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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세가 생각하는 남북단일팀 멤버는?
[현장] 독일 떠나기 전 와세다 대학에서 강연 가진 정대세 선수
 
이연승 기자
▲ 7/16 정대세 와세다 강연     ©jpnews/야마모토 히로키

18일 독일로 떠나는 정대세 선수가 출국 이틀을 남기고 도쿄 와세다대학 강연 단상에 섰다.
 
정선수는 일본 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으로 월드컵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쳐, 독일 분데스리가 2부리그 소속 vfl보훔과 정식 계약을 맺는 계기가 됐다.
 
재일동포 3세인 그가 태어난 곳은 일본. 그러나 국적은 한국이면서 북한 국가대표팀으로 뛰는 '복잡한' 정체성을 지녔다. 그래서인지 일본, 한국, 중국, 북한 등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모인 이 날 강연의 주제도, 젊은이들에게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자이니치(在日 : 재일)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강연에서 털어놓은 이야기들은 무겁다기보다는 유쾌했다. 시종일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털어놓으며 강의실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다. 또한 그는, 한국 현대사가 그대로 녹아 있는 자신의 과거사를, 새롭게 정진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바꾸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정체성에 관한 고민보다는 축구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아보였다.
 
내성적이고 고집불통인 아이

"막내로 태어난 저는 어렸을 때부터 감정 기복이 심하고 제멋대로 굴기 일쑤였습니다. 지금이야 많이 밝아졌지만 이전에는 내성적이라 친구도 몇 명 없었습니다. "
 
한국 국적인 아버지와 조선 국적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 국적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조총련계 민족학교인 조선학교를 다니며 민족 교육을 받았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의 애국심의 대상은 '북한'이 됐다.(그는 북한을 '조선'이라 지칭한다.)
 
당시 학교 시설은 제대로 축구 연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열악한 축구 시설에 늘 불만이 많았습니다. 실은 그래서 대학교는 조선대학교가 아닌 메이지(明治) 대학 축구부에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보기 좋게 탈락했고, 조선대학교 축구부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대학 축구부 생활에도 축구 환경에 대해 늘 욕구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그에게는 프로가 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나날이 계속됐다고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기회는 찾아왔다.
 
"2003년 처음으로 조선 대표팀으로부터 소집 의뢰가 왔습니다. 무척이나 기뻤지만 뛸 수 없었죠. 피파 규정 중 국가 대표팀으로 뛸 수 있는 자격으로 '소속 국가의 여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는 항목이 있었습니다. 조선 국적이 아니니 여권을 받을 수가 없었고,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것도 법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가슴 아팠지만 단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갈망하던 대표팀 참가 기회를 살리지 못한 그는 대학교 4학년 시절 오미야, 요코하마, 쇼난, 주빌로 등 유수한 팀의 연습에 참가하게 된다. 그러던 중 한일 친선시합에서 3골을 기록한 그를 유심히 지켜본 세키즈카 다카시 감독의 눈에 띄어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정식으로 입단하게 되었다.
 
▲ 정대세 와세다 강연     ©jpnews/야마모토 히로키

j리거로서의 활약과 북한 대표팀 발탁

"솔직히 입단은 했지만 거기서도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당시 공격수였던 가나하 가즈키 선수의 빼어난 활약으로 선발 명단에 들지 못했죠. 매 시합마다 3분 정도 출전에 그쳤습니다. 입단 반년이 지나도 골을 기록하지 못하자 '이러다가 잘리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에 매일 밤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땐 정말 자살까지 생각했던 적도 있었죠."
 
그러나 고민을 다음 날까지 끌고 가지 않는 천성적인 성격은 그를 결코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꼭 찾아온다'는 말처럼 인내 뒤에는 늘 오매불망 기다리던 '찬스'가 찾아왔다. 도핑 테스트 양성 반응으로 문제가 불거진 가나하 선수 대신 선발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올라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가와사키에서의 활약은 시작됐다.
 
마침내 2007년에 다시 한번 북한 대표팀의 소집 의뢰가 왔다. 결국 복잡한 절차와 우여곡절 끝에 북한 여권을 취득한 그는, 비로소 정식으로 북한 대표팀 선수가 됐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들만하다. 일본, 한국, 북한. 세가지 선택을 할수 있는 상황에서 왜 굳이 '북한 대표팀'을 선택했냐는 것이다.
 
"솔직히 북한 대표팀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힘든 현실이었습니다. 한 번 단념했던 적도 있고 말이죠. 그러나 어렸을 때 부터 제 꿈은 하나였습니다. '조선 대표가 되서 일본 대표와 싸워보고 싶다는 것'. 조선 대표팀이 일본 대표팀에게 지는 모습을 tv 등에서 접하며 그 의지가 더욱 강해졌죠. 일본 대표팀의 오퍼는 있었지만 거부했습니다. 한국 대표팀은 뭐랄까... 조금 현실감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북한 대표팀 선수생활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 중 특히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이 북한 대표팀의 전술과 훈련 방법, 그리고 언어 소통이었다.
 
열악한 환경, '외국물'에 대한 자만심

"북한 대표팀의 전술은 유행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도 5-4-1 전술을 고집하며 엄청나게 수비적인 전술을 구사합니다. 5-4-1 전술은 현대 축구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데도 말이죠. 훈련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컨디션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훈련'만을 했습니다. 잔디 상태도 차라리 '모래가 더 좋다'고 느껴질 정도로 열악했구요."
 
▲ 정대세 와세다 강연     ©jpnews/야마모토 히로키
"언어 장벽도 높았습니다. 일본에서 배운 한국어, 아니 조선어로는 도저히 소통이 힘들더군요. 선수들의 말이 너무 빠르고, 억양의 높낮이는 중국어라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나름 '외국물'을 먹은 선수라는 자만심도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지만 고립되어 있는 조선 선수들과 다르게 '나는 j-리그라는 외국 리그에서 뛴다'는 자만심이 있었습니다. 자만심은 한국과의 원정경기에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한 골을 넣어 한국에 내 이름 석자를 알리겠다'는 생각에 동료들에게 패스도 안하고 혼자서만 튈려고 했죠. 결과는 패배였고 '앞으로 대표팀에서 소집하지 않겠다'는 경고까지 받았습니다. 그땐 몰랐지만 선수들이 만장일치로 '정대세 퇴출'에 동의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하하"
 
이런 그에게 제동을 건 사람이 어머니와 학교 은사님이다.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그들의 애정어린 조언은, 그의 마음을 흔들었고, '공을 찰수만 있다면'이란 일념으로 마냥 겸손했던 초심으로 되돌아가게 만들었다.그 이후에는 자만심을 접고 북한 대표팀에 더욱 녹아들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북한 대표팀이라고 하면 살벌한 분위기가 먼저 느껴지실 겁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상하시는 것과 달라요. 북한 대표팀 소속 선수들은 너무나도 순수합니다. 시합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죽을 힘을 다해서 뛰죠. 거기에 어린 아이처럼 호기심도 왕성해요. "일본 대표팀은 어떠냐" "돈은 얼마나 받냐" 등 쏟아지는 질문에 답하느라 매번 식당에서 밥을 제대로 못 먹을 정도였습니다."
 
"가장 좋다고 느낀 점은 그들은 절대 다른 사람의 흉을 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가 가끔 다른 선수의 실수에 장난으로 "쟤 왜 저래?" 등을 입에 담으면 "그런 말 하면 안된다"고 진심어린 주의를 받습니다. 그들은 정말 순수 그 자체예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단지 '이미지'만으로 조선 대표팀과 선수들의 흉을 보는 사람들에게 저는 거칠게 반론합니다. 제가 가장 화나는 것 중에 하나거든요."
 
▲ 강연에는 많은 학생들이 참석했다.     ©jpnews/야마모토 히로키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던 월드컵 첫 출전

마침내 44년만에 남아공화국에서 개최된 월드컵에 참가했던 북한 대표팀.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
 
"월드컵은 제겐 늘 '꿈으로만 그리면서도 꿈도 못 꾸는 무대'였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겠죠? 하하. 세계 최강 브라질 대표팀이 바로 옆에 서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울려퍼지더군요. 눈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죠. 참고로 전 원래 울보예요. "
 
"브라질전이 끝난 이후에 우리 선수들로부터 "너 긴장해서 울었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같은 조선 대표팀 선수지만, 그들이 조선 대표팀 일원이 되기까지 힘겨웠던 제 과거와 감정까지 이해하지는 못했겠죠. "
 
"제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가 드록바 선수입니다. 그와 함께 뛴 코트디부아르전은 1분 1초라도 좋으니 '더 뛰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가득했죠. 그러나 포르투갈전은 1분 1초라도 빨리 (벤치로)들어가고 싶더군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강의실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는 월드컵 직후 행보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 정대세 와세다 강연     ©jpnews/야마모토 히로키


"보훔에서 가장 빨리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솔직히 밝히자면 제 염원이기도 한 프리미어리그의 한 팀에서도 브라질전을 마친 후 제의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정식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말이죠. 그러나 북한 여권으로 비자를 받기에 독일이 더 쉽고, 경기 출전도 중요하기 때문에 보훔을 선택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격렬한 스타일의 축구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파울 판정이 많은 j리그는 이런 제 스타일과는 맞지 않아 최근에는 조금 염증도 생기더라구요. 유럽리그는 격렬한 피지컬 사커가 기본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제 한계를 시험해보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로 와세다대학에서의 강연을  갈무리했다.
 
"조금 더 '민족의식'과 '애국심'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는 일본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늘 '조금 부족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최근 불경기로 어려운 일본이지만 젊은이들이 소속감을 가지고 '일본을 바꾸자'라고 생각한다면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강연이 끝나자 큰 박수가 터졌고, 이에 정대세 선수는 멋적은 듯 살짝 부끄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스포츠의 위대함, 증명해 보이고 싶다
 
강연을 마친 후 가진 학생 질의응답시간에는 흥미로운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 흥미로운 질문이 쏟아진 질의응답 시간     ©jpnews/야마모토 히로키

정대세 선수는 자신이 재일조선인이라고 밝힌 한 학생의 "정대세 선수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입니까"라는 질문에는 잠시 고민하는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한국을 생각한다면... 뭐랄까. 아직까지 굉장히 복잡한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한국도 제 몸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저란 사람을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그런 의미를 지닌 존재죠."
 
▲ 북한 국가를 부르는 학생     ©jpnews/야마모토 히로키
작은 해프닝도 있었다. 정대세 선수와 같이 '한국 국적' 이지만 조선학교에서 민족 교육을 받았다는 한 학생이 "독일로 출발하는 정대세 선수가 힘내서 잘했으면 좋겠다"며 갑자기 북한 국가를 큰 소리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정대세 선수가 잠시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웃으며 고맙다고 답례를 했다.
 
느닷없이 북한국가를 불러 강의실 전체를 깜짝놀라게 한 이 학생은, 강연이 끝난 후 만난 기자에게 "한국 국가와 조선 국가를 다 외우고 있고, 또 한국 국가를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선 대표팀의 일원이었던 정대세 선수에게 힘내라는 의미에서 (북한 국가를)불러 준 것입니다"라고 노래를 부른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 한 한국 유학생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기도 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만일 남북 단일화팀이 만들어진다면 대표선수로서 참가하고 싶습니까?" 질문을 받자마자 정대세 선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거침없이 답변했다.
 
"국적과 이념을 초월하는 것이 스포츠의 위대함인데, 남북 단일팀이 된다면 말그대로 그것이 이뤄진 셈이잖아요. 그런 팀에 참가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 듯, 정대세 선수는 자신이 꿈꾸는 '남북 단일팀' 구성멤버를 밝히기도 했다.
 
"일단 골키퍼는 저희 조선 대표팀 키퍼로 하겠습니다. 한국 대표팀 선수도 잘했지만 몇차례 큰 실책을 범하는 모습도 있어서 좀 불안해서요. 하하. 수비수는 5-4-1 전술을 사용한다는 가정 하에 중앙에는 저희 팀 3명을 넣고 싶네요. 포르투갈전에서 조금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들은 정말 혼이 있는 수비를 펼치거든요. 윙백은 왼쪽은 차두리, 오른쪽은 이영표 선수가 맡았으면 좋겠네요"
 
"수비형 미드필더로 안영학 선수가 적임이라고 봅니다. 더블 보란치를 사용한다면 기성용 선수도 들어갔으면 좋겠구요. 양쪽 윙은 물론 이청용 선수와 박지성 선수죠! 가운데는 저희 홍영조 선수를 넣구요. 홍영조 선수는 정말 대단한 선수입니다. 그가 빠지면 조선 대표팀은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죠. 포워드는... 음... 조금 부끄럽지만 저와 박주영 선수가 섰으면 합니다. 하하. "
 
1시간 10분간의 강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정대세 선수에게 보내는 학생들의 박수는 크고 뜨거웠다. 강연을 들은 학생들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만족한다는 의견이었다. 뜨거운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것 같다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학생도 있었다.
 
이틀 후 독일로 떠나는 정대세 선수. 자칭 울보라는 그가 부모님과 헤어지는 순간 또다시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비단 기자만의 생각일까?

▲  강연을 마치고 자리를 뜨는 정대세 선수     ©jpnews/야마모토 히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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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7/16 [18:22]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 /// 10/07/17 [07:59]
솔까말 이제와서 남북 단일팀 해봤자 한국만 손해지..
한국축구는 지금 유망주가 차고 넘친다.. 특히나 공격수와 공미는... 수정 삭제
정대세 선수의 어휘선택이 약간 미스인게 10/07/17 [08:42]
J리그가 파울이 "많다"고 했는데 앞뒤 내용을 보면 J리그가 파울을 "많이 분다"라고 말하는게 맞는듯.... 수정 삭제
잘읽었습니다. ^^ 부산댁 10/07/17 [09:31]
정대세 선수가 독일로 간다는 소식에 좋았는데 이런 강연도 했군요 수정 삭제
@ㄹ님 Jasmine_ 10/07/17 [12:20]
정대세선수는 강연을 일본어로 했었어요. 정대세 선수 어휘선택이 미스인게 아니고, 기자님이 실수 하셨네요. (강연 참석했었거든요) 수정 삭제
저기 기사 도입부에 다냐 10/07/17 [12:25]
정대세가 이적하는 팀 소개하시면서,
"독일 분데스리가 1부리그 소속 vfl보훔과 정식 계약을 마쳤다"라고 나왔는데
보쿰은 현재 2부리그에 소속 되어 있습니다.
수정 삭제
수정했습니다. 편집부 10/07/17 [12:29]
지적 감사드립니다. 수정 삭제
음...두개의 조국인가. 하늘치 10/07/17 [22:06]
유럽으로~! 수정 삭제
귀엽다ㅋㅋ 10/07/18 [00:10]
독일가서 성공하길 바래요 수정 삭제
보쿰정도면 나쁘지 않는 선택으로 봅니다. 보쿰과 분데 10/07/22 [20:41]
작년 리그17위로 강등된 보쿰은 1972년부터 보자면 38시즌중에 딱 총6시즌만을 2부리그에서 뛴 2부리그에 머물기에는 상당히 강하고 1부리그에선 상위권은 힘든 전형적인 중소클럽. 일본무대와 독일은 수준이 다르기에 첫시즌 적응시즌을 보내는 팀으로는 훌륭한 선택으로 볼수 있어요. 보쿰은 내년에 승격될 가능성이 상당히 많습니다. 연속으로 2시즌을 2부리그에 머문적이 72년이후에 없는 팀. 독일에서 나름 큰 중상급의 함부르크의 손흥민이 1부에 자리잡으면 분데도 볼만 할 것 같네요. 수정 삭제
아 좋네 시로사기 12/01/31 [12:58]
스포츠로 하나되는.. 승패에 관계없이 남북단일팀을 보고 싶네요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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