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jpnews에 칼럼을 쓰시는 구로다 후쿠미님의 ‘한,일간 일처리의 차이’에 대한 칼럼을 읽으면서 정말 공감하는 바가 컸다.
일본에서 어떤 일을 처리할때는 정말 세심하고 꼼꼼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구로다씨가 말씀하신 대로 한번 더 생각해보고 실수가 없도록 하자는 일본인들의 일처리 문화때문이겠지만 어떤 때는 그것이 정말 복창 터지게 답답한 경우가 있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은 일본인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이 책임질 일은 안한다’는 것 같다. 일본에서 특히 은행을 이용할 때는 더욱 그렇다.
본 베리어 프리와 관련된 칼럼을 쓰다보니 본의 아니게 일본의 장점을 많이 소개하고 우리나라의 단점만을 자주 이야기한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일본에서 정말 답답하게 일처리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물론 그 답답한 일처리 과정은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 때문일지도 모른다.나 같은 한국인은 답답할지 모르지만 일본인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 그런 일처리 과정에서 느끼는 베리어(장벽) 역시 실제 존재하는 일이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내와 함께 일본은행에서 펀드 상품에 가입을 하려고 했을 때의 일이다. 아시다시피 일본은행의 금리는 거의 0%에 가깝다. 그래서 아주 적은 돈이지만 푼푼히 펀드에 넣어 보려고 상품에 가입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
그런데 은행 담당직원은 펀드 상품의 경우 원금 손실을 할 수도 있다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펀드에 관련된 설명서를 읽고 나야만 가입할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시각장애로 인해 읽을 수 없으므로 대신 읽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나 중요한 내용이므로 은행 직원이 읽어 줄 수 없고 당사자 본인이 읽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담당직원뿐만 아니라 책임자인듯한 사람까지 와서 이런 저런 것을 알아보고 본점인듯한 곳에 전화까지 하며 법석을 부린 후 결론은 ‘가입이 안된다.’는 것으로 끝이 났다.
개인적으로는 정부 산하 공기업에서 회계업무를 몇 년 동안 맡아보며 작은 규모지만 자금 관리도 했던 경험이 있어 경제적 상식은 조금 아는 편이다. 은행직원에게 펀드 상품에 대한 위험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으므로 가입을 하고 싶다고 해도 앞의 말만 되풀이 할 뿐 가입이 안된다고만 하였다.
결국 우리는 원하는 상품에 가입을 하지 못했다. 한국이라면 이런일이 있을 수 있을까? 제 발로 찾아와 펀드에 가입하겠다는 손님을 거절하는 경우를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황당했는지도 모르겠다.
또 얼마전엔 우리가 살고 있는 주택의 야칭(월세)을 자동납부하기 위해 은행을 들렀다. 현재 우리는 도쿄에서 운영하는 도영주택으로 새로 이사를 했다. 도영주택을 관리하는 공사로부터 자동납부 신청서를 받아서 은행에 제출을 하는 과정에서 또 일이 벌어졌다. 아내의 통장으로 자동납부를 하려 했는데 둘째 아이 출산등으로 정황이 없어 그때까지 통장의 주소 이전 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자동납부 신청서의 주소는 현재 살고 있는 주소였고 은행에 신고 된 주소는 예전 주소였다. 자동납부를 신청하면서 주소의 일치 여부가 뭐 그리 중요하겠느냐고 생각했는데, 은행 담당직원은 주소가 다르면 처리 할 수 없다며 먼저 주소 이전을 요청했다.
문제는 주소 이전이 그냥 주소 이전 신고서에 해당 내용을 작성하고 도장만 찍으면 되는 것이었으나, 주소 이전 신청서의 작성 과정에서 문제가 터졌다. 내가 대필을 요구하자 “통장의 변경 내용과 관련된 중요한 사항이므로 자신이 처리할 수 없다.”며 위 책임자에게 묻기도 하고 통장 개설 지점에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또 자동이체가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도영주택공사에 전화를 해서 통장과 실 주소가 다를 경우 자동 이체를 해도 되는지를 확인하기도 했다.
결국 자동이체는 가까스로 해결할 수 있었으나 통장의 주소 변경은 끝내 하지 못했다. 이런 경우는 정말 허다하다. 특히 은행에서 많이 겪는다. 새로운 통장 하나 만들려고 해도 은행직원이 대필을 할 수 있는지 여부를 상부나 본점에 물어 보기도 한다. 위의 자동이체를 신청하기 위해 은행에 가서 내가 기다린 시간만 거의 1 시간이 넘는다. 그 1 시간 동안 담당직원은 통장 개설 지점이며 주택공사에 전화를 하고, 상사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등 정말 엄청난 인내를 요구했다. 물론 중요한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꼼꼼한 일처리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어쩔 때는 정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답답하게 일처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면이 강하다는 인상을, 그래서 받게 된다.
이런 경우는 은행에서 뿐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실시하고 있는 ‘장애인 활동 보조인 서비스’는 일본에서는 예전부터 실시 되고 있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 서비스를 받을 때도 답답한 일본 아줌마들이 의외로 많다.
지난 주에는 집에 베란다 청소를 부탁하자 “베란다는 밖이어서 서비스에 포함되는지 회사에 확인을 해야 한다.”며 회사에 전화를 해서 물어보는 아줌마가 있다. 또한 딸 아이가 열이 나서 병원에 갔는데 3 시간 서비스 시간 중 앞의 1 시간은 이동이고 뒤의 2 시간은 가사 지원 서비스인데, 이동 지원 시간이 끝나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회사에 확인을 하는 활동 보조 아줌마도 있다. 정말 이럴땐 복창 터진다.
이 같은 일본인의 일 처리방식은 단순히 답답한 차원을 넘어 일의 진행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은행에서의 펀드 가입 같은 일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현재 우리 부부가 제일 곤란해 하는 문제가 아이의 보육원 보내는 일이다. 이사 하기 전에는 아내의 직장과 집이 바로 붙어 있어서 직장 내에 있는 보육원 보내기가 수월했다.
그런데 이사 후 딸 아이가 다닐 보육원은 걸어서 5 분 정도 걸리는 곳을 다닐 예정이다. 물론 구청에서 보육원 보내는 활동 보조 서비스 시간을 충분히 지원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문제는 활동 보조인이 딸 아이를 혼자서 보육원에 데려다 줄 수 없다는 것이다.
활동 보조 서비스는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이므로 아이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고 따라서 아내와 함께 보육원을 가야하는데 이제 3 개월된 아들 녀석과 3 살된 딸 그리고 아내 이렇게 셋이 활동보조인의 도움으로 함께 보육원을 가야 한다. 단순히 생각해 보면 보조인 혼자 딸 아이만을 데리고 가는 것이 보다 안전할 터인데도 규정상 안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일본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세심하고 꼼꼼한 일본인들의 일처리 문화가 어떤 경우에는 또다른 베리어로 작용할 때가 많다. 전에 jpnews의 유재순 대표의 칼럼대로 한국인과 일본인을 한데 섞어 딱 반으로 나누면 나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