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잘 될까요? 사실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다들 모인게 아닐까 하는데요."
3월 11일, 일본의 98번째 공항인 이바라키 공항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아시아나항공이 국제선 단독 취항을 결정해 일본에서도 연일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는 이바라키 공항.
이 날 열린 기념이벤트에도 그러한 관심을 반영한 듯 무려 100여명의 일본 매스컴 관계자들이 몰려 들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공항개항 보다 "왜 아시아나항공이 취항 결정을 내렸을까?"라는 의문이 더 컸다.
무엇보다 일본의 지역공항 경영상태가 극도로 안 좋다. 도쿄 하네다, 오키나와 나하 등 국토교통성이 직접 관리하는 공항들조차 80% 이상이 매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작년 7월 국토교통성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07년도 영업손익분기표에서 후쿠오카 67억엔, 나하 54억엔, 니이가타 23억엔, 하네다가 20억엔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공항은 오사카 이타미(43억엔), 홋카이도 신치토세(16억엔), 가고시마(2억엔), 구마모토(2억엔) 등 불과 네군데였다.
게다가 일본항공산업의 상징으로 불렸던 일본항공(jal)은 2조 3221억엔(한화 약 30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부채로 법정관리상태에 들어간 상황이다.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씨가 작년말 새로운 ceo(최고경영책임자)로 부임했지만 아직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3월 11일 오픈한 이바라키 공항. 국제선으로는 아시아나항공이 유일하게 들어가 있다. 4월부터는 스카이마크 항공사가 새롭게 들어온다. 아시아나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박철현/jpnews | |
이런 상황에서 신규공항을 만들고, 한국의 아시아나 항공이 국제선을, 그것도 매일 운항하겠다고 나섰으니 일본언론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11일 <제이피뉴스>가 만나본 일본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일본의 지역공항은 한두군데만 빼놓고 전부 적자다. 이런 와중에 신규공항을 만들고, 게다가 아시아나는 인천과 이바라키를 매일 운항하겠다고 한다. 과연 채산성이 맞아 떨어지는지, 어떻게 이런 결정이 나왔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 아시아나항공 윤영두 사장 ©박철현/jpnews | |
실제 이번 이벤트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서 건너온 아시아나항공 윤영두 대표이사와 현동실 일본지역본부장 등은 일본 매스컴들의 질문세례를 받았다. 애초 30분으로 예정된 기자회견도 1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소감을 물어보자 윤 사장은 "일본언론들 관심이 이렇게 대단할지 몰랐다. 구체적인 것까지 전부 다 물어보대"라며 혀를 내둘렀다.
"우리라고 해서 아무런 준비없이 무작정 취항하는 게 아닙니다. 기타간토(北関東) 지역을 커버하는, 또한 수도권 제3의 공항으로 이바라키 공항의 경제성은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선수를 친 겁니다. jal이 국내지역노선을 없애는 것과 우리가 이바라키에 취항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아시아나는 일본에서 계속 흑자를 기록해 오고 있기 때문에 회사입장에서는 당연히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합니다."(윤영두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
도쿄 인근의 공항이라면 역시 하네다, 나리타 공항이 유명하다. 최근 하네다 공항은 국제선이 새로 정비돼 연간 60만회의 이발착이 가능해졌다. 나리타 공항이 연간 30만회를 기록하고 있으니 이 둘을 합하면 90만회가 된다.
하지만 아시아나 측은 "도쿄, 사이타마, 가나가와, 지바 등 수도권 물동량을 생각해보면 적어도 100만회 이발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부족한 10만회를 이바라키 공항이 대신할 것으로 본다는 말이다.
사실 이바라키 공항은 수도권 진입에 걸리는 시간만 보자면 나리타 공항과 별로 차이가 없다. 11일 도쿄 중심가 다메이케산노(溜池山王)에서 이바라키 공항까지 승용차를 타고 가는데 걸린 시간 1시간 30분. 나리타 공항의 경우 보통 1시간 10분정도가 된다. 20분 정도 차이가 나지만 입출국 수속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이바라키 쪽이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 이바라키 공항 퍼스트 플라이트를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 모두들 들뜬 표정이었다. ©박철현/jpnews | |
반응은 괜찮은 편이다. 아시아나항공은 11일부터 인천~이바라키 노선에 141석 규모의 a320 기종을 투입하는데 11일 급하게 a321(171석 규모)로 바꿨다. 탑승율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 일본지역을 총괄하고 있는 현동실 본부장의 말이다.
▲ 현동실 일본지역본부장 ©박철현/jpnews | |
"애초에 70~75% 탑승율을 예상했다. 그런데 3월 예약상황 등을 고려한 결과 80%는 충분히 나오겠다고 판단했다. 오늘(11일)같은 경우엔 한국이 96%, 일본이 95%를 기록해 항공기도 바꿀 정도니까. 4월 10일까지 한달동안 171석 규모의 a321가 9회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예상을 뛰어넘는 고객여러분들의 호응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직접 만나본 현민 및 탑승객들도 긍정적인 의견이 대다수였다. 20명 단체로 사원여행을 떠난다는 우치다(43, 남) 씨가 재밌는 이야기를 전한다.
"작년에 경기가 어려워서 사원여행을 못 갔다. 사장님도 그게 미안했던 모양이다. 올해 신년하례식 인사하는데 갑자기 '이바라키 공항이 3월달에 개항하는데 한국의 아시아나항공이 들어 온다니까 멀리 갈 필요없이 그거 타고 한국가서 맛있는 거라도 먹고 오자'고 말하는 거다. 이바라키 공항 개항을 가장 기다린 건 우리들일지도 모른다(웃음)" 이바라키 현도 조심스럽게, 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바라키 현은 공항건설비 부담액을 줄이기 위해 처음 기획부터 운영 및 보수유지까지 철저한 로 코스트(low cost) 공항을 지향하겠다고 발표했다.
실제 이바라키 공항은 총공사비 540억엔 밖에 들지 않았다. 09년 6월 문을 연 시즈오카 공항의 총 공사비 1900억엔에 비한다면 엄청난 저비용이다. 시즈오카 현은 공항건설비로 무려 1665억엔(중앙정부보조금 235억엔)을 지출해 지금도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바라키 공항은 시즈오카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하시모토 마사루 현 지사는 "공항운영에 막대한 재정이 소요된다는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이바라키 공항을 통해 지역활성화, 일자리 창출은 물론 한일양국간의 가교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며 저비용 고효율 공항을 목표로 한다고 강조했다.
이바라키 현에는 126개의 골프장과 함께 일본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가이라쿠엔(偕楽園) 정원, 후쿠로다(袋田) 폭포, 쓰쿠바 연구단지, j리그 굴지의 명문 가시마 앤틀러스, 에도시대의 명장군 미토코몬(水戸黄門) 관련 유적등 관광자원도 풍부하다. 현동실 본부장은 "작년 4사분기부터 한국 관광객들이 일본을 찾는 비율이 예전수준을 회복하는 조짐도 보인다"며 "관광자원이 풍부한 이바라키 현도 충분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아시아나항공은 작년 3사분기까지 적자였지만 4사분기부터 흑자로 전환됐다. 윤영두 사장은 "올해 1사분기는 지난 86년 창립이래 사상 최대의 분기별 흑자기록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며 "2010년 예상매출액은 전년대비 16% 증가된 4조 5천억원, 영업이익은 3천 2백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불황일수록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아시아나 특유의 뚝심이 이바라키 공항 단독취항으로 이어진 셈이다.
기자회견 전만 하더라도 이바라키 공항과 아시아나항공에 부정적이었던 모 거대언론사 기자가 혀를 내두른다. 그는 익명을 전제로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한국기업들의 결단력, 적극성은 참 대단한 것 같다. 삼성도 그렇지만 오늘 아시아나항공 윤 사장 말을 들으면서 일본기업들이 왜 요즘 죽을 쓰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일본기업들은 한국기업들에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일본기업들은 기자회견을 열어도 애매모호한 말로 이리저리 넘어가는데 한국기업은 예스냐, 노냐 확실하게 말한다. 이런 부분은 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 무려 100명이 넘는 매스컴 관계자들이 모여 열띤 취재경쟁을 펼쳤다. ©박철현/jpnews | |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지역공항의 경우 처음 얼마간은 언론의 집중조명 등으로 인해 잘 굴러가지만 서서히 적자상태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지역공항 중 가장 많은 이용객 수를 자랑하는 고베공항은 애초 연간 319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첫 3개월간은 월간 목표수치를 초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서서히 이용객이 줄어 269만 7279명(탑승율 61%)에 그치고 말았다. 하시모토 도오루 오사카 지사가 "고베공항은 결과적으로 실패작"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할 정도다.
이런 가운데 아시아나항공과 일본의 저가항공사 스카이마크(국내선, 4월 16일부터 취항)만 취항한 이바라키 공항이 '채산성'에서 괜찮은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또 수도권 지역을 커버하는 제3공항으로 보기엔 아직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 현 관계자는 <제이피뉴스>의 취재에 "4월부터 도쿄역까지 직행하는 버스노선을 신설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어느 정도 규모로 할 것인지 아직 미정인 상태다.
입국관리국도 문제다. 이벤트를 진행한 모 관계자는 "현에서는 전폭적인 지원을 하려 하지만 세관 및 입국관리국이 너무 딱딱하게 대한다. 자기네 일이 늘어나는 게 귀찮은 거다. 융통성이 제로다"라며 불만을 표한다.
"어제 스카이마크 사장이 이바라키에 왔다. 4월부터 들어오니까 그거 협의하려 공항사무실에 온 건데 시큐리티 체크를 몇 번이고 받았다. 공항이 아직 개항한 것도 아니고 취항 항공사 사장이라면 어느정도 융통성을 발휘할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게 없다. 한국관광객들 골프치러 왔다가 골프채 휘두를지도 모른다(웃음)." 하지만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성공했을 때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법이다. 이미 이바라키 공항은 공사단계에서 저비용 공항을 실현해 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이바라키 현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가며 적극적인 영업전략, 팩키지 투어 등을 내 보이고 있다.
드라마 '아이리스'로 대박을 친 아키타 현의 사례를 보더라도 한국과 일본지자체의 환상적 결합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됐다. 이바라키 공항과 이바라키 현, 아시아나항공의 도전이 과연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 2층 전망대에서 활주로를 내다 보고 있는 견학방문객들. 기대반 우려반의 심정이라 한다. ©박철현/jpnews | |
▲ 공항 내에서도 열띤 취재경쟁이 벌어졌다. nhk 이바라키 지국은 몇 팀이나 나왔다. ©박철현/jpnew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