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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인생은 잔인했지만 그 예술은..."
[르뽀] 서울시인협회와 함께한 '윤동주의 혼을 찾아서'⓵
 
조은주 기자

"그의 인생은 잔인했지만 그 예술은 찬란했다".

 

서울시인협회(이하 시인협회) 초대 회장인 유자효 씨의 말이 가슴 한켠을 먹먹하게 만든다. 28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한국과 그리고 타국인 일본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는 윤동주 시인의 얘기다.

 

올해는 윤동주가 탄생한 지 딱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16일은 바로 윤동주가 사망한 날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 이날 시인협회 회원들이 윤동주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일본을 직접 방문했다.

 

'시'라고 하면 국어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함축된 언어로 표현하는 장르. 단순히 글을 쓸 줄 안다고 해서 감히 끄적댈 수 있는 그런 분야가 아니다. 진정한 글쟁이가 되어야 하는 분야다.

 

내로라하는 글쟁이들이 과연 윤동주의 무엇을 찾으러 이 곳, 일본 땅에 왔을까. 또 이들에게 윤동주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JP뉴스가 이들의 ‘윤동주 찾기’에 동행해봤다.   

 

▲ 서울시인협회 유지우 회원의 자작시. / 일러스트 = 이승민    © JPNews

 

# 첫째 날

16일 오전 11시 도쿄 하네다 공항. 속속 입국장을 빠져나오는 시인협회 회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른 아침 서울에서 출발한 비행기라 피곤할 법도 한데, 좀처럼 피곤한 기색이 없다. 공항에서 만난 협회 회원들은 소풍 나온 어린애만양 들뜬 표정이었다.

 

이날 일본을 찾은 시인협회 회원은 민윤기 회장, 유 전 회장 등을 비롯해 총 32명. 신속한 이동을 위해 버스를 대절하고 끼니도 거른 채 곧바로 윤동주의 모교인 이케부쿠로 소재 릿쿄 대학으로 향했다.

 

윤동주는 이곳 릿쿄대 영문과에 1942년 4월 입학해 한 학기를 다녔다. 그런 만큼 윤동주의 발자취를 기억하려는 모임이 릿쿄대에 존재했다.

 

▲  16일 도쿄 이케부쿠로 소재 릿쿄대(윤동주의 모교)를 방문한 서울시인협회 회원들.   © JPNews

 

릿쿄대 정문 앞에는 올해로 10년째 ‘시인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의 모임’을 이끌고 있는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가 시인협회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릿쿄대 출신인 그는 20년 넘게 윤동주만 연구해온 그야말로 윤동주 전문가다.   

 

그는 윤동주가 머물던 식당이나 교정, 동양철학사 수업을 들었던 교실 터, 윤동주의 서적을 전시했던 공간 등을 한국에서 온 손님들에게 하나하나 정성껏 설명했다.

 

시인들은 야나기하라 씨 곁으로 모여 풋풋했던 시절 윤동주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의 흔적이나 에피소드를 하나라도 더 듣기 위해 애썼다.

 

이것저것 질문 공세를 하는 시인들, 자신이 찾아내고 연구한 정보를 아낌없이 공유하고 나눠주려는 야나기하라, 이 둘 사이에 '언어의 장벽'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릿쿄대 정문과 성당, 식당, 그리고 정문을 끼고 양 옆으로 놓여진 나무는 윤동주가 입학할 당시의 모습과 전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  서울시인협회 회원들이 16일 일본 도쿄에 있는 윤동주의 모교 릿쿄대를 방문, 윤동주 연구가인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맨 오른쪽 여성)의 설명을 듣고 있다.   © JPNews

 

시인 일행을 태운 버스는 릿쿄대와 야나기하라 씨를 뒤로한 채 다카다노바바의 하숙집 터로 향했다. 이케부쿠로에서 다카다노바바까지의 거리는 자동차로 약 15분. 윤동주는 아마도 이 길을 걸으며 하늘과 바람과 별을 느끼며 시를 써내려 갔으리라.

 

윤동주가 하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총 두 곳이었다. 역 바로 부근이 도츠카 제2소학교 옆 골목과 그 옆 오르막길이다. 그는 이 근처에서 1942년 4월부터 약 4개월간 머물렀다.


지금은 각각 일본 플라워디자인학원과 일본 점자도서관으로 모두 바뀌어 있었다. 하숙집 어느 한켠, 육첩방에서 기차소리를 들으며 시를 써내려갔던 그의 모습만 상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서울시인협회 회원들이 16일 일본 도쿄 다카다노바바 소재 윤동주의 하숙집 추정 장소(일본 플라워디자인학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 사진 제공 = 서울시인협회 이춘만 회원   © JPNews

 

아쉬움을 남긴 채 세번째 행선지인 치요다구 스이도바시 소재 재일본 한국 YMCA 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일본의 첫 숙박장소다.


시인협회가 이 YMCA 호텔로 숙소를 잡은 이유는 윤동주가 이 곳에 약 2주간 머물렀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1942년 3월 중순 경 YMCA 호텔에 머물렀다. 당시 윤동주보다 먼저 유학하던 당숙 윤영춘은 이 곳에 장기투숙 중이었다. YMCA 호텔은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도쿄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서가 울려퍼진 뜻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이윽고 첫날 기념행사인 ‘윤동주 시인이 그리운 밤’ 행사가 개최됐다. 한국에서 온 시인뿐 아니라 재일교포, 윤동주를 아는 일본인들의 방문도 줄을 이었다.

 

▲ 서울시인협회 회원들과 재일교포, 일본인 등이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윤동주 시인이 그리운 밤’ 행사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 제공 = 서울시인협회 이춘만 회원 © JPNews

 

유 전 회장은 이 자리에서 28세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윤동주의 일대기를 발표했다. 그는 "그의 인생은 잔인했지만 그 예술은 찬란했다"는 말과 함께 윤동주가 말하는 ‘부끄러움’에 대해 설명했다.

 

윤동주의 시에서 많이 등장하는 게 이 ‘부끄러움’이란 단어인데 실제 서시, 별헤는 밤, 참회록, 쉽게 쓰여진 시 등 그의 시 7편에 부끄러움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그는 윤동주 문학의 출발은 이 부끄러움이며, 20대 초에는 이성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시작해 24세 이후부터는 자의식을 의미하게 된다고 해석했다.

 

또 윤동주의 슬픈 가족사, 특히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운명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윤동주가 의사가 되길 원했던 아버지, 윤동주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천천히 그려냈다.
 
아들이 방학 때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윤동주의 아버지는 열흘 동안 매일 기차역에 나가 아들을 기다렸다고 한다. 이윽고 열흘이 지난 뒤 도착한 건 윤동주의 차표와 수하물. 차표를 들고 고향에 가기 위해 짐까지 부쳐놓고 체포된 28세 청년의 안타까운 삶이 그려졌다.

 

한줌 재가 된 아들을 품에 안은 아버지의 심경을 말하는 순간, 장내는 이내 숙연해졌다. 

 

이어진 2부. 시인들의 모임이자 윤동주를 기리는 행사 답게 윤동주의 명시를 낭독하는 시간이 펼쳐졌다. 스마트폰으로 배경음악을 깔고 낭독하거나 직접 자작시를 지어 선보이는 등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윤동주를 회고했다.

 

시인들과의 하루는 그야말로 윤동주에 '흠뻑' 빠진 시간이었다. <계속>

 

▲ 서울시인협회 민문자 회원의 자작시. / 일러스트 = 이승민     © J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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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2/24 [03:05]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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