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고 지는 건 중요하지 않다. 동포들에게 용기를 준 아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제89회 전국고교럭비대회에 출전해 승승장구하던 오사카 조선고급학교(이하 조고)가 준결승에서 가나가와 현 대표 도인(同院)학원고교에 33-7로 패퇴해 3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조고의 이번 성적은 우승에 맞먹는 가치가 있다.
도쿄에서 택시회사를 운영하는 재일동포 박일경 씨는 조고의 약진을 예선대회서부터 지켜봤다.
오사카 지역 예선대회 결승전은 물론 어제 경기도 오사카까지 직접 내려가 관람했다는 박일경 씨는 <제이피뉴스>의 취재에 이렇게 말한다.
"이건 엄청난 거야. 다른 학교는 전국에서 우수한 아이들을 스카웃해서 만들어졌지만 조고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동네아이들이 그대로 올라가서 한 거야. 그런 동네팀이 전국에서 3위를 했으니까, 기적같은 일이지." 럭비부가 있는 고등학교는 일본 전국에 약 800여개에 이른다. 결승 토너먼트에 자주 올라가는 이른바 '엘리트 학교'들은 전국에 스카웃 망을 가지고 있어 우수한 중학 3년생을 경쟁적으로 영입한다.
▲ 오사카 조선고급학교의 럭비부 유니폼을 형상화한 응원현수막 ©jpnews | |
하지만 재일동포 자녀들이 모인 오사카 조고는 그럴 수가 없다. 박 씨의 말대로 오사카에서 자라난 재일동포 아이들이 초중급학교를 거쳐 오사카 고급학교에 진학해 럭비를 계속할 수 밖에 없다. 실력적인 면에서 차이가 날 법도 한데 오사카 조고는 2010년 대회에서, 전국의 쟁쟁한 학교들을 다 물리치고 3위를 기록한 것이다.
직접 이 경기를 봤다는 또다른 재일동포 주영덕 씨는 <제이피뉴스>의 취재에 흥분된 목소리로 말한다.
"60만 대 1억 2천만의 전투, 정말 너무나 감격적이다. 우리 재일동포들에게 희망을 준 아이들이 너무나 고맙다." 이들은 이번 전국대회보다 오사카 지역예선 결승전이 명승부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작년 12월에 있었던 예선대회 결승전에서 조고가 맞붙었던 죠소케이코(常翔啓光) 고교는 작년(2009년) 전국대회 우승팀이다. 지금까지 7번이나 우승한 그야말로 강팀 중의 강팀이다.
그런데 '동네팀' 조고가 지역예선 결승전에 이 학교를 꺽어버렸다. 전년도 우승팀이 전국대회에 아예 출전조차 못하는 일대 파란이 연출된 것이다.
오사카 조고는 전국대회에서도 승승장구했다. 조고는 2회전부터 시합에 나섰다. 전국대회의 경우 시드교가 존재해 a시드와 b시드를 부여받게 된다. 시드교는 도쿄, 오사카, 지바 등 강호들이 즐비한 지역에서 진출한 팀에 부여되는 것으로 오사카 제3지역 예선을 돌파한 조고는 b시드를 부여받아 1회전을 면제받았다.
2회전 상대는 니이가타 공고. 오사카 조고는 단 한번의 트라이도 허용하지 않고 55대 0이라는 퍼펙트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3회전 상대는 도쿄 시드교인 전통의 강호 고쿠가쿠인쿠가야마(國学院久我山). 접전이 예상됐지만 오사카 조고는 다른 이유로 투지를 불태웠다고 한다.
도쿄 조고 때문이다. 고쿠가쿠인쿠가야마 고교는 도쿄 제1지역 예선 결승에서 도쿄 조고를 꺽고 전국대회에 진출한 학교다. 또 3회전을 앞두고 "다른 학교라면 몰라도 오사카 조고에는 절대 질 수 없다"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박일경 씨가 말한다.
"고쿠가쿠인 측이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고교시합에서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은 드물다고 봐야지. 보통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싸우겠다고 말하거든." 고쿠가쿠인쿠가야마 고교의 이 발언을 들은 오사카 조고는 "무조건 이기자. 절대 져서는 안된다"는 마음으로 그라운드에 나섰다. 접전에 접전을 거듭한 이 시합은 오사카 조고의 승리(15-7)로 끝났다. 조고는 8강전에서도 지바의 강호 유통경제대학부속 가시와 고교를 12대 5로 꺽고 4강전에 올랐다.
연말연시 재일동포들의 회식자리에서는 오사카 조고의 돌풍이 끊임없이 화제에 올랐다. 조고를 응원하기 위해 전국에서 응원단도 결성됐다. 6일과 7일, 준결승과 결승전을 보기 위해 긴데쓰 하나조노 럭비장에는 천여명의 재일동포 응원단이 모였다.
하지만 오사카 조고는 준결승에서 도인학원고교에 33대 7로 져 결승진출이 좌절됐다. 하지만 스탠드에서 경기를 지켜본 재일동포들은 최선을 다해 싸운 학생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박수치는 이들의 심정을 박일경 씨가 다시 한번 전한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아이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우리 재일동포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줬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정말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