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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출판 생태계의 빛과 그림자
킨들 언리미티드로 일본 출판계 대지각 변동 예고?
 
김명갑 기자

킨들 언리미티드 (Kindle Unlimited)로 일본출판계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2000년 일본에 첫 선을 보인 인터넷 서점 아마존. 아마존은 2016년 킨들 언리미티드(Kindle Unlimited,이하 KU)진출을 예고하고 있어 일본출판계의 대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아마존의 KU는 과연 어떤 변화를 불러 오게 될 지 알아보자.

 

1. 일본출판계의 거대한 생태계,위탁판매제도와 대형 유통사  

지방 소출판유통센터 카와카미 켄이치 대표는 일본의 서점을 두고 “일본에서 작은 서점은 잡지를 밥이라 하면 서적을 반찬으로 생각하고, 베스트셀러가 나오면 좋은 반찬이 나왔구나 라고 생각한다”고 비유한 바 있다. 이는 일본에서 정기 간행물, 즉 잡지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자가 일본의 서점에서 가장 놀란 것은 거의 모든 분야에 망라해 있는 잡지들의 종류였다. 아무리 작은 서점이라도 잡지 코너는 매장에서 가장 크고 잘 보이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어 그 위상과 중요성을 가늠케 했다. 

 

일본 최대 규모의 서점인 도쿄 키노쿠니아의 잡지 코너만 해도 ‘가면 라이더 시리즈’, ‘파워 레인져 시리즈’같은 전대물, 특촬물 영화 매니아를 위한 잡지만 10종류 가까이 구비하고 있다. 타겟으로 하고 있는 독자층만 확실하면 아무리 마이너한 장르라도 잡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일본출판계의 분위기.  

 

▲ 키노쿠니야 전대물  잡지   2015년 © JPNews

 

그런가 하면 다른 한쪽에는 '한유 유주루'를 표지로 하는 피겨 잡지들이 즐비하다. 내용을 살펴 보면 단순히 미소년 스케이터의 화보집에 그치지 않고 그의 뛰어난 피겨기술이나 성공 이유에 대해 분석한 기사들이 많다. 또 잡지마다 특색이 달라서 같은 사진이 들어가 있는 경우는 없었다. 우리나라에도 김연아라는 뛰어난 피겨스타가 존재하지만, 변변한 피겨 잡지는 커녕 전문적인 스포츠 잡지도 찾아보기 힘든 우리의 출판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 키노쿠니야의 피겨 잡지  2015년   © JPNews

 

일본은 사소한 분야라도 잡지를 통해 전문 지식들이 다양하게 축적되어 있어 궁국적으로는 거대한 아카이브를 이루고 있다.  

 

물론 과도할 정도로 출판되는 잡지들의 모습이 조금은 위태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취미 분야에 관련된 잡지들은 어차피 특정 계층들을 노리고 있는 만큼 무분별한 난립은 공급자들의 이윤을 감소시켜 공멸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다. 책은 꼭 사야하는 생필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위태로울 정도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 위탁재판매제도(반품조건부 매매계약)다. 일본출판계는 이 제도를 통해 과도할 정도로 많은 도서를 공급하면서도 출판사와 대형 유통사, 소매상이 상호 보완적으로 서로의 생존에 기여하고 있다. 이 제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본 비즈니스 문화의 특유의 면면을 발견할 수가 있다.

 

일본출판계는 크게 출판사, 대형 유통사, 소규모 서점 이렇게 세 구조로 구성돼 있다. 일본출판시장은 출판사와 서점의 직거래 대신 '닛판'과 '도한'으로 대표되는 대형 유통사를 중간에 끼고 있다. 이렇듯 대형 유통사의 역할은 일본출판 생태계에서 꽤나 중요하다. 

 

위탁재판매제도는 도서 정가제를 전제로 한다. 할인을 하지 않음으로써 출판사는 할인 경쟁에 내몰릴 필요가 없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판매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 가격이 아닌, 시장의 니즈와 컨텐츠의 질로만 승부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신간이 탄생한다. 

 

대형 유통사는 출판사의 영업부 역할을 수행하면서 출판사에 재정적인 도움을 주고 전국의 소매점에 신간 도서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도서 정가제와 출판경영을 안정화시킨다. 또한 소매점의 점포 운영, 출점에 대한 조언과 영업관련 정보를 출판사에 제공하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소매점에서 미처 소화하지 못하는 책들은 대형 유통사에서 정가의 70~80% 정도 가격에 반품을 받아 준다. 그리고 이보다 약간 비싼 가격에 출판사에 되팔아 이윤을 번다. 아이러니하게도 책의 반품이 많을수록 대형 유통사는 돈을 번다. 

 

소형서점 역시 대형 유통사가 있는 편이 직거래보다는 이윤은 줄어들지만, 안정적인 가격에 반품 가능한 다양한 신간을 보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면 독자는 경제적 손해만 보는가? 그렇지 않다. 다양성이 보장된 출판계는 양질의 도서와 뛰어난 전업 작가가 등장할 가능성이 당연히 높다. 도서정가제는 할인율만 막는 게 아니라 유통비 명목으로 올라가는 소비자 가격 역시 억제하기 때문에 지방이나 산간 지방 독자들도 도시와 동일한 가격에 도서를 구입할 수 있게 해준다. 업계 종사자들과 소비자들이 각자 리스크와 손해를 분담해 안고 시장의 다양성과 지식 재생산의 길을 지켜나가고 있는 셈이다.   

 

2. 일본출판의 위기, 재판매가격유지제도와 반품률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아마존

일본의 출판 시장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어느 한 부분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전 세계가 점점 책을 읽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만큼 출판 시장은 생존을 위해 그간 익숙했던 체질들을 개선해야 할 때가 왔다고 할 수 있다.   

 

1996년 2조 7000억엔 매출로 정점을 찍었던 일본출판 시장은 2013년에는 2/3인 1조 7,700억엔까지 그 규모가 줄어든 후 현재까지 계속 감소하고 있다. 매년 500개 이상의 서점이 문을 닫고 있고, 일본출판계를 이끌어온 잡지와 만화마저 매년 발행부수가 줄어들고 있다.

 

일본출판업계 관계자들은 스마트 폰이 대중화되면서 출퇴근 길에 책과 잡지를 읽지 않게 된 것, 잡지 시장의 축소, 그로 인한 소규모 서점의 폐점, 소비세 증가, 만화 시장이 점차 전자책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점 등을 그 원인으로 꼽고 있다.     

 

그렇다면 출판계의 장기적 불황은 일본출판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일본의 도서 정가제는 국가 법률로 정한 것이 아닌 사업자간 재판매가격유지제도(Realse Price Maintenance)로 유지된다. 스지 요시히코의 『개정신판 재판매가격유지제도 무엇이 문제인가?』(쇼가쿠칸 출판)에는 일본에 이런 제도가 관행적으로 정착된 원인에 대한 세 가지 설이 실려 있다.

 

1)다이쇼 시대(1912~1926) 초기부터 이미 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이어왔다.    

2)출판사는 소수의 거대 출판사에 의해 과점이 불가능한, 다수의 영세한 출판사들이 경쟁적으로 성쇄를 반복하고 있는 형태의 시장이기 때문에 생산자가 소비자가를 구속하는 재판 제도를 인정해도 폐해가 적다. 

3)재판 제도가 출판사의 경영에 이바지하며 창업과 존속을 촉진, 결과적으로 출판 생태계가 안정화되어 다종다양한 출간물이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보급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출판사가 도서 가격 결정에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출판사 존치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재판 제도를 법률적으로도 예외로 둘 수 있으며, 사업자간 협의를 통해서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출판 시장에 있어 독자나 시장원리보다 출판사의 생존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당금에 와서는 이런 도서 정가제도가 거꾸로 출판사의 목을 죄고 있다. 소매점에서 도서정가제를 해주는 이유는 위탁판매제도, 책이 비싸 팔리지 않아도 대형 유통사를 통해 반품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대형 유통사도 출판사가 군말 없이 반품을 받아주기 때문에 출판사의 허드렛일을 나서서 대신해주고 있는 것이다. 출판사 역시 반품률이 높더라도 대형 유통사의 예약판매대금으로 손해를 돌려 가면 막을 수 있다. 소위 말하는 베스트 셀러가 한번 터져주면 그간의 손해를 메우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서로의 이해관계가 출판 생태계의 사이클을 유지하는 힘이었다.  

 

하지만 시장이 불황으로 접어 들면서 베스트셀러의 매출이 떨어지고 출판사에서도 반품을 받아주는데도 한계가 생겼다. 반품이 많을 수록 출판사는 투자된 원자재(종이값, 선인세, 인건비 등)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직 일본출판 관계자들 역시 이제는 일정 기한이 지난 신간들은 프랑스나 독일처럼 소매점에서 할인을 통해 유연하게 소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가로 팔다가 대부분이 반품될 바에는 할인을 통해서라도 반품을 줄이는 것이 시장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위탁재판매제도를 악용하다 망신을 산 경우도 있었다. 

일본 최대의 서점인 키노쿠니야는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초판 10만부 중 9만부를 매절해 큰 이슈를 만든 바 있다. 그 중 5만부를 다른 서점으로 보내고 나머지 4만부를 키노쿠니야 자사 170여개 서점에서 독점적으로 소화할 예정이었으나 생각보다 판매가 저조해 결국 고스란히 재고로 남게 되었다. 아직도 키노쿠니야 본점에 가면 팔리지 않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키노쿠니야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판매부수 저조로 이미 한 차례 구설수에 오른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본의 아니게 '이제 완전히 한물 갔다'는 쐐기를 날린 꼴이 되어버렸다. 잘못된 마케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네임 벨류마저 손상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키노쿠니야의 관계자는 “팔리지 않으면 반품하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했다”며 자신들의 실책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는 시장 제도의 헛점을 이용해 대형 서점이 이슈몰이에 나선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었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 대한 존중도 전혀 내포되지 않은 실언에 가까운 말이었다.

 

사실 키노쿠니야가 하루키의 에세이를 직거래로 독식하다시피 한 이유는 바로 온라인 서점 아마존 때문이었다. 아마존이 몇몇 출판사로부터 반품이 없다는 조건하에 독점적으로 도서를 공급 받으면서 오프라인 서점들이 위기감을 느껴오다가 하루키의 신간을 계기로 그 공포감이 과도하게 표출된 것이다.

 

'아마존에게 하루키를 빼앗길지도 모르니 선수를 치자. 반품하면 되니 우리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일본출판계에 길이 남을 촌극이 되고 말았다.          

 

3. KU의 약진은 일본출판 시장의 판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아마존의 전자 책 정액제 서비스 킨들 언리미티드 (Kindle Unlimited, 이하 KU)의 상용화를 두고 일본출판 업계는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KU는 아마존 킨들을 통한 디지털 도서(ebook)의 무제한 대여 서비스를 의미한다. 이것이 실시되면 스마트폰, 테블릿, PC 등의 디지털 기기로 인터넷 환경 어디서나 손쉽게 디지털 도서를 대여 받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컨텐츠의 판매가 아닌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 형태의 월간 무제한 대여이기 때문에 도서 정가제를 우회해 얼마든지 가격 할인을 할 수 있다는 특징도 있다. 

 

물론 출간물의 디지털화는 출판사의 전적인 협조없이는 불가능하다. 칼을 쥐고 있는 출판사들의 마음 먹기에 따라 출판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출판사-대형유통사-소매점-소비자'의 구조가 '출판사-KU-소비자'로 점차 바뀌게 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출판계에서 전자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22%로 이 수치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일본 역시 이런 대세를 결코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KU가 먼저 자리 잡은 영미권에서는 2017년을 기점으로 전자책이 종이책 시장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일본 역시 KU 진출을 기점으로 빠른 속도로 개편될 것이라고 아메리카 북 엑스포는 전망했다. 오프라인 서점의 가치를 믿는 일본 출판인들이 본다면 이런 결과는 조금 충격적일 지도 모르겠다.    

 

▲ 종이책 시장과 맞먹어가는 전자책 시장에 대한 전망    © 북 엑스포

  

그 동안 일본에서 디지털로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코믹스(만화)였다. 연간 출판매출이 5 % 이상 축소되는 가운데, 디지털화 된 구간(재고)들이 독자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면서 매출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재판매가격 유지제도와 신간위탁 판매제도는 신간을 계속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어서 사실상 오래된 책들이 절판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오래된 책들은 복간, 재판, 재판매 시 수요를 짐작하기 힘들어 재고를 다시 떠안을 위험성이 큰데다 구간이라고 가격을 낮출 수도 없다.

 

하지만 디지털화는 일단 해두면 추가적인 비용이 들지 않고 출판사 입장에서 재고 부담도 없다. 재고 부담 때문에 재고 없는 매절을 강요하고 있는 일부 출판사마저 발생하고 있는 시점에서 출간물의 디지털화, ebook 컨텐츠의 증가는 이미 만화를 통해 그 효과가 어느 정도 입증된 바가 있다.    

 

일본출판계는 수십 년 넘게 서로 상부상조하며 출판사-대형 영업소-소매점의 근간을 이어왔다. 그런 가운데 일본 대형 영업소 몇 곳이 파산했으며 그나마 남아 있는 닛산과 도한은 고단샤, 문예춘추, 쇼가쿠간 등 일본의 대형 출판사들이 주주가 되어 사실상 한 몸같은 카테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순망치한의 관계인 것이다.

 

어쩌면 KU를 기점으로 일본출판계는 더 이상 물러 설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이 도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는 KU의 시스템에 순응해 전자책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던지, 아니면 일본에 맞는 제 3의 길을 선도하기 위한 스스로의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용단을 내릴 지, 그야말로 일본출판계는 말 그대로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 문헌 '일본서점유통부문 연구자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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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8/10 [00:22]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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