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루과이 전이 끝난 후 눈물을 흘리는 박주영 ©마이데일리 제공 | |
만 하루가 지났지만 여전히 억울하다.
이 억울함은 한국이 너무나 잘 싸웠는데, 그러니까 이길 수 있었는데 못 이겼다는 데서 오는 감정일 것이다. 한국은 '팀'으로서 정말 잘 싸웠기 때문에 선수 '개인'을 비판하거나 그런 건 별로 의미가 없다.
많은 네티즌들이 비난하는 이동국의 마지막 슛은 그 슛을 비난하기 이전에 그 공간을 발견하고 뛰쳐나간 그에 대한 칭찬이 선행되어야 한다. 상대는 우루과이다. 한 골을 먼저 넣은 후 지키자고 나섰을 때 우루과이는 가히 철벽이었다. 센터백은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줬고, 좌우 욍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들은 한국 공격수와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우루과이 수비는 축구가 발로 하는 경기라는 상식을 깨 버렸다. 그들은 손과 몸을 정말 잘 활용했다. 이탈리아처럼 노골적으로 상대 유니폼을 잡아 끌지 않는다. 언제나 적당한 선에서 멈춘다. 드리블 할 때는 공을 일직선으로 쫓아가는 게 아니라 커트하러 오는 수비수 쪽으로 일부러 달라붙는다. 반칙을 얻어내기 위해서다. 한국전에서도 그들은 상당히 노련한 수비를 선보였다.
우루과이 공격은 전통적인 남미 축구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로 대표되는 남미축구는 개인기를 위주로 한 현란한 드리블과 패스축구로 유명하다. 하지만 우루과이는 브라질이 한 경기당 보여주는 평균 패스율의 절반에 그친다. 중앙커트후 롱 패스로 측면을 공략, 한 번의 크로스로 골을 결정짓는 그들의 스타일은 잉글랜드나 이탈리아와 닮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탈리아나 잉글랜드처럼 한 골을 넣고 지키자고 했을 때 카테나치오도 울고 갈 빗장수비를 선보인다. 기자 역시 조별리그 우루과이 경기를 보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수비는 선수 개개인의 능력과는 별 상관이 없다. 조직적 수비는 포백과 중원 미드필더들의 전술적이고 유기적인 연계플레이에서 창출된다.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백(back)' 포지션을 단 선수들은 고도의 집중력을 90분 내내 발휘해야 한다.
한국팀의 첫 실점 장면은 사실상 집중력 문제였다. 물론 정성룡은 해서는 안 될 미스를 저질렀다. 하지만 인 플레이 상황에서 조용형과 이영표는 골키퍼만 바라본 채 서 있었다. 뒤쪽에 있던 수아레스를 완전히 놓쳤다.
안 보이는 배후에서 치고 들어오지 않은, 처음부터 그 위치에 서 있는 공격수를 놓쳤다는 말은 곧 '집중력'이 흐트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조용형과 이영표는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고 앞서 말했듯이 선수 '개인'을 비판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수비의 집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거론하기 위한 예일 뿐이다.
이러한 수비조직력만 놓고 보자면 결승 토너먼트 진출국 중 우루과이와 일본이 가장 좋다. 이들은 자기 골 에어리어 근처에서 패스미스 같은 걸 거의 안 한다. 오밀조밀한 패스도 하지 않는다. 무조건 공중볼로 뻥뻥 차 낸다.
나카자와 유지가 대표적인 케이스인데, 그는 공이 오면 무조건 공중으로 차 낸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공중으로 높이 차 올리면 시간을 벌 수 있다. 그 동안 골 마우스 앞 수비수들이 다시 한 번 자기가 맡아야 할 선수를 확인한다. 또 공이 높게 뜨면 뜰수록 상대 공격수의 볼터치가 곤란해진다." 그에게 있어서 이 '볼 클리어링'은 일종의 철학이며 이것을 뒷받침 해주는 것이 90분 내내 지속되는 '집중력'이다.
아무튼 그만큼 우루과이 수비진들의 '집중력'도 놀라웠다. 조별리그 때와 변함없는 집중력이다. 셋트피스가 아닌 필드 플레이에서 과연 이 수비진을 뚫을 수 있는 팀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데 이걸 한국이 뚫었다.
수치로 보자면 한 번 밖에 뚫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 아쉬운 찬스까지 다 감안한다면, 그러니까 골운만 따랐다면, 두서너번은 더 뚫을 수 있었다. 후반전에 보여준 한국축구의 공격력은,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충분히 세계레벨에 근접했다는 것을 증명시켰다.
세계언론의 찬사는 립 서비스가 아니다. 누가 보더라도 한국축구는 정말 매력적인 공격축구를 선보였기 때문에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는 '찬사'들이다. 신주쿠 코리아타운에 몰린 수많은 제삼국 서포터들의 경기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 나온 아쉬운 탄성은 한국이 그만큼 매력적인 축구를 했기 때문이다.
nhk 실황해설진은 후반부터 한국을 응원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청용의 헤딩슛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렸을 때 nhk는 이렇게 말했다.
"아! 이청용의 헤딩 슛이 드디어 우루과이의 골문을 갈랐습니다. 한국 정말 대단한 경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원점으로 되돌아갔어요. 아시아 축구를 리드하고 있는 한국. 오늘 한국이 보여주고 있는 엄청난 경기력과 멘털리티는 한국이 왜 아시아를 리드하고 있는지 증명하고 있습니다. 정말 훌륭합니다." 그리고 인저리 타임. nhk 실황해설진은 마치 자국팀을 응원하는 듯한 초조한 심정으로 말한다.
"아! 3분인가요. 아직 시간이 있어요. 절대 포기하면 안됩니다. 더 올라가야 해요. 조금 더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아! 저기서 끊기네요. 하지만 아직 괜찮습니다. 아직 시간 있어요."
기자 옆에 앉아 있던 일본인 여성 서포터들도 마찬가지다. 그녀들은 전철막차를 포기하면서까지 한국경기를 지켜봤다. 그리고 종료휘슬이 울려퍼지자 울었다.
"너무 억울하다. 정말 잘 싸웠는데..."
j리그 클럽팀 우라와 레즈의 서포터이기도 한 미우라 미키(23) 씨는 한국팀을 왜 응원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울먹거리며 말한다.
"한국 응원하는 이유요? 당연하지요. 한국은 정말 매력적인 축구를 하니까요. 한국 공격진이 공을 잡으면 막 가슴이 두근두근거려요. 언제나 한 건 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이길 수 있었던 경긴데 너무 골운이 안 따라서... 너무 억울해요." 이런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니다. 기자는 한국의 모든 경기를 신주쿠 코리아타운에서 봤는데 한국을 응원하기 위해 일부러 코리아타운까지 왔다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한 두번 놀란 게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축구팬들인 그들은 "일본과 함께 한국이 아시아 축구의 힘을 보여줬으면 한다"는 류의 립서비스를 안 한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한국축구가 매력적이니까." 한 두명도 아니고 이번 월드컵 시즌 중 만난 다른 외국인 축구팬들이 공통적으로 이런 얘기를 했다면 한국축구는 매력적인 축구를 한단 말일테다. 물론 기자 역시 축구팬이다. 지금 워낙 문제가 많아 대놓고 서포터라 말하기 부끄러운 상황이지만, 아무튼 도쿄베르디 경기는 시간이 나면 보러 간다. 기자 역시 한국는 매우 매력적인 축구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한국축구가 매력적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빠르고 젊고 투지가 넘친다. 페어플레이 정신이 매우 마음에 든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스릴만점의 축구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을 맛보게 한다. 자국 팬들은 고통스럽겠지만(웃음)."
"헌신적인 수비와 최선을 다하는 공격. 피지컬의 약점을 팀의 단결력으로 커버하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팀을 위해 개인이 온 힘을 다해 뛰는 그 모습에 축구팬이라면 당연히 빠져들 것이다." 이들은, 그렇기 때문에 우루과이 전이 끝나고 아쉬운 탄성을 내 질렀다. 기자 역시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서질 못했다.
가정법은 의미없지만 이 날 만큼은 박주영의 그 프리킥이 조금만 덜 휘어졌다면, 정성룡이 조금만 빨리 상황판단을 했더라면, 이청용과 이동국의 그 땅볼슛이 들어갔더라면, 기적을 부르는 안정환이 투입됐더라면, 아니 비는 도대체 왜 왔는지 등등을 몇 번이고 생각했다. 그만큼 아쉬운 패배였다.
한국의 월드컵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 어느 나라도 한국을 우습게 보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젊은 선수들이 많아 이번에 16강을 경험한 이들이 4년후에도 대거 등장할 것이다. 박지성, 이영표가 없더라도 4년간 착실히 경험을 쌓는다면 그들을 대신할 선수들이 분명히 나온다.
한국의 월드컵은 끝났지만 축구는 계속된다. 지금은 k리그 1부팀 뿐만 아니라 지역에도 수많은 클럽들이 존재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나라의 축구 수준은 그 나라 리그 수준과 정비례한다. 스페인, 잉글랜드,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가 언제나 우승후보로 다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어떤 스포츠든지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눈 앞에서 상대팀에게 승리를 거뒀을 때 소름돋는 일체감을 맛볼 수 있다.
매력적인 내셔널팀은 매력적인 리그에서 나온다. 매력적인 리그를 만들기 위해선, 그래서 4년후 다시 한번 세계를 놀래키려면 k리그 경기를 많이 보러 가야 한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되는 법이다.
이 매력적인 팀이 4년후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다시 한번 정말 잘 싸워준 우리 선수들과 서포터들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