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학교만이 고교무상화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일본사회에 새로운 형태의 '차별'이 추가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교무상화로부터 조선학교를 배제하는 것에 반대하는 긴급행동실행위원회'(이하 실행위)의 마쓰노 데쓰지 씨는 "조선학교 제외는 재일조선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 일본인들의 문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27일, 조선학교 무료교육 대상화 제외조치에 반발하는 시민들이 도쿄 요요기공원 옥외광장에 몰렸다. 이날 개최된 '고교무상화 조선학교 제외에 반대하는 긴급행동(이하 긴급행동)'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휴일에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700여명이나, 게다가 참가자들은 200여명의 조선학교 재학생들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일본인들이었다.
▲ 3월 27일 도쿄 시부야 요요기공원 옥외광장에서 열린 '긴급행동' 집회. 700여명이 몰렸다. ©박철현/jpnews | |
이번 긴급행동을 처음으로 제안한 다치카와조선학교지원네트워크・우리의 모임 관계자들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딱 일주일전에 이대로 가만히 있어선 안되겠다 싶어서 긴급행동을 제안하는 메일, 전화, 팩스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어제까지 무려 69개 단체가 실행위에 참가의사를 표시해 왔습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반향입니다." 실행위는 이번 행사를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행사를 공개할 경우 '재일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모임'(이하 재특회) 등 우익단체들이 집회정보를 입수하고 방해공작에 나설 것을 우려해서 였다. 마쓰노 씨가 말한다.
"이번 행사에는 조선학교 재학생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소식이 있어서요. 혹시라도 공개 게시판, 블로그, 트위터 등에 올렸다가 학생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해서 몰래 연판장 돌리듯 알렸습니다."극히 제한된 홍보수단을 사용했음에도 700여명이나 몰렸으니 주최측으로서는 놀랄 만도 하다. 다른 단체의 일본인 참가자는 "보통 이런 류의 집회에는 100명 정도 모이면 많이 모였다고 하는데, 이정도까지 관심이 높은지 몰랐다"고 덧붙인다.
특기할 점은 민주당 소속 시의회 의원들도 대거 참가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조선학교 제외는 지역에서 재일코리안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우리들에 있어선 절대 있어서는 안될 차별행위"라며 누구보다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긴급행동' 집회의 사회를 맡은 도쿄 구니타치(国立)시 우에무라 가즈코 시의원은 "우리 구니다치는 물론, 미타카, 하치오지 등 인근 시의회들은 이번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대상제외가 부당하다는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고 말한다.
"중앙정부 의원들은 눈치보느라 혹은 정말로 그 실체를 몰라서 제3자기관을 만들어 조선학교 교과과정을 체크해 보겠다고 했지만 우리들처럼 지금까지 오랜 시간 같이 생활해 본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럼 그런 체크를 지금까지는 안하고 뭐했냐' 라는 반문을 할 수 밖에 없다.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일본땅에 태어나 60년이나 같이 생활해 오고 있는 사람들의 교육방식을 지금까지 몰랐고 확인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다."(우에무라 시의원)
조선학교 졸업생이기도 한 재일동포 김순식 변호사는 논리적, 법리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번 대상화 제외 방침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년전 도쿄조선학교를 졸업한 졸업생 입장에서 이번 집회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신 것에 대해 너무나 감사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처음 나카이 히로시 납치문제담당장관의 말이 언론보도를 탄 이후 정치적 상황을 교육에 끌어들이지 않겠다고 발언했다가, 조선학교의 수업내용을 체크할 수 있는 제3자기관을 만들어 대상화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왜 제3자기관을 만드느냐? 북한과 국교정상화를 맺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측에서 교과과정을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래서 일본내부에 제3자기관을 만들어 교과내용을 측정한 뒤 대상화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까지 조선학교 졸업생들은 별다른 문제없이 일본대학들도 진학해 왔고, 사회에서 공인회계사, 변호사, 의사, 교수 등 수많은 지식인 층에서 활약해 왔습니다. 교과과정도 전부 문부과학성, 도쿄도에 보고해 왔습니다. 지적받은 적이 없었어요. 확인불가능하다고 말하는데 그럼 지금까지는 다들 뭐한 겁니까?
그리고 대만, 중국, 한국, 브라질, 인터내셔널 학교 등은 이번 무료대상화에 포함됐지요. 이들의 교과과정은 체크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만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공식적으로 국교정상화를 맺은 적이 없습니다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법리적 관점에서 봤을 때 교육의 평등권을 명시한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 조선학교 재학생의 발언도... ©박철현/jpnews | |
재학생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도쿄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에 재학중인 림설주(17) 학생은 "이번 제외조치를 접한 전국의 수많은 분들이 위로와 격려의 편지, 말씀을 보내주셔서 너무나 고마웠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저는 이 고교교육 무상화 법안이 정말 좋은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또래 많은 친구들이 공평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으니까요. 하지만 왜 우리 조선학교만 제외되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 친구는 인터넷을 접속했다가 '조센징! 더러운 새끼들! 돌아가라!'라는 게시물을 읽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도 너무 슬펐고, 화가 났습니다.
저희들은 일본인, 조선인 그런 국적구분을 안 합니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우지 않습니다.다 좋은 친구들이고 우정을 나누면서 사이좋게 지내고 싶습니다. 졸업하면 북일 간의 가교역할을 하려고 하는데 왜 우리만 민족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차별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500석 규모의 옥외광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차기 시작해 거리행진이 시작될 오후 3시 30분 즈음에는 700여명으로 불어났다. 이 때문에 경시청 관계자와 마쓰노 씨 등이 옥신각신하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경찰측 관계자에 직접 '왜 그러냐? 무슨 트러블이라도 있나?'라고 물어보자 이렇게 답한다.
"집회신고인원이 최대 500명이었는데, 지금 훨씬 초과하는 바람에 규정위반이 아닌지 검토했을 뿐이다. 싸우지 않았다(웃음)." 이때만 하더라도 집회 참가자가 500명 이상임을 인정한 경찰이 거리행진이 시작되자 맨 앞 집회선도차량에 탄 경찰이 확성기에 대고 큰 소리로 외친다.
"지금부터 집회참가자들의 거리행진이 시작됩니다. 거리를 지나는 시민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우리 경찰이 거리행진을 인도하겠습니다. 오늘 집회참가자 수는 320명입니다." 숫자는 축소됐지만 250명이나 동원된 경찰측의 탁월한 보디가드 덕분에 실행위 측이 염려했던 우익들과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본인 참가자들은 <제이피뉴스>의 취재에 "조선학교 문제는 조선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 일본인들의 문제다"(54세, 여성, 주부), "나는 북한을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짐을 학생들에게 떠넘겨서는 안된다(23세, 남성, 일본학교 교사), "학생들이 불쌍해서 참가했다"(65세, 남성, 무직) 라고 답했다.
▲ 요요기공원 집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30분간 시부야 거리를 행진했다. ©박철현/jpnews | |
▲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 모인 시민들도 거리행진을 지켜봤지만... ©박철현/jpnews | |
하지만 지나가는 행인들은 대부분 이번 사안에 대해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단 시끄러우니까 싫다. 데모하려면 딴 데서 하지, 왜 시내 한복판에서 하는지 모르겠다"(20대 중반 커플)"잘 모르겠다. 고등학교 졸업한 지 오래되어서 관심도 없다"(20대 초반 남성)"조선학교가 뭐냐?"(교복입은 10대 여고생)"정부가 결정했으면 따라야지! 무조건 따진다고 해결된다면 다 데모하지, 뭐하러 가만 있나?"(50대 남성) 한편 일본정부는 조선학교 교육무상화 대상 포함여부에 대해 오는 6월까지 1차 심의를 끝내겠다고 말하고 있다.
실행위는 "6월 (조선학교가) 포함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제이피뉴스>의 질문에 "일본사회에 새로운 형태의 '차별'이 다시 추가된 것으로 보고 조직적으로 투쟁해 나갈 것"이라 말한다.
실행위에 참여한 단체들 중에는 성향상 친(親)민주당 파로 분류되는 곳들도 많다. 익명을 요구한 집회참가자는 "7월 참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는데, 법리적 해석여부를 떠나 과연 민주당이 우리 전통적 지지자들의 요구를 100% 묵살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며 정치적(?) 해결을 볼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행진이 끝난 후 가나가와 조선학교의 여학생들이 수줍은 미소를 띠며 "우린 굴하지 않아요!"라고 외친다. 그 수줍은 미소가 6월 이후 환한 웃음으로 바뀔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 당사자인 학생들도 직접 참여. 혹시 있을지 모르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열안쪽에서 걸었다. ©박철현/jpnews | |
▲ 밝게 웃는 조선중고급학교 학생들. 6월달엔 잘 풀리길 기대해 본다. ©박철현/jpnew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