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국의 이명박대통령과 하토야마 유키오 수상이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이 회담에서 서로간의 문화교류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함과 동시에 이 대통령으로부터 보다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고, 하토야마 총리로부터는 '무라야마 담화'를 재확인한다는 발언이 있었습니다.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면서 저도 연로하신 엄마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엄마 1931년생, 78세입니다)
태평양전쟁 시절, 엄마는 아직 어린 아이였고, 할아버지는 군인이 아니었습니다만 아버지가 군속(軍属)으로서 소집되었기 때문에, 할머니와 어린 형제자매는 식량난 속에서 목숨을 연명하기도 벅찬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엄마도 수업이라고 해봤자 말 뿐이었고, 학교에 가면 '근로봉사'라는 이름으로, 남자들이 전쟁터에 불려가 일손이 부족한 가정의 농사일을 돕거나 논의 풀뽑기, 숯섬을 짜는 등 노동하는 나날을 보냈다고 합니다. 물론 '공부' 를 할 수 있는 틈은 눈꼽만치도 없었습니다.
어린 엄마에게는 일본를 지키겠다는 의식보다 가족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정신 없는 매일이었습니다.
한일 양국 정상의 밝은 미래가 그려질 것 같은 발언을 들으면서 나는 말했습니다.
"이걸로 한국과 일본은 지금까지 없었던 보다 좋은 관계가 될 지도 몰라"
라고 내가 말하자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 기대를 가지면 안돼"
나는 '왜?'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나라의 정상이 아무리 이상적인 이야기 한다 해도, 희생이 된 일반서민은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지. 높은 위치의 사람들이 화해를 이야기 한들, 불합리한 일을 강요당해 가족을 잃어버리고, 희생당한 한국사람들이 과연 그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우리들 일본인은 그런 상처를 가지고 있는 한국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마음으로부터 용서받는 일이란 없어. 그런 것을 마음에 단단히 붙들어 매두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야기야"
생각해보니 당시 10살 정도에 일본이라는 나라를 위해 노동을 강요당했던 어린 엄마가 애처롭기도 했습니다. 전쟁은 피해자측은 물론이고 가해자측인 많은 일본인의 생활도 산산조각을 냈습니다.
"그러니까 전쟁은 해서는 안된다고. 고통받는 것은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이니까"
"전쟁의 하루하루를 기억하는 것도 이야기하는 것도 싫어"라고 말하는 엄마.
그런 엄마의 눈에는 한일간의 수복의 길을 찾으려고 하는 자기딸의 모습이 어떻게 비쳐졌을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더 이상 조선에 관한 일은 그만두라고 속내를 비친 적 조차 있습니다.아무리 열심히 한다 한들 내가 바라는 화해는 불가능하다고 엄마는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보답받을 일이 없는 일에 갖은 힘을 쓰는 내 모습도 또한 엄마가 보자면 애처러웠던 것이죠. 그리고 자기 주변 일부터 챙기면서 생활했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도 엄마로서 부모 마음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25년전 한국에 대한 보도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오늘날은 우호적인 한일 관계를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당시 저는 우리 세대에서 한일 우호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할지라도, 적어도 다음 세대를 위해, 오늘을 쌓아나가자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이렇게 한국과 일본이 활발하게 교류하고 일본에서는 한류로 들끓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살짝 말했습니다.
일본에도 평범한 사람이면서도, 내 엄마 같이 한국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는 많은 민간인들의 마음도 있다고 하는 것을. 그리고 그 마음 위에 자라나는 다음 세대가 있다는 것을.
나는 엄마의 말의 깊이를 이해합니다.
전쟁의 괴로운 기억은 봉인을 하고, 입을 닫고자 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침묵한 채 세상을 떠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 걸까요...
그러니까 더욱 우리들은 전쟁의 안좋은 점을 필사적으로 다음 세대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감을 갖게 됩니다.
엄마 세대의 생각을 얼마만큼 전할 것인가, 그것이야말로 우리들 '낀 세대'의 사명일지도 모릅니다.
한일 정상 회담에서 이야기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에 대한 기대는 엄마의 걱정을 저버리고, 대화합의 꽃을 피워줄 것이라고 저는 절실하게 기원하고 있습니다. (번역 김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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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韓新時代に向けて
先日、韓国の李明博大統領と鳩山由起夫首相との日韓首脳会談が行われました。
この会談では互いに文化交流の重要性に触れられるとともに、李大統領からは更なる未来指向の日韓関係についてのお話があり、また鳩山総理からは「村山談話」を再確認する発言がありました、
テレビから流れるニュースを見ながら私と年老いた母とで語り合いました。
(母は1931年、昭和6年生、78才です)
太平洋戦争時下、母はまだ幼い子供であり、祖父は兵士でこそありませんでしたが父を軍属として招集されたため、祖母と幼い兄弟姉妹は食糧難のなか、命を繋ぐだけの苦しい生活を余儀なくされていました。
小学生だった母も授業とは名ばかり、学校に行けば「勤労奉仕」と称して、戦争に駆り出されたことで男手のなくなった家庭の農作業の手伝いや田圃の草取り、炭俵を編むなどの労働をする毎日を送っていたそうです。もちろん「勉強」などするいとまなどこれっぽっちもありませんでした。
幼い母には日本を守るという意識より、家族とともに日々を生きぬくことだけで精一杯の毎日でした。
日韓両首脳の明るい未来が描かれるような発言を聞きながら、私が言いました。
「これで日韓はこれまでにない、より良い関係になっていけるかもしれないね」と。すると母が言いました。
「大きな期待を持ってはいけない」
私は「何故!?」と思いました。
「トップの方がどれだけ理想を言ったところで、犠牲になった一般庶民はその思いを忘れることなどできっこない。お国の偉い人達が和解を語ったところで、理不尽な思いを強いられて、家族を亡くし、犠牲になった韓国の人達がどうしてその苦しみを忘れ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
私達日本人は、そんな思いでいる韓国の人達の心情を理解しないといけない。心から許されることなんてない、そのことを肝に銘じなければならないの」
考えてみれば当時10才ほどで日本国家のために労働を強いられていた幼い母もまた不憫というよりほかありませんでした。
戦争は被害側はもちろんのこと、加害側でもある多くの日本人の生活もこなごなにしたのです。
「だから戦争はしてはならないの。苦しむのはいつも何の罪もない人々なんだから」
「戦争の日々のことは思い出すのも、話すのも嫌だ」という母。
その母の目には日韓の修復の道を探ろうとする我が娘の姿がどう映っているのだろうと思うときがあります。
ある時は「もう朝鮮のことは止めて」と漏らすことさえあります。
どんなに頑張ってみたところで、私が望むような和解などあり得ないと母は思っているのかもしれません。
報われようのないことに力を尽くす私の姿もまた母から見れば不憫なのでしょう。そして自分の足許を見て生活をして欲しいと思うのも母としての親心でありましょう。
私は25年頑張ってきました。大したことは何も出来なかったようにも思います。
とはいえ、25年前韓国報道に手を染め始めた頃には想像もできなかった、今日の友好的な日韓の有様を目の当たりにする日が来たのです。
当時の私は、自分たちの世代で日韓友好を叶えることができなくとも、せめて次世代の為に、今を築いてゆこうという気持ちでした。
それが今、日韓は活発に交流し、日本は韓流にわいているのです。
そして私は誰かにそっと伝えたいのです。
日本にも市井の人でありながら、私の母のように、韓国の人達の痛みに寄り添う多くの民間の人の心があるということを。
そして、その心に育まれる次世代があるということを。
私は母の言葉の重みを噛みしめます。
戦争の苦しい思い出には封印をし、口を閉ざそうとする人は多いことでしょう。
黙ったまま亡くなっていく人のいかに多いことか・・。
だからこそ、私達は戦争のまがまがしさを必死で次世代に伝え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危機感を持つのです。
母の世代の思いをどれだけ伝えてゆけるか、それこそが私達「ジョイントになる世代」の使命なのかもしれません。
日韓首脳会談で語られた「未来指向的な日韓関係」への期待は、母の心配を裏切って、大輪の花を咲かせてくれることを私は切に願う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