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강제합방 100년을 맞이해서 일본 신문은 100년전 역사에 대해 꾸준히 다루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요신문은 100년 전 역사에 대해 제대로 맥을 짚고 논하기 보다 한국 내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 한국이 경제성장을 통해 생긴 자신감을 바탕으로 과거를 언급하는 것이 줄었다며 강조하고 있다. 특히 과거 역사의 잘못은 누구에게 있으며 그것이 지금까지 어떻게 청산되지 않고 상처로 남아있는지에 다룬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일본독자에게 한국이 그동안 일본에 대해 과거사를 언급한 것은 경제적 곤궁과 식민지 지배를 당한 피해의식 때문이라는 오해까지 갖게 할 만한 내용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도쿄신문(2월 15일자)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 중요한 계기중 하나였던 '동학농민전쟁'에 대해 해설해 눈길을 끌고 있다.
신문은 '기자의 눈'이라는 코너에서 "백년전, 일본은 대한제국(지금의 한국과 북한)을 식민지로 만들었다."며, 식민지화 과정에서 "조선 사람들의 저항운동을 억누른 끝에 이룬 합병이었다."고 강조한뒤, "한일 역사공동연구 위원회도 2월중으로 보고서를 공표할 예정으로 동아시아 근대사를 다시 돌아보는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 같다."며 글을 시작했다.
이 기사를 쓴 구리하라 기자는
작년말 방송한 nhk '언덕위의 구름'은 청일전쟁 개전 (1894년)의 계기가 된 조선의 동학당의 난에 대하여 간단한 나레이션으로 언급하고 있었지만, 지도자인 전봉준이 찍힌 사진도 몇 장 나왔으나 단 한사람의 이름도 표기되지 않았고 말한 뒤, "시바료타로의 원작에서도 '동학'이란 노화된 조선사회에서 일어난 신흥종교로 전봉준은 '포교하는 사람 중 하나'라고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라며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무지에 대해서 지적했다.
도쿄신문 취재에 응한 나카쓰카 아키라 나라 대학 명예교수는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시바료타로의 시각에 대해
"일본의 근대를 그린 시바료타로가 얼마나 조선을 경시했는지 나타내는 것으로 '대규모 무장봉기는 일본이 그 후 조선이나 대만에서 직면하게 되는 항일전쟁의 신호탄으로 조선사의 대사건'이다"라고 설명했다. 시바 료타로는 풍부한 자료와 재미있는 입담으로 일본의 근대사를 탁월하게 재구성한 역사소설가로, 국민작가로 불리는 사람이다. 그는 무엇보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사카모토 료마'를 복원,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로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그러나 그는 메이지유신 이후 팽창주의로 나선 일본의 행동에 대한 반성보다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대한 미화, 자국중심의 역사관으로 역사를 보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나카쓰카 교수는 "청일・러일전쟁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 목적으로 일으킨 전쟁이었다"라고 자리매김한 뒤,
"봉건적인 신분차별의 철폐나 토지의 균등한 배분을 요구하는 동학당의 난은 조선의 근대를 새롭게 열어제칠 가능성을 안고있던 대중봉기였으나, 일본이라는 국가가 그 꿈을 짓밟고 말았다"고 지적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도쿄신문의 구리하라 기자는 "지금 한국에서는 동학당의 난을 '동학농민혁명'이라고 부른다. 동학농민혁명은 처음에는 지방의 관리를 공격하고 있었으나 청일전쟁을 계기로 유학자도 가담하면서 대규모 항일투쟁으로 바뀌어 전국토로 확산됐다."며 ""청과 같이 진압을 명목으로 조선에 들어간 일본군은 조선정부군을 따라서 반도의 남단으로 반란군을 몰아세웠다. 마지막은 서남단에 있는 진도에서 토벌함으로써 끝났다."고 경과 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또한 문예춘추에서 발간된 세계전쟁범죄사전을 인용 "동학농민군에 대한 처분은 (생략) 지나치게 가혹했다 일본군의 기록에 따르면 전투에서 6천명, 처형 5천6백명이라고 한다. 인적소모가 5만에 달한다는 설도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일본 고교 교과서 18종 중에서 봉기의 진압을 다룬 것은 도쿄서적간 '일본사 b' 등 극히 일부"라고 지적했으며, 나카쓰카 교수는 "동학농민 전쟁 등 항일투쟁에 대해서 일본인의 대부분이 모를 것"이라고 되물었다.
이번달에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인 역사공동연구위원회는 고이즈미 정권하인 2002년 역사교과서문제나 수상의 야스쿠니 참배로 한일관계가 악화됨에 따라 양국정부가 시범케이스로 발족됐다. 07년부터 제 2기에 들어가 새로운 양국의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검토하는 자리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생겼으며 그 연구결과가 주목되는 상황.
신문은 민간차원에서도 한일간의 역사를 바로 보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음도 주목했다. '언덕위의 구름'의 무대, 마쓰야마시의 한 시민은 한국의 시민과 연계해 역사인식의 차이를 극복하고자 '공동역사 심포지엄'을 매년 개최하고 있고, 동학당 진압이 교과서에 실려있지 않은 문제도 다루면서 논의를 깊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한일양국 정부에 의한 공동연구위의 보고에 주목하고 싶다."라고 말해, 한일 과거역사 연구에 관한 다음 기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