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각 주요 일간지가 16, 17일 이틀간 문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에 대한 반응을 사설로 내놓았다. 요미우리 신문을 제외한 진보중도성향 일간지인 아사히, 마이니치, 도쿄, 일본경제 신문은 문 대통령의 연설을 계기로 한일관계가 개선되길 바란다는 취지의 사설을 게재했다.
한편으로는 이들의 사설을 통해 한일관계 개선의 어려움이 재차 확인됐다. 모든 신문이 대법원의 강제징용자 판결에 대해 한국 정부가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일관계가 개선된다는 진단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기념행사 연설에서 일본이 식민지 지배에 의한 피해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인정하면서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협력의 길로 나오면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최악의 한일관계를 의식한 듯, 광복절 행사였음에도 일본에 대한 비판은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도쿄신문
도쿄 신문은 17일자 사설에서 문 대통령이 대일비판을 자제하며 대화를 촉구했다면서 한일관계 악화를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한국이 대법원의 강제징용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길 바란다"며 한일관계 개선에 한국의 대응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더불어 "한일관계 악화는 일본에게도 마이너스다. 아베 정권은 한국 측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길 바란다"며 아베 정권도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하라는 양비론을 펼쳤다.
아사히 신문
아사히 신문은 17일자 사설에서, 문재인 정권이 먼저 위안부 합의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펼쳤다. 일단 국가간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신뢰가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전 보수정권의 실적을 부인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한일관계도 악화시킨다고 주장했다.
또한 아베 정권에 대해서는 "(아베 정권이) 사태를 복잡하게 한 점은 분명하다. 문재인 정권에 문제가 있었다고는 해도 정치역사문제로부터 떨어뜨려놓아야할 경제 분야로까지 대립을 확산시킨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평했다.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이 신문은 "일본 아베 정권이 고노 담화 등 일본 정부의 그간 견해를 주체적으로 존중하는 자세를 보이면 한국에 대한 약속 준수 요구도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신문은 "국교수립 당시 일본이 제공한 경제협력금은 현대 한국의 토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경제의 성장에도 기여했다. 이처럼 양국은 항상 호혜관계로 발전해왔다"면서 "부의 기억이 뿌리깊게 남아있던 시대의 벽을 넘어 선대가 쌓아온 양국간 연결고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평화의 재산이다. 향후 한일은 어떤 관계를 차세대에 이어나갈 것인가. 양측 정부와 시민이 냉정히 숙고해야 할 것"이라며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일본경제신문(이하 닛케이)
닛케이는 16일자 사설을 통해 "한일관계가 기로에 섰다. 대립을 시민 레벨로 넓히지 않기 위한 냉정한 대응이 한일 양측에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문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한계점을 언급했다.
"일본을 도발하는 듯한 종래의 발언과 비교해 대일 비판을 억제한 것은 평가할 수 있으나, 사태 타개를 위한 해결책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 매체는 "강제징용판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한일관계 수복의 출발점"이라며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한일 양국은 과거에 역사문제로 충돌해도 경제분야의 교류를 이어왔고 마찰이 실질적인 손해로 연결되는 일을 막아왔다. 한일 대립이 이 이상 커지는 것을 막는 것이 양국의 리더의 책무"라고 지적했다.
마이니치
마이니치 신문은 16일자 사설에서, 문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에 대해 "이런 자제된 모습을 유지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강하게 비난하고 반일감정자극하던 이전의 발언과 대조적이다"라고 평했다. 광복절이라 더 자극적인 발언 나올 거라는 우려가 있었던 만큼 예상외라는 반응이다.
이 매체는 "쌍방이 서로에게 불가결한 파트너라는 인식을 가지고 정부간에 여러 협의를 활발화하길 바란다"며 한일관계 개선을 촉구했다.
요미우리
한편, 보수지인 요미우리 신문은 16일자 사설에서, 한국이 진실로 한일관계 개선을 원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문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에서 강제징용자 판결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책이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이 매체는 "문 대통령은 정말 한일관계 개선에 나서려하는가.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일본측의 불신은 가시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매체는 "한국 정부가 먼저 무역관리 체제를 개선해 일본과의 신뢰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며 사태의 원인을 한국 정부에게 돌렸다.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한일 의견 대립 첨예, 관계 개선 '험난한 길'
일본 신문의 사설을 보면, 아베 정권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진보, 중도 매체와 보수 매체의 견해가 다소 엇갈린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일본 언론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한국이 대법원의 강제징용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해 대응책을 내놓을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한 것도 한국에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일본 정부는 현재 강제징용피해자 판결과 관련해 일본기업에 실질적 피해가 없도록 한국 정부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고는 한일관계 개선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한국 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고 공감한다는 점에서 무대응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사법부의 판단에 대한 행정부 개입은 삼권분립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정부 또한 사법부와 마찬가지로 개인청구권은 한일청구권 협정을 통해 해결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피해자 배상 판결은 현재 한일관계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다. 그러나 양측간 의견이 너무도 명확히 갈리고 있고 타협의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일본 언론도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서만큼은 일본 정부와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즉, 도저히 한일관계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과연 한일 양국 정부는 어떻게 이 난국을 해쳐나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