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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내가 장인을 싫어하는 이유 (2부)
[시즌 3] 일본인 아내의 세 아이 출산기
 
박철현 기자
(이 글은 연재물입니다. 아래 링크를 읽고 본 글을 읽으시면 이해하기 빠르실 것입니다.)

일본 아내의 세 아이 출산기 (1부)
 
"오빠한텐 미안하지만 고쿠분지 들어가서 잠시 살면 안될까?"
 
미와코가 큰 딸 미우를 임신하고 우여곡절 끝에 회사를 관뒀다. 임신 7개월째였다. 어떻게든 되겠지 했다.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임신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그 부동산 회사에 나도 화가 났다.
 
"괜찮아. 내가 열심히 하면 되지 뭐. 그만 둬도 돼."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 달동안 아무리 열심히 해도 두 명이, 아니 세 명이 생활할 수 있는 돈을 벌 수 없었다. 미와코가 받고 있었던 25만엔의 공백을 혼자서 메우기란 너무 힘들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토, 일요일에 알바도 했다. 휴일없는 한 달을 보낸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거의 빠듯했다. 미와코는 자신이 저금해 뒀던 돈을 빼 썼다.
 
돈 뿐만이 아니다. 내가 휴일이 없다보니 도무지 미와코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었던 것이다. 미와코는 회사를 관두고 한달간 거의 혼자 있었다. 처음엔 좋았다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이다.
 
매일같이 집에서 우두커니 혼자 있어야만 했다. 토, 일요일도 마찬가지다. 임산부를 홀로 놓아두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고 하는데 정말 그랬다. 항상 명랑했던 미와코의 무표정이 늘어났다.
 
나도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앞으로 당분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릴 때 마다 눈 앞이 캄캄해져 왔다. 방세가 싼 곳으로 이사를 하기도 어려웠다. 지금은 꼭 그렇지도 않다지만 그 때만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월세 6개월치를 준비해야 했다.
 
시키킨(敷金) 2개월, 레이킨(礼金) 2개월, 수수료 1개월, 선월세 1개월. 시키킨은 보증금을 의미하고 레이킨은 집주인에 주는 사례금이다. 이 집에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의미가 담긴, 지극히 일본적인 문화다.  
 
그러니까 방 두개짜리 8만엔짜리 집을 알아본다 해도 몫돈 50만엔은 필요했다. 이사는 무리였다. 도무지 수가 없었다. 그럴 때 미와코가 처가살이를 제안했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쉬었다.
 
"오빤 거의 밖에 있으니까 좋겠다. 난 맨날 아버지의 얼굴을 봐야 돼. 아! 정말 어떻게 살지?"
 
미와코는 장인어른, 즉 자신의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다. 무려 유치원 때부터다.  
 
"아버지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중심에 놓고, 그냥 자기가 편할 때만 나를 좋아해 줄 뿐이거든."
 
장인어른은 아키다 현 출신으로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도쿄로 넘어왔다. 올해 74살이니 40살에 미와코를 낳았다는 말이 된다. 늦둥이 딸은 사랑받기 마련인데 미와코는 그 사랑이 위선적인 사랑이었다고 단언한다.
 
"설마 그렇겠어? 자기 딸인데..."
"물론 아버지는 날 사랑한다고 아마 죽을 때까지 생각할 꺼야."
"그런데 뭐가 문제야?"
"그걸 받아들여야 하는 내가 '그건 전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말이 어렵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래. 이 쪽 기분은 아무것도 모른채 자기만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것. 나르시스트의 사랑이자 전형적인 가부장적 사랑이지. 난 그런 사랑이 너무나 싫어."
 
즉 미와코 말의 요지는 장인어른의 사랑방식에 '배려'가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 사실 많다. 한국의 아버지들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우리 아버지만 해도 상당히 그렇다. 다만 자기 아버지가 그래도 보통은 이해하고 넘어간다. 미와코가 너무 민감할 수도 있다.
 
"맞아. 민감한 거 맞아. 민감한 여자하고 만나서 후회하는 뭐 그런 스토리?"
"아니, 뭐 그건 아니고...-_-;;"

 
난 이 미와코의 사랑방식이 이해가 됐다. 
 
사랑하게 되면 독선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여자친구와 연락이 안되면 불안해지고 막 화내고 싶고 따지고... 그런 경험들이 있을테다. 이걸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물론 나도 예전에 그랬다) 이건 그냥 '독선'일 뿐이다. 나도 미와코를 만나면서 이런 사랑방식에 눈을 떴다.
 
그래도 성인남녀라면 다 어른들이니까 상관없다. 수틀리면 헤어지고 다른 사람 만나면 된다. 문제는 죽을 때까지 헤어질 수 없는 자식들과의 사랑방식에서 이런 독선이 개입해버리면 미와코와 장인어른 사이처럼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일본의 전통 육아법을 보면 '다메(ダメ)'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한다. '다메'는 '안돼'라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도 아이가 뭘 하고 하는데 무작정 '다메'라고 외치는 부모들이 종종 보인다. 정말 안된다고 말하고 싶으면 왜 안되는 지 그 이유를 반드시 설명해줘야 한다. 미와코가 유치원을 다닐 때 장인어른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사실 이게 전부였다. 
 
"허구헌날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그러는 거야. 왜 라고 물어봐도 '하지 말라고 하면 넌 안 하면 돼!'라고 소리만 지르는 거야. 아, 이 사람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라고 느꼈어."
 
물론 남 얘기가 아니다. 나도 미우와 유나, 준을 기르고 있으니까. 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민감한 여자를 만난 것이 천만다행이다. 미와코로부터 이런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면 나 역시 미우가 뭔 일을 하면 '안돼!'라고 외쳤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 아이들에게 안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미우가 주방일을 도와주려다 풀어놓은 계란을 엎질러 마루에 깔아둔 카펫이 엉망진창이 된 적이 있다. 대형사고였다. 그런데 미와코와 나는 동시에 이렇게 외쳤다.
 
"오! 멋진데!"(お!すごい!)

 
그도 그럴 것이 엎질러 진 계란이 멋진 그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어두지 못한 게 천추의 한으로 느껴질 만큼 멋졌다. 물론 이내 카펫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고민해야 했지만.
 
우리 둘이 그런 반응을 보이니 미우도 배시시 웃는다. 하지만 실수(잘못이 아니다, 실수다)한 건 지적해야 한다. 매번 계란을 쏟으면 곤란하니까. 아내는 웃는 얼굴로 미우한테 말했다.
 
"미우야, 일단 스케치북 같은 걸 활용하면 어떨까? 이렇게 카펫에 그림을 그려 버리면 엄마가 이걸 빨아야 하잖아. 엄마가 카펫 빠느라 걸리는 시간만큼 미우랑 못 놀아 주잖아."
 
참 대단한 설명이다. 게다가 미와코는 이런 설명을 할 때는 미우의 손을 잡거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안는 버릇이 있다. 미와코는 "어! 그래?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라고 말할 정도로 무의식중에 나오는 행동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아보니 아이에게 뭔가를 지적하거나 꾸중할 때 이런 믿음을 주는 스킨쉽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한다.
 
'내가 지금은 널 꾸중하고 있지만 사실은 널 전적으로 신뢰하고 사랑하고 있단다'라는 백마디 말보다, 미와코처럼 단 한 번의 스킨쉽이 아이에게 훨씬 더 부모 마음이 잘 전달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미우도 이 때 방긋 웃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카펫 같이 빨면 되지!"
 
중요한 것은 미우가 나쁜 의도로 계란을 카펫에 뿌린 게 아니라는 점이다. 미우는 어디까지나 엄마를 도와주려다가 실수한 것에 불과하다. 그 '실수'에 좋다, 나쁘다라는 선악판단의 기준이 작용해버리면 아이는 견뎌낼 수 없다.
 
미와코는 어렸을 때 장인어른의 가부장적 태도에 많은 고통을 받았다. 그것 때문에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까지 있었다고 말 할 정도다. 하지만 어떻게 본다면 그 고통을 '민감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자기 아이들에게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을 수 있다. 물론 미와코는 그 다짐을 훌륭하게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위 에피소드는 5년후의 일화다. 2005년 10월 31일 고쿠분지의 장인어른 댁으로 들어갈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장인어른은 당신의 집에서 생활하게 된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사사건건 지적했다. 지난 25년간 쌓아왔던 자신의 룰이 조금이라도 헝클어지는 것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했다.
 
"자네, 어제 저녁에 혹시 화분 건드렸나?"
"밤 늦게 들어올 때는 소리에 신경 써."
"마당에서 담배피지 말고."
"맥주 꺼내 먹었으면 반드시 보충해 놓게나."

 
직접 장인어른 댁에 살게 되면서 미와코가 왜 이 집을 나가고 싶어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장인어른은 '여긴 내 집이니까 내 룰에 따라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분이셨다. 미와코는 물론 심지어는 장모님마저 장인어른 집에 그냥 얹혀 사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인상이 들 정도였으니까.
 
바둑이라도 좀 뒀다면 모르겠지만 장인어른은 우리 결혼식날, 마산에서 막내삼촌에게 만방으로 깨진 후 바둑을 완전하게 관뒀다. 장인과 나의 커뮤니케이션은 거의 제로였다. 돈이 없어서 들어갔기 때문에 능력없는 내 잘못이 가장 클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적어도 이런 형태는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배운 측면도 있다. 1년 2개월간 장인어른 집에서 생활하면서 "미우와 미와코한텐 절대 이러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달이 다가왔다.
 
■ 3부 "미와코가 출산시 비명 안 지른 이유"
 

▲ 왼쪽부터 유나, 준, 미우. 유나의 성장이 놀랍다. 흑.   ©jpnews/박철현
 
■ 글쓴이주 : 5월말 시즌1 '일본 여친에게 프로포즈 받다'와 시즌2 '일본 아내 한국 며느리 되다', 외전 '한국 아빠의 일본주부 체험기'가 한데 묶여져 출간됩니다. 삭제 및 추가된 에피소드, 시간배열 순서 등이 새롭게 재구성됐기 때문에 인터넷 연재물과는 또다른 '프리미엄' 감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많은 성원 및 기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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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5/09 [05:30]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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