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는 매번 '정권교체'를 부르짖고 있지만 정권교체는 수단에 불과할 뿐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 정권교체를 해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계속 열릴 당수토론에서 재원확보의 근거를 묻고, 또 안전보장정책의 차이를 어필해 나가고 싶다"(아소 다로 총리, 6월 8일 수상관저) 아소 총리가 민주당의 "정권교체"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왔다. 8일 수상관저에서 열린 정부여당연락회의의 석상에서 나온 말이다. 강인한 의지표명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위기의식의 발로'라고 표현한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자민당의 급격한 지지율 하락이다.
지난 5월 27일 열린 제1회 당수토론에서 토론에 강한 싸움꾼의 이미지를 유감없이 발휘한 아소 총리지만, 국민들은 전투적인 '싸움꾼' 보다 '우애'를 내세우는 하토야마 대표에 마음이 기울었다. 언론들도 민주당을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관련기사:
일 언론 민주당에 줄서기 시작했나?)
▲ <후지tv>의 "신보도(新報道) 2001" 6월 7일자 여론조사 결과 © 후지tv 홈페이지 캡쳐 | |
이런 상황에서 나온 <후지tv>의 "신보도(新報道) 2001"의 6월 7일자 여론조사 결과가 눈길을 끈다. "신보도 2001"은 매주 정기적으로 수도권 지역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일요일 아침 해당 프로그램에 그대로 방송한다.
그런데 최신 여론조사(6월 7일)에서 자민당의 지지율이 19.8%로 나온 것이다. 이에 비해 민주당은 34.6%를 기록했다. 이번 조사에서 아직 지지정당을 결정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36.4%인 것을 감안한다면 민주당의 지지율은 과반수를 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무리 민주당이 전통적인 강세를 보여온 수도권이라 해도 이 수치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도권 지역만 놓고 봤을 때 자민당의 지지율이 지금까지 10%대를 기록한 적은 몇번 있었지만, 문제는 지난 4월 19일 조사 이후 줄곧 민주당이 자민당에 이기고 있고 또 지난 한달동안 4주 연속으로 민주당이 3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대표 선거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5월 24일의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무려 38.2%를 기록했다. 지난 2003년 자민당이 전후 선거 역사에 남을 대승리를 거둔 "우정선거(郵政選挙)" 직전 자민당 지지율이 이와 비슷한 40%정도였다. 이에 필적하는 38.2%의 지지율을, 민주당이 기록한 것이다.
물론 일본 전지역의 양당 지지율을 놓고 본다면 15%차이는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사대상이 된 도쿄, 가나가와, 지바, 사이타마는 일본의 정치, 행정의식 수준을 가늠하기에 충분한, 큰(big) 지자체다. 이런 지역에 사는 유권자들이 거의 더블스코어로 민주당을 지지했다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전문가들은 아소 총리의 문제의식이 유권자들의 바램과 엇박자를 보이고 있는 것이 크다고 말한다. 정치평론가 아리마 하루미는 "지금 아소 총리는 북한의 핵위협등 안전보장대책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얻으려고 하지만, 국민들은 실생활에 더 관심이 많다"고 지적했다. 또 아소 총리는 5월 27일 당수토론에서 여전히 과거의 인물 오자와 이치로를 겨냥해 "정치와 돈" 문제를 추궁했다.
하지만 이것들은 "신보도 2001"의 여론조사를 볼 때 국민들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다음 중의원 총선거에서 무엇을 중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유권자들은 '경제대책' 47.2%, '의료/연금문제' 30.2%의 순으로 답했다. 아소 총리가 역점을 둔 '정치와 돈'은 8.2%에 불과했고, '북한의 위협'은 4.0%(5월 31일 방송분)에 그쳤다.
자민당이 경제대책에 손을 놓고 있다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 열린 정부여당연락회의에서 아소총리가 일부러, 구체적으로 강조한 "재원확보의 근거"와 "안전보장대책"은 정작 국민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재원확보의 근거를 대라고 민주당에 요구하는 것은, 이미 민주당의 프레임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 하토야마 유키오가 이끄는 민주당이 과연 자민당 정권을 누르고 정권교체에 성공할 수 있을지 일본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 hiroki yamamoto / jpnews | |
민주당은 다음 당수토론에 대비해 재원확보의 방안과 그 구체적 방법론, 즉 매니페스트(
manifesto, 정권공약)를 효과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준비에 착수했다고 한다. 민주당 국회의원 비서 n씨는 "온 국민 앞에서, 그것도 생방송으로 우리 당의 매니페스트를 발표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들떠 했다.
"안전보장대책" 역시 위에서 언급했듯이 국민들의 4.0%만이 관심을 가지는 내용이다. 일본 언론들도 어느샌가 북한 핵위협, 미사일등이 아닌 후계자 문제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 판국에 다음 당수토론에서 안전보장대책에 대해 맹공을 퍼부을 것이라고 한다. 포퓰리즘도 무섭지만, 아예 혼자서 독불장군식으로 나가는 건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자민당에 있어서 "무서운 결과"라고 한다면, 그것은 물론 "정권교체"다.
정권교체의 기류를 감지한 자민당 내부의원들 사이에서는 "아소 총리로는 이길 수 없다"는 소문과 함께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중의원 선거전에 총재선거를 다시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문제는 총재선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여론조사를 보자. 지금 일본국민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개별 사안은 "연금문제" 다. 여론조사에 응한 응답자 중 77.8%가 연금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답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관료 위주의 자민당 정권은 이 개혁을 이루어 내지 못한다. 행정개혁의 일환으로 그간 추진되어 왔던 후생노동성의 분리마저 백지로 돌아갔다. 명목은 그에 따른 예산조달의 어려움이었지만, 관료들의 저항에 부딪힌 게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5월 자민당 중의원으로 있다가 아소 내각및 관료주도의 국가운영에 환멸을 느끼고 탈당한 와타나베 요시미 전 행정개혁담당장관은 jpnews의 취재에 "이대로 두면 일본은 관료파시즘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진지하게 경고했었다. 그는 행정개혁을 추진하면서 실제로 수많은 관료들의 방관과 딴지걸기를 경험했다고 털어 놓았었다.
그렇다면 연금문제를 총괄하는 후생노동성의 산하기관 사회보험청이, 자민당 정치가들의 말을 순순히 따를 것이냐는 것이다. 당연히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연금문제는 지금 이대로는 해결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해진다.
사면초가에 빠진 자민당을 향한 민주당의 칼날이 시퍼렇게 날이 서 있다. 시합종료를 알리는 제한시간도 점점 다가오고 있다. 과거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야당을 중심으로 한 안보투쟁으로 곤경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오키나와 영구반환"이라는 기사회생의 비책으로 재집권에 성공했다.
지금 아소 자민당에 과연 이만한 파괴력을 가진 비책이 있을까?
■ 관련 링크
"신보도(新報道) 2001" 여론조사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