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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름날의 풍경 르포(2)- 불꽃놀이
일본에서 매해 여름마다 펼쳐지는 불꽃놀이 축제
 
김명갑 기자

일본 만화를 보다보면 계절을 묘사하는 공통적인 기호들이 있다. 봄의 벚꽃, 여름의 불꽃놀이, 가을의 단풍, 겨울의 귤과 코타츠.

 

일본에 체류하다보니 이런 기호들은 마치 수수께끼처럼 다가온다. 한국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소주, 치킨, 삼겹살이 한국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하는 것처럼, 일본의 심층에 도달하기 위해서 이런 것들도 반드시 경험해야하는 통과의례와도 같다.

 

무엇이든 경험하기 전에는 일본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일본인이 왜 벚꽃, 갑자원, 참치회, 장어덮밥, 불꽃놀이에 목을 메는 것인지 늘 궁금했다. 그런데 긴줄을 서서 한 번 먹어보고, 사람들 틈에 부대끼며 경험해보니 희미하게나마 그들이 어떤 토대를 바탕으로 살아 왔는지 알 것 같았다. 

 

 

▲ 제29회 도쿄 조후(調布)시 불꽃놀이     ©jpnews/야마모토 히로키

 

 

오늘 해볼 이야기는 불꽃놀이다. 내가 어릴적에는 불꽃놀이를 하는 곳이 매우 드물었다. 해가 바뀌는 날이 되면 한강 고수부지나 남산의 하얏트 호텔 등지에서 잠깐 쏘아 올린 것을 보는 것이 다였다. 대부분 텔레비전으로 봤다. 나에게 불꽃놀이란 무엇인가 축하할 일이 생기면 쏘아 올리는 축포에 가까웠다. 당연히 이에 얽힌 추억도 없다. 일본에서는 불꽃놀이를 '하나비 타이카이(火花大会)'라고 해서, '큰 모임(大会)', 즉 축제의 의미가 크다. 그나마 나에게도 축제에 대한 기억은 하나 정도 있다. 

 

 

한 겨울이었다. 학교 후배들과 경기도에 MT를 갔다가 송어 축제를 구경한 일이 있었다. 숙소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고, 방향만 대충 아는 정도였다. 우리는 방향만 잡고 무작정 국도의 갓길을 따라 걸었다. 조금 걷다보니 국도는 어느새 다리로 이어져 있었다. 100km도 넘게 밟아대는 트럭들에 놀라 한 동안 난간에 바짝 붙어 걸어야 했다. 난간 저 밑으로는 시린 얼음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난 아빠를 닮아 고소 공포증이 있었는데, 그래도 차에 치이는 것보다는 그 편이 나았다. 그렇게 삼십분 넘게 걸어 다리를 건넜다. 저 멀리 얼음 축제와 송어 축제장이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두껍게 얼음이 언 논에 앉아 송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축제를 위해 추수가 끝난 논에 물을 채워 얼린 모양이었다. 다리 위에서 축제에 들어가는 입구를 찾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입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유일한 길은 난간을 타고 넘어 난간 옆에 있는 산의 비탈을 타고 내려가는 것이 유일했다. 후배들은 위험하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축제를 보고 싶어 눈 쌓인 가파른 비탈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런 비탈을 내려가면 나는 꼭 넘어지는 탓에 애초에 넘어지는 것을 염두하고 미끄럼틀 타듯 내려왔다. 후배들이 운동신경이 없다며 좀 웃었던 기억이 난다.

 

송어 축제는 사람들이 많이 붐볐다. 나는 송어 낚시를 해보려 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포기했다. 자신이 낚은 송어를 바로 옆에서 회를 쳐주는 곳도 있었다. 회만 조금 사먹어 볼까 해서 기웃 거려보니, 회 가격도 학생들이 먹기에는 부담이 되었다. ‘너무 비싸다’ 만 연발하다가 결국에 누군가 ‘송어 별로 맛이 없다던데.’라는 말이 나오자 사람들이 붐비는 행사장에서 곧바로 자리를 피했다. 사실은 맛있었을 것이다. 행사의 취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 트롯트 뽕짝이 축제장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낚시도 못하고, 회도 못 먹었건만 우리는 사람들 구경에 그런대로 신이 나 있었다. 뽕짝을 배경 삼아 바로 옆에서 열리는 눈꽃 축제를 구경했다. 당시에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인 ‘뽀로로’의 얼음 동상들을 핸드폰 카메라에 몇 장 담다 보니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우리는 다시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눈이 쌓인 비탈은 내려올 때보다 훨씬 더 위험했다. 당연히도 애초에 우리가 내려온 길은 길이 아니었다. 빙 돌아가는 길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우리가 내려온 길을 따라 다시 올라갔다. 같이 간 여자 후배는 비탈에서 군대에서 전역한지 얼마 안 된 나보다 몸이 더 날랬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쾌감이 우리를 마비시켰는지 우리는 넘어져도 웃음이 나왔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이상하게 생전 먹어본 적이 없는 송어의 비릿한 맛이 함께 떠오른다. 분명 돌아가서는 여느 때처럼 삼겹살을 먹었을 것이고(사실 나는 생선보다 고기를 더 좋아한다), 훨씬 더 많은 행사와 게임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것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넘어지고 고생하며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보고 온 것이 훨씬 더 기억에 남게 되었다. 추억 보정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3년 전 블로그에 남겨 두었던 일기를 재구성.

 

 

여름이면 일본 전국에서 120여개의 불꽃 놀이 축제가 열리고, 도쿄에만 1만 발 이상 쏘는 거대한 불꽃놀이 축제가 4~5개는 된다. 이런 규모의 축제는 한번 열었다 하면 50~70만 명이 넘게 참가한다. 대개 일본 만화나 영화, 드라마 등에서 묘사하는대로, 젊은 남녀들이 가벼운 차림의 유카타를 입고 친구들을 따라 이런 저런 축제 음식을 맛보다 마지막에는 불꽃놀이를 다함께 감상하는 것으로 축제는 마무리 된다.

  

도쿄에서 가장 역사가 짧은 축에 속하는 도쿄만 불꽃놀이 축제도 올해로 27년째이고,  30~70년 의 역사를 자랑하는 것도 허다하다. 해마다 7월말부터 8월 말까지 주말이면 도쿄의 전역에서 순차적으로 불꽃 놀이 대회가 열리니, 약간 과장해서 말한다면 불꽃놀이 축제가 절정인 8월 초에는 매미 울음소리보다 불꽃 터지는 소리가 더 자주 들릴 지경이다. 이렇게 오랜기간 여러 곳에서 사랑을 받는 것에는 당연 이유가 있을 법하다. 나 역시 그 점이 궁금했다.  

 

그러던 중 나는 김현근 전 JPNEWS 기자로부터 불꽃 놀이 축제(花火大会) 취재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취재 당일, 얼음물과 캔맥주를 잔뜩 사들고 신주쿠 역에서 불꽃 놀이 축제가 열리는 이타바시구까지 전철을 이동했다. 하스네 역에 가까워지니 밀려드는 유카타 인파에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이타바시 불꽃 놀이 축제는 일만발 이상의 불꽃을 쏘아 올리는 도쿄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규모의 행사다.

 

그렇다보니 이를 관리하는 이타바시 시에서도 당일 엄청난 인력을 동원한다. 이타바시 근처의 모든 역에서 행사장인 아라카와 강까지 연결되는 일직선 상의 모든 도로는 차의 통행이 하루 종일 금지 된다. 통제 인원들과 경찰이 도로에서 차를 통제한다.

 

재미있는 점은 통제 인원의 대부분이 노인들이라는 것인데, 경찰복장을 하고 능숙하게 차를 막고 통제하는 것을 보니 한두 해 해본 솜씨가 아닌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혹시 나이가 많은 일반 경찰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잠깐 들었으나, 경찰복을 입은 핑크색 머리의 할머니를 만난 후로는 시에서 행사를 위해 고용한 지역주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도로에 뻬곡히 들어찬 인파들은 통제 인원의 안내를 따라 그냥 저 멀리 보이는 행사장을 바라 보며 묵묵히 걷기만 하면 되었다.

 

행사장까지는 도보로 30분 정도 걸렸다. 그 30분 동안이 지역 상권에게는 엄청난 대목이다. 주점이며 슈퍼마켓이며 할 것 없이 가판대를 벌여놓고 생맥주, 빙수, 음료수 같은 것을 내다 팔고 있었다. 심지어는 맥도날드나 편의점에서도 가판을 벌일 정도였다. 유카타 차림의 10대들이 500엔 짜리 컵빙수 두 개에 매달려 먹는 장면은 한국 고등학생들의 매점 풍경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유카타나 후리소데 같은 일본 전통복장을 젊은 학생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입고 다니는 분위기가 부러웠다.

 

아라카와 강에 가까워지니 본격적인 축제 먹거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야키소바, 타코야키, 오코노미야키 등 40도에 육박하는 맹더위 속에서도 철판 주인들은 몰려오는 손님을 받느라 잠시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을 지나쳐서 곧바로 단체석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   도쿄 이타바시구쪽 강변.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이 나와 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다.  이때가 화장실 피크 타임이었다. 간이 화장실이 충분했는데도 줄은 매우 길었다.  멀리 보이는 스탠드 석은 유료, 강변에 돗자리석은 선착순 무료이다.  우리는 돗자리에 앉았다. 미리 자리를 잡아준 가족이 계셨다. 그분들과 가져온 맥주와 안주를 서로 나눠 먹었다.  돗자리는 바람에 나부끼지 않게 플라스틱 지주핀을 땅에 박는 식으로 고정시킨다. © JPNews
▲  날이 어두워지고 행사가 시작되는 7시에 가까워지고 있다.   행사 직전까지 미리 자리잡은 사람과 나중에 온 사람들 간의 이산가족 상봉이 계속 되었다.   © JPNews

 

▲     해가 저물고, 이제 강변은 거대한 야외 거실같은 분위기다. 누워 있는 사람, 서로 기대 있는 사람. 심지어 집에서 쓰는 테이블을 가져와서 과일을 먹으면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변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이 때만큼은 모두 편한한 자세로 불꽃놀이를 감상한다.  유카타를 입은 사람, 한국어로 상록수를 부르는 일본인, 영국인, 젊은 사람, 나이든 사람, 가족 들, 연인들 모두 그냥 하늘을 천장 삼아 같이 불꽃놀이 하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굉장히 신비한 체험이었다. © JPNews

 

▲    7시가 되고, 첫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 JPNews

  

 

7시가 되고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날은 아직 덜 어두워진 터라 사람들의 표정이 잘 보였다. 처음에는 불꽃놀이를 카메라나 핸드폰에 담느라 다들 바쁘다가, 30분이 넘어가자 그냥 전부 내려 놓고 눈과 몸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불꽃은 아래의 불꽃이다. 

 

▲  가장 거대했던 불꽃. 꼬리가 끝도 없이 밑으로 떨어지는데 마치 유성우 같았다.  수많은 섬광이 나를 향해 덮쳐 오는 듯한 잊을 수 없는 체험이었다.    © 이타바시 불꽃축제 공식 홈페이지

 

 

한줄기 섬광이 한참을 하늘로 올라갔다. 사람들의 시선은 지금 터지지고 있는 불꽃이 아닌, 폭발하기 위해 하늘로 치닫는 그 섬광에 더 집중했다. 그리고 터지기 직전 섬광은 어두운 밤하늘에서 잠시 자취를 감췄다. 그 순간 사람들의 기대는 최고조에 다다랐다. 큰 소리와 함께 불꽃이 터지고 긴 꼬리를 늘어뜨리며 사람들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불꽃이 터지기 시작한 지 30분이 지났지만 이렇게 거대한 불꽃은 없었다. 모두 짧게 반짝이고 끝나는 불꽃이었지만 이 불꽃은 아주 오래도록 떨어졌다. 이렇게 떨어지다가 얼굴에 닿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경이롭다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었다. 불꽃이란 아주 짧은, 찰나의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꽃이라 부르는 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 불꽃은 아주 오래도록 떨어졌다. 그렇게 많이 터지는 불꽃 중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수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남은 한시간 반이 지나도록 다른 불꽃은 하나도 기억 나지 않고 이 불꽃이 준 여운을 멍하게 즐길 정도였다.   

 

더불어 나는 약간의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 아주 커다란 불꽃이 터지면 큰 소리가 공기를 때린다. 그 파동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라 불꽃놀이는 티비에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이 낯선 체험이 나는 그다지 낯설지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군대에서 나는 이와 비슷한 느낌을 수도 없이 많이 경험 해본 적이 있다.

 

나는 군대에서 81mm 박격포병이었다. 박격포는 포신에 포탄을 집어 넣으면 엄청난 소리와 충격파를 내면서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데, 하루 종일 훈련을 하고 막사에 복귀를 하면 귀가 한동안 멍멍하고 충격파 때문에 몸이 잔뜩 긴장을 해서 목 주변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군대의 경험을 떠올리고 나는 불꽃이 터질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계속 불편해졌다. 불꽃놀이는 아무래도 젊은이들의 축제다. 나이를 먹었다고 불꽃 놀이를 충분히 즐길 수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한순간 피었다가 이내 사라지는 불꽃에서 순수하게 아름다움 쪽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젊은이들 쪽일 것이다.

 

나는 불꽃이 터질 때마다 마음속에서 81mm 박격포의 고폭탄이 하나씩 터지는 느낌을 받았다. 전쟁을 대비하는 국가의 젊은이들은 좋든 싫든 간에 불꽃 놀이에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전쟁을 경험한 일본의 노인들 중에서는 나처럼 불꽃 놀이에서 안 좋은 추억을 떠 올리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것도 트라우마다.   

  

시간이 흐르고 터지는 불꽃이 늘어날 수록 나는 비용적인 측면도 궁금해졌다.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불꽃이 터진다면, 그 비용은 얼마나 할 것인가?

 

불꽃 놀이는 대규모의 인원이 모일 수 있는 곳이 인원 수용이나 행사 진행 면에서 원활하다. 1만발 이상 쏘는 대규모 축제의 경우 발사에만 2시간이 넘게 걸리고, 쉴수 있는 인터 미션도 중간에 두번 정도 있다. 당연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이타바시 붗꽃 놀이 축제의 경우 이날 하루를 위해 이타바시 구가 사용하는 예산은 6억~9억 엔 선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단순히 행사에 사용되는 불꽃의 가격뿐만 아니라, 엄청난 수의 통제 인원, 설치형 간이 화장실, 용역 인원들에 대한 비용까지 포함된다. 단 하루를 위해 사용하는 예산치고는 엄청난 금액이다. 

 

비용이 비용인만큼 이를 충당하기 위해 구에서는 여러가지 대책을 강구한다. 대표적인 것이 기업의 스폰을 받는 것이다. 이번에는 현재 일본에서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만화인 요괴워치(반다이)의 고양이 모양의 폭죽이 터졌다. 이 폭죽이 터지기 전에는 특별히 요괴 워치의 오프닝 송과 성우의 음성이 흘러 나왔고, 어린 아이들의 기대감도 고조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폭죽의 모양은 동그란 얼굴과 세모난 귀에 단순화된 고양이 상이었다. 그 간단한 모양에도 아이들의 환호성은 어른들의 함성을 뚫고 나왔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추억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 된다. 

 

물론, 규모가 규모인 만큼 실질적인 예산은 훨씬 더 많이 들어간다. 아타바시 구는 행사 장소인 아라카와 강 건너에는 사이타마시와 함께 이 행사를 진행해서 예산을 줄인다. 강 건너 사이타마에서도 너른 풀밭에 너도 나도 돗자리를 깔고 앉아 불꽃놀이를 감상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불꽃놀이를 사이타마를 제외한 다른 시, 구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다는데 있다. 불꽃 놀이 자체에는 비용이 들지만 보는 것에는 돈이 들지 않는 관계로 무임승차하는 곳도 생긴다. 대표적인 곳이 가와사키다. 사이타마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데도 인근에 있는 가와사키현에서는 이 비싼 불꽃놀이를 공짜로 보는 관계로 두 곳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 물론 가와사키현에서는 이타바시에 협력한다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른 불꽃 놀이 행사에도 똑같이 협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압력에 굴하고 있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 일본 언론의 보도이다.

 

유료 지정석 판매로도 비용을 충당한다. 유료석은 1인당 2000~3000엔 선으로, 8명정도가 앉을 수 있는 대규모 석의 경우 2만 8천 엔에 육박한다. 언뜻 비싸다고 느낄 수 있지만 당일에는 자리가 없어서 못 앉는다. 

 

불꽃놀이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이런저런 불꽃은 이미 많이 터졌고, 사람들의 함성도 시들해질 때쯤, 마지막 불꽃이 하늘로 올라갔다. 이미 멈춰야 할 곳을 지나 훨씬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 불꽃은 그곳에서 엄청나게 긴 꼬리를 남기며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 불꽃이었다. 앵콜이고, 커튼콜이었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짐을 챙기다 말고 큰 소리로 환호성을 질렀다. 사람들이 생각하는게 다 똑같구나. 역시 나랑 같은 걸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위안을 받았다. 좋아하던 불꽃이 긴 길을 내며 떨어지는, 그 길고도 짧은 시간 동안 기분이 굉장히 이상했다. 좋아하던 드라마가 끝나는 느낌이랑 비슷했다.

 

그리고 내년에도 저 불꽃 축제를 또다시 취재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돌아가는 길에도 통제 인원이 역까지 길게 늘어서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모두 피곤하지만, 상기된 표정이었다. 유카타를 입은 사람들, 돗자리를 비롯한 한보따리의 짐을 들고 붐비는 지하철에 몸을 싣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일본에서 축제(마쓰리,타이카이)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것 같았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일본인에게 평일은 축제를 준비하는 기간과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축제 준비를 위해 몇 백년 째 대를 이어 불꽃을 만들고, 누군가는 축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기업과 다른 시와 협력을 하며, 누군가는 이날을 위해 일년에 몇 번 입지 않을 유카타를 구입하며 설레여 한다. 이 하루를 위해 모두가 참 많은 수고를 하며 또 한편으로는 일정부분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축제는 계속된다. 아주 큰 비용을 치루고라도, 아주 큰 불편과 기다림을 감수할만큼 일본인에게 있어서 축제는 큰 위안의 샘터가 된다. 2002년 한일공동월드컵의 거리 응원문화에서 잠시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느꼈던 것처럼, 혹은 나의 송어 축제처럼, 추억은 그런 것들을 감수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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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8/21 [12:27]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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