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규슈(北九州)의 후쿠오카에서는 가전 제품을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가전 수리 센터에 고장난 가전 제품의 수리를 위해 오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고장난 가전 제품을 가족이라 부르면서 고쳐달라고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하루는 할머니 한 분이 고장난 밥솥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오셔서는 어디가 고장났는지 모르겠다며 수리를 의뢰했다. 밥솥은 우리 가족이라면서 주사를 한 대 맞으면 건강해질래나라고, 마치 아픈 가족과 병원에 온 것처럼 말했다고 한다.
남편도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해주었는데, 지금은 죽은 남편을 대신해서 '로봇쨩'이 대신 일해 준다고 생각한다는 할머니. 로봇쨩은 할머니가 집안 청소를 위해 사용하는 로봇 청소기 이름이다.
25년 이상이나 사용해 온 세탁기에게 계속 경어를 쓰는 할머니도 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같이 산 가전 제품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게 바로 이 세탁기란다. 세탁기를 쓸 때마다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세탁기가 자신을 위해 너무 많이 일을 해서 힘들었을 것이라며 출장 수리를 의뢰했다고 한다.
매일매일 사용하는 가전 제품을 가족으로 생각, 따뜻한 시선과 애정 어린 손길로 귀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65살 이상의 고령자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남편과 사별하고 장성한 자식들은 출가와 함께 독립해서 나가고 혼자 남은 할머니들이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조사해 보니 젊은이들 중에서도 가전 제품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개중에는 가전제품을 위해 집을 리모델링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중년 부인은 자기에게는 세 딸의 가전이 있다고 소개했다. 맏딸이 취사기구인 가스 렌지, 둘째 딸은 건강을 책임지는 공기청정기, 막내딸은 간편하게 식사를 도와주는 전자렌지라는 것이다.
여자가 가스 렌지의 점화 버튼을 누르자, "장녀 가스 렌지가 점화하겠습니다"라는 음성 안내가 나온다. 그러자 그녀는 "얘, 얘, 점화한 것은 나야"라고 대꾸한다. 그녀는 이렇게 가전들과 대화하면서 요리를 만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는 가전들을 딸이라고 부르는 이 중년 부인은, 그 세 딸 가전을 사용할 때마다 항상 가전 기능으로 셋팅되어 있는 음성 안내에 따라 말을 주고 받는다. 마치 옆에 기계가 아닌 사람에게 말하듯이 말이다.
아이로봇 청소기의 이름은 기요시. 항상 종종거리고 귀여운 발을 움직이며 집안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하는 로봇 청소기가, 이들에게는 귀여운 아이 같기도 하고 잘 따르는 애완동물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서 기요시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몇 년 전, 한 여성은 바깥 일은 커녕 집에서 청소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 로봇 청소기를 구입했다고 한다. 매일 매일 열심히 청소하는 로봇 청소기를 보면서 본인의 건강도 되찾았다고.
그래서 로봇 청소기가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쉽게 청소할 수 있도록 방문턱을 없애기 위해 집을 전부 리모델링했단다.
이렇듯 가전 제품을 아껴 쓰는 걸로도 부족해서 자식처럼 남편처럼 애지중지 하는 일본인들이 늘고 있다. 특히 1인 가구거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힘들고 귀찮은 일을 대신해주는 가전 제품에게 고마움과 애정을 느끼고 있다.
예전엔 가전 제품이 육체적인 가사 노동을 덜어주는 단순한 기능을 가진 기계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옆에서 가장 많은 것들을 공유하는 가전 제품이 가까운 벗이자 효도하는 자식, 혹은 추억을 서로 나누는 배우자 역할까지 하고 있다.
한국에서, 도시에 사는 자식이 멀리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을 위해 새 보일러를 놓아드리는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추운 겨울 동안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시에 사는 자식이 효도를 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채워 줄 수 없는 기능을 로봇이나 가전 제품들이 일정부분 해소시켜 주고 있다. 특히 50대 중반 이후의 여성들에게 제공되는 음성 가이드 가전이 높은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자신을 위로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옆을 지켜주는 그런 소중한 가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