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하면 떠오르는 보통 이미지는 무엇일까.
'루스 베네딕트'가 63년전에 내놓은 저서 '국화와 칼'? 아니면 이어령 교수가 80년대 초반에 내놓은 '축소 지향의 일본인'?
일본인만큼 해외에서 바라보는 일본론에 관심을 갖는 경우도 드물다고 자신들 스스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한국인이 일본을 바라볼 때 딱히 이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론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인에게 일본은 '전범 국가', '아시아 유일의 선진국', '백제인들의 후예가 세운 나라' '애니메이션 오타쿠의 천지' 등 사람마다 다른 기준을 들이대며 통일된 기준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시선을 서양쪽으로 옮겨보면 더 복잡해진다.
일본은 19세기 말 동양 곳곳이 서구의 식민지로 전락할 때 서둘러 서양에 진출, 중국과 함께 동양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일본을 바라보는 서양인들의 시선은 몇차례 변화를 거듭해왔는데 19세기 말부터 소개한 '무사도', '기모노', '하이쿠' 등 일본을 대표하는 고전적 이미지에서 6-70년대 비약적인 경제성장으로 인한 '이코노믹 애니멀'을 거쳐, 최근에 '망가' '애니메이션' '게임' 등 문화산업의 첨단기지로 변모해왔다.
어쨌거나 일본이 선진국으로 진입한 후 서양인들에게 일본이란 '서양에서 볼 수 없는 문화적 기호로 가득한 나라(롤랑바르트, 기호의 제국)'이자, '벚꽃나무 아래서 주군을 위해 끝까지 피를 뿌릴 결심을 하는 기사들(라스트 사무라이)의 나라'이기도 하고 '21세기 디스토피아를 뛰어난 상상력으로 그려내는 매니아들의 천국(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이다. 유럽쪽에서 보면 일본은 동북아시아 끝에 있는 부자나라이고, 미국에서 보면 '도요타','소니' 등 일상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튼튼하고 세련된 상품을 만드는 나라다.
이런 까닭에 서양인들에게 일본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명의 한 흐름이 아니라 별도의 '일본문명'이라는 틀로 해석되기에 이르렀다. (사뮤엘 헌팅턴, 문명의 충돌)
이렇게 대부분의 서양인, 서양학자들이 일본에 대한 환상과 호감을 갖는 가운데, 일본이 이룩한 경제적 풍요가 실은 '공허'할 뿐이며, 일본을 '미국의 속국'이라고 거침없이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개번 맥코맥' 호주국립대학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허울뿐인 풍요>라는 책으로 한국에서도 '토건국가론' 등 화제를 불러일으킨 그는 일본에 대해 서양인들이 쉽게 빠지기 쉬운 탐미나 기호, 호기심, 타자의 관점을 거부한다.
이어령 교수가 같은 동양인으로서 서양인의 눈에 보이지 않은 한국과 일본의 작은 차이점에 주목해서 새로운 일본론을 끄집어 냈다면, 개번 교수는 일본에 오래 머무르면서 일본인들이 서구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부분을 정확하게 포착, 철저하게 내재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평가를 내린다. 그래서 그의 저작은 일본에 대해 환상을 가졌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일깨움을 제시해준다.
그는 또 단순히 일본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과 미국간에 얽힌 구조적 본질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그의 글을 보면 일본의 과거청산, 헌법 개정, 재무장 등의 문제가 단순히 일본 우익들만의 작품이 아니라 미국의 의도속에서 체계적으로 완성되어가는 설계도의 한페이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내용이 담긴 <종숙국가 일본> 을 작년 8월에 출간한 개번 매코맥 교수는 작년부터 경향신문에 칼럼을 한달에 한번 꼴로 연재하고 있다.
그런 그가 얼마전 도쿄에 강의차 한달간 머무른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난 5월말 이치가야의 한 호텔에서 만나 일본에 대한 생각, 한일간의 차이 등을 물었다.
그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어서 인터뷰는 줄곧 일본어로 진행되었다.
- 경향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연재 제의가 있어서 하게 되었고,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원래는 2008년 1년 동안 하기로 했고 저는 12월에 끝날 줄 알았습니다. 경향신문에서 간곡히 계속해달라는 부탁을 해서 '왜 그러냐' 그렇게 물어보니까, 신문측이 '매우 좋은 반응이 있다, 계속해서 읽고 싶다는 독자가 있다'고 해서 올해 1년동안 더 하기로 연장했습니다.
- 한국인 독자로부터 메일이 오거나 하는지
네 옵니다. 첫번째는 신문사로부터는 이러 저러한 반응이 있다고 간략하게 알려주는 식으로 옵니다. 독자들로부터 편지 등이 오는데 한글은 제가 못읽으니까 '이런 의견이 있다'는 정도로 그 이상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제 칼럼에 대해 공감한다든가 이런 건 알 수 있죠.
두번째는 영어로 직접 보내오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한국 전쟁시 대전 학살 사건'에 관해서 썼는데, 그 때 대전의 한 할아버지가 '그런 이야기를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영어로 쓴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걸 매우 기쁘게 받았습니다.
그것과 함께 최근에 한 젊은 분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5월 초에 쓴 인플루엔자에 관한 이야기(5월 11일, 자연의 앙갚음)인데, 국제 농업이라든지, 자유 시장의 체질에 따라서 돼지, 닭이라는가 생산 방식이 별로 좋지 않다, 세계 금융 위기와 같은 시각으로 봐야되는게 아닐까'라는 제 의견에 젊은 사람이 대찬성이라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보낸 거 가지고 있는 거 같긴 한데...아, 여기 있네요.
그는 영어로 보낸 한국인 독자의 메일을 출력해서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기자에게도 파일에서 꺼내서 살짝 보여 주기도 했다.
- 일본에서는 따로 연재하는 곳이 있는지
정기적으로 일본에 글을 발표하거나 하는 것은 없습니다. 오키나와 쪽은 별도입니다. 오키나와는 우리들이 하고 있는 활동을 높게 평가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류큐신보>가 신년 특별 연재기사를 써달라고 했습니다만, 작년에는 와다 하루키 교수에게 부탁해서 1월 7,8,9일 썼고, 올해는 제게 써달라고 해서 '사츠마 침공 300주년'에 대해서 썼습니다. 그 후에도 류큐신보에 열성적인 독자들이 있으니까 정기적으로 써주지 않겠냐고 해서 지금 이야기중입니다.
-<허울뿐인 풍요>라는 책으로 한국에서는 그 동안 몰랐던 일본에 대해서 알게 되어서 그런지 파급효과가 있었는데..
네. 가장 (한국에서) 영향이 컸던 것이 그 책 ' <공허한 낙원(허울뿐인 풍요의 일본어판>'이죠
- <허울뿐인 풍요>란 책에서 일본을 '토건국가'라고 정의하셨는데, 한국에 대해선 어떻습니다. 닮았다던가...
네. 닮은 구석이 있어요.이명박 대통령의 대운하구상이라든가. 제 책이 한국사람들에게 도움이 된 것은 '한국이 걸어왔던 길이 일본으로부터 상당 부분 빌려왔다는 인식을 꽤 넓혔다는 측면'입니다. 즉 한국입장에서 보면 일본의 나쁜 점은 태평양 전쟁 패배까지고 그후 경제는 모델로서 (확실히 이야기하지 않지만) 좋다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습니다만, 그런 점의 허구성을 지적했습니다.
▲ 위 '공허한 낙원', 아래 '속국' / 일본출간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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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책 일본에도 출간하셨죠?
네. 그건 미스즈쇼보 (みすず書房)에서 냈어요
- 일본에서는 반응이...
네. 별로 없었습니다.
- 왜 그랬을까요?
(하하하...) 그런 질문에 답이 있는 지 모르겠으나...왜일까요..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걸 뛰어넘어 보다 좋은 책을 내고 싶은데, 최근에 낸 책 '종속국가 일본'은 책 제목이 안좋다고 와다 하루키 교수가 이야기하더군요. 너무 딱딱하다고. 특히 제가 외국인으로서 속국이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이 역시 내용과 상관없이 '딱딱하다'는 인상을 준 거 같습니다.
<공허한 낙원(허울뿐인 풍요 일본어판)>은 다릅니다. 그건 제목도 상징적이고 겉보기에도 재미있을 거 같다는 인상을 주죠. 그런데 '종속국가 일본' 이번 책은 처음부터 이 책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작년 9월 출간한 <종속국가 일본>이 한국 이외에 다른 나라에도 나왔나요?
한국 뿐 아니라, 일본어, 중국어판으로도 나왔습니다.
- 한국도 일본처럼 미국의 속국이라는 인상이 강한데...
그건 아닙니다. 한국과 일본은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는 일단 한국은 민주주의 혁명이 있었습니다. 한국은 민주주의 혁명을 통해서 국가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형무소 경험자라든가, 고문 경험자들이 국가의 중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전혀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국가가 어떻게 해야되는가'에 대해 한국에는 있는 논의가 일본에는 없습니다. 한국에는 천황도 없고 여러가지로 다릅니다.
- 그러나 미군기지 문제나 주둔군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는 등, 일본처럼 한국도 '종속적'인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다른 게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흐름은 크게 다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일본이 한국과 다른 또 한가지 측면이 미국입장에서 보면 중요도가 일본이 첫번째고 한국은 두번째 아니면 세번째입니다. 미국은 일본에 대해서도 깔보는 입장인데, 한국에 대해서는 일본보다 더 심합니다. 경멸 같은 것이 있어요. 옛날 일제시제 일본이 한국을 보는 시선, 차별이라든가 이런게 미국에서 본 한국에 대한 인상이죠. 뿌리 깊습니다.
- 속국이야기나 나와서 그런데, 일본총리가 고이즈미, 아베로 이어지면서 미국에 철저하게 따라가는 흐름이 강했는데, 그런 자민당이 지지율 하락을 겪고 있고 최근에는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 분위기가 강합니다. 오자와 대표가 물러난 지금 일본이 정권교체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올해 2월까지는 오자와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2월에 오자와 씨가 '미군기지는 필요없다'고 발언했고, 비슷한 시기에 '오키나와의 헤노코에도 새로운 기지 건설은 허용할 수 없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것은 미국 입장에서는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즉, 미국 입장에서 보면 '이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곤란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죠.
그러더니 몇주 사이에 일본 검찰이 정치헌금문제로 비서를 체포하고 오자와를 추방했잖아요. 그리고 하토야마가 되었는데, 하토야마가 총리가 되면 얼마나 바뀔지 모르겠습니다. 자민당 a, 자민당 b이 되는 형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물론 정권교체가 되면 좋겠지만, 올해 초 같은 큰 기대를 힘들 것 같습니다.
- 즉, 현재 오자와씨가 그만두고 하토야마씨가 새로운 당수가 된 상태고, 앞으로 민주당으로서 정권교체에 성공해도 일본이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즉, 무슨 이야기냐 하면, 새로운 당수 선거에 전혀 외교라는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가 없고 미군기지문제라든가 미일관계까지 논의가 안되고 있습니다. 일본국민 역시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만, 큰 기대는 힘들고 그러나 변화는 바라고 있습니다.
- 결국 오자와씨가 물러난 것은 미국의 의도였다?
가설입니다만, 미국이 뒤에서 조종했다고 봅니다. 물론 가설이에요. 검찰쪽도 여러가지 루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민당만으로도 검찰을 압박할 수 있겠지요. 오자와 씨가 깨끗한 정치인은 아닙니다만, 깨끗하지 못한 정치인을 그렇게 모두 내쫓으면 국가는 기능할 수 없죠.
- 아소 다로 정권도 고미즈미,아베 정권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하는지. 고이즈미는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였습니다만
신자유주의 시기는 조금 지난 것 같습니다. 일본국민들도 그런 노선이 계속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이고, 잠깐동안은 그런 것을 놔둘 것입닏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인 노선으로 가자,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움직이지 않는 상태입니다. 앞으로 어느 쪽으로 갈 지 지금 상황에서는 잘 안보입니다. 그래도, 신자유주의 개혁의 여파로 사회적으로 고생하고 있는 젊은이들 문제가 있으니 총리가 신자유주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 미국입장에서 보면 어떻습니까
뭐 미국에서 보면 아직도 일본에게 (신자유주의)개혁을 요청을 계속하고 있죠. 미국학자들이 보면 '고이즈미'는 열성적인 개혁가였고, 그 후 아베도 어느 정도 계속했는데, 그 후 개혁을 추진할 힘이 없는 정치가가 총리가 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제 학문은 중심적인 흐름이 아니라 지류니까...
- 지난번 북 로켓발사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경향신문에 썼어요. 그걸 쓴 다음 안보리의 움직임이라든가 이런 건 특별히 바뀐 것은 없습니다.
- 일본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북 로켓문제는 일본에게 가장 가장 중요했고, 러시아나 중국은 이사회의 결의를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는 결국 결의안을 냈고, 이것은 일본에 이용당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일본이 가장 단호한 태도를 취했고 중국도 별로 일본하고 싸우고 싶어 하지 않았고 미국도 일본과 싸우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의장성명을 채택하게 되었는데, 일본입장에서는 우리들이 이것을 요구하고 있으니까 관철시키고 싶다고 한거죠. 일본은 안보리 상임 이사국도 아니면서 상임 이사국 위의 이사국, 즉 초상임이사국처럼 여러가지 압력을 가했고 다른 나라들이 '네,네'한 것입니다.
그에 따라서 북한 문제는 뒷걸음질만 치게 된 것이죠. 상임이사국이라고 해도 누군가 나서서 '일본'과 확실하게 그런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국제적인 자리가 없습니다. 안보리 이사회 회장을 지금 멕시코가 하고 있는데, 그 사람도 멕시코 대표로서 왜 그렇게 약한 얼굴을 하고 일본이 밀어부친 결의안을 통과시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사회의 내부적인 정치적 관계에 대해 누군가 조사해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 동아시아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유명한 학자이신데
제가 현재 도쿄공과대학에서 '일본과 아시아의 관계사'라는 과목을 강의하고 있어요. 최근 며칠간 논쟁했던 것이 660년에 있었던 '백촌강 전투'라고 봅니다. 이것을 계기로 열도와 대륙이 갈라졌다고 봅니다. 이 싸움에서 진 세력이 열도 및 한반도내 패배세력이 기나이(畿内)에 와서 야마토 정권을 만들었습니다.
일본서기, 고서기등을 만들면서 국가 같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절반쯤은 대륙을 두려워하면서요. 두려워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기원이 대륙이 아니라 하늘이나 아마테라스라든가 라고 한 거죠. 그 이후로 계속 중국에 대해 겁을 먹어서 '우리들이 제일 강하다',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의 나라'라고 주창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에게 자연적으로, 또한 유효한 전술, 살아 남기 위한 전술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13세기 여몽연합군의 침략도 있었고, 그리고 나서 19세기의 열강의 침략도 있었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천황중심의 신의 나라'라는 관념은 상당한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면서 지금까지 1000년 이상 효과적이었던 전술이 비효과적이 되었다고 봅니다. 일본의 국방론이라든가, 정체성이라든가. 지금은 아시아와 공존이나 같은 집(공동체) 등의 전술이 없으면 고립될 거라고 봅니다. 역사적 사정이 크게 바뀌었다는 거죠. 최근 20년 사이에.
- 앞으로 일본은 아시아와 함께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씀이시네요
네. 그러나, 일본이 아시아와 함께 가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를 재논의, 재평가, 재교섭이 필요합니다.
- 하지만 일본은 지금까지 아시아가 없어도 잘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탈아입구'라든가, '미국'만 있다면 '미국으로 상품을 수출하는 등...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오바마 정권도 그렇고, 중국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미중이라는 틀이, 미일이라는 틀 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위싱턴에서도 일본에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지 모르죠. 그러나 일본의 높은 정치인들이라든가 일본의 오래된 관료, 즉 미일안보동맹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되는 게 안좋은 거죠.
그리고, 미국에서 어제 여론조사였는데요. '일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하는 조사였습니다. 상당히 호의적인 결과였습니다만, 구체적인 수치는 잊어버렸는데 상당히 높은 퍼센트였습니다. 그러나 그 진짜 의미는 '일본이 우리들이 부탁하는 것을 늘 '네, 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로는 좋은 관계이면서도 굉장히 안좋은 관계임을 나타내는 결과이기도 하죠. 일본은 지금과 전혀 다르게 자신의 다리로 서서, 자신의 의견을 내게 되면 미국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또 하나 얼마전 학생들과 논의한 것이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인데요. 그녀의 생각은 전쟁 중 영원한 일본의 국민성을 생각했죠. '일본은 아시아의 나라가 아니라 아주 독특한 나라다'라고.
또 사무엘 헌팅턴의 2003년 '문명의 충돌'에서 이슬람이라든가, 인도라든가 하는 이야기를 하며서 일본은 하나의 다른 문명이라고 하죠. 전혀 넌센스 같은 이야기인데요. 이런 베네딕트 같은 사고 방식이 지금도 강하게 남아있고 계속되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 그것은 역시 '메이지유신'후 일본이 서양에 먼저 자신들을 알렸기 때문이 아닐까요.일본의 문명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는 항상 천황을 중심으로한 신의 나라, 이 관점이 아주 강하게 나옵니다. 불교(?), 쵸닌 이라는가. 아미노 요시히코 평등적 민주적인 부분이 있는데, 논의하기 시작하면 늘 천황,천황,천황 이러니까
- 일본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나요?
네 그렇습니다. 일본 학자라든가, 일본 사상가라든가.
그런데 일본이 대륙으로 갔을 때 '대동아공영권'을 만들려고 하니까 다들 '가치관이 뭐냐' 그랬죠. 그러자 일본은 다들 '천황 숭배'하는 것이다. 신사에 가서 손을 모으고 합장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단 한 곳 달랐던 곳이 만주였습니다. 만주는 민족교화라든가. 실패했습니다만 시도로서는 상당히 가치가 있었고 교훈도 남았죠.
- 일본,일본인 역사관 중 이해가 안되는 측면이 있나요?
아..제 개인적으로? 음....(조금 생각하면서) 이해 안되는 것은 없습니다.
즉 모리 전 총리가 발언했던 것(일본은 신의 나라다) 등 이해는 됩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길게 형성된 생각이니까요. 그리고 지금까지 그런 생각이 효율적으로 기능해왔던 것이죠.
그런데 주변사정이 바뀌었습니다. 바뀌었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기성세대에게 상당히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유효적이었던 대책이 지금은 전혀 기능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인데요, 그것은 어떤 사람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죠.
그래서 저는 젊은 일본인들과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논문이나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강의, 학생들 반응은 어때요?
좋습니다. 의외로 순수하게 받아들여요. 학생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 것인데요,그들의 솔직한 반응을 얻고 계속해서 논의합니다. 내일은 만주 이야기를 합니다.
- 도쿄공과대학에서 '일본과 아시아'를 강의중이신거죠?
세계문명센터라는 곳에서 집중강좌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아시아'는 일본어로 진행하고 있고, 헌법론(일본에 있어서 헌법문제)은 영어로 하고 있습니다.
- 일본에 유학하신 적 있죠?
네. 지금도 유학중이에요(웃음). 영원한 학생입니다.
-일본에 오신 계기는?
음..처음 일본에 온 이유는'일본불교'를 공부하러 왔습니다.
1962,63년입니다. 45년도 전이죠. 전혀 공부하지 않고 매일 술마시고 아무것도 안 배웠습니다. 그 다음이 한일조약할 때 도쿄에 와서 영어선생을 하면서 있었고, 69,70년에 와서 도쿄대 와다 하루키 교수를 만났죠. 분쟁할 때요.
- 야스다 강당 싸움, 도쿄대학 전공투때요?
네.
-그러니까 일본불교 공부하러 오셨는데 맨날 술만 마셨다는?
네. 그렇습니다. 아, 일본어도 몰랐어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의 청년이었습니다. 그때. 뭐 지금도 무지의 청년이지만요(웃음)
-그런데 일본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동대 전공투 싸움 등으로
그 때 만주문제로 박사논문을 쓰려고 했죠. 제 원래 전공이 중국이었잖아요. 런던대에서 중국을 전공했는데. 그래서 중국 역사 중에서 중일관계를 연구하다보니, 일본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그 후에 점점 중국에 안가게 되고 일본사람과 결혼하면서 일본에 왔다갔다 하다 보니까, 중국에 대해서는 요즘 안하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국어를 배워야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늘 미루고 미루다 보니까...뭐 '책상위에 연필이 있습니다.' 이런 정도로 몇번이고 시작했지만 뭐 나이도 나이고,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 중국어는 가능하시죠?
중국어는 할 수 있지만, 조금 녹슬었습니다.
- 영어 외 가장 잘 하실 수 있는게 일본어에요?
물론이죠.
- 아, 부인이 일본인이라서?
아니에요. 전혀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관계 없어요. 매일 일본어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외국어란 그 나라 사람과 같이 산다고 느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맥주 하나 줘' 이 정도라서, 별로 도움 안됩니다. 매일 읽거나 쓰면서 느는 거지요.
▲ 이날 마크 셀던 코넬대 교수,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 교수, 우츠미 아이코 와세다대 객원교수 등 동아시아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학자들이 모였다. © 이승열 / jp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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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일본에서 요미우리 신문 등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데, 헌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헌법은 60여년 동안 쭉 계속되어 왔으니까. 확실한 논의가 있어야겠죠. 개정한다면 9조가 아니라 1-8조까지, 아니면 25조라든가 헌법상의 법지배국가인지 아닌지 이런 것을 논의해야한다고 봅니다.
물론 현재시점에서 국민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 확실히 논의한 후에 결정하지 않으면 안되겠죠. 물론 헌법 9조는 아주 훌륭하고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9조...음. 소말리아 파견 등 일본 정치인들은 9조를 부끄럽다고 생각하죠.
헌번9조란 일본의 전쟁 포기 등을 담은 조항이다.
- 일본 헌법 9조가 결국 개정이 될까요
그건 제가 뭐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예언자가 아니니까요.
- 호주(밖)에서 바라본 일본은 어떤 것인가요?
2개월전에 아픈 친구를 만나러 샌프란시스코에 갔습니다. 도중에 잠깐 도쿄에 들렀고 la라든가 갔습니다만, 역시 미국은 제3세계같은 느낌이 듭니다. 즉, 나리타, 도쿄라든가와 비교해보면요. 샌프란시스코 전철을 타거나 여기저기 가보면 꽤 지저분하고 가난한 사람이 많고 마을의 공공시설에 지저분한 걸 보다가 일본에 오면 일본도 경제적으로 어렵다고는 하지만 뭐든지 움직이고 있습니다.
일본이 만약 상임이사국이 되고 싶다는 야심이 없다면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한 나라, 국민들이 어렵지 않게 생활할 수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에 지금과 다른 비전을 제시해준다면 세계사람들이 상당히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딱딱한 관념을 가지고 야심이 있어서 사회적으로 어떤 사회로 갈 것인지 노선을 둘러싸고 다투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 일본에 그런 시설이나 전철이 움직이고 가난한 사람들이 별로 없고, 그런 것은 한국도 거의 마찬가지잖아요?
네 닮았습니다. 꽤.
- 한국에 다녀가신 것은 지금까지 몇번이었습니까
그건 잘 모르겠어요. 처음 간 것은 80년대니까요. 70년대에도 한국의 민주주의와 통일 문제에 관여했었고, 예를 들면 도쿄국제회의 등 관련이 있었고.그 때 런던에 살았는데 그곳에 'Korea Committee'라는 것이 있었습니다만, 그때 남북 양쪽을 다 가보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이었습니다.
80년 3월에 서울에 초대받아서 갔고, 5월에는 평양에 갔습니다. 바로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던 5월 18일이었습니다. 그 뉴스를 매일 북한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줬는데,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죠. 그 이후에는 몇번이고 한국에 갔죠.
- 그 이후 책을 내시고 나서 한국에 많이 알려지셨는데
한국에 꽤 독자가 많은 것 같습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 이름이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 한국입니다. 미국이나 호주보다요.
- 일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진 책이 한국에서 인기의 비결이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 한국과 일본을 다니시면서 어떤 곳이 편하신지
저는 오키나와가 가장 차분하고 좋습니다. 오키나와는 제게 중요한 곳이기도 하면서 부담없이 생활이 가능하 곳. 천천히 먹고 마시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입니다. 천황의 그림자조차 없다는 느낌까지 듭니다. 한국과 비슷한 면도 상당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춤을 추면 다들 같이 춤을 춘다는지 매우 닮았습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 일본전문뉴스를 표방한 JPNews가 보도해야될 일본 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제 생각으로서는 열심히 노력해서 오키나와 문제에 대해 다뤘으면 좋겠습니다.오키나와에서 미일관계가 재정립중인데 가장 무거운 문제죠. 앞으로 새롭게 미군기지가 건설이 되면 탄압이 대단할 거 같은데... 서울에서 나하(오키나와 중심도시,那覇)까지 2시간이면 갈 수 있고, 그런데 한국사람들이 너무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 오늘 감사합니다.
별 도움이 안되서 죄송합니다.
(끝)
■ 개번 맥코맥 (Gavan McCormack)
호주국립대학 아시아.태평양학연구소 명예교수. 1960년대 멜버른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런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과 동아시아의 정치/사회문제를 역사적 지평에서 고찰하는 연구로 정평이 나 있으며, 한반도를 비롯한 미.중.일 관계에 대한 예리한 논평을 여러 나라의 매체에 활발히 기고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종속국가 일본> <범죄국가, 북한 그리고 미국> <일본, 허울뿐인 풍요> <남북한의 비교연구> <일본제국주의의 현황>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