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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집 CD 발매한 아마누마 리쓰코 씨
[인터뷰] "제 인생의 꿈이, 드디어 이루어졌어요!"
 
박철현 기자
"제 인생의 꿈이 이루어졌어요. 윤동주 시인을 처음 알게 된 20년 전을 생각한다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너무너무 기쁩니다. 정말 행복합니다."
 
식민지 시절 이상과 더불어 천재시인으로 알려진 고 윤동주 시인의 시 낭독 cd '윤동주 시집'(제작 ips, 판매 킹 인터내셔널, 2500엔)이 12월 10일 일반에 공개됐다. 
 
이 cd에는 '서시', '쉽게  쓰여진 시', '별 헤는 밤', '아우의 인상화' 등 윤동주 시인의 주옥같은 시 25편의 일본어와 한국어 낭독 편이 수록돼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번 '윤동주 시집'을 아마누마 리쓰코(天沼律子, 63)라는 한 여성이 자비를 털어 제작했다는 점이다. 

 
▲ 12월 10일 발매된 시 낭독 cd "윤동주 시집"    ©박철현/jpnews
 
18일 도쿄 분쿄구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아마누마 씨는 "20년간의 꿈이 마침내 실현됐다."며 활짝 웃었다.
 
"20년 전에 '한글에의 여행'(이바라기 노리코 저)이라는 책을 통해 처음으로 윤동주 시인을 알게 되었어요. 당시 저는 일본어 학교에서 외국인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교사를 하고 있었는데 원래 한국 고대사, 특히 한국과 일본과의 교류를 공부하는 게 취미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책 '한글에의 여행'을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의 마지막 챕터가 윤동주 시인이었죠"
 
아마누마 씨는 이 챕터에 실려 있던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고,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그녀는 '한글에의 여행'을 언제나 소지했다.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꺼내서 그의 시를 읽었다고 한다.
 
"하도 봐서 책이 너덜너덜 해졌어요. 그래서 한 권을 더 샀어요. 말 그대로 애독서였던 셈이죠"
 
시간이 지나면서 윤동주를 향한 아마누마 씨의 탐구열은 갈수록 뜨거워져 갔다. 공통점도 발견했다. 윤동주 시인은 교토 도시샤대학을 가기 전에 도쿄 릿쿄대학에서 유학생활을 했었는데 아마누마 씨도 릿교대학 출신이었다.
 
"윤동주 시인이 릿쿄 대학에서 처음 일본유학을 시작한 것도 그랬지만 '쉽게 씌여진 시'에도 등장하는 '늙은 교수'와도 제가 조금 인연이 있거든요"
 
'쉽게 쓰여진 시'를 보면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 등장하는 늙은 교수는 영문학과의 우노 교수였다고, 아마누마 씨는 말했다.
 
"저는 미학을 전공했지만 간혹 언론학부 수업도 들었습니다. 그때 담당 교수님이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셔서 학교 졸업한 이후에도 계속 연락을 하고 지냈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윤동주 이야기를 했었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알고 보니 선생님의 부친이 '쉽게 쓰여진 시'에 등장하는 늙은 교수님이셨던 겁니다."
 
10년 전 에피소드도 빠질 수 없다. 그녀는 남편 아마누마 스미오 씨와 함께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당시 일본 유수의 레코드 회사 '킹 레코드'에 다니고 있던 남편 스미오 씨는 "신나라레코드와의 업무제휴를 위해 한국에 갔다"며 이렇게 말했다.
 
"공식일정이 다 끝난 후 마지막 날에 신나라 쪽 분들이 우리 송별회를 해 줬는데 그때 아내가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한국어로 낭송했어요. 보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여러분 고맙습니다. 답례로 시를 낭송하겠습니다'라고 하더니만 그냥 해 버리더군요. 알고 보니 한국에 가기 전부터 매일 연습했다고 하더군요. 하하하"
 

▲ 아마누마 리쓰코 씨. 윤동주 시집 cd 제작은 일생의 꿈이었다고...  ©박철현/jpnews
아마누마 씨는 호탕하게 웃는 남편을 보며 "그 때 얼마나 떨렸는지 아무도 모른다니까요!"라고 장난스럽게 눈을 흘긴다.
 
"그때는 아직 한국어를 제대로 공부하지는 않았었지만 읽는 방법은 터득하고 있었어요. 자음과 모음의 조합이랄까? 또 모르는 게 있으면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물어볼 수 있었죠. 그렇게 해서 '서시'를 제 눈이 닿는 곳에는 전부 걸어 놨어요. 부엌, 거실 탁자, 학교 책상... 
 
근데 이게 참 신기한 게 '서시' 제일 첫 부분의 '죽'이라는 단어만 제대로 나오면 술술 넘어가는데 이 단어에서 머뭇거리면 전부 잊어버리는 거예요. 그날 송별회 자리에서도 마음속으로는 계속 '죽, 죽, 죽'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서시' 낭독이 무사히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남편 스미오 씨는 "그 자리를 주선했었던 신나라레코드 측 사람들이 정말로 좋아했다"고 말했다. 아마누마 씨는 '서시'를 낭독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원래 남편 일 때문에 가는 건데 저까지 초청해 주셨으니까, 그 고마운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다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의 시를 들려주자고 생각한 겁니다. 시 낭독이 끝나고 한국분들께서 너무나 좋아하시기에 저도 기분이 좋더군요. 점점 더 윤동주 시인에 빠져들게 됐죠"
 
20년 전의 첫 만남, 10년 전의 에피소드를 거쳐 07년 아마누마 씨는 시 낭독 cd를 내야겠다고 본격적으로 마음먹었다. 분위기도 좋았다. 당시 킹 레코드에서는 시 낭독 cd 시리즈가 발매되고 있었는데 그 담당자가 바로 아마누마 씨의 남편 스미오 씨였다. 스미오 씨가 2년 전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그때 낭독 시리즈를 내면서 슬슬 외국시인도 해 볼까 생각했었죠. 나라마다 의미 있고 유명한 사람들, 이를테면 중국은 두보, 독일은 괴테나 하이네 같은 식으로. 한국은 아내의 강한 추천과 권유도 있고 저도 좋아하니까 무조건 윤동주였습니다. 그렇게 이제 기획을 하려는데 제가 갑자기 인사이동 발령을 받아 버린 거예요"
 
스미오 씨는 킹 레코드의 계열사인 킹 인터내셔널의 사장으로 승진발령받았다. 하지만 킹 인터내셔널은 재즈, 클래식, 클럽/라운지 앨범을 주로 내는 곳이다. 시 낭독 cd는 만들어 본 적도 없었다.
 
"간부회의를 해 봤는데 무조건 적자로 나오니까 도무지 할 수가 있어야지. 적자나는 걸 뻔히 아는 사업에 뛰어든다는 건 경영자로서 말도 안되는 거니까요. 아내는 옆에서 빨리 만들라고 닦달하고... 그 때 저 정말 힘들었습니다(웃음)"
 
그러나 아마누마 씨의 열의는 꺾이지 않았다. 자비를 들여서라도 제작하겠다는 생각을 한 그녀를 보고 남편 스미오 씨, 그리고 그와 같이 킹 인터내셔널로 이동돼 온 구로다(기획영업부 개발담당) 씨가 전면적으로 서포팅을 했다. cd 제작에 필요한 각종 시설 및 설비를 염가로 대여해 준 것이다.
 
하지만 cd에 들어갈 시를 고르는 것부터 자켓 디자인, 시 낭독자 선정에 이르기까지 실제 프로듀싱에 관련된 사안은 고스란히 아마누마 씨가 담당해야 했다. 그녀는 올해 8월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갈 때만 해도 막막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주위에는 '윤동주이즘'을 공유하는 수많은 '아마누마'가 존재했다.
 
"아라이 쿄코라는 유명한 화가가 계시는데, 이분은 윤동주 시의 이미지를 작품으로 만드시는 분입니다. 이번 앨범에 쓰인 그림은 '서시'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는데요. 이 그림이 꼭 쓰고 싶어서 전화를 드렸더니, 세상에!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는 저에게 '마음껏 쓰세요'라고 너무나 흔쾌히 승낙해 주시는 겁니다. 자신의 그림이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데 너무나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기뻤어요"
 
아라이 씨뿐만이 아니다. 서예가인 다나카 선생도 앨범 자켓 뒷부분의 '서시' 캘리그래피(붓글씨)를 선뜻 제공했다. 그는 "그런 좋은 일에 제 글이 쓰인다니 오히려 영광"이라고 말했다 한다. 윤동주의 일본어 번역시는 작가 이부키 고 씨가 제공했다.
 
그는 윤동주의 시를 전부 일본어로 번역해 '윤동주 시 전집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기도 했다. 그는 이 책을 출간한 후 마음고생을 했다. 몇몇 사람들은 "당신의 번역은 엉터리야. 그 '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니라 일제의 압제에 저항하는 의미"라는 식으로 비판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부키 선생이 어젯밤에 cd 잘 들었다고 전화가 걸려와서 무려 2시간이나 윤동주 시인에 관해 대화를 주고받았어요. 선생도 아주 좋았다면서 막 기뻐하시길래 정말 잘 만들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본어 낭독은 연극배우 니노미야 사토시, 한국어 낭독은 릿쿄 대학 챠플란(사제교수)으로 와 있는 유시경 선생이 맡았다.
 
니노미야 씨는 피플시어터 소속의 중견연극배우로 윤동주 시인과 고 이수현(신오쿠보 역에서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선로로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은 유학생) 씨의 삶을 풀어낸 연극 '한 점의 부끄럼 없이'에서 윤동주 역을 맡았던 분이다. 한편 유시경 선생은 '윤동주 릿쿄모임'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cd 제작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윤동주와 관련이 있는 셈이다. 이들을 한데 모은 아마누마 씨. 그녀는 앨범의 제작의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는 사상이나 이념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 너무나 아름다운 언어로 쓰여진 그의 시를 통해 많은 분이 윤동주 시인을 알아갔으면 좋겠어요. 민족시인, 저항시인이라는 하나의 틀이 아니라 그의 그 유려한 시어들, 아름다우면서도 일상적인 단어들을 통해 윤동주라는 청년의 감성을 공유했으면 하네요.
 
이런 엄청난 시를 쓰는 사람은 누굴까 라는 물음에서 시작해 일본과 한국 양쪽 시민이 윤동주의 삶을 알게 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이후에 각자 나름대로 해석하는 과정을 거치겠지요. 저는 윤동주 시인의 그야말로 엄청난 시를 충실히 소개하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한편 이번 cd 판매로 얻어지는 수익금은 전액 릿쿄대학 윤동주 장학금(2010년 신설)의 기금으로 쓰여질 예정이다.
 
"돈을 벌자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어요. 윤동주 시인의 뜻을 기려 그의 정신이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에게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끝낸 후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윤동주 시집 cd를 소중하게 들고 포즈를 취하는 아마누마 씨 부부. 그들의 웃음이 눈부시다.
 

▲ 왼쪽이 아마누마 리쓰코 씨의 남편 아마누마 스미오 씨. 오른쪽은 cd 제작 실무적 측면에서 서포팅을 해 준 킹 인터내셔널의 구로다 씨.    ©박철현/jpnews


  
윤동주--쉽게 쓰여진 시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관련링크
킹 인터내셔널 "윤동주 시집" 관련 홈페이지 (일본어 페이지)
http://www.kinginternational.co.jp/contents/2009/12/_cd.html
문의전화 : +81-3-3945-2333 








 

ⓒ 일본이 보인다! 일본전문뉴스 JPNews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기사입력: 2009/12/18 [18:54]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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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 가 떠오르네요. Droll 09/12/20 [05:02]
'쉽게 씌여진 시' 의 말미가 영향을 준 가사인 것 같은 곡..... 수정 삭제
침전(沈澱) 하이 09/12/20 [22:00]
나는 무얼 얻겠다고 홀로 타국에서, 부모님의 사랑과 땀이 배인 학비봉투를 들고 강의실을 찾는가. 비오는 밤. 세상사 잊은 듯이 조용히 가라앉은 깊은 물속 가랑잎마냥, 밤비 소리 들리는 깊은 방 안에서 바람처럼 스러져간 조국의 옛동무들 떠올려 본다. 나의 시는 너무나 쉽게 씌어진다. 나는 합장하듯 나의 두 손을 꼭잡고 눈물을 삼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밝아 올 시대의 아침을 기다리는 간절함으로... 수정 삭제
서시 꼬마 09/12/20 [23:12]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수정 삭제
와..... 민트 10/01/15 [00:57]
저도 고등학교 때 공부하면서 윤동주 시인을 정말 좋아했었는데.... 사실 그땐 이 시를 외국어로 번역하면 시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이분들이 어느 나라 언어로 시를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름다운 것은 국경을 초월해서 다 통하는가 봅니다. 수정 삭제
책제목을 바꿔주면 좋을 듯. 둘둘 13/06/15 [23:13]
기사에 등장하는 '한글에의 여행'은 '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글로의 여행'이란 제목으로 국내 출간된 책으로 보입니다. 국내출판명으로 고치거나 병기해 주시면 좀 더 알기쉽겠네요.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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