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을 중계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지난 6일, 오자와 사키히토(小沢鋭仁) 일본 환경부 장관이 처음으로 개최한 '오픈 기자 회견' 에는 프리 저널리스트를 비롯한 인터넷 미디어 기자들 총 24명이 참가했다.
15분 가량의 짧은 시간동안 이루어진 질의응답시간은 일본 최대의 사용자 창작 동영상(ucc) 제공 사이트인 '니코니코 동영상(にこにこ動画)'에 생중계 됐다. 이 사이트에는 중계 중 동시접속자수가 2천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러한 '오픈 기자 회견'이 처음인 오자와 장관에게는 일본 네티즌들의 날선 비판도 실시간으로 날아들었다.
"(이미 오픈 회견의 경험이 있는)다른 장관들의 회견을 보고 좀 더 공부하고 와!""답변 엇나가지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어" '기자 클럽' 회견에 익숙해져있는 일본 관료들처럼 오자와 장관도 다른 날보다 좀 더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다.
뿌리깊은 폐쇄적 정보 독점 50년에 걸친 자민당 집권기에는 꿈도 꾸기 힘들었던 정부 부처의 '오픈 기자 회견'은 민주당의 하토야마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부터 그 숨통이 조금씩 트이는 상황이다.
일본에는 자체적인 승인을 통해서만 가입을 허용하는 '기자 클럽'이 존재한다. 한국의 '기자단'과 비슷한 성질의 이 단체는 유력 신문사와 방송국, 통신사 등 거대 매스미디어 기자가 연합하여 일본의 각 부처에서 나오는 정보를 독점으로 수집한다.
정부 부처와 관청에 마련된 기자실에서 그들은 스스로 기자회견을 주최하며 그들이 주최한 회견에 비가입자가 참가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반드시 회견에 참가하는 회원 '전원'에게 허가를 받아야한다. 그 중 한군데라도 반대하면 참가가 불가능하며, 만장일치로 참가를 허가받는다더라도 회견 후 질문 등을 하는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비가입자인 잡지나 외신, 프리랜서 기자들은 관계자를 통해서 정보를 수집하거나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하는 수 밖에 없다.
1890년대에 결성되어 지금까지 지속해 온 일본의 '기자 클럽'. 전세계에서 이 같은 뿌리 깊은 정보 독점이 이뤄지는건 일본과 대한민국, 단 두 나라뿐이다.
▲ 가와사키 시청 '기자 클럽' 모습 ©jpnews | |
민주당 집권 후 진행되는 오픈화 가장 먼저 '기자 클럽' 비가입 미디어에도 회견장의 문을 열고자 시도한건 1994년 신생당 시절의 대표였던 오자와 이치로(小沢一郎) 다. 그러나 기존 미디어들과 대립에 부딪혀 도중에 그 계획은 좌절되었다.
이후 자민당 정권 하에서는 지지부진하다가 '기자 회견 오픈화'를 공약 중에 하나로 넣기도 한 민주당의 하토야마 정권이 집권 후, 오카다 가츠야(岡田克也)장관이 지휘하는 외무성이 가장 먼저 그 문을 열었다.
'사전에 등록한 매체라면 어떤 매체라도 가능'하다는 조건으로 지난해 9월말에 개방된 기자 회견장은 '기자 클럽' 회원이 아닌 매체들에게까지 동등한 정보를 제공 하겠다는 목적을 밝혔다.
오카다 장관은 올해 들어서는 비회원 매체들에게 해외 동행 취재도 허용해, 캐나다에서 개최된 g8 외무부장관 회담에 인터넷 매체 기자들이 동행하기도 했다.
금융, 우정성 장관인 가메이 시즈카(亀井静香)씨도 그 뒤를 이었다. 그는 '기자 클럽' 회견 뒤에 '기자 클럽'에 소속되지 않은 잡지, 인터넷 미디어의 기자 회견을 따로 개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도 자신의 취임 회견에서 외국 특파원과 일부 신생 매체의 기자들에게 참석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오로지 '인터넷 미디어'만 제외되기도 해 "공약 파기 아니냐"며 프리 저널리스트들에게 비판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하토야마 총리도 올해 3월 24일에 이르러
"일본 총리의 기자 회견을 기자 클럽 이외 매체에도 개방한다"는 요지의 발표로 회견장을 개방, 3월 26일에는 사상 처음으로 총리의 기자 회견에 기자 클럽 비가입 매체들이 참여했다.
그럼, 한국은? 2003년 한국에서는 <오마이뉴스>의 기자가 인천공항 기자실에서 이뤄지는 브리핑을 취재하려다가 상주하고 있던 '기자단'에게 쫓겨난 적이 있다.
참여정부 시절 한국은, 이러한 기자단이 상주하며 폐쇄적으로 정보를 독점하는 기자실을 청와대를 시작으로 정부 부처에서 폐지하고 개방형 브리핑룸 도입을 추진했다.
한국의 개방형 브리핑룸 도입 시도는 외국에서도 크게 보도 돼 미국의 <뉴욕타임즈>는
'일제의 잔재인 한국의 기자단은 해방 이후 한국을 쉽게 통제하려는 미국에 의해 유지됐다"고 밝히고
"이러한 시도는 동아시아에서 드문 독립적인 언론의 출현으로 이어진다"고 호평하기도 했다.
한편, '프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출범 초기부터 폐지된 기자실을 부활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일부 집단이 폐쇄적으로 정보를 독점하는 합법적인 방법'을 제공하는 단 두나라 한국과 일본. 둘 중에 이런 형태를 만든 '원조 국가' 일본이 늦게나마 진정한 '누구나 누려야할 언론의 자유'를 추구해가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