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학생들의 일상은 어떤 것일까. 학문? 연애? 여행? 아니면 취업준비? 대학생이라면 그나마 20대 초반 잠깐 열린 공간속에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의 장점일 것이다.
88만원세대라는 말이 한국의 20대를 상징하듯, 2000년대초 일본에도 취업빙하기 세대란 말이 있었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 반짝 경기를 타고 기업을 골라서 갈 수 있었던 것도 잠깐. 리먼 쇼크후 경기가 곤두박칠치면서 일본 대학생에게 다시 취업빙하기가 엄습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10년 오늘의 일본을 살아가는 일본대학생들의 꿈은 무엇일까. jpnews는 각 학생들의 자취방으로 직접 찾아가 그들의 생활과 미래에 대해 들어보았다. 첫 번째 인터뷰는 도쿄도 마치다시에 있는 오비린대학(桜美林大学) 국제학부 4학년 스기모토 에리카(23) 씨. 오비린 대학은 국제학부로 유명한 곳으로 영어나 중국어 등 외국어교육에 최대중점을 둔 대학이다.
스기모토 에리카 씨의 자취방이 학교 근처에 있는 탓에 도쿄 부도심 신주쿠에서 급행으로 40분 떨어져 있는 마치다역에서 스쿨버스를 타고 찾아갔다. 15분 정도 걸려 학교에 내리니 학교 앞에는 그 흔한 식당이나 찻집, 술집 하나 없었다. 이곳 학생들이 술을 마시거나 놀려면 버스를 타고 온 마치다역까지 다시 가야한다. 학교 안에는 간단한 편의점만 하나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일본 대학이 이처럼 학교 앞에는 유흥업소는 별로 없고, 근처 역까지 나가야 한다.
비가 와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에리카 씨의 자취방은 레오팔레스가 운영하는 곳이다. 보통 일본에서 집을 얻으려면 보증금,사례금,중개비만으로 20만엔 정도 들고 보증인 도 필요해서 까다롭지만, 레오팔레스는 조금 비싸긴 하나 보증금 외에 그런 것이 필요 없어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부동산회사기도 하다.
'고시히카리'라는 쌀과 니혼슈로 유명한 니가타 출신인 그녀에게 '오비린 대학 국제학부'로 온 까닭을 물었다.
"고2 때 런던에서 2주간 홈스테이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누군가가 일본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제가 일본인이면서도 일본문화나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에, 게다가 영어도 잘 못해서 그런 것을 대학 가면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니가타에는 국제학부가 없어서 이곳에 왔죠." 물론, 젊은이들이 모이는 하라주쿠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 도쿄에 오면 여러가지를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어디나 그렇지만
지방에서 성장한 사람은 대도시인 수도에 대한 동경이 있다. 그렇다면 왜 대학일까. 일본은 꼭 대학을 나오지 않고 전문학교를 나와도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일이 있다면 가능한 길이 있다고 하는데.
"일본 전문학교에 가는 사람은 두가지 타입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전문적인 분야에 집중하려고 하는 친구가 있는 반면, 그냥 놀려고 하는 친구도 있죠. 저는 고등학교 때에 '이거다'라고 결정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전문학교는 좀 그랬고, 그렇다고 바로 사회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좀 더 배우는 데는 역시 대학이 좋을 것 같아서." 고등학교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해서 그런지 대학 때는 귀가시간이 없어져서 좋았다는 그녀.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자유가 좋았다고 한다. 대학입시가 어렵지 않았냐는 물음에, 자기 추천으로 들어와서, 공부가 힘들지는 않았다고. 오비린 대학은 지정학교에서 추천을 받거나 자기가 추천을 하면 특별히 시험없이 들어갈 수가 있다. 고교 때 성적이 4.0 이상이면 가능하다.
졸업을 앞둔 요즘 대학 4년 동안 무엇을 배운 것 같냐는 물음에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렵지만, 수업을 통해 일본 사회의 구조, 이를테면 아무리 일해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워킹 푸어 문제나 실업자 등 사회문제나 현실에 대해 알 수 있었다"고 답한다. 그러면서 "대학 때 배운게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결국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에리카 씨는 영어를 배우러 호주에 봄방학 1개월 동안 다녀오기도 했다. 토익 같이 테스트용 공부가 아닌 직접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었다는 게 주된 이유. 그는 그곳에서 한국사람도 만났다. 한국사람들은 친해지면 '역사'나 '독도 문제'에 대해 곧잘물어왔는데, 자기는 서로 입장이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해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해외에 있을 때 새삼 자신이 일본인임을 실감했다고 한다.
"호주에 있을 때 1시 반에 모이자고 한 적이 있었어요. 일본 전철은 보통 분 단위로 움직이니까 3분만 늦어도 사과 안내방송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5분, 10분 늦은 것도 문제가 되는데, 인도인 친구는 1시 반 약속이라고 하면 1시 반에 집에서 나오더라구요. 그걸 보고 인도친구에게 화가 났다기 보다 일본인이 시간에 많이 묶여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본 전철은 운전자나 교통체계 미숙 뿐 아니라 강풍이나 폭설, 인명사고로 전철이 늦어져도 '피해'를 끼쳤다며 사과 안내방송이 나온다.
또, 보통 일본인은 수업 중에 질문을 안하는데, 자기는 자꾸 질문을 하니까, 일본인답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대학시절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호주를 다녀온 경험이다.
▲ 스기모토 에리카 방 ©jpnews / 야마모토 히로키 | |
오비린 대학 학비는 연간 114만엔 정도. 4년 동안 480만엔이 들었다. 학비와 방값은 니가타에 계신 부모님이 부쳐줬다. 방값도 월 7만 8천엔. 그나마 학비를 자기 힘으로 벌어야하는 다른 학생보다 나은 편이다. 그러나, 학비와 방값이 이외의 생활비는 자기 힘으로 해결해야했다. 1학년을 제외하고 대학 내내 그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1년 8개월간 주 4회 스케줄로 했고, 이자카야(대중술집)에서 1년간 주 3회 했다. 한달 아르바이트 수입은 4-7만엔선. 그럼에도 그에게는 현재 빚이 있다. 어찌된 영문일까.
"240만엔을 학교에서 빌렸어요. 장학금이라고 하는데요. 이곳 저곳 활동하는데 드는 교통비나 대학 세미나를 2박 3일 다녀오거나 하면서 쓴 돈인데요. 아르바이트 한 것만으로는 생활비가 부족했어요. 해외연수도 다녀오고 싶었구요."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240만엔(3100만원)이라는 빚이 있다니 놀랍다. 그러나 그는 무이자이기 때문에
"졸업하고 10년 이내에 갚으면 되는데, 취업 후 한달에 5만엔씩 상환하면 된다."면서 별 걱정을 하지 않는 눈치다. 또 보너스를 받으면 더 많은 금액을 상환할 예정이다.
확실한 것은 이 빚은 자기가 대학을 다니면서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자 하는 데 쓴 비용으로 이것만큼은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자기가 해결했다는 것이다. 물론 에리카씨가 금전감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1일 수업료가 2만 5천엔이라고 생각하면 휴강이라고 좋아하거나, 수업 안듣고 놀러가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수업만큼은 꼬박꼬박 들었다고.에리카 씨는 취업빙하기가 재도래했다는 작년 가을 취업에 성공했다. 일본 대학생은 보통 3학년 가을부터 취업활동을 시작해서 늦어도 4학년 여름까지는 그 다음해 들어갈 직장을 잡는 게 정석이다. 이렇게 취업을 위한 활동을 취직활동, 줄여서 슈카츠(就活)라고 한다.
"저도 여러곳 돌았어요. 40개 회사를 돌았거든요. 작년만 해도 학생들이 회사를 골라갔는데, 올해는 내정이 늦어지고 회사가 이 학생을 뽑으면 과연 회사에 도움이 될까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취업활동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취직활동하는데 아마 한 10만엔 정도 들었던 거 같아요." 10만엔이나 든 것은 일본이 교통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보통 회사를 알리는 1,2차 설명회 때는 교통비가 지급되지 않고, 서류 전형에서 통과한 뒤 3차 면접에서야 교통비가 나오기 때문. 뿐만 아니라 단정하게 보이기 위해서 정장도 2만엔짜리를 하나 샀고 머리도 갈색에서 검은색으로 물들였다.
그녀가 취직활동한 끝에 합격한 곳은 관동지방에 카페 체인을 운영하는 회사. 작년 10월 16일에 결정됐다. 초봉은 20만엔으로 종합직이다. 종합직이라는 신입사원으로 입사를 하면 각 점포로 파견 돼 일을 배우다가 나중에 점장이 되는 코스. 올해 4월 1일에 정식 출근한다는 그에게 원래 가고 싶었던 회사였냐고 묻자
"원래 해외와 거래하는 회사에 가고 싶었는데, 친구들이 접객업에 어울린다고 이야기를 많이 해서요. 이런 회사의 관리직도 괜찮은 것 같아요."라며 특별히 아쉬움은 없어 보인다.
에리카 씨는 아울러, 요즘 상황에서
"조건 따지다 보면 취직하기 어렵다."고 단정지었다. 일본 기업이 신졸자가 아닌 취업재수생은 잘 채용하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 졸업 시즌에 나이에 맞춰 취직을 하지 못하고 1년간 프리터(아르바이트로 생활을 하는 사람)로 지내면 그 사람은 앞으로 기업에 정사원으로 입사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한번 사회의 궤도에서 이탈한 사람은 영원히 비정규직으로 내모는 곳이 현재 일본사회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그런 사회의 냉정함이 묻어났고 그도 충분히 그것을 숙지하고 있는 듯 했다.
남자친구에 대해 물어보니 호주사람하고 1년 정도 사귀었는데, 만난건 한 번 정도라고. 스카이프로 대화했다고 한다. it 기술로 연애도 국제적으로 가능한 시대다.
그가 주로 쇼핑하거나 놀러다니는 곳은 시부야. 대학교 친구나 고교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다.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아 롯폰기도 가끔 들른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한국 찌개 요리를 좋아해서 한 달에 세 번은 고교 친구들과 코리아타운이라 불리는 신오쿠보를 찾는다고.
"한국 요리는 하나 시키면 여럿이서 먹을 수 있으니까요." 평범한 대학생이지만 에리카 씨의 특징은 아줌마 팬이 많다는 한류스타 동방신기의 팬이기도 하다는 점. 물론 한국요리 때문에 동방신기가 좋아진 것은 아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동방신기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별 흥미를 못느끼다가, 4학년이던 작년 5월 22일 본격적으로 흥미를 갖기 됐다. 3일후인 25일 처음으로 한정판 시디를 5,000엔 주고 산 것이 팬이 된 계기다.
"일단 음악을 들어보니 노래를 엄청 잘하는 거에요. 일본 아이돌에는 없는 스타일이었어요.그러니까 주저하지 않고 사는 자신감 같은 게 느껴졌다고 할까요.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저랑 같은 세대로 나이가 같아서 친근감이 들었어요. 동방신기 멤버 각 캐릭터가 재미있기도 하고요." 그는 이후 라이브에 4번 참가했고, 연간 회비 4,000엔을 내면 가입할 수 있는 팬클럽 회원이 됐다. 자기가 처음 팬클럽에 가입할 때만 해도 8만명이었는데, 6개월만에 2배인 16만명이 됐다고 알려줬다. 물론 동방신기 팬 중 70%는 4-50대 아줌마들이라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우리엄마가 51세인데요. 비슷한 연령대의 아주머니들이 라이브 이런 데 오면 엄청 사요. 그 티셔츠 등 굿즈(관련상품) 이런 거 있잖아요. 그분들에게는 동방신기 자체가 즐거움인 거죠. 그런 거 보면 구매력이 별로 없는 우리들은 조금 열받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뭐, 즐거움이 그것만 있는 건 아니니까. 아줌마들은 즐거움이 그거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이해되기도 해요." 확실히 물건을 마음껏 살 수 있는 50대 아줌마 부대와 생활비를 아르바이트로 충당할 수 밖에 없는 20대 초반의 젊은 팬과는 차이가 있었다.
▲ 동방신기 cd 등 ©jpnews / 야마모토 히로키 | |
학교에서 한국어 공부도 하고 있다는 그는 국제학부다 보니 같은 학부에 한국에 유학다녀온 친구도 4명이나 된다고 한다. 한국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를 물으니, 그냥 '단위가 따기 쉬워서'라고 답한다. 그러면서도
"동방신기가 tv에 나와서 일본어를 잘하는 것을 보면 나도 같은 세대고 열심히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은 동방신기로 인해 한국이 더 가까워지고 한국어 공부 의욕이 생겼어요."라며 솔직한 느낌을 말한다. 그러나 한국어 수업을 듣는 학생 30명 중 남자는 1명뿐이라며, 역시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방신기 이외에 '수퍼주니어','빅뱅'.'이병헌'도 좋다고 하는 스기모토 에리카.
한국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냐고 묻자 '징병, 옛날 일본 분위기, 욘사마, 김치' 이런 것을 이야기하다가 문득 고교 3학년인 2005년, 아시아를 테마로 응원단장을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한복을 입은 적이 있었는데 참 예뻤다고 한다.
그가 느낀 한국사람의 특징은?
"스킨쉽이 강한 것 같아요. 그리고 호주에서 느낀 건데 한국사람끼리 인사가 "밥 먹었어"라는 게 재미있었어요. 또 사람에게 뜨겁다라고 해야 하나 상냥하다고 해야 하나."
▲ 고교시절 응원단장 했던 때 사진, 태극기로 들고 있다. ©jpnews / 야마모토 히로키 | |
요즘 20대 일본 젊은이들은 인터넷은 어떻게 이용할까. 블로그를 하는지 물어봤다.
"블로그는 매일 써요. 주로 동방신기 이야기만요. 제가 주로 하는 블로그는 '아메브로'인데, 아메브로는 연예인 중심으로 최근 가장 많은 방문자를 확보한 블로그 서비스에요. 그 외에 커뮤니티로 믹시(한국 포털사이트의 카페 같은 것)도 하고 그러죠.집에 돌아오면 하루에 1-2시간 정도는 보는데, 믹시는 휴대전화로도 많이 봐요." 그는 덧붙여 아메브로에서 동방신기를 검색하면 검색 1위로 등장할 때가 많다고 한다.
일본은 스무살이 넘거나, 지방에서 올라오게 되면 혼자 사는 사람이 많다. 대학시절은 그에게 고등학교때까지와 달리 '혼자라는 자유'가 좋았다며,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즐거운 기억'이라고 강조한다.
에리카 씨는 졸업하고, 수도권의 여러 카페를 돌면서 몇년간의 경력을 쌓고 나면 점장으로서 하나의 점포를 관리하게 된다. 국제학부를 졸업하고 평범한 회사의 신입사원으로 변신하는 것에 대해서도, 자신이 현재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흥미를 느낀다며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회로 진출할 준비가 충분히 됐음을 알렸다.
취재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어느날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내주고 있는 그녀를 상상해봤다. 어쩌면 동방신기 음악이 그곳에서도 흐르고 있을지도.
(2부, 와세다대학 물리학부 4학년 학생으로 이어집니다)
▲ 동방신기가 인형들과 함께 놓여있다. ©jpnews | |
▲ 잠은 사다리 위 로프트에서 잔다고 ©jpnew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