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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아내의 세 아이 출산기 (1부)
[시즌 3] 예정없던 임신, 아내는 걱정했지만...(1부)
 
박철현 기자
'2005년 3월 6일 미와코와 나는 마산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비로소 정식 부부가 됐다.'
 
써놓고 보니 참 별 것 아니다. 하지만 지난 6개월간 연재했었던 시즌 1, 2는, 어떻게 보면 이 짧은 문장을 쓰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이 한 문장을 쓰기 위해 무려 4만 5천자나 썼다니. 다시 쓰라고 한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 쓸 것 같다.
 
심리적 이유도 있지만, 물리적 제약이 너무 많이 생겨 버렸다. 사실 지난 주에 시즌 3의 대강 포맷을 잡아보려 했다. 그런데 안 된다. 첫 몇 줄 쓰다 보면 큰 딸 미우가 득달같이 달려온다.
 
"아빠 또 기사 써?"
 
▲ 아이 셋 키우기 어렵다. 하지만 즐겁기도 하다. 왼쪽이 미우, 뒷쪽이 유나, 오른쪽이 준이다.   ©다카하시 미와코
어느샌가 '기사'라는 말을 알아 버린 미우. 그러고 보니 미우는 기자라는 말도 안다. 얼마전 아내 친구 가족들과 단체로 신주쿠교엔에서 꽃구경을 했다. 
 
처음보는 얼굴도 있다. 서로 인사하고 잡담과 함께 술잔을 기울인다. 그런데 이 날 처음 알게 된 아내 친구가 "아빠 상은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어 온다. 뭐라고 말할 지 좀 난감했다.
 
'기자'라고 말하면 간단하긴 한데, 뭐랄까 좀 그런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그냥 it기업에 다닌다고 하거나 번역하는 사람이라 그런다. 하긴 공역까지 치면 세 권이나 번역했으니 나도 어엿한 번역가지, 뭐. 적당히 얼버무리려는데 내 앞에 앉아있던 미우가 잽싸게 선수를 친다.
 
"우리 아빠, 기자예요. 기자."

 
너무 크고 또렷하게 말해서 옆 자리 모르는 사람들까지 이쪽을 쳐다본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보통 사람들과 다른 독특한 직업을 가진 이들은 주목받기 마련이다.
 
"아, 네. 기자하고 있어요."
 
내가 다시 말하면, 금세 미우가 덧붙인다.
 
"근데 한글로 써서 뭔 말인지 하나도 몰라요."(でもハングルで書くからわかんないんだよね。)
 
배시시 웃는 미우. 어느새 이렇게 많이 컸다. 딸자랑하면 팔불출이라 그런다. 그런데 정말 미우는 잘 컸다. 유나, 준을 생각한다면 미우는 쉽게 키웠던 것 같다. 잔병치레도 거의 없었고 어딜가나 인기를 독차지 했었다.
 
미우는 정말 우연의 산물이었다. 나는 지금도 미우를 가부키쵸의 축복을 받은 아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우리는 바로 일본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날 어머니가 결혼식 축의금 중 일부를 떼어내 봉투에 넣어서 주셨다. 두툼했다.
 
"너거들 신혼여행도 못 갔는데 일본가거들랑 맛있는 거라도 사무라이(사먹어라)."
 
나중에 열어보니 100만원짜리 현찰다발이 두 개나 들어있다. 미와코는 "배 터지겠다"고 룰루랄라 휘파람을 불어댔다. 일본에 돌아오자 마자 그 돈으로 신주쿠 탐방에 나섰다. 오다이바 신혼여행 때와 비슷한 여행이다.
 
결혼식을 통해 한국을 더 잘 알게 된 미와코는 신주쿠 코리아타운을 빠짐없이 돌아보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신주쿠 코리아타운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잘 몰랐다. 일본인 친구들이 어디 식당이 좋냐고 물어오면 그냥 아는 형이 운영하는 '대한민국' 만 소개해줬을 뿐이다.
 
우리는 가부키쵸 도요코인 호텔에 3박 4일간 투숙했다. 사실 집에서 자도 되지만 신혼여행 분위기 내려고 일부러 그랬다. 이 호텔 비록 비즈니스급이지만 상당히 싸고 시설도 괜찮다. 이왕 분위기 낼려면 신주쿠 프린스 호텔이나 게이오 프라자도 있다. 하지만 미와코가 도요코인 호텔을 주장했다.
 
"어머니가 먹는 데 쓰라고 했잖아. 다른데 쓰지 말고 먹는 걸로 다 써야지. 배 터지도록 말야. 하하하."
 
아침에는 콩나물해장국과 설렁탕을 먹고 점심엔 삼계탕을 먹었다. 저녁은 물론 삼겹살. 미와코는 매일 삼겹살을 먹어도 질려하지 않았다. '돈짱'(신주쿠에 있는 삼겹살 전문 체인점-글쓴이주)은 우리에게 많이 고마워해야 한다. 
 
사이사이에는 신주쿠 일대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샀다. 도큐핸즈에서 야나기소리가 직접 디자인한 후라이팬을 샀고, 그 옆 다카시마야 백화점에선 유나이텟도 아로우즈의 체크무늬 남방을 샀다.  저녁식사가 끝난 후엔 두어시간 정도 전국민적 도박 파친코를 하기도 했다. 나는 주로 잃었지만 미와코가 항상 땄다. 그럼 그 돈으로 밤에 또 놀았다. 
 
신주쿠구청 건너편 골덴가이(ゴールデン街, golden street)에서 처음보는 사람들과 떠들면서 한잔씩 했고 심야에는 가부키쵸 언저리의, 아는 한국인 마마가 운영하는 스낙크에서 아주 저렴하게 놀았다. 그렇게 신주쿠를 섭렵하고 호텔에 돌아오면 언제나 새벽 2시가 넘어 있었다.
 
미우는, 이 때 생겼다.
 
우리는 아이를 가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미와코는 준야를 유산한 이후로 임신자체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둘만의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와코는 지금도 이렇게 말한다.
 
"오빠하고만 단 둘이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해서 참 아쉬워."
 
물론 '덧붙임'도 빼놓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미우가 건강하게 태어나고 또 씩씩하게 자라줘서 고맙기도 해. 오빠가 회사가고 없는데 미우마저 없었다면 정말 끔찍했을것 같아."
 
신주쿠 신혼여행을 끝내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취재현장으로 갔고, 미와코는 임대나온 물건들을 보러 다녔다. 평일을 바쁘게 보냈고, 토/일요일엔 자전거를 타고 놀러 다녔다. 기치죠지, 고엔지, 나카노가 지겨워지면 후추(府中)로 방향을 틀 때도 있었다.
 
아사히 비어 공장에서 공짜 맥주를 마시거나 후추 경마장에서 몇 백엔씩 쓰기도 했다. 보통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렇게 한달 반이 지났다. 한참 기사를 쓰고 있는데, 미와코가 문자를 보내왔다.
 
"오빠, 2주일이나 지났는데 생리가 없어. 불안하다. 올 때 그것 좀 사와줘. 난 못 사겠어. 무서워서."
 
미와코가 말하는 '그것'은 임신여부를 확인하는 리트머스 킷이다. 이 문자를 보는 순간 아! 임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생리주기가 매우 규칙적인 미와코가 생리가 없다는 말은 곧 임신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그 때 실수를 한 것 같다. 가부키쵸라는 동네가 그런 구석이 있다. 사람을 방심하게 만드는 욕망의 거리.
 
집에 돌아가자마자 미와코에게 리트머스 킷을 건넸다. 미와코는 떨리는 손으로 킷을 건네 받으면서 물어온다. 손 못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다. 
 
"임신일까?"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마도... 그 때 내가 실수한 것 같아."
 
미와코가 눈을 흘긴다.
 
"대체 왜 그랬어. 아, 정말..."
"일단 확인해 봐. 아닐 수도 있잖아."

 
마지막 말은 그냥 위로차원에서 던진 것일뿐 미와코와 나는 둘 다 임신을 확신하고 있었다. 3분후 미와코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두려움과 불안이 미와코의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미와코는 아무 말없이 나에게 리트머스 킷을 던졌다.
 
한 가운데에 아주 굵은 파란 선이 뚜렷하다.
 
불안한 미와코와는 달리 정작 그 선을 보자 눈 앞이 뿌옇게 흐려져 왔다. 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이다. 이 파랑색 선이 아이의 약동하는 생명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준야 때문일지도 모른다. 준야의 임신을 확인했을 때 이 파랑색 선은 매우 희미했다. 준야는 결국 미와코 뱃속에서 8주만에 목숨을 거뒀다. 미와코는 자기 탓이라며 엄청난 자기혐오와 실의에 빠졌다. 하지만 담당 산부인과 의사는 매우 냉철하게 미와코를 위로했다.
 
"당신 잘못 하나도 없어요. 아이 본인이 약한 겁니다."
 
의사의 말을 전해듣고 나는 리트머스 킷의 희미한 선을 떠올렸다. 그 선에서는 생명력을 느낄 수 없었다. 어쩌면 준야의 운명과 희미한 선은 정확하게 포개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때와 달리 이번 선은 너무나 뚜렷하다. 매우 질긴 생명력이구나, 넌 이제 10개월 후면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겠구나를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눈앞이 뿌연 채 두려워하는 미와코를 꼭 껴안았다.
 
"정말 축하해. 내일 같이 병원가자. 걷지말고 택시타고 가자."
 
나의 돌연한 행동에 미와코는 흠칫했다. 하지만 이내 내 등을 부드럽게 감싸오면서 진정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오빠. 아직 모르니까 내일 정식으로 확인되면 다시 축하한다고 꼭 말해 줘."


물론 불안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갖기 전까지 몇 번 상상해보기도 했지만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불안한 것이다.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하지만 리트머스 킷의 또렷하고 힘찬 파란선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가히 마법의 능력을 발휘했다. 그 선은 어느샌가 서로의 걱정을 자연스럽게 해소해 주었고 '연인'에서 '부모'라는 새로운 스테이터스로 나아가는 발판을 제공해 줬다.
 
2005년 4월 20일, 미와코와 나는 무사시노적십자(武蔵野赤十字) 병원에 갔다. 인근에서는 가장 큰 종합병원이다. 산부인과 시설도 잘 되어 있다. 기다리던 30분간 우리는 계속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다카하시 미와코 씨."

 
접수대 간호사가 미와코 이름을 불렀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미와코는 내 손을 다시한번 굳게 잡았다. 땀이 배어 나왔다. 임신은 너무 빨리 현실로 다가왔다. 진찰대 위에 누워 사진을 찍던 의사는 불과 몇 분만에 임신했다고 말한다.
 
"축하드립니다. 임신하셨어요. 6주입니다."
 
▲ 2005년 4월 20일. 큰 아이 미우가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날    ©박철현
 
이미 짐작했기 때문에 담담했다. 미와코는 진찰대에서 일어나자마자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건강한가요?"
 
의사는 건조하고 짧게, 그러나 단호하게 답했다.
 
"네. 건강합니다. 아주."
 
상식적으로 본다면 말도 안된다. 검은 점이 찍혀있고 그 안에 하얀 타원형이 아이라고 하는데 그것만 보고 건강한지 아닌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런데도 미와코는 '건강한지'를 물어봤고, 의사 선생도 마치 보조를 맞추듯 '건강하다'고 말한다. 그것도 '아주'라는 수식어를 붙여 가며.
 
하지만 미와코는 그 말에 얼굴이 활짝 펴 졌다. 진찰실을 나오면서 몇 번이고 자기 배를 쓰다듬는다. 사진도 몇 번이고 들여다 본다. 나에게도 강조한다.
 
"오빠, 아이가 건강하대. 아, 정말 다행이야!"
 
나도 웃으면서 답할 수 밖에 없다.
 
"그래. 정말 다행이다. 건강하다니."
 
병원건물을 나와 택시를 기다리면서 미와코 배를 한번 만졌다. 겉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은데 이 안에 아이가 들어가 있다니. 실감이 안 난다. 가볍게 이곳저곳 만지는데 갑자기 미와코가 내 손을 자기 쪽으로 잡아끈다. 그리곤 나를 꼭 껴안는다.
 
"오빠, 축하해. 오빠와 나의 아이야."

 
언제나 그렇듯 미와코가 먼저 말해왔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미와코의 축하를 듣고 나도 조용히 말했다.
 
"축하해. 정말로. 우리 잘 키우자."
 
택시운전수가 계속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우리는 한동안 포옹한 채로 있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는 아직 까만 점에 불과했지만, '미우'(美宇)가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냉혹했다.
 
첫 아이를 유산했던 미와코는 두번째 아이까지 유산하면 임신이 아예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예 1개월간 무급휴가를 받았다가 결국 회사를 관두고 말았다. 1개월 후 일단 복직했지만 임산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직장행태가 견딜 수 없어 복직 6개월만에 사표를 내고 말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했지만 그게 그렇지 않았다. 방세 12만엔에 이런저런 세금, 기본식비만으로 내 월급은 전부 사라졌다. 뭔가를 사려면, 아니 기본적인 병원비조차 아내 저금에서 나갔다. 한달 버텨봤지만 도무지 이러다간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만이라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아이가 태어난다. 책임을 느끼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계획성있는 생활이 필요하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던 10월 어느날 미와코가 무겁게 말을 꺼냈다.
 
"오빠, 불편하겠지만 당분간 우리 집에 들어가서 살래?"
 

■ 2부 "일본인 아내가 장인어른을 싫어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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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5/02 [01:00]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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