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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부산, 후쿠오카 공동올림픽 개최하자"
[현장] 김영삼 전 대통령 와세다 특강 '54년만의 정권교체에 대해'
 
박철현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이 특별강연회를 위해 일본을 찾았다. 
 
27일 도쿄 와세다 대학 오노기념관에서 열린 강연회 '54년만의 일본의 정권교체에 대해'에 참석한 ys는 약 1시간에 걸친 특강 및 질의응답을 거침없이 진행시켜 나갔다.
 
강연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ys식'으로 진행됐다. 
 
입장부터가 그랬다. 사회자가 강연회의 시작을 알리면 그제서야 특강자가 입장하는 게 보통 관례다. 하지만 ys는 사람들이 입장하고 있는 도중임에도 불구하고, 강연예정시간보다 5분 먼저 무대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ys는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않은 채 무대 한가운데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이후에 입장한 학생들은 웃으면서 들어오다가 단상위의 ys를 발견하고선 황급히 예를 취했다. 그런 학생들을 흐뭇한 미소로 맞이하는 ys.
 
그는 질의응답 시간에도 자신이 스스로 "그 앞쪽 여자분 질문하세요", "마지막으로 한사람만 더 받도록 하지", "여기까지 일단 통역하지 그래"라고 말하는 등 보통 사회자가 해야 할 역할까지 도맡아서 하기도 했다.
 
강연 도중에도 ys의 컬러는 군데군데서 나타났다. 
 
▲ 27일 와세다 대학에서 열린 특강에 모습을 드러낸 김영삼 전 대통령  © 박철현 / jpnews
사회를 맡은 와세다 대학 부총장이 강연시작 전에 ys의 이력에 대해 "26세의 최연소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 ys는 "아까 26세 당선이라고 했는데, 26세가 아니고 25세에 당선된 것"이라 정정했다.
 
ys는 또한 와세다 대학과의 인연을 말하는 부분에서는 전세계의 다른 유명한 대학에서 연설을 했다고 '강조'하는가 하면, 질의응답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은 92년에 내가 전국구 공천한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을 자신이 정계로 끌어들였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ys는 북한의 고 김일성 주석과 정상회담 직전까지 갔었던 막후비사도 털어 놓으면서 남북정삼회담 제의는 북측에서 먼저 왔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사실 제가 대통령 시절에... 제가 만나자고 안했는데요. 김일성으로부터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저에게 연락을 해 주었습니다. 급속도로  정상회담으로 가기로 됐습니다. 그래서 사무적으로는 전부 합의를 봤는데요. 2주일 뒤에 만나기로 했었는데... 이사람이 급히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이것은 지금도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여태까지 김대중이나 노무현이는 한번 만나자고 5억불이니 6억불이니 갖다주고 그랬는데, 그때 (김일성 주석이) 나를 만나자고 했을 때는... 김일성은 50년간 북한을 지배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상당히 노련합니다. 돈을 달라던가 이런말도 없었고. 그 때 만났으면 우리 한국의 역사는 바뀌었을 겁니다. 지금도 참 아쉽게 생각합니다."
 
ys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임종직전에) 병실을 찾아간 것은 그와 화해하기 위해서" 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로 나뉘어진 민주화 세력도 화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나는 40년을 둘이 같이 한국 민주화를 위해 공동으로 싸웠습니다. 결국 하나가 되지 못했는데요. 김대중씨가 돌아가신 다음에 제가 동교동 쪽 사람들을 초대하려고 했습니다. 동교동계 사람들 한 40명하고 우리쪽 사람들 40명. 이렇게 80명이서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는데, 동교동 대표들이 와서 아직 49재가 남았으니까 이것이 지난 다음에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연기를 한거지요. 그래서 일단 연기를 한 건데 제가 이번에 돌아가면 다시 그 모임을 하려고 합니다"

▲ 강연회의 진행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국어로 한단락을 먼저 말하면, 통역자가 통역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김 전 대통령은 하토야마 내각에 대해 상당한 기대를 한다며 건투를 빌었다.   © 박철현/jpnews
 
또 ys는 하토야마 민주당 정권이 가깝고도 가까운 한일관계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한일간의 좋은 관계를 위해 부산과 후쿠오카가 동시개최하는 동북아 올림픽을 한번 추진해 보면 어떻겠냐"는 이색제안을 하기도 했다.
 
ys는 마지막까지 'ys'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강연이 끝나자 ys는 스스럼없이 단상아래로 내려와 청중들과 악수를 나누면서 사진을 찍었다. 사인을 요구하는 학생들에게는 그의 좌우명인 '대도무문'과 자신의 이름을 써내려 갔다. 일생동안 대중정치인으로 살아온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었던 셈이다.
 
정경학부에 다닌다는 한국인 유학생(21,여)은 강연의 감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ys가 평이 안좋길래 실제로는 어떨까 해서 와 봤는데, 의외로 괜찮고 다정한 분이신 것 같았다. 특유의 과장이랄까 허풍도 물론 있지만(웃음), 그래도 민주화를 위해 애쓰신 건 사실이니까 그 정도 과장은 애교로 봐 줘야 하지 않을까 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국제정치를 전공한다는 박사과정의 한국인 유학생(32, 남)은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내용이 정말 빈약하다. 김일성 주석이 회담직전에 급사하는 바람에 못만났지만 그때 만났으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말을 매번 듣는데, 이제 그 말 좀 안했으면 좋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본인 청중들도 마찬가지였다. "소탈하고 배짱있는 분 같다", "단호한 의지와 뚝심이 느껴졌다"는 의견도 있는 한편 "공적(功績)도 있겠지만, 자기를 내세우는 부분이 많아서 웃음이 나왔다"는 말도 나왔다.
 
이들의 반응에서 보듯이 ys만큼 극단적인 평가를 듣는 정치인도 드물다. '민주화 투사'나 '3당합당의 원흉'으로 불리는 것도 있지만, 그는 정말 다른 스타일의 이명박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계에 입문시킨 동물적 감각의 '킹 메이커'이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ys의 뚝심이 아니었다면 군내 사조직 '하나회'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금융실명제'도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ys는 대한민국 경제를 수렁에 빠지게 했던 imf 경제환란을 초래한 장본인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극단적 평가가 오고가는 그의 단면을 독자 여러분들이 스스로 판단해 보시라는 의미에서 이번 강연회와 질의응답의 전문(全文)을 소개하고자 한다. 
 
▲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강연이 끝난 후 단상에서 내려와 청중들과 악수를 교환하고 사인을 해주는 등 대중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 박철현 / jpnews

54년만의 일본의 정권교체에 대해 - 김영삼
 
54년만의 정권교체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존경하는 오쿠시마 전총장님과 교수여러분. 사랑하는 와세다 대학교의 청년학생 여러분, 또한 이 자리에 참석하신 내외귀빈 여러분. 저는 오늘 유서깊은 명문 대학 와세다 대학교에 와서 여러분과 더불어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을 더없는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저의 조국 대한민국은 작년 건국 6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을 닦은 사람 가운데 이 대학 출신들이 특히 많았습니다.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을 지낸 김성수 선생, 초대 국회의장을 맡으셨던 신익희 선생이 바로 이 대학 출신이었습니다.
 
이승만 독재체재가 형성되자, 이분들은 야당의 길을 걸었습니다. 저는 이분들의 적통을 이어받아 한국 야당의 길을 이끌어 고난에 찬 민주화 투쟁을 벌여왔습니다.
 
아까 부총장께서 소개한 가운데 제가 최연소 의원으로서 26세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고 했는데, 사실은 우리 헌법에 25세부터 국회의원이 될 수 있습니다. 저 나이 25세에 제일 처음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제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어서는 바로 이 대학에서 명예법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저는 이곳 와세다 대학에 올때마다 이 대학과 저와의 길고도 묘한 인연을 연상하게 됩니다. 제가 세계 여러 유명한 대학에서 연설을 많이 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여러 대학들에서 연설을 했고, 제일 하버드에서 연설을 두 번이나 한 일이 있습니다. 또 프랑스에서 소르본느 대학에서도 연설을 했습니다. 그러나 특히 와세다 대학에서 여러번 연설을 한 것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먼저 저와 한국 국민이 일본 국민에게 축하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 8월 30일 일본 국민 여러분은 마침내 54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냈습니다. 하토야마 총리대신도 이번 선거의 승리자는 일본국민 여러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본의 정권교체는 일본국민 여러분들의 승리였습니다. 과연 일본 국민은 위대했습니다. 하토야마 정권의 탄생은 일본의 근현대사에서 시민의 힘으로 역사를 바꾼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일본 국민의 소리없는 아우성이었고, 피없는 혁명이었습니다.
 
근대 일본을 만들어낸 메이지 헌법과 제2차 세계대전 종전후의 평화헌법제정에 필적할 만한 대사건이었습니다. 하토야마 총리는 9월 16일 총리에 선출되는 순간, 일본의 역사가 바뀐다는 떨리는 감격과 뜨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이제 책임지는 정치가 시작되었다는 선언에 저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정권교체와 하토야마 총리의 취임을 보면서 1993년 2월 25일 제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의 감격이 되살아났습니다. 저도 그때 제 손으로 32년에 걸친 군사독재를 청산하고 조국의 문민 민주정치를 세우는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도 애타게 바라던 문민 민주주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을 맞이하기 위하여 3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침내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를 이 땅에 세웠습니다. 저는 오늘 벅찬 감회를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와세다 대학교 학생 여러분, 이제 일본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위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모든 낡은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관료정치에서 국민이 주인되는 정치로, 앞서가는 나라에서 존경받는 나라로, 구미 중심의 나라에서 아시아 중심의 나라로 격차사회에서 우애사회로, 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으로, 일당지배체제에서 국민정권시대로 위대한 변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저는 하토야마 총리가 높고 큰 목표를 내걸고 국민을 이끌어 가려는 자세를 존경합니다.저는 하토야마 총리가 강조하는 우애의 정신에 깊은 신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으로는 차이를 인정하고 존경하면서도 서로 돕고 사이좋게 지내는 공동체 관계를 실행하고, 밖으로는 자립과 공존의 원리에 기초한 우애의 정신위에 평화롭고 번영된 동아시아 공동체를 건설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은 확실히 매력적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면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일본의 정치적 방향 전환은, 일본은 물론 세계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특히 하토야마 총리가, 일본은 더이상 민족주의에 포로가 되지 않을 것이며, 역사를 똑바로 직시할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발언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과거를 직시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진정 일본이 과거를 직시할 수 있다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국민들이 따뜻한 이웃이 되어 공동체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제 한국과 일본, 그리고 아시아 국가과 일본 사이에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데 더 이상 장애가 될 것은 없을 것입니다.
 
내외귀빈 여러분. 하토야마 총리는 지난 5월에 민주당 대표에 선출된 이후 한국을 맨 먼저 방문했습니다. 8월30일 총선에서 승리하고 난 뒤 처음으로 전화통화를 한 외국정상이 한국 대통령이었습니다. 총리로 취임하고 난뒤 최초에 방문한 나라도 한국이었습니다. 이제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작년에 저는 이 대학에 외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식민지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일본을 미워하면서 자라났지만, 내가 죽을 때는 친구가 된 일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제 그 소원이 이루어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에서 국민소득 2만불을 달성한 두 나라입니다. oecd회원국이 된 나라입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올림픽도 개최했습니다. 2002년에서 월드컵을 공동개최했습니다. 월드컵은 제가 대통령 재임 중에 이제 고인이 된 하시모토 총리와 공동유치했습니다.
 
저는 가능하다면 후쿠오카와 부산에서 공동개최하는 동북아올림픽을 모색해 보면 어떨까하는 구상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일본과 한국이 먼저 손잡고 동아시아 공동체를 행해 나가야 하는 일을 바로 지금 시작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일본의 정권교체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하이쿠'(일본의 단가)로 저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두 그루의 매화, 얼마나 보기 좋은가. 하나는 일찍 피고, 하나는 늦게 피고."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질문을 받겠습니다.
 
- 대통령님께서 취임하신 이후 문민정부를 표방하면서 언론개혁이라든지 여러가지를 추구하셔서 언론 민주화의 불씨를 지폈다 라는 평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서 그런 문제가 다시 불거져 민주화 이전으로 되돌아간 것 아닌가 라는 비판이 있는데요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언론 민주화로 나아가야 할 지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도 똑같은 생각이지만, 박정희, 전두환 때는 완전히 한국의 언론이 말살되었을 때입니다. 자유가 없을 때입니다. 사람 세 사람만 모이면 체포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는 민주주의 시대가 아닙니다. 정말 불행한 시대를 우리는 보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이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주장했던 것이 완전한 언론의 자유였습니다. 때문에 철저히 언론의 자유를 보장했던 것입니다."
 
- 앞으로 언론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해야하는지...
"제가 기회가 있는 대로, 제가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론의 자유가 아주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겠고, 지금 세계에서 발표된 것중에 우리 한국의 언론자유가 상당히 후퇴했다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요 며칠전에 영국에서도 한국의 언론 자유가 아주 후퇴했다고 발표난 적이 있습니다. (사이) 우리가 이 이야기 하고 있는 동안에 시라이 총장이 입장했습니다. 오쿠시마 총장은 아까 입장을 했었고요. 또 질문은..?"
 
- 대통령 각하께서는 지금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하셨습니다. 과거 1992년도에 민자당 국회의원 전국구 공천을 주셨고, 대통령 경선 때는 박근혜와의 공천 경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하셨는데, 앞으로 이 대통령이 정치를 잘 할수 있도록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두번째 질문으로는, 사실상 각하께서 남북정상회담을 시도하시고, 날짜까지 잡아놓으셨는데 김일성 주석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김대중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고... 사실상 노벨평화상은 대통령 각하께서 받으셨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 상당히 아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dj 병문안을 가시게 된 것이 영호남 화합 차원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라고 보는데 그때의 심정을 말씀해주셨으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세번째로 남북통일에 대한 견해를 부탁드립니다.

"아, 질문이 너무 많구만(청중 웃음). 그렇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가 적극적으로 지지한게 사실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사이) 이명박 대통령이 앞으로 잘 해주길 바랍니다. 필요하면 저자신이 충고를 하겠습니다.
 
김일성하고의 관계를 얘기했는데요. 사실 제가 대통령 시절에... 제가 만나자고 안했는데요. 김일성으로부터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저에게 연락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정상회담으로 가기로 됐습니다. 사무적으로 전부 합의를 보고 2주일뒤에 만나기로 돼있었는데 이사람이 급히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이것을 참 지금도 아쉽게 생각합니다. 여태까지 김대중이나 노무현이는 한번 만나자고 5억불이니 6억불이니 갖다주고 만났는데, 그때 나를 만나자고 했을때는... 김일성이는 50년간 북한을 지배했던 사람이기 떄문에 상당히 노련합니다. 돈을 달라던가 이런말도 없었고. 그 때 만났으면 우리 한국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라고, 지금도 참 아쉽게 생각합니다. 김대중하고의 관계에 대해서는, 김대중씨는 나보다 나이가 다섯살 많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됐습니다만, 마지막에 죽는 마당에 나하고 화해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내가 병실로 찾아갔던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에도 일본에도, 세계에도 큰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남북통일에 대해서 묻는 분들이 가끔 있는데요. 남북통일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영원히 안된다고 보는건 아니고요. 오랜오랜 후일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독일의 빌리 브란트 수상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내가 야당시절에  독일에 방문했을때 나하고 둘이서 공동기자 회견을 한적이 있습니다. 독일의 아버지라 불리는 브란트가 한국에 왔었죠. 당시 한국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나하고 여러차례 만났습니다. 나하고 식사를 하면서 이런 말을 한단 말이에요. 독일 통일의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이 그때만 하더라도 독일의 통일보다는 한국의 통일이 빠를 것이라고 얘기하더란 말입니다. 나는 아닐꺼라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사람이 돌아가고 나서 일주일 뒤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서 동독사람들이 전부 서쪽으로 넘어온 겁니다.
 
공산주의를 박차고 자유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 사람이 갑자기 동독에 유세하러 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통일의 아버지라는 사람도 독일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그러니까 바로 일주일 후의 일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만큼 통일이란 어려운 것입니다. 한국 통일도 그와 마찬가지로 언제 자고 나서 갑자기 어떻게 변화가 생길지 진실로 모릅니다. 지금 3분의 1정도 북한 사람들이 굶고 있습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 후에 동교동계 정치인들을 식사모임에 초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게 취소됐다가 아직까지 특별한 움직임이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재결집을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나는 40년을 둘이서 같이 한국 민주화를 위해 싸웠습니다. 결국 하나가 되지 못했는데요. 김대중씨가 돌아간 다음에 제가 초대를 하려고 했습니다. 동교동계 사람들 한 40명하고 우리쪽 사람들 40명하고... 80명이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는데, 동교동 대표들이 와서 아직 49재가 남아 있으니까 이것이 지난 다음에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연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연기를 했는데, 제가 이번에 돌아가면 다시 그 모임을 하려고 합니다. (사이) 질문은 이제 한명만 더받고 끝내겠습니다. 그 앞에 여자분..." 
 
-일본과 미국에 관계에 대해서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지금 일본은 주일미군기지가 오키나와에 집중되어 있는데요. 후텐마 기지의 이전 문제로 굉장히 많은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은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그리고 일본이 치뤘던 과거 전쟁의 억제력을 위해 미군기지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키나와 사람들을 비롯해 전쟁을 체험한 사람들은 그런 기지는 필요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실제 굉장한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문제는 매우 민감한 문제인데요 한국에도 지금 미군이 3만명 가까이 있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인데요. 결국 이것은요, 그러니까 오키나와분들도 마찬가지인데요. 미국이 일본을 어떤 의미로 점령할 생각은 꿈에도 없는것 아닙니까? 어떻게든지 공산주의로부터 일본을 지켜주겠다는 것이니까요. 이것은 일본이 어느정도 이해를 해가면서 미국와 협력해 가는 것이 세계와 동북아시아, 그리고 일본의 평화를 위해서 유익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강연회 녹취정리 구지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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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0/28 [10:10]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YS를 보면...... 꽃놀이패 09/10/28 [19:16]
'그 나라 정치지도자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에 정합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감각'하나 만으로 그 오랜세월동안 정치판을 좌지우지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증거겠지...

유신 치하에서 야당 당수로서 민주화에 공이있는 것 사실이고, 하나회 해체 같은 군부 인사 혁신이나, 금융실명제 같은 과감한 결단을 한 공도 사실이라고 본다.

그치만, 그는 아주 많이 욕을 먹어야 한다.

3당 야합으로 그간의 쌓은 점수를 홀랑 다 까먹었고,
IMF 외환위기로 밑천까지 털어먹었으니.......

하여 나는 오늘도 주구장창 그를 허접한 대통령이었다 씹는다.
내가 양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우는

'그나마 전두환, 노태우 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이었다'

딱 여기까지다. 수정 삭제
그래도 지역정당 만들어서 mitchiru 09/10/28 [19:45]
지역주의 정치로 평생을 욹어먹은 김대중이 보단 훌륭한 사람이다. 수정 삭제
지역주의라굽쇼? 꽃놀이패 09/10/28 [20:24]
지역주의 정치로 평생 울궈먹는 사람이 김대중이라구요? 호남당이라구요?

지역주의 정치로 인해 쪽수에서 밀리는 호남에 갇혀 평생 손해본 사람이 김대중 대통령입니다.

능력도, 도덕성도 없는 주제에 반호남 지역주의 하나 가지고 3대에 걸쳐 배부르고 등따숩게 지내는 사람들이 지금 영남정당 하고 있습지요.

호남에서 지역구에 배깔고 복지부동 자영업하는 몇몇 시장과 국회의원들을 욕할수는 있을지언정, 그들과 동일선상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욕하시면 안되지요.

비교할 걸 비교하세요.

김대중 대통령의 역사적 라이벌은 박정희 대통령이지 YS가 아닙니다.

체급이 달라요....ㅡㅡ; 수정 삭제
김영삼이 업적도 있긴 하지요 wldl 09/10/29 [11:52]
금융실명제라든가, 군부 하나회를 숙정에 성공한 일은 높이 평가할 일입니다. 하지만 남북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해서 선거에 악용한 일이라든가 혈연정치, 재경부 마피아에게 휘둘려 거시경제를 망쳐버린 일, 검찰 경찰 국정원 등의 권력기관 악용 등은 두고두고 욕먹어야 할 일이죠. 대략 현재 이명박 정권의 잘못과 거의 비슷하게 겹치네요. 수정 삭제
지역당은 박정희때 부터 시작 되었죠 민주주의 09/10/29 [16:35]
말은 바로 합시다...호남당이 지역당이라니..

인구가 적은 호남당이 지역주의해서 얻을게 무엇인가?

인구가 많은 염남이 해야 이득이죠..

닭대가리 이상의 지능이면 생각 할 수 있는 생각

지역주의는 박정희시절..쿠테타로 집권을 하고..

부정선거를 통해서 겨우 정권을 유지하고자 만든게 박정희 이고

김대중은 최대 피해자 입니다.

야당 지도자를 집에 가두고 "가택연금"(미안마의 군부정권과 비슷한 레벨)

전두환이 시행했죠...

그리고 야당지도자를 납치,살인을 시도한 정권이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나요?
미국이나 유럽 일본까지 전세계의민주주의국가에서는 김대중 석방과 군부독재를 비판 했습니다.

위에 쓰신분이 나이 지긋한것 같은데...

님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를 바라는건지...아님 김일성처럼 독재를 원하는지...

참 군부독재의 쇄뇌교육이 대단하다는것을 느낍니다.

박정희가 지역주의를 만들었고...

이후 전두환이 확립을 시켰고...노태우가 선거에서 이용해 먹었습니다

김영삼대 꽃을 피웠죠...

이후 이회창과 이명박이 이용해 먹은게 지역주의 입니다.

전라도에서 지역주의선거는 거의없습니다..있어도 반발심뿐

그러나 집권여당의 허삼수나...민정계의원들이 대구 부산에서...

전라도것들이 경상도 죽이고자 덤빈다..

아엠에프는 전라도 것들이 국가전복한다 등등을 수호로 선거치룬 도시가

지역주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몰표로 말하자면...

부산과 대구는 확연하죠

부산경남은 6.25때 전국에서 몰려든 피난민들이 정착하고 60년동안 고향지원정책에서 산업시설의 몰림으로 전국 8도 사람이 몰린곳이죠

일자리를 수정 삭제
개정희 ㅈㄷ 09/10/29 [16:40]
박정희가 비범한 인물임에는 분명하죠

일제식민지시설 전범 히로히토에게 충성혈서를쓰는 오바질에..

관동군 장교로써...독립군을 때려잡는 부대에서 수많은 일본인을 물리치고
1위로 수석차지하고...

대구에서 형이랑 같이 대구남로당 빨갱이로 이름날리고 주도하고...

18년동안 갈취하고...민주주의역행하며 북한과같은 독재국가로

장수장학회만 1조가 넘는 부동산...부동산만 1조가 넘어요

뉴라이트와와 이념을 같이하는 조선일보 조갑제가...

인정하고 전두환이 인정했듯이...

박정희친인척과 박정희비리가 트럭 하차분이라고 밝혔듯이...
비리에 쩌든 정권이죠

3권분립도 없이 왕정체제처럼 왕으로 군림하면서 18년동안 해먹은게 많죠

전두환이나 노태우는 그에 비해면 청렴한 편이죠...



수정 삭제
흠냐... 엘시드 09/10/30 [17:38]
ys 기사에 반응이 또.... -,.- 그런데 지겹게 보는 얘기지만, 엄밀히 말해서 지역주의의 몰표 - 심화현상은 3공시절이 아니라. 3김의 재등장과 격돌이 시작되던... 87년 대선과 88년 총선때 부터 심화되면서, 이후 ys가 당선되던 '우리가 남이가' 시절에 극점을 찍었다고 보는게 맞을듯.

6~70년대 지역정서 혹은 성향이란건... 오히려 호남지역이 전통적인 여당 표밭이었고, 대구 부산이 야도로 유명했다는 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 물론 71년 대선에서 지역주의 현상 - 구도가 발생한건 사실이지만, 그때부터 심화되서 고착화 됐다고 보긴 어려운.

실제 85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무려 '민정계'가 호남에서 최고의 지지율을 거두었고, 반대로 '신민당'은 대구, 부산에서 최고였다는 사실은 음미해볼 여지가 많지요. ㅡ,.ㅡ) 수정 삭제
ys정말 대단한 분이죠. 피오나여동생 09/11/07 [14:30]
그분이 없었다면 지금도 군사정권하에 있을 예정이였죠.
하나회 숙청 등
3당합당을 나쁘다고 볼이유가 없죠. 호랑이 잡으로 굴에 들어가서 호랑이를 잡았죠.
그를 통한 무수히 많은 정치인들이 발탁되었죠.노무현,이명박등이 대표적이고요. 수정 삭제
다 맞는 얘기지요.. 오오오오 10/01/29 [11:04]
겸손하고 자기를 내세우지만 않는다면 당신은 위대한 우리들의 영웅 중의 한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데, 너무 자신을 내세우니 아쉽군요. 허긴 라이벌 김대중 한테 워낙 당해서 반박하다 보니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게 된 면도 있지만....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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