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보기
일본6대일간지 ㅣ 정치 ㅣ 경제 ㅣ 사회 ㅣ 문화 ㅣ 연예 ㅣ 그라비아 ㅣ 스포츠 ㅣ 역사 ㅣ 인물 ㅣ 국제 ㅣ 뉴스포토 ㅣ 뉴스포토2 ㅣ 동영상 ㅣ 동영상2 ㅣ 독자 게시판
섹션이미지
일본6대일간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연예
그라비아
스포츠
역사
인물
국제
뉴스포토
뉴스포토2
동영상
동영상2
독자 게시판
회사소개
회원약관
개인정보취급방침
광고/제휴 안내
사업제휴 안내
소액투자
기사제보
HOME > 뉴스 > 문화
글자 크게 글자 작게


2015년 한일 축제 한마당, 성황리에 열려
[다이어리 뉴스] 도쿄 한일 교류의 현장에서
 
김명갑 기자

2015년은 한국에서는 해방 70주년, 일본에서는 종전 70주년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1945년 8월을 기억하는 방식은 이렇게 한일 양국간의 차이가 명확하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6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가 진행되어, 올해는 벌써 50주년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입장에서 일본의 문화와 생활상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일본으로의 여행은 해외 여행 전면 자유화가 시행된 1989년에야 가능하게 되었고, 문화 교류는 1998년 '일본문화 개방'이라는 이름하에 일본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이 대중들 앞에 등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 볼 수 있으니, 아직 20년도 채 되지 않은 것이다.

  

기자가 기억하는 일본문화의 첫 얼굴은 1998년, KBS 뉴스에서 일본 문화 개방 소식 밑에 깔린 X-japan의 라이브 실황 영상에서부터였다. 그 당시는 반공교육 못지 않게 반일교육도 많이 남아 있던 상태라 국딩(국민학생)의 눈에 비친 일본문화의 모습은 위험하면서도 호기심을 이끄는, 불량식품 같은 인상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일본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 6시만 되면 방송사마다 만화를 틀어줬고, 해적판이 아닌 정식 수입판 일본만화책들이 도서대여점에 밀려오기 시작했다. 번안된 일본만화 주제가가 동요보다 더 많이 불렸다. 학교를 신축하느라 운동장도 없이 컨테이너 건물에서 공부하던 초등학교 시절, 기자는 컨테이너 교실과 공사장 사이의 좁고 아슬아슬한 공간에서 친구들과 피구를 했다. 통키 이전에는 피구란 게 있는지도 몰랐다.

 

포켓몬스터란 만화가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대히트를 치자, 포켓몬스터 빵을 파는 제빵업체, '샤니'를 모르는 초등학생이 없을 정도였다. 그 시대는 제과점 빵을 사먹는 시대가 아닌, 슈퍼에서 빵을 사먹는 시대였다. 포켓몬스터 빵을 사면 주는 작은 스티커를 가지고 싶어서, 빵을 버리고 스티커만 모으는 부르주아도 있었다. 집집마다 시험 고득점의 대가로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닌텐도를 부모님에게 딜하는 초등학생도 많았다.

 

지금 한류 가수가 인기를 얻듯, 일본 비쥬얼 락밴드를 동경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었다. 당시 국내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짙은 화장과 염색과 퇴폐적인 창법이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나중에 노래방에 가서 일본어로 된 노래를 부르는 친구가 생기면서, 유년기에 나의 즐거움을 책임져 오던 수많은 것들이 사실은 일본의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질적인 언어가 주는 충격은 생각보다 훨씬 더 컸었다. 더빙이 아닌, 자막이 깔린 일본영화, 드라마, 노래를 보고 듣게 되면서 바다 건너 우리와 비슷하지만 무엇인가 많이 다른, 일본이라는 나라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전까지 나는 일본문화와 한국문화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너무 많은 부분에 녹아들어 정서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15년의 일본은 어떨까? 그들도 한국의 존재를 삶속에서 얼마만큼 느끼고 있을까? 일본에서 체류한 지 10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정작 나는 일본에서 한국의 그림자를 찾기가 그리 수월치 않았다. 기껏해서 야키니쿠(숯불에 굽는 쇠고기)정도를 제외하면, 해방이후 한국이 일본에 끼친 문화적 영향력은 미미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재일동포 출신의 스타가 자신의 뿌리를 숨키고 활동해왔던 것처럼, 일본 안에서도 한국은 오랜기간 금기와 차별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올해 도쿄 히비야 공원에서 열린 한일 교류 축제에서는 한국문화에 대해 일본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단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의 장이었다.

 

히비야 공원은 중앙의 거대한 분수대를 기점으로 한쪽에는 한류 콘서트 무대가, 반대 쪽에는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기자가 도착한 4시경에는 마침 줄타기 공연이 한창이었다. 3m 상공에서 줄을 타는 어름사니와 밑에서 흥을 돋우는 동료가 함께 짝을 지어 남사당 공연을 진행하고 있었다.

 

어름사니가 말을 하면 동료는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고, 동시 통역을 통해 일본 관객들도 공연에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남사당패 공연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조선시대의 모습 그대로다. 양반, 임금등 과거 신분제의 단어와 그 때 당시의 모습을 풍자하는 놀이패 특유의 창법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이는 한국인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름사니가 내뱉는 풍자는 시대를 넘어선 해학이 담겨 있었지만, 정작 통역자는 통역의 어려움으로 인해 입을 다물었다. 나이를 지긋하게 드신 재일동포분들은 제법 알아듣는 모양이었지만, 일본인들은 통역이 없을 때마다 난감해하는 모습도 보였다.

 

 

▲ 2015 한일 축제 한마당     ©JPNews

 

 

그러나 남사당패 공연은 넌버벌(non-verbal, 무언극)적 요소가 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도 위에서는 끊임 없이 웃음을 유발시키는 행동과 입을 쩍 벌리게 하는 줄타기 기술을 선보인다. 그 기술은 언어가 다르더라도 통했다. 처음, 어름사니가 위태롭게 줄을 탈 때는 안절부절하던 시선이, 사타구니로 줄을 타며 엄살을 떨 때는 큰 웃음소리로 변하고, 줄 위에서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누웠다가 뛰어 오르고, 뒤돌았다가 뛰어다니자 점점 환호로 바뀌었다.

 

▲ 2015 한일 축제 한마당     ©JPNews

 

대망은 이제 기술을 전수받기 시작한 13살의 어린 어름사니가 줄 위에 섰을 때였다. 어린 어름사니는 긴장을 조금 한 것 같았지만 자신의 스승보다 더 높게 뛰어 올랐다. 어린 어름사니의 기술에 일본인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가 공연을 마친 후 줄을 내려 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상공을 자기 집 마루 바닥처럼 뛰놀던 어린 어름사니는 정작 줄을 내려오는 비탈진 줄은 아주 조심스럽게 집중하면서 타내려오고 있었다. 이것은 자신의 일의 마무리에 대한 마음가짐이었다. 어린 어름사니의 장인정신에 일본인들도 큰 박수를 보냈다.

 

▲ 2015 한일 축제 한마당     ©JPNews

 

시선을 돌려 보니, 주변에는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체험관들이 많이 있었다. 투호, 공기, 윷놀이 같은 명절 전통 놀이나, 사극에 등장하는 한복을 입어 볼 수 있는 체험관은 30분 이상 대기를 해야 할 정도로 줄이 길었다.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휴지곽을 장식할 수 있는 한지공예였다. 두꺼운 하드보드지에 본드를 이용해 모양을 잡은 뒤 한지에 풀을 발라 붙여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일본에서도 한지 공예는 존재한다.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대형 미술용품점인 세카이도(세계당)에서도 일본 전통 문양이 들어간 한지를 이용한 공예품을 전시하고 있다. 물론 제작을 위한 도구도 판매하고 있어,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이런 행사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체험인 것이다.

 

물론 가장 활발했던 곳은 한국 음식을 파는 천막이었다. 떡볶이, 양념치킨, 갈비, 잡채, 비빕밥, 호떡 등 일본의 한인타운인 신오쿠보에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선보이고 있었다. 구매는 100엔 단위의 쿠폰을 매표소에서 따로 구매하는 방식을 이용해서, 실제 음식 구매시 거스름돈으로 인해 길어지는 시간을 최소화 하는 노력이 엿보였다.

 

▲ 2015 한일 축제 한마당     ©JPNews

 

 

인상적인 것은 재일동포의 수보다 일본인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에 비해, 한국 음식을 즐기는 방식이 많이 능숙하다는 느낌이었다. 도쿄에 살고 있다는 D양(24)의 말에 따르면, 한국 음식을 먹으러 신오쿠보에 종종 갔었기 때문에 신기하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음료수같은 경우, 한인 슈퍼를 제외하면 취급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대게 '쌕쌕', '갈아만든 배'처럼 과립이 크게 씹히는 음료는 일본 제품 중에 드물고 맛도 한국 제품쪽이 더 좋은 편이다. 단, 맥주만큼은 일본 제품을 고집(?)해서 한일 교류의 분위기를 맞추었다.

 

오후 5시 30분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콘서트장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앉아서 관람할 수 있는 장소는 한정되어 있었고, 그마저도 거대한 분수대 때문에 좌석 배치가 어려워 관중들 대부분이 서서 관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공연시작 시간인 5시 30분을 훌쩍 넘겨 5시 50분이 되어서야 한류 콘서트는 시작했다. 첫 무대는 한국의 달샤벳이 포문을 열었고, 그 다음은 일본에서 주로 활동을 하고 있는 A.PIECE, 행사장에서 일본 첫 데뷔무대를 선보인 다비치, 엄청난 팬들을 끌어 모은 틴탑의 순서로 공연이 진행되었다.

 

달샤벳의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수많은 디지털 카메라 부대가 저 멀리 달샤벳 맴버를 찍기 위해 렌즈를 조절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남성팬들의 큰 환호 소리가 종종 들렸다. A.PIECE는 일본 무대에 익숙한 듯 능숙한 일본어로 무대 인사를 했고, 노래도 전부 일본어로 불렀다. 여자 팬들도 노래 중간중간 춤을 따라하는 등 오래전부터 일본팬들과 소통하고 있었다는 것이 느껴지는 무대였다. 다비치의 경우 일본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일부 광적인 일본 팬들도 존재해 무대 인사 전부터 큰 소리로 맴버의 이름을 외치기도 했다. 첫번째 노래를 부를 때는 음향상태가 좋지 않아 마이크 소리가 잘 나오지 않자 성량으로 벨런스를 맞추는 등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 실력파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압도적인 무대를 선보인 것은 틴탑이었다. 한국에서 틴탑의 인기는 최정상급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안에서 데뷔후 5년간 독보적인 진화를 해온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틴탑이 무대에서 선보인 안무는 빠른 스탭이 인상적으로, 그 현란함에 처음보는 일본인들이 탄성을 지르게 만들 정도였다. 춤에 집중하는 아이돌 그룹은 많지만, 틴탑만큼 기술적으로 수준높은 그룹은 소수다. 결국 틴탑은 앵콜을 받아 노래 한곡을 더 부르고 들어갔다. 무대가 끝난 뒤에도 몇몇의 일본인은 계속 남아 핸드폰으로 틴탑의 뮤직비디오를 검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한일 교류 축제를 통해 한국문화를 생각보다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일본인이 새롭게 느껴졌다. 일본인은 마쯔리(축제)에 익숙한 민족이기에, 이런 형태의 문화 교류가 가장 적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청년들의 유년이 일본문화에 즐거움과 위안을 얻었다면, 일본인들도 이런 교류를 통해 한국의 춤과 노래, 드라마, 영화로 새로운 자극과 즐거움을 얻었으면 한다.


 

ⓒ 일본이 보인다! 일본전문뉴스 JPNews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기사입력: 2015/09/30 [03:25]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생생한 기사 감사 지나가다가 15/10/04 [14:14]
축제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두에 해방후 일본문화의 한국 유입에 대한 자세한 설명 너무 내용이 좋은 것 같습니다. 다음 기사를 기대해 봅니다. 수정 삭제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관련기사목록
최근 인기기사
일본관련정보 A to Z
  회사소개회원약관개인정보취급방침 ㅣ 광고/제휴 안내사업제휴 안내소액투자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한국> 주식회사 올제팬 서울 송파구 오금로 87 잠실 리시온 오피스텔 1424호 Tel: 070-8829-9907 Fax: 02-735-9905
<일본> (株) 文化空間 / (株) ジャポン 〒169-0072 東京都新宿区大久保 3-10-1 B1032号 
Tel: 81-3-6278-9905 Fax: 81-3-5272-0311 Mobile: 070-5519-9904
Copyright ⓒ JPNews. All rights reserved. Contact info@jpnews.k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