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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갈라진 손, 아내의 앞치마 (7부)
일본 아내, 한국 며느리로 인정받다 (7부)
 
박철현 기자
(이 글은 연재글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읽지 않으면 무슨 내용인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읽어보실 독자님들은 '일본 여친에게 프로포즈 받다'(전12화)를 먼저 읽으신 후 제2부 '일본 아내, 한국 며느리로 인정받다'를 읽으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이 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일본 여친 프로포즈 시리즈
혼인신고 (1부)
삼겹살 (2부)
아버지가 눈치챈 동거 (3부)
번데기 (4부)
유산 (5부)
어머니의 전화 (6부)
 
어머니의 짧지만 단호한 전화를 받고 아내는 안절부절 못했다. 
 
"어떡하지? 정말 처음 만날 때 껴안아 버리면 될까? 어머니가 놀라시지 않을까?"
 
게임회사 사장의 말도 안되는 비책을 실행에 옮길 생각을 할 정도로 아내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제발 그것만큼은 그만둬. 역효과야"라고 대꾸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어쩌면 그게 먹힐지 몰라'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내만큼 나도 패닉상태였다.
 
하지만 이왕 이리된 거 '배째라 정신'이다. 
 
부모님 몰래 아내와 결혼한 지 2년이 흘렀다. 물론 '준야'를 잃는 아픔은 있었지만 1년간의 동네여행과 서울여행(번데기에 질겁했었던 첫 한국여행 이후 2번 더 갔다)을 통해 아내와 나는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혼전의 연애 시절과는 다른 차원의 느낌이다. 이 느낌 안에 이별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헤어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헤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부모님을 설득시켜야만 한다.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내를 부모님께 인사시키고 며느리로서 인정받는 길 밖에 없었다. 
 
설득이 안된다면?
 
그런데 이상하게도 설득이 안되는 경우를, 그 때 나는 상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고전적인 말도 있지만 우리 집은 해당사항 없다.
 
어머니는 그동안 종종, 아니 자주 나를 이겼다. 하물며 이번처럼 엄청난 '용건만 간단히'에 당하면 그 때까지의 통계로 보건대 9할 이상 어머니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통계적으로 보면 나는 3년이나 일본에서 살았기 때문에 무조건 돌아가야 했고, 일본여자와는 죽어도 결혼을 못하게 된다. 나머지 10%는 확신을 가지기엔 너무나 빈약한 수치다. 가령 수술성공 확률이 10%라고 해보자. 얼마나 절망적인가.  
 
하지만 나는 이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배째라도 배째라지만, 아내의 본 모습을 보면 아마 어머니도 반대를 못할 것이라는 절대적 믿음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아내의 국적을 초월하는 '지미사'(地味さ)라고 표현한다.
 
'지미사'라는 말은, 참 풀이하기가 힘든데, 우리 식대로 말하면 '수수함' 정도가 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절대 여자에게 '지미'라는 말을 쓰면 안된다. 말이 좋아 '수수함'이지 실제로는 다들 '촌년'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는 그것도 모르고 '지미'라는 말의 사전적 풀이에만 주목해 아내와 아내 친구들을 만났을 때 친구들의 "미와코의 어디가 좋아서 사귀게 되었어?"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했었다.
 
"수수한 매력? (地味な魅力?)"
 
다들 쓰러졌고 아내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싸늘한 한파가 몰려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물론 집에 와서도, 그날은 한 마디도 안 했던 것 같다. 그만큼 '지미'는 금기어다. 일본인 여자친구를 두고 있는 독자라면 농담이라는 전제를 두고 한번 시험삼아 써 봐라. 혹시 헤/어/져/도 내 책임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 '수수한 매력'이 아마도 촌에서만 생활하신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라는 생각, 아니 어느 시점부터는 확신이 들었다. 묘하게 들리겠지만 100% 도쿄 아가씨인 아내와 순토종 마산 시골 아줌마인 어머니는 그만큼 비슷했다. 어머니도 자신과 비슷한 느낌의 '사려깊고 눈치빠르고 한편으론 억척스러운' 아내에 넘어갈 것이라는 확신.   
 
이런 나와는 반대로 아내는 하루하루를 초조하게 보냈다. 조금 태만히 하고 있던 한국어 공부도 매일같이 했다. 갑작스레 한다고 느는 게 아니라고 말해도 눈이 충혈될 정도로 열심히 했다. 일요일에는 쇼핑을 했다.
 
"어머니는 뭐를 좋아하셔? 옷을 사가는 게 나을까? 아니면 건강제품이나 그런 걸 사가시는 게 좋을까?"
"어머니는 손이 안 좋으시니까 손에 바르는 약을 사 가자. 옷은 입지도 않으셔"
"손?"
"응. 생선장사하시는 분들은 손마디가 갈라지거든. 직업병이야"

 
어머니는 25년간 줄곧 같은 자리에서 생선장사를 하고 계신다. 마산 사람들은 교방동 육일약국을 다 안다. 하지만 교방동에는 주공시장도 있다. 최근에 주공아파트가 허물어지고 무슨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새로 들어섰다는 데 그 입구 상가에 '주공수산물'이라는 생선가게가 있다. 거기 운영하시는 분이 우리 어머니다. 
 
▲ 어머니는 25년간 재래식 생선가게을 하고 계신다 (사진은 이미지)  © 오마이뉴스 

 
생선장사 하시는 분들이 다 그렇겠지만 이 장사는 끊임없이 물과 생선기름과 싸움을 벌여야 한다. 사시사철 찬 물이다. 영하 몇 도가 되어도 찬 물을 뿌려대며 내장을 게워내야만 한다. 뼛속이 에는 고통이다. 당연히 손마디가 쩍쩍 갈라진다.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까 이내 울상이 된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의 삶에 대해서 한번도 구체적으로 말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무의식중에 일부러 피하려고 했던 걸까?
 
"손마디가 갈라지는 덴 바셀린이 최고야. 이걸 사 가자"
 
아내는 바셀린을 2통 샀다. 1통만 사도 육개월은 쓴다고 말했지만, 굳이 1년치분 사겠단다. 쇼핑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아내는 마트에 들러 생선을 샀다. 
 
고향에 가는 날까지 열흘정도 남아 있었는데 이 열흘동안 우리들의 저녁식사는 무조건 생선구이였다. 꽁치, 고등어, 전어, 이면수어 등등 매일 갖가지 생선구이가 올라왔다. 이때만 하더라도 어머니가 생선가게 한다고, 생선 맛을 제대로 알아보겠다고 그러나 보다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고향에 가면 아마 어머니의 일을 도와 드릴 것 같은데, 그 때 생선내장을 제대로 못 게워내면 그렇잖아. 그래서 그 내장 게워내는 연습 한거야. 맨날 생선구이만 먹여서 미안했어. 호호"

 
아! 그러고 보니 아내는 보통 생선을 샀다. 일본 마트에는 내장이 발라져 있는 생선도 많이 판다. 가격대도 별로 차이가 안 나는데 아내는 굳이 아무 손질도 안한 생선을 샀다. 
 
그런데 그게 이런 '연습'을 하기 위해서였다니. 직업병의 에피소드에서 여기까지 생각하는 아내의 그 치밀함에 감복했던 기억이 떠오른다(실제 이 연습은 나중에 어머니의 마음을 사로잡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다. 오지 말았으면 했던 날이 밝아왔다. 아침밥을 먹는데 아내가 문득 한마디 던진다.
 
"잘 되겠지?"
"어? 응"
"잘 되야 할텐데"
"걱정마. 잘 될꺼야"

 
아내는 한 템포 늦춘 후 결정적인 걸 물어왔다.
 
"만약 잘 안되면 어떻게 할거야?"
 
대답을 못했다. 못한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잘 안 될 경우를 상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왔다. 여전히 통계적으로 본다면 어머니의 설득을 받아낼 확률은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90%가 잘 안 될 경우인데 그 나머지의, 무려 9배나 높은 불가능한 상황을 한번도 염두에 안 뒀다는 것을 이 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갑자기 불안과 초조함이 엄습해 왔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아내가 나직하지만 강한 어조로 덧붙인다.
 
"오빠. 괜찮아. 날 믿어"
 
아내의 눈빛을 쳐다 보았다. 결연한 의지에 가득찬 눈빛이다. 사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종국에는 아내에게 모든 걸 맡겨버리고 만다. 아니 아내가 알아서 해결해 버린다. 절대적인 신뢰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렇지만 아내의 이런 상황에서의 '포스'는 전투력 측정이 불가능하다.
 
바셀린과 영양제, 조카들에게 줄 선물 등을 빠짐없이 챙긴 후 나리타 공항으로 향했다. 서울도 참 짧았지만 부산은 더 가까웠다. 눈을 한 100번 정도 깜박하니 부산 김해공항에 도착했다는 어나운스가 흘러 나온다.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탔다. 버스를 타도 괜찮았지만 아내가 속이 안 좋다고 해서 택시로 골랐다. 그래봤자 5만원이다. 일본돈으로 5천엔. 미타카에서 나리타 공항까지 가는 둘의 요금이 약 7천엔 정도 나오니까 그에 비한다면 정말 싸다. 시골에 왔다는 실감이 드는 순간이다.
 
40분쯤 달렸다. 익숙한 풍경들이 나타났다. 구암동 사거리, 합성동 지하상가, 마산역, 석전삼거리, 산복도로, 그리고 삼학사. 어느새 집에 도착해 버렸다.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저기 삼학사 앞에서 세워 주세요"
 
아내가 내 손을 잡더니만 놀랜 어투로 말한다.
 
"벌써 다 왔어? 그런거야? 다 온거야?"
 
아내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마치 심장의 두근거림이 전해져 오는 듯 하다. 말은 그리 했지만 역시 무섭고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삯을 치르고 내렸다. 횡단보도를 건넜다. 우리 집은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으로 틀면 된다. 왼쪽으로 틀지않고 직진하면 어머니가 일하시는 주공시장이 나온다. 일단 집에 먼저 들르고 어머니를 보러가려는 생각이었다.
 
오후 3시쯤이었다. 날씨는 흐렸었다. 왼쪽으로 틀었다. 순간 커다란 대야를 머리에 이고, 빌라 밖으로 나오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토바이가 어머니 옆을 지나쳤다. 20여 미터 떨어져 있었지만 저 걸음걸이와 자세는 어머니다.
 
3년만에 뵈는, 저 변함없는 모습. 갑자기 눈 앞이 뿌옇게 흐려왔다. 무거운 여행가방을 들고 언덕을 올라가던 내 걸음이 멈췄다. 아내도 멈췄다.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 내 손을 한번 꽉 쥐더니 손을 뗐다. 그리고 아내는 나보다 먼저 외쳤다.
 
"어머니!"
 
어머니도 멈춰섰다. 3년만에 만난 아들이, 아니 아들 부부를 처음으로 본 어머니는 순간 멈칫거리며 균형을 잃으신 듯 했다. 마치 쓰러질 것 같았다.
 
아내가 순식간에 20여미터를 뛰어가 어머니를 부축했다. 게임회사 사장님의 말마따나 껴안지는 않았지만 둘의 첫 만남은 신체적 접촉에서 시작됐다. 정신을 차린 나도 뒤늦게나마 달려갔다. 어머니는 생판 처음 보는 여자가 당신을 부축한 것에 대해 놀라지 않으셨다. 균형을 다시 잡고서는 당신의 갈라터진 손 위에 포개진 아내의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곤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고맙데이. 오느라 고생많이 했제"

 
아내는 무슨 말인지 몰라 눈만 멀뚱멀뚱했다. 투박한 억양의 경상도 사투리를 실제로 경험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아내는 무작정 밝게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안녕하세요"만 반복했다.
 
"어머니, 잘 계셨어요?"
 
뒤늦게 합류한 나도 3년만에 인사를 드리며 어머니의 대야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가게 비워두면 안된다"고 말한다. 도와 드리겠다고 하니 "너거 짐부터 집에 갖다 놔라"라고 덧붙인다.
 
아내는 여전히 무슨 대화가 오고가는지 모른다. 어머니가 먼저 가게쪽으로 휘이 내려가시는 모습을 걱정스럽게 쳐다볼 뿐이다. 집으로 들어가자고 재촉하는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는 어머니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 뒷모습을 물끄러니 쳐다봤다.
 
"들어가자. 짐부터 갖다 놓으래"
 
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내가 나지막히 말한다.
 
"손..."
"어?"

"어머니의 손."
"어머니의 손이 왜?

"아! 아...아냐. 들어가자. 어디야?"
 
집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계셨다. 아버지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아내를 무척이나 반겨 주셨다. 무서운 인상의 아버지다. 나조차 아버지의 웃음을 별로 본 적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아버지는 마치 지금까지 아내를 만났을 때 쓰려고 참았다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미와코 맞제? 잘 왔다. 그래, 푹 쉬었다 가라"
 
아내도 이 때 너무나 안심했다고 나중에 털어 놓았다.
 
"그 때 만약 집에 들어갔는데 아버님이 차갑게 대했다면 아마 버티지 못했을꺼야. 아버님이 정말 고마웠어"
 
짐을 대충 풀어놓고 작업복을 입었다. 추석 대목이다. 생선집이나 떡집 자식은 추석 대목 때 할 일이 많다. 우리도 어머니의 일을 도와주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가게로 내려 갔다.
 
지금이야 상가가 번듯이 들어섰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아직 공사중이었다. 어머니는 공사장 앞 길거리에 포장마차 비슷한 걸 내 놓고 생선을 팔고 있었다. 말이 안 통하는 아내였고, 어머니도 "어디 귀하게 자란 아가씨가 그런 걸 하냐"며 손에 물을 묻히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말이 안 통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계속 손에 물을 묻혔다.
 
주위 포장마차의 아줌마들은 "철현이가 이렇게 컸네. 이제 일본 아가씨하고 결혼하는 거야?"라며 사정도 모른 채 농반진반으로 말을 걸어왔다. 그런 말들에 대꾸를 해가며 주위 분들에게 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아내는 묵묵히 일했다.
 
저녁에 어머니가 식사를 할 때는 내가 손님을 받고 아내는 생선 내장을 게워내고 갈라진 틈으로 소금을 뿌렸다. 옆에서 식사를 하시던 어머니는 "소금을 더 뿌려라고 말해주라"라고 지도했고, 나는 그걸 아내에게 통역했다.
 
열흘간의 연습이 빛을 발했다. 아내는 정말 능숙하게 생선내장을 꺼집어 냈다. 반신반의하던 어머니도 조금은 감탄한 눈빛이 됐다.
 
밤 9시쯤됐다. 오자마자 몇 시간을 그렇게 일하던 아내를 보던 어머니가 가게 구석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그러고는 지금까지처럼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직접 아내에게 간다.
 
"이거 차고 해"
"네?"

 
어머니가 꺼내 든 것은 고무재질로 만들어진 앞치마였다. 아내는 무슨 말인지 몰라 나를 쳐다 봤다. 어머니는 앞치마를 허리에 두르고 목에 거는 시늉을 하셨다. 
 
"아! 네. 알겠습니다"

 
아내는 그제서야 무슨 말인지 알았다. 하지만 이 업무용 앞치마는 보통 앞치마와 다르다. 걸치는 게 꽤나 어렵다. 어머니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망설이는 아내에게 직접 앞치마를 둘러 주셨다. 
 
"잘 어울린데이. 생선집 딸네미 같다야"

 
아내는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거 얼마예요?"
 
손님이 찾아왔다. 아내는 이내 웃는 얼굴이 돼 "어서 오세요"를 반복했다. 다들 단골 손님인지라 손님들마다 어머니에게 물어 온다. "누구냐"고.
 
그러면 어머니는 손을 흔들면서 나를 가리켜 가며 이렇게 신세한탄을 하셨다.
 
"아니 글쎄, 이 놈의 자식이 공부하라고 일본 쳐 보내놨더니만 여자를 만나 가지고, 지금 데리고 온 거 아입니꺼. 온 건 어쩔 수 없으니까 그냥 놔 두는데 당장 들어와야지예"

"철현이도 이제 결혼해야지. 왜 괜찮은 거 같은데예"
"아이고! 결혼은 무슨 결혼. 지가 뭐 해놓은 게 있다고. 말도 안되지예"

 
손님한테는 그래놓고 손님이 가면 어머니는 아내에게 이런저런 지도를 했다. 이게 어머니 식이다. 아니 어머니 세대의 경상도 엄마들은 다들 이러지 않을까. 내심 괜찮으면서도 겉으로는 부정하는 스타일. 게다가 어머니는 뼛속까지 장사꾼이다. 나는 한번도 어머니 입에서 "벌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당신은 25년간 손해만 봤다.
 
아무튼 말이 안 통하길 천만다행이다. 저런 말들을 만약 전부 알아들었다면 아내는 아마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테니까. 첫날 오자마자 이런 강행군을 했다. 아내는 불만이 있을 법한데 그날 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둘째날은 보다 강행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5시부터 일어나 밤 12시까지 아내는 한시도 쉴 틈없이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오죽하면 어머니가 "몸살 걸리겠다. 좀 쉬라고 해라"라고 교대를 요청할 정도였지만 아내는 어머니가 손에 물을 묻히는 모습을 보면 이내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다.
 
그렇다. 손이었다. 아내는 어머니의 손을 처음 만졌을 때 무한한 미안함과 존경, 삶에 대한 애착, 그리고 어머니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머니 손을 만졌잖아. 나 태어나서 그런 손은 처음 만져봤거든. 이 손이 오빠를 길렀고, 한 가정을 지켜왔구나라는 생각. 보통 얼굴에 그 사람의 삶이 나타난다고 하잖아. 하지만 난 그건 안 믿어. 얼굴은 꾸밀 수가 있으니까. 하지만 손은 거짓말을 안 해. 정직한 손을, 그 때 처음으로 봤어"
 
한편 어머니도 이틀간 아내가 보여준 헌신에 대해 추석날 큰 집인 우리 집을 찾은 친척들에게 입에서 침이 튀겨가며 칭찬했다. 손님들에게 보여준 태도와는 180도 달랐다.
 
"세상에 너거들 들어봐라. 요즘 어디 아가씨가 더러운 생선가게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겠노? 서울 아가씨들보다 훨씬 낫데이. 이거 한번 손대면 처음엔 좀 한다고 해도 한 시간만 지나면 다 도망친다. 그런데 곱게 자란 일본 아가씨가 한번도 게으름 안 피우고 이러는 거 보통 일이 아니다. 정말 대단한 아가씨 아이가"
 
아내는 옆에서 분명히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이 안 왔지만 어머니의 말이 끝난 후 자신을 바라보는 친척들의 시선에서 '어머니가 내 칭찬을 하는 구나'라는 걸 느꼈다고 했다.
 
아내는 추석때도 맏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비록 말은 안 통했지만 부엌에서 이런 저런 숙모들이 시키는 일을 전부 했다. 몸살에 걸릴 정도로 열심히 했다.
 
물론 처음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평소부터 성실한 아내다. 무엇보다 한국음식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아내는 우리 집안 최초의 외국인 며느리임에도 불구하고 인정을 받았다.
 
파란만장했던 추석이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오는 날이 밝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올리는데 아버지가 어울리지 않게 '으험, 으험' 무게를 잡더니만 넌지시 말한다.
 
"거... 결혼식 날짜 잡아보자고 그 쪽, 미와코네 집에 말해 봐라"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내가 졌다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너 정말 여자 잘 골랐다는 그런 표정이셨다.
 
"네. 말씀드려 볼께요"
 
아내는 여전히, 이 중요한 순간에도 뭔 말인지 모른다. 건너편 아버지 쪽과 내 쪽을 번갈아가며 쳐다볼 뿐이다. 통역해 줬다. 순간 아내의 눈이 젖어왔다. 하지만 흘리지는 않았다. 마지막까지 아내는 눈물을 참아냈다. 고개를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를 참아내며 담담하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기쁨은 금세 사라졌다. 우리에겐 아직 장벽이 남아 있었다. "너희들의 결혼을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겠다"는 장인어른에게 결혼식 날짜를 상의한다는 것은 아예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 8부 "일본인 장인을 설득시킨 거짓말"
 
▲  이 아이들은 시즌 3에 등장할 예정이다. 도대체 이 연재는 언제쯤 끝날까.   ©박철현/jpnews

 
■ 글쓴이 주
이 시리즈는 매주 일요일 새벽 혹은 아침에 게재됩니다. 무단전재는 금합니다. 링크를 이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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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1/03 [04:55]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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