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10월 5일에 있었던 김정일 총서기와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의 회담에서 느낀 점을 말하고자 한다.
김정일 총서기는 이날 회담에서 원자바오 중국총리에게 "북미회담이 진전되면 다자간 회담에 참가할 의향이 있다. 다자간 회담에는 6자회담도 포함된다"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19일 김 총서기는 다이빙궈 국무위원(외교담당)과 회담했을 때에는 "양자 또는 다자간 회담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라고만 했을 뿐 '6자'라는 구체적인 단어는 일절 입에 담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중국의 체면을 세워주는 의미도 포함해 보다 구체적인 발언을 했다.
하지만 "6자회담도 포함된다"라는 것은 6자회담도 북한이 검토하고 있는 다자간 회담의 일부라는 뜻으로 읽힌다. 즉 '다자간=6자 회담'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를테면 북한은 북미간 양자회담이후 중국을 포함한 3개국 협의나, 한국 또는 러시아를 추가한 4자회담을 진행한 후 마지막 단계로서 6자회담을 상정한다는 의도로 보인다. 야구로 예를 든다면 마무리 투수에게 연결시키기 위한 원포인트 릴리프인 셈이다.
하지만 '선발투수'인 북미교섭이 잘 진행되면 원포인트를 넣을 필요가 전혀 없다. 요컨대, 6자회담을 열망하는 다른 5개국에 대하여 "6자회담을 열고 싶다면, 북미교섭을 잘 뒷바라지해야 한다"라는 조건을 붙인 것도 같은 의미다.
동시에 북한은 6자회담의 성립유무는 미국의 대응에 관련되어 있다고, 미국에도 견제구를 던지고 있다. 정말 북한의 외교는 여간내기가 아니다.
복수의 언론보도에 의하면, 원자바오 총리는 김 총서기의 발언을 지지했다고 한다. 6자회담에 바로 복귀시킬 수 없었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중국 영향력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6자회담에는 두번 다시 나가지 않겠다", " 6자회담은 끝났다"라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북한의 생각을 바꾼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중국 입장에서도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의 체면을 일단 유지할 수 있었던 셈이다.
양국의 관계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그 끈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구나라는 인상을 받았다. 일본, 한국도 지금 중국과는 긴밀한 관계에 있지만, 북한처럼 '동지'라고 부르는 관계까지는 아니다. 지금처럼 글로벌한 세계에 있어 서로간을 '동지'라고 스스럼없이 부르는 사이는 중국과 북한의 지도자 정도가 아닐까?
▲ 90년 10월 뉴욕에서 열린 남북영화제에서 촬영된 한 컷의 사진. 왼쪽부터 홍영희, 이미숙, 오미란이다. ©변진일 / jpnews | |
한편 이번 회담에서 필자의 시선을 끈 장면은 평양순안공항에서 원자바오 총리에게 꽃다발을 건네던 여성이었다. 이 여성은 피(血)와 피로 맺어진 항일 빨치산 투쟁을 모티프로 한 영화 "꽃파는 처녀"의 히로인을 맡았던 홍영희(洪英姫) 씨다. 대단한 연출력이다. 홍씨의 모습을, 필자는 19년만에 보았다.
19년전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한국인들이 주도해 뉴욕에서 개최한 남북영화제에 그녀는 북한을 대표하는 배우로서 당시 no1 여배우였던 오미란 씨와 함께 참가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당시의 그녀가 찍힌 사진을 보관하고 있다.
이번 글에 실린 사진이 그것으로 한국의 여배우를 대표해서 출석했었던, "뽕", "스캔들"로 유명한 한국의 톱배우 이미숙 씨에게서 받았다. 가운데 이미숙 씨를 중심으로 왼쪽이 홍영희, 오른쪽이 오미란 씨다.
■ 변진일(辺真一) 프로필
1947년 도쿄에서 태어남. 메이지가쿠인대학 영문과 졸업후 신문기자(10년)를 거쳐 이후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1980년 북한 취재 방문.
1982년 한반도 문제 전문지 '코리아 리포트' 창간. 현재 편집장.
1985년 '고베 유니버시아드'에서 남북공동응원단 결성, 통일응원기 제작.
1992년 한국 취재 개시 (이후 20회에 걸쳐 한국방문).
1998년 단파 라디오 "아시아 뉴스" 퍼스낼리티.
1999년 참의원 조선문제 조사회 참고인.
2003년 해상보안청 정책 어드바이서.
2003년 오키나와 대학 객원교수.
현재 "코리아 리포트" 편집장, 일본 펜클럽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