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다도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기자 여러분들이)위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합 종료 후, 이누카이 도모아키 일본 축구협회 회장은 몰려든 보도진에게 오카다 다케시(53) 감독을 위로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2월 6일에 열린 중국과의 시합에서 0-0 으로 비길 때와 2월 14일 한일전에서 3-1로 패배했을 때 야유하는 관중을 향해 "더 야유해달라" 말하고 "보는 사람이 재밌는 축구를 해라" 등을 외치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7일, 오사카 나가이 경기장에서 열린 '2군' 세르비아와 맞붙은 홈경기에서 0-3 이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패배한 후 오카다 감독은 꽤나 충격을 받은 듯 하다.
그는 시합 종료 후 tv 중계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담배에 먼저 불을 붙였다고 한다. 깊게 담배연기를 내쉬며 담배 한대를 끝까지 피우고 카메라 앞에 섰을때는 이미 방송 시간이 종료된 후였다. 결국 방송국과의 계약위반으로 일본 축구협회가 나서 방송국에 사죄하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스포츠 호치> 등 일본 스포츠신문들의 보도에 따르면, 악몽같던 시합이 끝난 다음 날인 8일, 귀경을 위해 간사이 공항을 찾은 오카다 감독의 모습은 한마디로 '불쌍함의 극치'를 보였다고 한다. 초췌한 오카다 감독의 모습을 본 기자는 그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전날 마신 술기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입에서는 술냄새가 풍겼고, 안경 안쪽에서 항상 날카롭게 빛나던 눈은 충혈되서 멍해보였다" "누군가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축구는 하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축구 철학을 공언해온 오카다 감독은 이 날 기자단에게
"정작 중요한 멤버가 없어져 버리니 내 철학을 지킬 수 없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경기에서 프리킥 이외에 잘 보이지도 않았던 팀의 기둥 나카무라 슌스케를 두고 한 말이다.
오카다 감독은 고집해오던 포백도 전환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이 날
"적합한 멤버가 없는 경우 쓰리백으로 전환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2008년 바레인전 이래 쓰리백을 봉인, 고집스럽게 자신의 전술을 밀어붙여온 오카다가 평균 신장 187cm 장신 선수들에게 제대로 발 한번 뻗어보지 못한 수비수들(주장 겸 수비수 나카자와는 시합이 끝난 후
"시합 내내 공포를 느끼면서 싸웠다"고 밝히기도 했다)을 보며 깊은 고민에 잠긴 것이다.
세르비아전 시합 전 인터뷰에서 오카다 감독은 "월드컵 출전 선수 명단이 정해졌냐"는 기자의 질문에
"70% 이상 정해졌다"고 대답한 바 있다. 하지만 일본 언론들은
"이번 참패로 국내파는 '완전히 단념' 한 것으로 보인다" 고 밝혔다. 결국은 남은 2개월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럽을 돌아보면서 해외파들에게 구원 손길을 뻗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예상대로 오카다 감독은 공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일정을 밝혔다.
"다음 주에 유럽으로 가겠다. 스케쥴은 아직 확실히 정하지 않았지만 일본 선수가 나오는 시합을 보고 오겠다"고 말한 뒤 그는 눈길도 주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세르비아전의 일본 내 평균 시청률은 8.3%. 같은 시간대 최하위를 기록했다. 4년전 지코 재팬의 독일 월드컵 멤버 발표 직전 시합에서 21.3%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큰 차이다.
게다가 시합 후 일본 축구협회에는 축구팬들로부터 항의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후지 석간>의 전화 인터뷰에 축구협회 홍보부 관계자는 곤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고 한다.
"(경기 끝나고)팬들로부터 전화가 150통 정도 왔네요. 물론 경기 내용에 관한 항의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격려요? 있었습니다. 딱 2통이요!"
▲ 축구 협회 앞에서 항의하는 일본 축구팬들. 항의서에는 "엇나가는 것은 오카다다" "오카다 그만둬!" 등이 적혀있다. ©후지석간 | |
그는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150통이라는 수는 예상보다 적었어요. 2월에 한국에게 참패했을 때는 항의 전화가 200통이 넘었습니다. 그 중에는 '항의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엉망이다'는 팬도 있었죠." 항의 전화가 가장 많았을 때는 1000통이 넘기도 했다는 그는 이번 경기 결과에 사람들이 이미 질려버린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국민들의 분노를 넘겨 체념 모드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산케이 스포츠>가 경기 종료 후 실시한 앙케이트에서는 월드컵 1차 리그에 대해
'일본 국민의 50%가 3전 전패를 예상, 80%가 1승도 할수 없다고 예상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교토부 가메오카시에 사는 나카야마 겐타로(28) 씨는
"부상자가 있다고는 하지만 월드컵을 코 앞에둔 상황에서 이건 너무..."라며 말을 잇지 못했고, 오사카부에 거주하는 회사원 교타 겐이치(37) 씨는
"지고 있는 상황에서 천천히 볼을 돌리다니 말이냐 되는 소리냐"며 격노했다고 한다.
남은 기간은 2달, 오카다 감독은 전술을 성공할 수 있을까.
그는 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지휘할 때도, 1차 리그에 같은 조였던 아르헨티나의 시합을 관전하고 나서 급히 쓰리백으로 전술을 바꾼 적이 있다. 그 결과는, 1차 리그 3전 3패라는 슬픈 과거로 남았다.
"월드컵 때가 되면 다시 오를 것"이라며 떨어져가는 인기에도 그의 손을 놓지 않았던 일본 축구협회를 위해서도, 그가 반드시 이루겠다고 밝혔던 '4강 목표'를 위해서도, 지금 오카다의 머릿 속은 전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