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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에서 받은 은혜, 이젠 갚아야죠"
[독점인터뷰] 우리 시대의 전설적 플레이어 박주봉 감독을 만나다
 
박철현 기자
"배드민턴의 신(神)이죠. 신."

일본 배드민턴 협회(이하 '일본협회')의 이마이 시게미쓰 사무국장은 기자를 만나자 마자 그렇게 말했다.
 
그런 그의 옆에 앉아 "또 오버한다"고 유창한 일본어로 손사래를 치는 인상 좋은 남자, 그렇다, 그가 바로 배드민턴의 '신' 박주봉(44)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기억하는 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박주봉은, 한국 현대 스포츠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80년부터 배드민턴 라켓을 잡은 그는 96년 은퇴할 때까지 16년간 대한민국 배드민턴의 황금기를 견인한 주인공이다.
 
▲ 29일 도쿄 요요기의 기시타이 회관에서 만난 박주봉 감독  © 이승열 / jpnews
 
그의 선수생활의 경력을 보면 절로 입이 벌어진다. 85년 세계선수권 대회를 시작으로 86년 아시안게임 3관왕, 88년 서울올림픽 혼합복식 우승, 그리고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복식 우승...
 
크고 작은 국제대회에서 72번이나 우승한 그는, 1991년 배드민턴 국제대회 최다 우승자로 기네스 북에 등재된 배드민턴의 세계적인 톱 플레이어이기도 하다.

그의 진가는 96년 선수생활 은퇴후에도 빛을 발했다.
 
사실 한국에서 배드민턴은 비인기 종목이다. 배드민턴은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생활체육이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배드민턴 '시합'에 대한 관심은 오직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이 열릴 때만 집중된다. 박주봉 감독의 기록은 바로 이런 척박한 환경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그를 스스럼없이 '신'이라고 부른다.

실제 29일 만난 일본협회의 이마이 사무국장은 옷깃을 여미며 "일본은 경기에 나가겠다고 등록하는 사람들이 23만명정도 되는데, 한국은 5천명도 안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적인 배드민턴 강국이다. 우리는 이 비밀을 알고 싶어 박주봉 선생을 감독님으로 초빙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뿐만 아니다. 박주봉 감독은 배드민턴의 종주국인 영국에서 2년 6개월간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고, 99년부터 2002년까지는 말레이시아 국가대표팀을 맡았다. 말레이시아는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와 더불어 배드민턴 4대 강국에 속하는 나라다. 축구로 치면 아르헨티나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박주봉 감독은 이들 나라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영국 배드민턴 협회는 종주국의 자존심을 꺽고 그의 요구에 따른 훈련스타일을 팀훈련에 접목시켰고, 배드민턴을 국기로 숭상하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숙소밖을 제대로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말레이시아 때는 대단했죠. 어딜가도 알아보니까, 택시운전수는 돈도 안 받기도 하고, 사인세례에. 다들 영광이라고 하니까 저도 처음엔 좀 어리둥절했어요. 직접 보진 못했지만, '주봉버거'처럼 내 이름을 딴 햄버거나 과자류도 나왔다고 하더군요. 하하하"

29일 도쿄 요요기의 기시타이 회관 1층 홀에서 만난 박주봉 감독은 인터뷰 내내 사람좋은 웃음을 보였다. 한국에서는 '셔틀콕의 황제'로 불렸지만 일본언론은, 2004년 11월 그가 일본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자 이구동성으로 "더블스의 가미사마(神様, 신님)가 왕림했다!"라고 보도했다.

동석한 일본협회의 이마이 사무국장이 짐짓 긴장한 어투로 "그건 오보였지"라고 운을 뗀다. 어떤 부분이 오보였는지 묻자 그는 "더블스(복식)의 신이 아니라, 배드민턴의 신이거든"이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박주봉 감독은 2004년 일시적으로 귀국해 한국 국가대표팀을 맡아 훈련시켰고, 그해 아테네올림픽 배드민턴 종목에서 금은동 각각 한개씩을 한국에 선물했다.(남자복식 금, 은메달, 여자복식 동메달)

이후 2004년 11월 일본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어 현재 일본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조금 있으면 만 5년이 된다. 
 
▲ 9월에 있었던 2009 요넥스 재팬 오픈에서 일본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박주봉 감독    ©이승열 / jpnews
 
박주봉 감독의 능숙한 일본어 실력만큼 지난 5년간 일본 배드민턴의 수준도 일취월장했다. 그는 그 공적을 인정받아 09년에는 문부과학성이 지정한 올림필 12개 종목의 국가대표팀 감독중 유일하게 외국인 감독으로 뽑혔다. 그런데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재밌다.

"40개 정도 경기단체가 있는데, 문부과학성이 그중에 12개를 선정하더군요. 선정되면 문부과학성에서 지원도 나오고 하는데 그 내셔널(국가대표팀) 감독 중에 제가 유일한 외국인 감독입니다. 또 다른 종목들은 모두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했는데, 배드민턴만 메달을 못 딴 종목이죠"

유일한 외국인 감독에, 메달구경도 못해 본 종목이 국가전략 스포츠으로 선정된 것이다. 무언가 로비라도 펼친 것일까? 박주봉 감독이 빙그레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웃음). 나중에 알았는데, 일본 올림픽 위원회(joc) 사무총장이 베이징 올림픽 4강전을 직접 경기장에서 봤다고 하더군요. 그걸 보고 일본 배드민턴의 약진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또 8강도 하나 했고, 그 전에 세계최강인 중국도 한번 꺽었지요. 비록 메달은 못땄지만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비교해서 성적이 월등해졌다는 것을 직접 현장에서 느낀 셈이니까..."

기록을 찾아보니 실제로 그랬다. 박주봉 감독이 취임하기 전인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일본팀이 거둔 성적은 11전 1승 10패. 여자 싱글 경기에 출전한 모리 가오리가 1차전에서 핀란드 선수에게 이겨 2회전에 진출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1회전에서 탈락한 것이다.

"그런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4강 1조를 비롯해서 8강, 16강에도 올라갔어요. 물론 나 때문에 전부 그렇게 된 것은 아니고, 선수들이 열심히 훈련한 게 가장 크지만 그래도 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또 이런 것들을 문부과학성도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최근 일본에서의 배드민턴은 그렇게 비인기 종목이 아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일본의 경우 대회에 출전가능한 선수등록 신청서(유료 300엔)를 작성하는 동호회 인구가 23만명에 달한다. 또 2005년 아시아선수권 대회 준우승을 계기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오구시오' (산요전기의 여자복식조 오구라 구미코, 시오다 레이코를 부르는 말. 콤비는 2009년부터 공식적으로 해소되었다) 콤비의 인기에 힙입어 일약 인기종목으로 발돋움했다.

'오구시오' 효과는 2006년 도쿄에서 개최된 유버배(uber cup, 기자주 - 여자선수들만 출전가능한 대회. 흔히 여자선수들의 '토머스배'라고 불림)에서 드러났다. 이 대회에서 '오구시오' 콤비는 비록 준준결승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경기장에 몰린 관중이 1만명을 넘어 배드민턴 사상 처음으로 만원매진 사태를 기록한 것이다.

그 이후 '오구시오'는 여자복식에서 세계랭킹 7위까지 올랐고, joc는 '오구시오'를 2008년 일본 올림픽 위원회의 심볼로 결정하는 등 그녀들은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정작 이들을 지도해야 했던 박주봉 감독은 '오구시오'를 띄우는데 여념이 없었던 일본 매스컴, 그리고 산요전기라는 든든한 스폰서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협회관계자들과 번번히 부딪혀야 했다.

"오구시오 때문에 배드민턴이 인기를 끌자 매스컴이 달라붙은 거예요. 협회로서도 매스컴 노출은 환영하는 입장이었고. 그네들 심정은 이해하는데, 그럼 난 뭐냐 이거지. 난 초심을 잃지 말자는 주의예요. 협회가 나를 2004년에 불렀던 이유가 뭡니까? 바로 일본 배드민턴의 실력을 강하게 만들어 달라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 배드민턴이 강한가, 세계 정상급 수준인가 하면 아직은 그게 아니란 말이지. 그렇다면 강해지기 위해 노력을 해야죠. 세계 톱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선 피나는 훈련을 쌓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매스컴에 나오면 그만큼 훈련시간이 뺏기는 거니까 나로선 답답한 노릇이지"

참다 못한 박주봉 감독은 딱 한번 <후지tv>의 "스포르토"의 기획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스포르토"가 시오다 레이코를 방송 프로그램의 레귤러 게스트로 기용해 일주일에 한번씩 다른 스포츠 현장을 방문해 그 스포츠를 경험한다는 기획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국가대표급 선수가, 그것도 현역이란 말이지. 은퇴했으면 또 몰라도, 이건 너무하잖아요. 그래서 대놓고 이건 아니다라고 내가 공개적으로 아는 기자 한명에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그 다음날 신문에 나오고 그러면서 결국 이 기획자체는 없어졌죠.
 
일종의 딜레마인데, 협회 입장이나 시오다의 소속팀인 산요도 그녀를 얼마나 활용하고 싶겠습니까? 예쁘고 인기많고... 하지만 그렇다고 내 입장을 버려선 안되지. 나는 일본 배드민턴 팀을 강하게 만들려고 왔으니까. 그 원칙만큼은 지키려고 하지요"
 
▲ 겉으로는 사람 좋은 인상을 보이는 박주봉 감독이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승부욕이...  © 이승열 / jpnews
 
박주봉 감독이 부임하며서 일본 배드민턴 팀은 확실히 강해졌다. 물론 아직까지 배드민턴 4대 강국인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는 실력차가 있지만 그래도 세계 8위권 순위에는 들어간다고 말한다.

"배드민턴 하면 역시 중국이 가장 세고, 그 다음이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인데,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는 국기죠. 그쪽 나라에서 배드민턴 하면 브라질의 축구같은 대접을 받습니다. 말레이시아 국가대표팀 코치로 있을때 매일 10명정도씩 기자들이 상주를 했어요. 처음 갔을 때도 공항부터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와서 환영해주었고, 별로 대규모 경기가 아닌데도 시합장은 꽉 차고 그러니까. 나도 말레이시아에 가서 '배드민턴을 하길 잘했다'라는 생각들고 그랬는데, 거긴 정말 그 열기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사실 박주봉 감독은 말레이시아 인들에게 있어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는 현역시절 말레이시아의 배드민턴 영웅인 시덱 5형제와 끊임없는 대결을 펼쳤다면서, 당시를 회상한다.

"시드가 다르다 보니 4강만 올라가면 인도네시아, 중국, 말레이시아 하고 만나게 되는데, 남자복식은 시덱 5형제 중에 둘째, 세째가 담당해요. 이쪽은 나하고 김문수 선수. 그러니까 라이벌 관계인거지. 그런데 전적은 우리쪽이 17번 이겼고, 진게 한두번 정도? 암튼 거의 다 이겼어요"

라이벌? 17승 2패가 어떻게 라이벌이 되는 걸까.

"그건 실력적으로는 다들 엇비슷하니까 그런건데, 시덱 형제는 수비의 귀재였거든요. 우리쪽은 올라운드 플레이 쪽이고. 이상하게 스타일적으로 상대하기가 쉽더라구요. 우리는 중국쪽이 좀 껄끄러웠는데, 시덱 형제는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쪽을 잡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시드가 아예 다르면 (말레이시아가) 좀 잡아줬으면 좋겠다고 내심 기대하기도 합니다. 결승에서 그들을 만나면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높으니까. 하하하"

박주봉 감독은 지도자로서도 행복하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배드민턴 종주국인 영국에서 선수들 가르치면서 특유의 종주국 분위기를 익혔고, 또 영어도 좀 늘었지요. 말레이시아에서는 돈주고도 경험못할 배드민턴의 인기를 실감한 것이고, 일본의 경우엔 과연 내 훈련을 받은 이들이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을 것인가를 직접 볼 수 있으니까. 지도자로서는 참 운이 좋은 케이스가 아닌가 합니다"

문득 짓궂은 상상이 떠오른다. 얼마전에 끝난 2009 요넥스 재팬 오픈 4강전에서도 그랬지만 한국선수들과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타국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맞붙을 때 그의 기분은 과연 어떨까?

"이번 4강전에선 일본선수들이 이겼는데 진짜 기뻤습니다. 승부는 승부고, 또 제가 지금 일본대표팀의 감독으로 있으니까 당연한 것이지요. 하지만 코트장을 벗어나면 다 제 후배들 아닙니까? 또 제가 가교가 돼서 양국 협회나 선수, 스탭들이 교류를 나눌 수 있으니까 그런 모습을 보면 뿌듯하죠. 안그래도 이번 재팬오픈에서도 일본협회가 한국 선수, 코치들을 초청해서 야키니쿠 대접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처음엔 꼭 그랬던 것 만도 아니었다고 한다. 박주봉 감독은 영국에서 코치생활을 하고 있었던 99년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전에 얽힌 비화를 jpnews에 처음으로 털어 놓았다.

"99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혼합복식 결승전이었는데, 그때 공교롭게도 영국과 한국이 붙었단 말이지. 당시 한국선수는 (김)동문이하고 (나)경민이었는데, 직속후배고 그런 것도 있지만 한국쪽 협회에서 무언의 압력이 들어오는 거지. 물론 져달라 그런 건 아닌데... 왜 있잖아요? 그런 분위기.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데 암튼 그런 거. 그래서 동문이한테 '야! 니네 부담가지지 말고 잘해라' 정도의 덕담은 했죠.

아무래도 후배들 입장에선 제가 아무 말 안하고 그냥 시합들어가서 영국선수들 뒤에 앉아 있기만 해도 긴장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긴장 풀라는 정도로 말했는데, 그게 효과를 발휘한 건지 몰라도 동문이, 경민이가 이겼죠. 한편으론 졌으니까 분하기도 하지만, 또 후배들이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보면 마음 한구석에선 기쁘기도 하고. 국제대회는 매번 그래요. 한국이 워낙 세니까. 올라가면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어요. 하하"

 
▲ "지금이라도 코트안으로 뛰어들고 싶을 때가 많다"고 말하는 박주봉 감독   © 이승열 / jpnews
 
또한 박주봉 감독은 지금 일본팀을 맡아서 가르치는 것에 대해, 일종의 책임의식, 사명감도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박주봉 감독의 배드민턴 인생에 있어 일본이 차지한 비중이 결코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고등학생 시절부터 해외선수도 출전이 가능했던 전일본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면서 국제감각을 쌓아갔다. 또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일본코치들이 한국에 건너와 선진기술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우리 한국의 배드민턴은 세계 4대강호지만, 80년대초까지만 하더라도 일본 실력이 더 좋았죠. 우리 때부터 일본을 앞지르기 시작한 거니까요. 일본 배드민턴 협회로부터의 대표팀 감독 오퍼를 받아들인건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이제 나도 일본의 '후배'들에게 전해줘야할 시기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박주봉 감독의 신조는 '성실, 노력. 목표'다. 그는 그의 이러한 신조를 일본대표팀 선수들에게 불어넣기 위해 스스로 몸관리를 철저하게 한다.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선수들이 따라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직접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일본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래서일까? 박주봉 감독은 불과 5년만에 일상생활은 물론 훈련장에서 선수들과 웃으며 농담까지 할 수 있을 정도의 일본어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배드민턴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들도 다 그렇겠지만 '천재'라는 것에 회의적입니다. 물론 센스같은, 감각적인 부분도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역시 성실하게 노력해야 세계적인 톱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천재'라는 건 좀 뜬구름 잡는 말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야 진정으로 배드민턴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라는 것, 국가대표라는 것은 '재미'로 하는게 아니잖아요? 승리가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렇다면 그 승리를 위해선 강해져야 합니다. 강해지기 위해선 죽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선수들에게 항상 이런 것을 강조하고 있어요"

박주봉 감독은 지금도 지도자라는 것을 간혹 망각한다고 한다. 코트안으로 뛰어들어가 직접 플레이하고 싶은 충동이 하루에도 몇번씩 찾아온다. 네트 앞에 양팔을 벌리고 상대를 노려보면서 시합의 설계를 짰었던 현역시절을 떠올리면서 배드민턴의 매력을 설명한다.

"서브하기 전부터 대강 그림을 짜죠. 한 5, 6구 정도 이리저리 공방전이 오고가다가 나중에 이렇게 끝내면 되겠다는 설계를 하는 건데, 그게 그대로 들어맞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찾아오는 '만족감'과 '희열'이 엄청나거든요. 어쩔 때는 그 만족감을 다시 느끼기 위해 라켓을 드는 게 아닌가 할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그런데 이건 가르쳐서 될 영역이 아니죠. 머리로 생각하면 안되요. 셔틀콕이 시속 300킬로 이상인데 금세 끝나요. (손짓을 하면서) 파파팍! 갔다가 오는데 0.1초니까 그 감각을 몸에다 심어줘야 하죠. 그러기 위해선 훈련이 필요하고. 아! 결국 훈련으로 끝나네요. 하하하"

웃으면서 응대하던 박주봉 감독이 시계를 보는 시간이 잦아진다. 그러면서 오히려 미안하다는 듯이 "4시 30분부터 내가 할 일이 좀 있어서 다음에 또 하면 안될까?"라고 우리 쪽에게 말을 건넨다. 시간 안배를 못한 건 이쪽 잘못인데, 세계적 톱 플레이어이자 배드민턴의 살아있는 '전설', '황제', '신'이었던 당신이 오히려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는 형국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부탁했다.

"한국은 대회 때문에 자주 갑니다. 다음번엔 12월에 있을 코리아 오픈때 찾아뵐 예정인데 경기장도 많이 찾아와 주시고 관심도 기울여주세요. 또 '주봉마을'이라는 팬들이 만들어주신 공식사이트가 있는데, 제 근황은 거기가시면 잘 나와 있습니다. 최근에는 주봉마을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여름캠프를 하는데, 같이 단체로 밥먹고 배드민턴 '빡세게' 하고, 또 점심먹고 '빡세게' 배드민턴 하고 저녁에는 막걸리도 한잔씩 하고 그럽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꼭 참여해 주세요"

박주봉 감독은 일본 국가대표 대표팀 감독생활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국제적으로도 배드민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생각이라고 한다. 한국에서의 선수 및 지도자 생활, 그리고 영국, 말레이시아, 일본에서의 경험을 살려 자신이 지금까지 배드민턴을 통해 받아왔던 수많은 영광과 은혜를 앞으로 갚아 나갈 생각이라고 한다.

우리 시대의 영원한 전설 박주봉 감독. 그의 새로운 비약을 기대해 보자. 
 
▲ 일본 배드민턴 협회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해 준 박주봉 감독     © 이승열/j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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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0/02 [17:02]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재밌게 잘 봤습니다. 흑철의성 09/10/02 [22:34]
박주봉 선수(?)께서 은퇴하신지도 오래 되었군요. 게다가 5년째 일본 대표팀 감독이시라니. 정말 좋은 기사입니다. JP 뉴스만의 장점이기도 할테구요. 인터뷰 한 번 더 해주세요. 어느 분야던 최고의 경지에 올랐던 분의 얘기는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박기자님 수고 부탁드려요~^^ 수정 삭제
오~ 우드 09/10/03 [19:07]
전 이분을 모르지만 일본을 잘 키워주셨으면 하네요^^ 그렇다고 한국이 깨질정도가 되길 원하진 않지만...;; 수정 삭제
오~ 지적인 면모가..... 빛나십니다. yamury 09/10/23 [12:07]
분야를 막론하고 '인격'이 성공의 기반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하는군요. 성공의 이유를 대라면, 몇시간이든 혹은 책 몇권이든 자기자랑을 늘어놓을 수 있는 연예계, 정계, 재계의 흔한 인물들과 차이가 느껴집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배드민턴을 통해 받아왔던 수많은 영광과 은혜를 앞으로 갚아 나갈 생각"이라니, 정말 멋집니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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