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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로봇가전 흑역사 (12회)
 
김명갑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히노 사노스케는 술에 잔뜩 취해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쓰고 있던 소설을 슬그머니 구석으로 치워 놓은 산몬 헤이죠는 웃는 얼굴로 히노를 반겼다. 이 시간에 히노가 찾아오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지?”

“제가 뭐 못 올 곳이라도 왔나요?”

 

히노는 품에서 도쿠리와 잔 두개를 꺼냈다. 예의 유명한 사사키의 우메슈였다. ‘뇌물인가’ 산몬 헤이죠는 히노가 무슨 말을 할까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어제... 아주머니가 양자로 입적 하는 게 어떠냐고 물으셨어요.”

둘이서 작은 술병 하나를 다 비웠을 쯤 히노가 갑작스럽게 말을 꺼냈다. 산몬은 20년 전 강보에 쌓인 히노가 여관 앞에서 발견된 순간부터 오늘 같은 날이 올 것이란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네 생각은 어때?”

“아주머니가 정말로 잘해주셔요.”

“하지만 실은 내키지 않는 거겠지?”

 

히노는 망설임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양자가 되고 싶었다면 술에 취해 산몬을 찾아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도쿄에 가고 싶어요. 가서 제가 진짜로 뭘 하고 싶은지 찾아보고 싶어요. 이대로 혼란스럽게 20대를 보내고 싶지 않아요. 한번 부딪혀 보고 확인하고 싶어요. 내 인생, 도대체 이 뒤에 뭐가 있는지...”

 

히노가 고민 끝에 마음을 정한 이상 산몬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일밖에 없었다.

 

“사노스케. 모모타로(桃太郎) 이야기를 아니? 카구야 히메(輝夜姫)이야기는?”

아이 없이 쓸쓸하게 지내던 노부부에게 갑자기 사랑스러운 아이가 찾아온다는 모모타로와 카구야 히메 이야기. 시코 여관 앞에 버려져 지금껏 준코의 손에 자란 히노는 산몬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너는 우리 부부에게 그런 존재였단다. 새벽 이슬에 젖은 채로 강보에 쌓여 울고 있는 너는 복숭아나 대나무 속에서 태어난 아이만큼이나 신비로워 보였지. 마치 신이 자식없이 외롭게 지내는 우리에게 보내는 선물 같았다. 그러나 강보에는 네 이름이 적힌 메모지도 함께 들어 있었어. 히노 사노스케, 나는 네 이름이 적힌 그 메모지가 산몬 사노스케가 아닌 꼭 히노 사노스케로 키워달라는 부탁처럼 들렸어.”

“아주머니를 생각하면 너무 제 생각만 하는 것 같아 괴로워요. 시코도 분명 좋은 곳인데...”

“카구야 히메는 말이야. 결국에는 키워준 부모를 떠나 달로 돌아갔어. 모모타로도 한창 때는 동료들과 모험을 하느라 집을 떠났지. 그게 순리야. 누구나 태어나면 가족의 품을 떠나 혼자가 되어 봐야 해. 그래. 이번에는 우리 이야기를 해보자. 대대로 여관업에 종사한 우리 가문이 원래는 에도(江戸) 토박이었다는 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겠지. 내 할아버지 대에 가세가 기울어져서 후쿠오카까지 내려오긴 했지만 그 때도 에도(江)를 그리워한다(偲)는 뜻에서 시코(偲江)라는 이름으로 여관을 열며 절치부심했단다. 그 때는 언젠가 가문을 부흥시켜 에도로, 도쿄로 돌아갈 거라는 희망이 있었던 거지. 내 아버지도, 나도 항상 그런 말을 듣고 자랐다. 사내라면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말이야. 만약 나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나 역시 이런 이야기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사장님...”

“우린 걱정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나거라. ”

  

그리고 정말로 며칠 뒤 히노는 시코를 떠났다. 그 날 준코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왜 히노가 떠나게 그냥 둔거죠?”

집무실 앞에서 준코가 헤이죠의 앞을 가로 막으며 소리쳤다. 핏줄이 톡하니 불거져 나온 앙상한 손이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준코는 생전 헤이죠에게 화를 내본 적이 없는 여자였다. 그런데 그 때는 자신의 남편을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 같은 경멸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피할 틈도 주지 않고 집요하게 닥달했다. ‘나를 더 이상 무시 하지마.’ 그녀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거의 다... 거의 다 되었었잖아요. 그냥 잠자코나 계시지. 지금처럼.”

준코는 고개를 숙이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울음소리에 몇 몇 손님이 객실 문을 열고 복도를 두리번거렸다. 헤이죠는 급히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작아진 아내의 어깨를 감싸안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준코는 한참을 흐느꼈다. 헤이조는 아내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그녀를 달래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히노는... 우리 아들이 될 수 없어. 당신도 알잖아.”

“사노스케를 양자로 들이려 했어요. 당신이 그걸 망치게 했다구요.”

 

여관 앞에 버려진 갓난장이를 준코가 애지중지하며 공들여 키운 세월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세월보다 히노에게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할 것임이 분명했다.

 

“도리에 맞지 않아. 히노는 꿈을 위해 도쿄에 간 거야. 정말로 아끼는 사람이라면 그 앞을 막지 말아야지.”

헤이죠의 말에 준코가 피식 웃었다. 뻔한 거짓말 따위는 하지 말자는 듯한 표정이었다.

 

“도쿄에 가고 싶으면 당신이나 갈 것이지, 왜 사노스케에게 헛바람을 집어 넣어 떠나게 한 거죠? 제가 바본 줄 알아요?”

“들었구나.”

“당신이 멋대로 재산을 시누이들에게 분배했을 때도 나는 그냥 참았어요. 그건 원래 당신 몫이었으니까. 그런데 사노스케는 제 몫이잖아요. 그 애는 제 삶의 유일한 낙이었는데, 당신이 나한테 이렇게 할 권리는 없는 거잖아요.”

“그건 사랑이 아니라 그냥 집착이야.”

 

그녀는 산몬의 입에서 집착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몸서리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문을 나서면서 준코는 혼잣말처럼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소리는 너무나 또박또박 산몬의 귀에 들어가 박혔다.

 

“사랑..? 고자가 사랑을 알아? ”

정글에서 혹독한 열병을 앓은 후 산몬은 목숨을 건진 대신 남성의 기능을 잃고 말았다. 귀머거리나 장님, 반신불수가 되는 것보다 이쪽이 더 낫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살아왔는데... 준코의 가슴 속 이야기가 그의 잔인한 현실을 일깨워 주었다. 산몬이 알고 믿어 왔던 것이 사실은 전부 틀렸다는 것을.

 

히노 사노스케가 다시 시코 료칸을 찾은 것은 십년도 훨씬 더 지난 후였다. 어느 날 저녁, 히노는 연락도 없이 술에 취해 처음 보는 젊은이의 등에 업혀진 채로 여관에 실려 왔다. 정신이 없어 비몽사몽 몽롱한 상태에서도 히노는 용케 준코와 산몬을 알아보고는 기분 좋게 소리쳤다.

 

“역시 다시 읽어보니까 있지. 모모타로 녀석은 결국 돌아왔더라고. 고향에.”

다음날 정신을 차린 히노는 산몬에게 로봇 청소기 한 대를 팔았다. 파란색 동체가 인상적인 녀석이었다. 준코는 비싼 돈을 주고 산 녀석을 히노가 준 선물이라며 퍽이나 아꼈다. 히노는 일 때문에 점심을 먹고 곧바로 도쿄로 상경해야 했지만, 그 후로도 시간이 있을 때마다 종종 야스다와 함께 시코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리고..."

 

산몬은 더 이상 맛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가장 치욕스러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말하던 그였지만, 아내나 히노의 죽음에 대해서는 끝내 평정심을 지키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던 산몬이 촛점 잃은 눈빛으로 미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난데없이 청소기 이야기를 꺼냈다.

 

“로봇 청소기 판다고 했나? 그거 나도 하나 살 수 있을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미나는 히노의 다음 이야기에 골몰해 있다가 화들짝 놀라 이내 감정 수습을 하고 산몬에게 말했다.

 

“네, 제가 아침에 카탈로그를 가져다 드릴께요.”

“오늘 이야기는... 야스다에게는... 하지 말아주게. 그렇잖아도 녀석이 제일 괴로울 거야.”

 

미나는 애써 산몬의 시선을 피했다. 왠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산몬의 다음 이야기는 이미 망자가 된 아내 준코와 히노에 대한 이야기 일 것임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 후의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미나는 이미 눅눅해져버린 민물 메기 튀김을 입에 넣으며 그래도 맛있다고 애써 웃어 보였다. 하지만 마음처럼 얼굴 표정은 전혀 웃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눈물이 나려 했다.

                                   (계속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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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7/23 [18:18]  최종편집: ⓒ jpnews_co_kr
 


안녕하세요. 글 잘읽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학생 16/07/25 [13:24]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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