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아동납치국의 오명을 뒤집어 쓰게 생겼다.
지난 16일 미국을 비롯해 8개 선진국의 주일대사들이 합동으로 지바 게이코 법무성 장관을 찾았다. 일본의 '헤이그 조약' 가맹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이들이 요구한 '헤이그 조약'의 정식명칭은 '국제적인 어린이의 탈취의 민사면에 관한 헤이그 조약(hague convention on the civil aspects of international child abduction)'으로 지난 1983년에 발효된 국제조약이다.
이 조약은 국제결혼을 통해 아이를 둔 부부가 이혼했을 경우 아이가 거주국의 국경을 넘는 행위자체가 아이의 이익에 반(反)하는 것으로 보고 아이를 양육하는 '감호권'(監護権)의 수속은 해당거주국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기본이념에서 정해진 국제협력의 룰을 의미한다.
이 조약에 가입돼 있다면 가령 한국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이 결혼해 한국에서 가족들이 생활하던 중 이혼을 했다면 그 아이의 양육권등에 관한 소속은 기본적으로 한국에 있다는 말이 된다. 만약 일본인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일본으로 갔을 경우 아이를 '탈취'당한 한국인 아빠가 반환해달라고 요구했을 때 일본정부는 신속하게 아이의 거주지를 파악한 후 한국으로 반환하기 위한 협력의무를 지게 된다.
헤이그 조약은 09년 5월 현재 전세계적으로 81개국이 가입해 있지만 일본은 g8 중에서 러시아와 더불어 미가입 상태이다(09년 5월 현재 한국도 미가입 상태).
그러다 보니 갖가지 트러블이 속출해 "일본 정부가 조직적으로 아이 납치를 조장하고 있다"(아사히 신문, 10월 20일자 사설)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afp통신은 지난 9월 미국 테네시주에 거주하는 크리스토퍼 사보이(38) 씨의 에피소드를 실었다. 이에 따르면 사보이 씨는 이혼한 일본인 전처가 아이를 데리고 일본으로 귀국했다고 한다. 사보이 씨는 이 아이를 다시 미국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 일본을 찾아 등교중인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가려 하다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사보이 씨는 석방직후 "미국에서 아이를 도둑맞았다. 전처에게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고 해도 전처가 거부했다. 어쩔 수 없이 필사적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16일 지바 법무상을 만난 자리에서 존 로스 주일미국대사는 "우리(미국정부)는 현재 이런 어린이 도둑 사건을 82건 확인한 상태"라고 말하면서 확실한 대책을 요구했다. 미국대사와 함께 동석한 이들은 호주, 영국, 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 뉴질랜드, 스페인 대사들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일본의 법적 제도 편향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일본은 아이가 있는 부부가 헤어질 경우 공동양육권 보다 부모 중 하나가 양육권(감호권)을 가지기 쉽다. 국제이혼의 경우 압도적으로 일본인에게 친권이 부여된다. 만약 일본인 부모가 양육이 힘들다 하더라도 외국 국적의 부모가 아닌 일본인 쪽의 조부모에 친권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국제사회의 상식에 반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었다.
<마이니치 신문>은 지난 5월 31일 이러한 경직된 관습으로 인해 문제이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4개국에서만 168건 214명의 어린이들이 분쟁에 말려들고 있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혼한 일본인 부모에 의한 아이동반귀국 문제가 빈번해지자 아예 미연방수사국(fbi)은 "이런 사태는 어린이를 납치하는 범죄행위이며 유아 유괴의 측면에서 국제지명수배를 할 수도 있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일본의 헤이그 조약 가입'이다.
하지만 지난 5월만 하더라도 외무성 국제법과는 "이러한 문제는 민사에 관련된 것으로 우리 일본정부는 민사불개입의 원칙에 따라 지금은 관여할 수 없다. 하지만 국제결혼과 이혼이 증가하고 있으니 (헤이그 조약 가맹 및 체결에 관해)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고만 밝혔었다.
그랬던 것이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지바 법무상, 그리고 오카다 가쓰야 외무성 장관의 적극적인 검토발언등을 통해 '헤이그 조약' 가맹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헤이그 조약'에 관해서는 <아사히 신문> 등 진보계열의 언론들도 친권, 면접권의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조심스러운 지지입장을 폈다.
<아사히 신문>은 10월 20일 사설을 통해 "국제결혼후 외국에 살고 있던 일본인들이 이혼한 후 아이를 일본에 데리고 오는 바람에 영국, 미국등지에서 '일본은 납치를 조장하는 나라다!'라는 과격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면서 "헤이그 조약이라는 공통의 룰을 따르자는 의견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언급했다.
<아사히 신문>은 일본의 '헤이그 조약' 가입이 반대의 상황에 봉착했을 때 문제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국제결혼 커플이 일본 거주중에 이혼해, 외국인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자기네 나라로 떠나버렸을 경우 '헤이그 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는 아이를 일본으로 데려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헤이그 조약'에 가입하면 자동적으로 그 나라 정부가 '신속하게 아이가 거주하는 장소를 확보해 되돌릴 수 있도록 협력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또 국제결혼이 연간 4만건을 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헤이그 조약'를 외면한다는 것도 현실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아동납치국'의 오명을 뒤집어 쓰지 않기 위해 일본정부가 앞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