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 등 전범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배상요구 재판에서 대법원이 잇따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모두 해결된 사안이라면서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재판에 관여한 변호사들은 성명을 내고, 강제징용자들의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성명을 낸 변호사 중 한 명인 야마모토 세이타(山本晴太) 변호사는 아사히 신문 4일자 기사를 통해, 한일협정과 개인청구권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설명했다.
"(한일 협정과 같이) 청구권을 서로 포기하는 조항은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조약에도 있다"
"이후 원폭 피해자가 '조약 때문에 미국에 배상 청구를 할 수 없게 됐다'며 일본 정부에 보상을 촉구하며 제소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자국민의 피해에 대해 상대국의 책임을 추궁하는 '외교보호권'을 포기한 것이다. 개인이 직접 배상을 요구할 권리에 영향은 없고, 따라서 국가에 보상의 의무는 없다'고 주장했다"
외교적으로 자국민을 보호할 권리를 포기한 것일뿐 개인의 권리 자체, 즉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이 본래 일본 정부의 견해였다는 것이다.
90년대 들어 한국인 전쟁 피해자가 일본에서 제소하기 시작했으나 일본 정부는 종래와 모순되는 해석을 취하지 못했고, "개인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는 국회답변을 지속했다. 소송에서도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되었다"고 항변하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중요한 쟁점에서 나라와 기업에 불리한 판결이 나오자 국가는 '조약으로 재판에서의 청구는 할 수 없게 됐다'는 주장으로 전환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2007년 4월, 중국인 강제연행 소송의 판결에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대해 '사후적인 민사재판에 맡기면 혼란이 생긴다. 재판상으로는 개인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조약의 구조'라고 판단했다. 이 판례가 중일공동선언이나 한일청구권 협정에도 적용돼 이후 일본 법정에서 외국인 전쟁 피해자의 권리 회복은 불가능해졌다."
즉 2000년대 들어 한국인들의 보상 요구 목소리가 커지자 이에 맞춰 "청구권 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로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다.
지난달 고노 다로 외상은 국회에서 개인청구권에 대해 "소멸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한일청구권 협정을 통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입장 또한 견지했다. 청구할 수 있는 권리는 있으나, 재판을 통해 청구가 불가능하다는 것. 그것을 과연 권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성명을 낸 변호사들도 이 부분에 대해 "지극히 모순", "말장난 수준"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다만 야마모토 변호사는, 중국인 강제연행 판결에서 "(조약은) 개인의 실체적 권리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며, 개별구체적인 청구권에 대해 채무자 측의 자발적인 대응을 방해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면서, 관계자가 소송 이외의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길을 남겨놓았다고 지적했다.
피고 측 기업들은 피해자 측과의 합의나 배상에 대한 의지가 있는 듯 보이지만, 일본 정부는 배상의무가 있는 피고 측 기업들로 하여금 합의 등 개별적인 대처를 하지 못하게 막고 공동대응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면서 판결이 부당하는 주장만 되풀이하며 과격한 언사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이에 일본 언론이 동조하면서, 한국에 대한 비판적이고도 부정적인 여론이 일본 사회 전체를 휘감싸고 있다.
일본 정부가 말하는 국제적 상식과 경우에 어긋나는 건 과연 한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