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춘분절이던 지난 3월 20일,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로 오사카 여행길에 올랐다.
우리야 춘분이라고 해서 특별히 공휴일은 아니지만 우연히 여행사 광고의 ‘파격가’라는 글자에 현혹되어, 평소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을 수시로 입에 올렸던 내가 ‘덥석’ 물었던 여행상품.
“나고야, 오사카, 나라, 교토 핵심 3일”에 198,000원.
이건 제주도를 다녀오는 것보다도 싸지 않은가.
미심쩍어 여행사에 문의하니, 전세기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어차피 여행사에서 전세 낸 비행기라면 자리를 채워 운항하는 게 여행사측에게나 고객에게도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치고 가제잡고’ 아니겠는가. 친구들에게 연락하니 즉석 ok다.
그렇게 해서 우린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튀기듯 ‘빡쎄게’ 3일을 돌아다녔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춘분절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물결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역시 볼거리가 많은 나라라는 게 실감이 난다.
첫날, 아침 7시에 인천국제공항 집결이다.
적어도 집에서 5시 반에는 출발해야 하니 잠은 거의 뜬눈으로 새다시피 한숨도 못잤다.
깜깜한 새벽에 집을 나서려니 가족의 아침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게 은근 미안해진다.
다녀와서 잘하지 모~ ㅎㅎ
8시 45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두 시간을 날아 나고야 중부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나고야는 제조업인 도자기와 기모노 직물 산업이 발달된 도시로 나고야성(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축성 1621년 완성. 국가가 관리하기 전인 메이지유신 전까지만해도 도쿠가와 집안이 기거하던 곳.)이 유명하다.
일정 중 맨처음 방문한 곳은 야스다 진구(神宮).
메이지, 이세신궁과 함께 일본 3대신궁의 하나로 신물(神物) 중의 하나인 검을 보관하고 있다는 신궁 건물은 사진찰영을 철저하게 금하고 있었다.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신사(神社/진자)나 신궁(神宮/진구)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신사는 일본 황실의 조상이나 신대(神代)의 신 또는 국가에 큰 공로가 있는 사람을 신으로 모신 사당을 말하고, 역대 일왕을 모시는 신사는 진구(神宮)라 해서 다른 신사보다 높은 격으로 친다.
마침 그곳에선 전통 혼례를 마친 신랑신부가 가족친지들과 사진촬영을 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신랑은 금발머리의 서양남성, 신부측에 비해 친지가 몇 안되는 것 같다.
신부 얼굴에선 환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신부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그리 썩 기쁜 것 같지는 않다.
니들이 부모의 마음을 알기나 해? 라고 말할 것 같은...
▲ 신부가 쓴 하얀 고깔 모양의 모자가 마치 승무고깔처럼 보인다. ©최경순 | |
그 옆의 건물에선 또 하나의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신랑신부가 입장하고 있다.
신부가 쓴 하얀 고깔 모양의 모자가 마치 승무고깔처럼 보인다.
'시로무쿠'라 불리는 이 옷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하얗게 만든다.
그래서 '시로무쿠' 하면 신부를 지칭하는 말이라고도 한다.
일본의 결혼식과 우리의 결혼식은 진행방식이나 내용이 많이 다르다.
청첩장을 받으면 각자의 형편에 따라 축의금도 제각각, 옷차림도 제각각인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반드시 참석여부를 엽서로 알려주고 옷도 혼주측이 요구하는대로 입어야 한다. 참석여부를 알리는 것은 '피로연'을 겸한 결혼식에서 좌석수를 확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혼식 하객수를 예측하기 힘든 우리와 달리 매우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 웬만큼 큰 신사나 신궁 입구엔 어김없이 술통이 쌓여 있다. ©최경순 | |
전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이번 여행에선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곳에 술통이 왜 있는지.
기모노를 입고 지나가는 젊은 여성에게 물으니 잘 모르는 지 같이 온 엄마인 듯한 사람에게 되묻는다.
"일본 전국에 있는 주류회사들이 신사에 술통을 바치면 새해 첫 날 그 술통을 열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복을 빈다"고 한다.
그리곤 빈 통을 저렇게 진열해 두는 모양인데 결국은 주조회사의 광고(?)인 셈이다.
▲ 御手洗(미타라시, 미타라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신사 입구에 있어 참배자가 손이나 입을 깨끗이 씻는다.
조그만 바가지가 마치 옛날 우리의 장독대에서 간장을 뜨던 물건 같아 정겹다.
▲ 이렇게 소원을 적은 종이나 에마(繪馬)가케를 매달면 위안이 되는 모양이다. ©최경순 | 아래의 에마가케는 '진학, 필승, 좋은인연을 만나게 해달라'는 등의
소원성취를 적어 걸어두는데 한 개에 500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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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다 진구를 둘러본 후 오사카로 이동했다.
나고야에서 버스로 네시간 정도라는데, 춘분절 연휴 차량들로 인해 다섯 시간 걸려 도착, 오사카성으로 갔지만 이미 해가 저물어 성 내부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성이 보이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니 조명을 밝힌 오사카성의 자태가 어둠 속에 아름답게 드러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킨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1583년부터 짓기 시작해 3년 만에 완성하고 자신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1598년까지 15년간 확장, 수리를 거치며 세운 성이다. 성을 중심으로 주변에 시가지 조성,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으나 잦은 전란과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31년에 재건, 1997년 대대적인 보수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천수각 전망대에 오르면 오사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지만
밤이라 우리는 조명발 받아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는 외형만 구경할 뿐이었다.
3~4월이면 성 주변에 매화와 벚꽃이 만발하여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는데 내가 간 시점(3월 20일)엔 겨우 꽃봉오리만 맺혀 있는 상태였다.
오사카성 천수각으로 들어가는 문 주변은 벚꽃이 많아 사쿠라몽(벚꽃문)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그 안 쪽에 거석이 있다.
다이묘(번주)들이 쇼군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양질의 바위들을 전국에서 운반해 왔다고 한다. 여기 보이는 거대한 돌덩이는 오카야마 번주(藩主)인 이케다가 오카야마 현에서 가져온 것으로 130톤에 이른다.
▲ 구 오사카시립박물관 앞, 오사카성이 마주 보이는 곳에 타임캡슐이 묻혀 있다. ©최경순 | |
1970년 오사카 엑스포를 기념해 제작, 지하 15미터에 20세기를 상징하는 물건 2098점이 두 개의 캡슐에 똑같이 묻혀있다.
하나는 2000년에 개봉되었고 남은 하나는 1970년부터 5천년 후인 6970년에 개봉될 예정이다.
▲ 오사카성으로 올라가다가 만난 할머니 ©최경순 | |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산책하다가 석양이 깃든 성 주변의 아름다움에 취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찍은 것을 확인해 보는 모습이 노을보다 더 아름다웠다.
▲오사카성으로 올라가다가 만난 할머니 ©최경순 | |
머지 않은 미래의 내모습은 어떨까, 상상하며 한 컷.
단체투어를 하게되면 원하든 원치않든 일정대로 움직여야 한다
종일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저녁시간 만큼은 친구들과 오붓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일정에 있는 '도톰보리 야경'을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끌려 다녀야했다.
게요리 전문점이 있어도 '그림의 떡'일 뿐, 그냥 지나쳤고...돌아와서도 내내 아쉬웠던 부분이다.
▲ 오사카에는 재밌는 간판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최경순 | |
만화 캐릭터 같은 그림이나 구조물로 만들어진 간판들이 이곳을 처음 찾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것 같다.
도톰보리의 야경을 즐기다가 자칫 길을 잃기 쉬운데 바로 아래사진의 게간판 때문.
똑같이 생긴 간판이 세 군데가 있어 모양만 보고 기억했다가는 길을 잃고 당황하기십상.
반드시 본점, 동관, 서관의 위치 확인을 하며 다니도록.
▲ 너무나도 먹고싶었던 게요리(위). ©최경순 | |
'파격가' 여행에서 이런 음식을 기대하는 건 무리.
우리가 먹은 저녁메뉴는 우동과 언제 튀겨냈는지 차디찬 튀김 몇 조각이 전부였다ㅠㅠ
2박 3일 내내 식사는 거의 이런 수준이거나 주먹밥 달랑 두개가 고작이었다.
*** 오사카에서 꼭 맛봐야할 음식 ************************************************
게요리, 타코야끼(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맛볼 수 있지만, 본고장의 맛을 보시도록!),
이카야끼(반죽에 압축한 오징어를 넣어 구운 것으로,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한신 명물점'이 유명하다. 가격은 120엔), 우리의 빈대떡과 비슷한 오코노미야끼,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우동. 쫄깃한 면발과 시원한 국물맛은 '끝내줘요~'다.
(여행을 떠나기 전, 검색하고 메모했던 내용이지만
결국 하나도 먹지 못하고 돌아왔다. 일정상 개인적으로 음식을 사먹거나
쇼핑할 상황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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