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했다. 시로사키 용의자가 일본 적군 멤버들이 벌인 1977년의 JAL기 납치 사건(다카 사건)으로 풀려난 이후부터 1996년 네팔에서 인터폴에 체포되기까지의 행각을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현재도 도피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일본적군 멤버 7명, 그리고 다카 사건 뒤 북한으로 건너간 적군파 멤버와 해외에서 접촉했을 가능성도 있어 그를 통해 일본 적군의 활동실태를 밝혀낸다.

 

◆ 시로사키 용의자는 누구?

 

시로사키 용의자는 도쿠시마(徳島) 대학을 중퇴한 뒤, 무력투쟁으로 공산주의 혁명을 달성한다는 방침을 내건 '공산주의자 동맹적군파'(적군파) 조직원으로서, 그리고 71년부터는 이 해 창설된 '일본적군' 조직원으로서 활동했다.

 

시로사키 용의자는 활동자금을 얻기 위해 1971년 지바 현과 가나가와 현의 우체국·은행 여러곳에서 잇따라 강도 행각을 벌이다가 체포됐고, 1974년 4월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아 도쿄 후추(府中) 형무소에 수감됐다.

 

그런데 3년 뒤인 1977년 9월 28일, 같은 일본적군 멤버들에 의해 'JAL기 납치 사건(다카 사건)'이 일어난다.

 

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일본 적군 멤버 5명이 인도 봄베이 공항에서 이륙한 파리발 도쿄행 JAL 항공기를 납치한 것. 이 비행기는 방글라데시 다카 공항에 긴급 착륙했다. 승객 142명, 승무원 14명을 인질로 삼은 범행 그룹은 시로사키 용의자를 비롯한 조직멤버 9명의 석방과 몸값 600만 달러를 요구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사람의 생명은 지구보다 무겁다"며 초법규적 조치로서 수감 중인 일본 적군 멤버들을 석방했다. 세 명이 출국을 거부했으나, 시로사키 용의자 등 6명은 같은 해 10월 1일 출국했다. 시로사키 용의자는 그 뒤 일본 적군에 합류해 레바논이나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전투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시로사키 용의자의 이후 행적에 대해 명확히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다만, 1986년 5월 2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일본 대사관과 미국 대사관이 포격되고 캐나다 대사관 내 렌터카에 장치된 폭탄이 폭발하는 등 테러사건이 발생한 현장에서 그의 지문이 다수 발견됐다. 이에 일본과 미국 경찰 당국이 국제형사경찰기구(ICPO)를 통해 그를 국제수배했다.

 

결국 시로사키 용의자는 1996년 9월 21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위조여권으로 입국하려한 혐의로 구속돼 곧 미국으로 인도됐다. 미국 법원은 그에게 살인 미수 등 혐의로 징역 30년형을 선고했고, 그는 미국에서 17년간 복역했다.

 

◆ 일본 적군(日本赤軍)은?

 

'공산주의자 동맹 적군파' 활동가였던 시게노부 후사코(70)가 1971년 레바논에 건너가 결성했다. 이 조직은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산주의 혁명을 실현시키겠다며 각지에서 테러 행위를 반복했다. 일본 국내에 남아 활동을 지속했던 '연합 적군'과 혼동하기 쉽지만, 적군파에서 파생된 두 조직은 엄연히 다른 조직이다.

 

1972년, 일본 적군 멤버 오카모토 고조(岡本公三, 77) 용의자가 이스라엘의 공항에서 자동소총을 난사해 24명을 살해했고, 1975년에는 오쿠다이라 준조(奥平純三, 67) 등 멤버들이 말레이시아 수도 콸라룸푸르 미국 대사관 등을 점거(콸라룸푸르 사건)해 구속 중인 멤버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1972년 아사마 산장 인질사건으로 기소된 연합 적군의 반도 구니오 용의자(69) 등 5명을 석방했다. 5명 가운데 반도(석방 이후 일본 적군에 합류), 사사키 노리오(66) 등 두 용의자는 1977년 이후 JAL기를 납치하는 '다카 사건'을 일으켰고, 당시 후쿠다 다케오 총리는 "인명은 지구보다 무겁다"고 언급, 강도죄로 복역 중이던 시로사키 용의자 등 수감된 일본 적군 멤버 6명을 석방했다.

 

일본적군은 1990년대 들어서 시로사키 용의자 등 멤버가 국내외에서 잇따라 구속되면서 약체화를 거듭한다. 2000년에는 오사카에 숨어있는 일본적군의 수장인 시게노부 용의자가 체포됐다. 이듬해 시게노부 용의자가 일본 적군 해산을 선언하는 문서를 발표하면서 일본적군은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국제수배 중이던 7명 중 레바논에 망명한 오카모토 용의자 이외 6명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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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2/21 [11:15]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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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 일본 은 없고 후천적 일본인 으로 만들어 진다 이완용과 오선화 15/03/03 [21:42]
일본 공산당 놈들 이야말로 개념없는 원숭이 새끼들 이네 일본에서 실종되면 백프로 북한행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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