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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로봇가전 흑역사 (7회)
 
김명갑

허허벌판에 나 있는 소작로는 한참을 지나 어느 집 대문과 맞닿아 끝나 버렸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길 한 복판에 차를 멈추고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 위에 내려섰다. 삼십분 넘게 달려왔던 길이 마을과 연결된 유일한 외길이었다.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니 사람 키 만한 갈대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눈앞, 이층 목조 주택 하나가 갈대들 사이로 혼자 삐쭉하니 올라와 있었다. 주변에 다른 인가 같은 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정말 비효율 적인 곳에 사는군.’

 

미나는 진한 물 비릿내에 고개를 저었다. 보이진 않지만 아마 주변에 늪이나 강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디에 차를 대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던 야스다는 결국 차를 길 가장자리에 바짝 붙여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는 “아, 이 집이었군.” 하고 짧게 외쳤다.

 

사사키 후미에는 둘을 마루에 앉히자마자 차를 내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처럼 찻물은 조금 쓰다싶을 정도로 우러나와 있었다. 그래도 분명 좋은 차였다.

 

“태워다 줘서 고마워요. 택시도 꺼리는 곳이라 시내 나올 때마다 곤란해서.”

 

야스다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는 사이 산등성이로 들어 누운 해가 거실 안까지 들어 왔다.

미나는 오렌지와 포도 셔벗을 뒤섞은 것 같은 하늘이 대청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잠시 감탄했다. 비효율적인 것과는 별개로 지금 시간의 하늘은 그냥 순수하게 아름다웠다.

 

“남편이 직접 지은 집이에요. 애들은 학교 다니기 불편하다고 싫어했지만..”

 

그녀의 시선이 남편의 영정이 모셔진 작은 제단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아이의 체육 대회 사진에 잠시 머물다 돌아 왔다. 야스다는 미나에게 건네 받은 코지마 수첩을 뒤져 오년 전 히노가 남겼던 메모를 발견했다.

 

「사사키 후미에(62), 20XX년 4월 11일. HIKARI-RAI 한 대 구입. 남편은 20년 전 사별 했으며, 두 아들은...」. 야스다는 그 뒤를 읽지 않아도 히노의 필체에서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사사키씨는 저희 회사 신제품 로봇 청소기를 구입하고 싶으시다는 거지요?”

“아니.. 그러니까. 정확히는 아직 마음의 준비를 못해서...”

 

같이 오면서 야스다가 몇 번인가 확인했지만, 여전히 사사키 후미에는 자신 없는 태도였다. 어쩌면 자신을 설득해 달라고 그들을 자기 집까지 부른 모양인지도 몰랐다.

 

언젠가 히노는 술자리에서 야스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야스다. 이건 별로 비밀이랄 것도 없는데 말이야. 로봇 청소기라는 거 의외로 재구입 비율이 높단 말이지. 그게 무슨 소리냐면. 이를테면 개나 고양이처럼 말이야. 개나 고양이를 키우다가 죽으면, 대게 또 개나 고양이를 키우게 되잖아? 무슨 말인지 알아?” 

“근데, 그건 냉장고나 전자레인지도 똑같지 않나요. 망가지면 다시 사야 하니까요.”

“아니야. 그거랑은 달라. 개나 고양이를 한 번이라도 키워본 사람은 일반인이랑 뇌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거야. 번개를 맞은 것처럼 갑자기 뇌가 빠지직 하면서. 그게 근처에 어슬렁 거리면서 자기를 귀찮게 안하면 도저히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거지. 우리가 냉장고에 뭘 기대하진 않잖아. 냉장고에 뭔가를 느끼면 그건 변태라고.”

“그러니까.. 선배님 말씀은 로봇 청소기도 일종의 개나 고양처럼 비슷하다는 말인가요?”

“그래. 그러니까. 로봇 청소기를 한 번 산 사람은 그게 생각보다 쓸모없는 물건인 걸 알아 차리더라도 절대로 환불 요청 같은 걸 안한다고. 오히려 귀찮은 걸 좋아해. 그러니까 우리가 저 반푼이 같은 걸 팔고 다녀도 사기꾼 소리를 안 듣는 거야.”

 

그날의 히노는 조금 이상했다. 평소 그는 로봇 청소기에 대고 반푼이니, 귀찮니 하는 말 따위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분명 자신의 일을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야스다는 히노에게 약간의 실망을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히노만큼의 경력이 쌓인 지금, 야스다는 그 말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되었다. 개나 고양이의 예까지는 아니더라도, 야스다는 친구의 결혼식에서 푸아그라를 처음 먹어본 날을 떠올렸다. 기름기를 살짝 머금은 그 농후하고 진한 맛에 야스다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리고 맥주 한 캔을 사기 위해 들른 슈퍼마켓에 푸아그라 통조림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그는 완전히 ‘그쪽 사람’으로 넘어가 버렸다. 이를테면 푸아그라를 먹는 사람, 푸아그라의 맛을 알아버린 사람, 푸아그라라는 음식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푸아그라라는 거, 거위에 입에 강제로 사료를 들이 부어 간을 붓게 만드는 거래.”라는 회사 동료의 말에 “참치가 어떻게 잡히는지 알게 되면 백엔짜리 참치 군함말이도 못 먹게 될거야”라고 날카롭게 맞받아 친 적도 있었다. 로봇 청소기 역시 푸아그라처럼, 누군가에겐 사치품이나 다름 없고 전혀 가치 없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경험한 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무엇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야스다는 알고 있었다. 아마 사사키 후미에도 바로 그런 사람일 것이다.

 

“전에 쓰던 모델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게... 이년 전에 제가 실수로 한번 바닥에 떨어뜨린 이후로 상태가 조금 이상해져서요. 아무래도 이젠 청소를 쉬게 하고 다른 녀석을 들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야스다는 일이 슬슬 막바지에 도달했음을 직감했다. 더불어 눈앞의 고객이 구매에 대해 확답을 안하는 이유도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불안한 것이다. 연금으로 먹고 사는 처지에 고가의 로봇 청소기를 한 대 더 들여 놓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물론 야스다에게는 망설이는 상대를 위한 가이드 라인도 존재했다.

 

“우선 카탈로그를 보여 드릴까요? 어떤 색이 마음에 드세요?”

 

메탈 블루 단색이었던 HIKARI - RAI에 비해, 신제품은 무려 스물 일곱 가지 색상을 가지고 있었다. 시작은 좋아하는 색을 물어보는 심리 테스트와 같았다. 사사키 후미에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벚꽃 색을 골랐고, 야스다는 팜플렛 위에 몸을 숙여 대신 체크를 하다가 갑자기 후미에에게 볼펜을 넘겼다.

 

“간단하니까 직접 해 보실래요?”

 

다음 장부터는 마루의 재질, 물이나 왁스 청소의 가능 여부, 충전 방식 등도 가정 사정에 따른 객관식들이 질문들이 이어졌다. 작아서 읽기 힘든 한자는 야스다가 직접 독음을 해주었다. 사사키 후미에는 자기 집에 있는 콘센트 위치며 문지방 높이 같은 걸 확인하기 위해 몇 번이나 자리를 비웠다. 사실 신제품의 기능을 생각할 때 색상을 제외한 문항들은 사실 의미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단지 고객 스스로 문항에 대한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별거 아닌 기호와 사정들의 선택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있는 계약서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관성에 휩쓸려 계약서마저도 빈 곳마다 자신의 개인정보를 집어넣고 말게 되는 것이다.

 

사사키 후미에 역시 무엇인가에 홀린 듯 계약서에 사인을 마쳤다. 은행계좌 번호가 적힌 종이가 그녀 앞에 놓일 때까지 그녀는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긴장이 풀린 야스다는 계약서를 가방에 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미나가 사사키 후미에를 불렀다.

 

“제가 잠시 볼 수 있을까요?”

 

사사키 후미에는 미나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눈 앞의 젊은 여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니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부로요.”

“사부로..?”

 

사사키 후미에는 어떨 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로봇 청소기를 불렀다. 야스다는 미나의 돌발 행동에 당황했지만, 계약서까지 챙긴 마당에 설마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조용히 방관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부로~! 청소해줘(三郎!掃除してね。)”

 

이윽코 옆 방에서 로봇 청소기 한 대가 움직이더니 덜덜 거리면서 마루를 훑기 시작했다. 사부로란 이름이 붙은 로봇 청소기는 모서리가 이리저리 깨져 흉물스러웠다. 미나는 날카로운 눈으로 사부로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이상의 원인은 금방 발견되었다. 장애물을 만나면 센서가 반응해 자연스럽게 부딪히기 직전에 멈춰 바로 방향 전환을 해야 하는데, 이 녀석은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지도 모르고 장애물에 자신의 몸을 수도 없이 들이 박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코팅이 부서지며 코랄 펄이 들어간 반짝이는 가루가 바닥에 흩날리고 있었다. 보다 못한 사사키 후미에가 몸을 일으켜 방향을 돌려 주자 다시 그 방향으로 쌩하니 달려갔다.

 

야스다는 그 모습을 보고 갑자기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아끼던 미니카가 생각났다. 용돈을 아껴 비싼 모터를 사고,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뭔가 유치한 이름도 붙여 줬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날, 만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전원을 넣고 잠시 땅바닥에 내려 놓았을 뿐인데 녀석은 순식간에 잡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달아나버려 크게 당황 했던 적이 있었다. 야스다는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달렸지만 차도로 뛰어드는 미니카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오히려 녀석이 차도에 내려 가는 순간, 마지막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뛰던 발걸음을 멈춰섰다. 그 때 애지중지 하던 것이 눈 앞에서 산산조각이 나 부서지는 것을 본 이후, 야스다는 더 이상 장난감이란 걸 가져 본 적이 없다.

 

‘저런 걸 용케 안 버리고 있었군.’

 

야스다가 쓴 입맛을 다시는 사이, 미나는 이미 사부로를 뒤집어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마치 환자를 대하는 의사처럼. 자연스럽게 사사키 후미에의 얼굴도 보호자의 얼굴처럼 변해갔다.

 

“어떤가요?”

“망가졌어요. 센서가요. 아, 센서란 건 일종의 눈인데 그게 망가지면 자기 앞에 장애물을 인식하지 못해요. 장님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런 저런 상처가 많은 거예요. 계속 부딪치니까 내부에 충격이 누적돼서 방향전환 해주는 부분까지 망가진 거 같아요. 이대로 내부에 충격이 계속 가해지면 메모리에도 영향이 가 리셋 될 거예요.”

 

장님이란 말에도 사사키 후미에의 얼굴은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야스다는 무릎 위에 올라간 후미에의 주름진 손이 치마를 부여잡으며 조금씩 움츠러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시동어인 자기 이름을 까먹게 되는 거예요. 불러도 대답하지 못하는 거죠.”

 

미나는 그게 펀치 드렁크나 치매같은 거라고 쉽게 풀어 설명할까 하다가, 노인 입장에서는 그 말도 상처가 될까 하여 돌려 말했다. 왜 이 놈의 로봇 가전은 시동어란 것을 만들어서 정을 주게 만드는 걸까. 그냥 로봇 청소기면 족할 것을.

 

“그럼 지금처럼 계속 전원을 꺼 두면 괜찮지 않을까요? 청소를 시키면 상태가 점점 더 안 좋아진다면.”

“그럼 이제까지 청소는 직접 하신 거예요?”

“네, 아무래도...”

 

미나는 청소하지 않는 로봇 청소기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개발부에 앉아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항상 고민했던 것은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스스로 알아서 청소를 지속하는 알고리즘이었다. 그런 빼어난 수식을 완성하게 된다면, 바닥에 머리카락이나 고양이 털들이 지저분하게 날아다니는 걸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매번 끈끈이 롤러를 사오지 않은 것을 뒤늦게 후회하거나, 샤워 후에 머리카락 흘린 것을 왜 치우지 않느냐고 가족끼리 말다툼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 지난한 시간들이 세상에 몇 분 씩이나마 줄어 든다면, 로봇 청소기를 개발하는 사람으로서 만족할 수 있었다. 발명이나 이과가 하는 일의 본분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귀찮음을 대신해 주는 것. 머리 아픈 것 하나를 덜어주는 일.

 

그러나 로봇 청소기가 걱정돼 관절염이 걸린 노인이 대신 청소를 한다는 말을 개발부 사람들이 듣게 된다면, 그들 중 그 누구도 기뻐하거나 감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나는 단언할 수 있었다. 밤 늦게까지 시키지 않은 야근을 하며 자신이 만들어 낸 것, 나아가 스스로의 한계에 조용히 분노할지도 모른다. 지금 미나가 그렇듯이.

 

“고칠 수 있어요. 장비가 차에 있으니까 가져 올게요.”

 

그녀는 자기 앞에 놓인 차를 후루룩 마시더니 성큼 성큼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갔을 뿐인데 방안은 훨씬 더 적막해졌다.

 

“전에... 사노스케랑 같이 왔었지요?”

“네.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니, 확실히 왔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밥도 얻어 먹었네요.”

“아직도 기억나요. 도쿄에 취업하고 열심히 사느라 한 동안 연락도 없이 뜸했던 녀석이 뭔가 팔아보겠다고 고향 사람들한테까지 찾아와 고개 숙이던 모습이. 짠했어요.”

 

야스다는 카탈로그 끝을 괜히 만지작 거렸다. 아 제발, 그만해줬으면.

 

“그날도 혹시 기억해요? 사부로를 팔던 날?”

                                               (계속 - 내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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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7/02 [04:36]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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