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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합사배제, 자녀로서 당연한 일"
[현장] 야스쿠니 신사측과 면담한 태평양전쟁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대표
 
박철현 기자
"다섯명 이상 못 들어갑니다. 여기서 기다려달라. 처음부터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30일 아침 10시 30분 야스쿠니 신사 정문앞에 모습을 드러낸 젊은 궁사는 굳은 표정으로 취재진을 막아섰다.
 
나이가 지긋한 부궁사급의 인사가 태평양전쟁피해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공동대표, 태평양전쟁유족회 홍영숙 회장에게 고개를 깍듯이 숙인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전날(29일) 오후에 있었던 도쿄고등법원의 '15초 판결'(관련기사 '15초만의 판결, 35초간의 눈물')의 충격이 남아있을 법도 한데, 이희자 대표와 홍영숙 회장의 표정은 덤덤해 보였다.
 
▲  취재진을 막아선 젊은 궁사. 이 궁사는 면담이 끝날 때까지 취재진은 경내 안으로 못들어간다고 말했다.  © 박철현/jpnews
 
"오늘은 확실히 말해야지. 저번에는 너무 흥분해서 말도 제대로 못했어"
 
이희자 대표는 '저번'이라고 가볍게 이야기했지만 무려 8년전의 일이다. 2001년 8월 14일 이 대표는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찾았다. 야스쿠니 신사와 일본정부를 상대로 태평양전쟁 피해보상 청구 및 한국인 합사자 2만 1181명의 합사배제 소송을 걸었던 직후였다. 
 
이 대표의 아버지 고 이사현 씨는 1944년 2월 일본군에 강제징용당한 이후 1945년 중국에서 전사했다. 1959년 야스쿠니 한국인 징용자 합사가 시행되었을 때 고 이사현 씨의 명부도 같이 합사됐다. 
 
이 대표는 이 합사사실을 무려 40여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고(1997년), 본격적으로 합사배제를 요구하는 싸움에 나섰다. 그녀는 12년에 걸친 자신의 싸움을 '자식으로서의 당연한 도리'라고 말한다.
 
"야스쿠니 쪽은 합사가 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신(神)이 되기 때문에 합사배제는 힘들다고 하지만 자식된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잖아. 전쟁 일으킨 건 일본정부고, 야스쿠니에 명부를 건네준 것도 일본정부니까 이 싸움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지"
 
▲ 태평양전쟁피해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공동대표     ©박철현/jpnews
이 대표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합사배제 요구는 자식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이며,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대상자 명부를 건네준 주체가 일본정부이기 때문에 두 곳과 동시에 싸울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싸움은 속속들이 패배했다. 06년 6월 1심재판에서 완전패소했고, 09년 10월 29일에는 공소기각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오구치 아키히코 변호사는 "즉시 최고재판소에 항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후 70여건에 이르는 정부를 상대로 한 전쟁피해보상 재판은 모조리 원고측이 패배했다. 이번 재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희자 대표와 홍영숙 회장은 앞으로도 줄기차게 법정에 설 계획이라고 한다. 
 
"나중에 기록으로 다 남으니까. 일본 재판부, 사법부의 양심이 이런 정도였다라는 것을 후세 사람들이 알아놔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구치 변호사는 고등재판소의 판결문은 자기모순으로 가득차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국 헌법에 정교분리의 원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합사에 관련된 전몰자 명부를 신사측에 제공해 왔다. 그것도 무려 22년간(1956년~1977년)에 걸쳐서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런 행위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행정서비스' 차원의 편의제공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희자 대표는 그렇다면 더 문제라며, 재판부의 이중적인 자세를 지적했다.
 
"죽은 사람에 대한 행정서비스를 유족들에게도 안 알리고 자기네들 멋대로 하는 데가 어디 있나? 그게 상식적으로 가능하냐고"
 
신사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접견실로 들어간 다섯 명의 유족대표 및 변호사 일행은 예정된 면담시간 30분을 두배이상 오버한 1시간 10분만에 나왔다. 덤덤한 표정, 혹은 굳은 표정이다. 그래도 이 대표는 야스쿠니 신사측의 자세가 이전에 비해서 한결 나아졌다고 말한다.
 
"2001년에는 이쪽에서 무슨 질문만 하면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그건 말할 수 없다'고만 하던 사람들이 오늘은 그래도 꼬박꼬박 답해주더군요. 물론 근본적인 부분에 관해선 자기네들 신사가 어떻고 신도(神道)가 어쩌니 하는데 그런 말 나오면 잘랐어요. 지금 여기 신사 설명 들으러 온 게 아니니까요"
 
결국 양측의 입장차이만 확인한 채 면담은 끝나고 말았다. 그래도 야스쿠니 신사의 서열 2위인 야마구치 겐시 권궁사(権宮司)가 직접 설명했다고 하니 신사측도 유족에 대한 나름대로의 예의를 지켰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야스쿠니는 끊임없는 자신들의 지론을 펴겠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던 2001년의 상황에 비교한다면 장족의 발전이다.
 
오구치 변호사도 "민주당 정권이 바뀌면서 야스쿠니 신사도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있다"고 말한다. 민주당은 마니페스토(정권공약)에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하는 국립추도시설을 건립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처음이나 지금이나 이희자 대표를 비롯한 유족들의 주장은 한결같다.
 
"자식으로서의 도리다. 아버지 유골을 고향 땅에 모시고 싶고, 이건 자녀 심정에선 당연한 것 아닌가? 야스쿠니 신사는 우리들 살아남은 가족들의 이런 마음까지 지배할 권리는 없다. 앞으로도 계속 싸워나갈 것이다"
 
야스쿠니 합사배제를 둘러싼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 야스쿠니 신사 정문 앞에 설치된 거대한 토리이(鳥居)를 지나는 방문단. 왼쪽부터 동북아 역사재단의 남상구 박사, 태평양전쟁유족회의 홍영숙 대표, 태평양전쟁피해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공동대표, 태평양전쟁피해보상추진협의회 김민철 집행위원장    ©jpnews

▲ 방문단을 고개숙여 맞이하는 야스쿠니 신사 관계자    ©j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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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0/31 [15:30]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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