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내의 세 아이 출산기 (1부)
일본 아내가 장인어른을 싫어하는 이유 (2부)
아내가 출산시 비명 안 지른 이유 (3부)
진통은 길었지만 출산은 금방이었다 (4부) 어느날 새벽 갑자기 쓰러진 아내 (5부) 세면대 앞에서 기역자로 쓰러져 있던 미와코를 본 순간 난 패닉상태에 빠졌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일단 깨워놓고 보자. 쓰러져 있던 미와코를 무작정 흔들었다.
"미와코! 정신차려!" 딱 한번 소리 질렀을 뿐인데 미와코가 눈을 번쩍 떴다. 다행은 다행인데 방금전 내가 느꼈던 것들이 좀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책망하듯 물었다.
"왜 사람 걱정하게 여기 쓰러져 있는거야?" 미와코는 힘없이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플라스틱 용기를 들어 보였다.
"아, 미안... 정말 오랜만에 써서 갑자기 어지러웠어." 미와코가 보여준 플라스틱 용기는 천식환자들이 쓰는 흡입제 용기였다. 연애 초창기에 미와코는 자신이 천식을 앓고 있다고 말 한 적은 있었지만 그 이후로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또 미와코는 나를 만난 이후 천식으로 인한 고통을 한번도 호소한 적이 없어서 그냥 그런갑다 했는데 이렇게 사람을 놀래킬 줄이야.
어찌된 것인지 자초지종을 묻기엔 상황이 너무 그랬다. 미와코는 울고 있던 미우에게 젖을 주려고 비틀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안쓰러웠다.
"미와코 그냥 자. 내가 분유타서 미우한테 줄께."
"어? 응. 고마워 오빠." 미와코는 바로 이불에 쓰러졌다. 분유를 먹은 미우도 새근새근 꿈나라로 빠져 들었다. 다시 조용해졌다. 원래의 풍경으로 돌아갔다. 잠 못 이루는 나만 제외하면 말이다. 컴퓨터를 켜서 '천식'을 검색했다.
그런데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가리키는, 그러니까 천식이 당사자에게는 매우 무서운 병이라는 걸 충고하는 사이트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우선 그들은 공통적으로 천식은 불치병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한번 걸리면 평생 따라 다닌다고 한다. 일견 나은 듯 보여도 어느 순간 심리적인 그 무엇으로 인해 다시 재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또 몇몇 웹페이지들은 천식이 유전될 수 있는 가능성도 매우 크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이 재발이 상당히 위험하다. 어떤 천식환자는 천식이 나았다고 생각했다가 몇 년후 재발했을 때 그 심리적 충격으로 자살까지 생각했었다고 한다. 우울증 등에 걸리기 쉽다는 보고서도 존재했다. 천재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 역시 어머니의 사망이후 천식이 도져 평생 고생해야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런저런 웹페이지를 보며 미와코의 천식이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방금전의 안도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나는 그날 새벽내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미와코는 다음 날 아침 미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해 왔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숨쉬기가 너무 힘들어서... 갑자기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어."
미와코는 새벽에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 미와코의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빨리 장인어른 집에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미와코의 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내 잘못도 있었지만 미와코와 동거했고 신혼생활을 보냈던 4년 동안, 그러니까 장인어른 집에서 떨어져서 보냈던 그 기간에 미와코는 한번도 천식을 앓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미와코는 스스로 "예전에 집에서 생활했을 땐 매일같이 이걸(흡입제)를 사용했었어"라고 덧붙였다. 그녀에게 있어 장인어른 집 자체가 이미 삶을 갉아먹는 장소였다.
최근 읽고 있는 김형경의 심리 애도 에세이 '좋은 이별'에는 미와코와 비슷한 케이스가 여럿 등장한다. 김형경은 "유아기에 양친을 잃거나 양친으로부터 버림받는 등 어떤 형태로든 상실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평생 그것이 따라다닌다"라는 맥락의 말을 했다.
미와코는 겉으로는 양친을 잃거나 버림받지는 않았지만, 심리적으로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녀는 이 경험에서 오는 고통과 공포를 억누르기 위해 천식 흡입제를 사용하게 됐다고 털어 놓았다.
"유치원 때였어. 어렸었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난 이 사람(장인어른)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했지. 자신의 편의에서 날 필요로 했던 것일뿐 진정으로 나를 딸로서 사랑한다는 생각은 가지지 못했어. 그런 마음이 오빠를 만날 때까지 날 지배했고, 나는 매일같이 흡입제를 들이켜야만 했지." 그제서야 나는 미와코가 2001년 12월 왜 나를 만난지 한달만에 집에서 나오고 싶다고 말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미와코에게 나는 '천식 흡입제'였다. 김형경의 말을 빌리자면 "공포와 충격을 잊기 위한 대체수단"이 나였다는 말이다.
실제로 미와코는 나와 같이 살았던 4년간 천식을 앓지 않았고 마치 지나가는 말로 "예전엔 이때쯤 되면 천식을 앓았었는데 신기하다"라고 말하거나 "오빠는 나에게 있어 산소같은 존재"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새벽의 그 경험 이후로 미와코가 얼마나 그동안 위태롭게 살아왔는지 고통스럽게 생활해 왔는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또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기 생활에만 몰두했던 내가 미웠다.
▲ 2006년 당시 우리 세 가족이 살았던 다다미 4. 5조짜리 방. 둘째가 태어나기까지 약 2년간 기거한 곳 ©jpnews | |
그 다음 주, 그러니까 4월에 접어들면서 미와코와 나는 주말만 되면 집을 알아보려 다녔다. 물론 이사할 돈은 없었지만 집을 보러 다니는 행위 자체가 미와코에게는 심신의 안정을 주었던 것 같다.
"근처는 너무 비싸네. 저 멀리 가 볼까?"
"그래. 가 보자." 그래도 미와코는 고쿠분지 집 근처를 고집했다. 장모님 때문이다. 장모님이 파킨슨 병을 앓고 있었다(미와코는 어머니가 그렇게 된 거도 장인 탓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먼 곳이라 할지라도 항상 고쿠분지를 기준으로 생각해야만 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즉시 달려가야 하니까. 그녀에게 있어 가족은 싫지만 버릴 수 없는 존재였고 애증어린 대상이었다.
아무튼 그녀의 그런 기준에 맞춘다면 무사시무라야마나 히가시무라야마, 히노나 하치오지, 도요다 등은 고려해 볼 수 있지만 스미다, 닛포리, 우에노, 코이와, 지바 등 도쿄 동부쪽은 전혀 해당사항이 없었다.
어느새 '주말 집 보러 다니기'는 우리의 일상이 됐다. 그런데 이것이 어느샌가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의 여행이 돼 버렸다.
가령 우리는 나카가미(中神) 같은 곳으로 방을 알아본다는 핑계를 대고 떠났다. 나카가미는 행정구역상으로는 동경도 아키시마 시에 소속돼 있고 고쿠분지 역에서 30분 정도만 가면 된다.
다치가와 역에서 오메 선으로 갈아타고 10분쯤 지나니까 어느새 나카가미 역이었다.
한적했다. 차도, 사람도 별로 안 보인다. 역사(駅舎)도 매우 낡았다. 불과 10분전 타치가와의 그 어마어마한 인파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오후 2시의 나까카미역 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다. 내리는 사람은 우리들을 포함해 대여섯에 불과했다. 출구로 나가니 파칭코 가게의 엄청난 소음이 적막한 거리의 유일한 bgm이었다.
하지만 미와코는 좋아했다. 마치 예전에 '준야'를 유산하고 둘이 1년간 다녔었던 주오센 동네여행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부동산에서 물건을 보는 건 불과 20분만에 끝났다. 물론 적당한 물건은 없었다. 무척 쌌지만 그 정도 여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미와코는 실망하지 않았다. 웃으면서 부동산 점포를 나왔다. 그리고 무작정 걸었다. 한적한 주택가 공원의 벚꽃을 구경하고, 사진을 몇 컷 찍었다. 공원 앞 과일가게에서 1팩 520엔이라 적힌 딸기를 샀다. 주인아저씨가 아기가 귀엽다면서 40엔을 깍아줬다. 520엔이면 보통 20엔 깍아서 500엔으로 할 건데 굳이 40엔을 깍아주는 이유가 그때도 지금도 궁금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안씻어 먹어도 된다는 주인아저씨의 말에 공원의 벤치에 걸터앉아 미와코와 같이 딸기를 먹어댔다. 정말 맛있었다. 먹고 싶다는 듯 애처롭게 딸기를 쳐다보는 미우 앞에서 보란듯이 아내와 나는 게눈 감추듯 맹렬한 스피드로 전부 먹어 버렸다. 미와코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미우야, 딸기 먹고싶으면 빨리 크면 돼. 하하하." 미우는 불쌍했지만 미와코의 밝은 웃음에 안도하는 마음이 된다. 미와코는 스스로를 공격했다. 불만이 있다면 직설적으로 말하면 되는데 눈치없는 나는 그 분위기와 공기를 읽지 못했던 것이다. 남편으로서, 동반자로서 실격이었다. 적어도 이 때는 말이다.
한동안 걷다 보니 미우가 운다. 젖 달라는 소리다. 마침 근처에 무사시노 회관이라는 공민관 비슷한 곳이 있었다. 새로 지은 신축건물인지 시설이 좋았다. 여자 화장실 맞은 편에 젖주는 곳(수유실)이 따로 있다.
아내가 아이에게 젖을 주는 동안 공민관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새로운 디자인의 공중전화기를 발견했다. 눈이 잘 안보이는 노인분들을 위한 편의로서 그렇게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겠지만, 다이얼 버튼이 큼직큼직하고 디자인도 꽤나 깔끔하다.
그런데 전화기를 암만 살펴봐도 돈 넣는 곳이 없다. 수화기를 들고 왼쪽 오른쪽 살피고 있으려니 경비원 아저씨가 다가와서 웃으며 말한다.
"9번 누르고 그냥 쓰면 돼요." 공짜였던 것이다. 일종의 서비스다. 사소해 보이는 것이지만 이럴 때 나는 일본의 복지시스템은 참 잘 돼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지금 일본에서는 하코모노(箱もの, 원뜻은 상자처럼 된 물건이지만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이 예산을 들여 만든 대형신축건물을 의미함) 비판이 일었다. 각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대형건물을 지었지만 시간이 얼마 지난 후 이용객이 없거나 내용물이 부실해 결국 예산낭비로 이어진다는 비판이었다.
그런데 같은 하코모노라 하더라도 이런 공민관은 꽤 많은 도움을 준다. 공동화, 시골화되어가는 도쿄 근교의 지역민이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의 공민관에는 무료로 각종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고령화 인구가 많아질수록 이런 의료/복지 상담지원 등은 그 사회가 얼마나 선진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화까지 공짜로 쓰게 하는 공민관은 처음 봤다. 국제전화도 될까 싶어 수화기를 들고 9번을 눌렀다. 신호음이 간다. 조심스럽게, 침을 꿀꺽 삼켜가며 001을 눌렀다. 순간 들려오는 매우 귀여우면서도 사무적인 목소리.
"지금 거신 전화는 사용불가능한 번호이오니 다시 한번 확인하시고..." 그럼 그렇지. 국제전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수화기를 놓는데 어느새 수유실에서 나온 미와코가 물어온다.
"뭐 해? 전화했어?""어? 어... 아무 것도 아냐. 하하하."그렇게 한동안 돌아다니니까 슬슬 다리가 아파왔다. 미와코는 에너지를 뺏겨서 그런지 몰라도 금세 배가 고프다고 한다. 역 근처의, 어떤 건물 옥상에 있던 스파게티 가게로 갔다.
커피와 녁키(덩어리 스파게티)와 리조트를 주문하고 옥상에 깔린 잔디에서 미우와 놀았다. 그 모습을 이제 막 벚꽃놀이를 끝내고 돌아온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잔씩 드셨는지 불콰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아이에게 이것저것 말을 건넨다.
"엄청 귀엽다. 아휴, 이뻐라! 몇 개월이예요?"
"3개월요.""눈도 크고... 어머어머! 얘 웃는 것 좀 봐. 너 앞으로 남자 많이 후리겠다. 호호호." 어딜가던 동네 아주머니들은 미우에게 관심을 보인다. 아이는 그 존재만으로도 주위를 밝게 비추는 힘이 있나 보다. 그러면서 아주머니들과 아내와 나는 수다를 떨었다.
어떻게 왔냐는 말에 그냥 여기서 내렸다고. 재밌는 마을이라고. 전화를 공짜로 쓸 수 있는 마을은 처음이라고.
"아니! 전화를 어디서 공짜로 쓸 수 있대?" 아주머니들이 놀란 얼굴로 물어온다.
"저기 무사시노 회관이라고 공민관이 있던데 거기 입구 왼쪽에 전화기 하나 있어요. 그거 9번 누르면 그냥 공짜로 쓸 수 있어요. (사이) 아참! 해외전화는 안됩니다.""아?! 그래요? 지금까지 몰랐었네. 그런데 어떻게 오늘 처음 이 동네 왔다는 양반이 그런 것까지 다 안대? 호호호""아! 아까 공민관 갔을 때 실험해 봤거든요. 국제전환 안되더라구요. 하하하." 일순 흐르는 적막. 뭐, 물론 길지 않았다. 이내 모두들 박장대소 했다. 미와코는 옆에서 '에휴, 이 화상아!'라는 표정을 보였지만.
이런 여행, 아니 집찾기를 주말마다 하면서 미와코는 조금씩 원기를 회복했다. 물론 이 회복에는 나 뿐만 아니라 미우의 역할이 매우 컸다. 매일같이 칭얼거리기만 하던 미우가 3개월이 지나면서 웃기 시작했다. 미와코는 미우의 웃는 표정을 너무나 즐거워했다.
"엄말 그렇게 힘들게 하더니 니가 이 웃음을 보여주려고 그랬던 거구나" 라며.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추석이 다가왔다. 바쁘기도 했고 워낙 경제적 상황이 좋지 못해 이번엔 건너뛰자라고 생각했었는데 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셨다. 무뚝뚝한 아버지가 주저주저하신다.
"너거...그...음...""네?""그 머시고... 우리 미우 얼굴 좀 보자. 이번 추석에는 꼭 오거라. 알것제?" 내리사랑이라고 하더니만 아버지가 그 짝이다. 사진으로만 본 미우의 실물이 너무나 보고 싶었던 것이다. 미와코도 오래간만에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이 때 한국엘 안 갔어야 했다. 한국에 가는 바람에 미와코는 둘째 유나를 1년 뒤 한국에서 낳게 됐고 고부갈등 아닌 고부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 7부 - "오빠, 장남이잖아. 부모님 모셔야지"로 이어짐.
■ 글쓴이 주 일신상의 이유(건강문제)로 2주간 연재를 쉬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제는 많이 좋아졌으니 앞으로는 쉬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6개월간 연재됐던 시즌1, 시즌2, 외전을 한데 묶어 단행본 에세이 '일본 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창해출판사, 1만 1,500원)를 출간했습니다. 현재 전국 오프라인 서점과 예스24, 교보문고, 알라딘, 인터파크 등 유명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상당히 죄송합니다만, 이번 출간과 함께 시즌1, 시즌2는 사이트 상에서 열람하실 수 없게 됐습니다.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출판사 책소개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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