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그런 이름은 들어본 바가 없다. 그 기사는 나도 읽었지만 그 정도의 고급 정보원을 지닌 저널리스트라면 모를 리가 없는데..." 문예춘추 9월호에 실린 이명박 대통령의 '후텐마 기지 한국 이전' 제안 발언을 놓고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본지 역시 해당기사를 분석한 관련기사를 상재했지만 이 기사의 진위를 따지는 목소리는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 문제의 기사. 하지만 이 기사는 다른 기사들과 달리 외부기고자인 오키 도시미치 씨의 얼굴사진이 실려있지 않다. 이번 월간 문예춘추에서 글쓴이의 얼굴사진이 실리지 않은 기사는 이것을 포함해 두개 뿐이다. ©jpnews | |
이 기사는 몇 가지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이 기사가 월간 문예춘추답지 않게 매우 급하게 씌여진 흔적이 역력한, 짧은 르포기사라는 점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월간 문예춘추는 일종의 '요미키리(読み切り, 기승전결 구조를 갖추고 있고, 한번만 읽으면 그 전후구조가 전부 이해되는 것) 형식의 장문 르포기사로 채워진다.
물론 월간지의 특성상 기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권위있는 문학상 아쿠타카와 상을 주관하는 매체답게 연재소설, 단편소설 등 문학적인 컨텐츠로도 유명하다.
시간도 넉넉하다. 일간지 및 주간지 기자들과는 달리 적어도 한달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러다 보니 르포들도 상당히 문학적인 기법으로 씌여진다. 같은 호에 실려진 '이상적인 정계개편은 이시바 신당 vs 가쓰마 가즈요 신당이다'(134p~141p)는 물론 심지어는 '스모도박 조사단의 보고'(180p~185p) 같은 글들조차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데 이 '후텐마 발언' 기사는 매우 딱딱하다. 문학적인 느낌보다는 팩트와 정황들을 시간적 순서로 급하게 나열했다는 인상을 주며 마지막 페이지는 일본정부, 즉 민주당의 대미외교정책을 비판하는 뉘앙스를 비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부분이다.
"중국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뿐만이 아니다. 중국 군사력 증강을 염려하고 있는 아시아 나라들도 많다. 동시에 후텐마 기지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미일동맹 약체화를 불안시하고 있는 목소리도 들린다.
6월말 필리핀에서 새롭게 발족한 아키노 정권의 고관과 회담한 미 당국자에 의하면 아키노 신(新)대통령은 '미일동맹이 아시아 안전보장을 위해 해 왔던 역할들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나'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코라손 대통령은 '미일동맹이 흔들리더라도 그것에 의해 생겨난 안전보장 공백을 메꿀 수 있는 군사동맹이 대두된다면 그것을 지지해도 된다'고 덧붙였다.
미 고관은 '이러한 목소리가 아세안에서도 강한 발언권을 지니고 있는 필리핀에서 나오고 있는 가능성을 고려해야만 한다'고 말한다.(중략)" 즉 이 기사는, 전체적으로 본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과 한국전쟁 이후 최대 규모인 한미연합군사훈련, 그리고 미국과 한국 간에 처음으로 열린 투 플러스 투 회의 등을 예로 들어 일본 민주당 정권의 대미외교전략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딱딱하고 급하게 씌여진 문장과 의도가 보이는 결말.
하지만 이 기사의 신빙성이 의심가는 가장 큰 이유는, 이 기사를 작성한 오키 도시미치라는 이름이 가명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군사 및 무기 저널리스트 쓰다 데쓰오는 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모르는 사람이다. 문예춘추에 글을 기고할 정도라면 꽤나 실력있는 사람일텐데 생판 처음 들어본다"고 말한다.
이 기사를 읽었다는, 익명을 요구한 저널리스트는 "구성이나 분위기, 그리고 다른 글들과 비교했을때 외부기고는 확실하지만 그런 이름을 쓰는 저널리스트는 없다"며 "하지만 상당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동아시아 및 미국 외교 관련 전문 라이터임에는 분명하다"라고 말한다.
또한 이 저널리스트는 "이런 이름을 쓰는 사람 자체가 없다는 증거는 9월호에 실린 다른 기사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고 단정지었다.
다른 기사를 읽어보니 그제서야 기자 역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기사를 쓴 오키 도시미치와 다음 기사인 일곱 페이지 짜리 '다케나카 헤이조의 측근 - 기무라 쓰요시가 자폭하기까지'(167p~173p)를 쓴 저널리스트 다카하시 아쓰시를 제외한 모든 기사에는 기사를 작성한 외부 저널리스트들의 얼굴사진이 실려있었기 때문이다.
사노 신이치, 이토 시게루 등 얼굴이 없어도 다들 알 수 있는 유명인사도 얼굴사진이 기사 첫 페이지에 들어가 있다. 그렇게 네임밸류가 높다고 할 수 없는 중국전문 저널리스트 후쿠시마 가오리라는 젊은 여성 저널리스트도 당당히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고 있었다.
즉 문예춘추 9월호에서 약 200페이지에 달하는 르포 분야에서 얼굴을 감춘 저널리스트는 오키 도시미치와 다카하시 아쓰시(이 사람 역시 가명일 가능성이 높음)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교도통신 서울특파원을 지낸 바 있는 한국통 저널리스트 아오키 오사무 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사견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일단 기사 내용이 문예춘추 스타일이 아니다. 기사량도 적고 그 스타일도 그렇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현직 신문사 기자가 청탁을 받아 쓴 것 같다. 신문사 조직에 속해있는 기자가 다른 외부매체에 기고할 때는 펜네임으로 쓸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로 보여진다."
▲ 가운데 부분이 '후텐마 한국 이전 발언' ©jpnews | |
일본에는 현직 신문사 기자들이 가명 혹은 무명으로 다른 매체에 글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3만명을 위한 정보지를 표방하는 잡지 '선택'이 대표적인 예다. '선택'은 글을 쓴 저널리스트들의 이름이 실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내용적 깊이가 대단해 정재계의 필독잡지로 유명하다.
한때 '선택' 편집부에 재직했었던 한 편집자 역시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문예춘추의 그 기사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내용을 듣자하니 '선택'같은 스타일로 보여진다"며 "문예춘추는 심심찮게 그런 류의 펜네임 기사를 내 보낸다"라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바이라인(서명기사)이 정착된 것 같지만 아직 일본언론시장은 그렇지 않다. 내용만 괜찮다면 이름따윈 상관없다는 그런 분위기가 있고, 잡지독자들도 이름따윈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이지만 커다란 신문사 조직은 이런 류의 기사를 내 보내기 힘든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그 기자가 '네타'(ネタ, 소재)를 문예춘추 측에 팔았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의혹에 대해 문예춘추 측에 직접 확인을 시도했다. 하지만 문예춘추는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사는 100% 사실이며 작성한 이에 대한 정보는 기본적으로 제공할 수 없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다음 주에 다시 연락해 달라." 과연 이 기사가 문예춘추가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100% 팩트에 기반한 기사일까?
아오키 씨는 "아마도 사실일 것"이라며 "주간문춘도 그렇지만 문예춘추가 오보를 낸다는 이야기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문예춘추사가 발행하는 주간지 주간문춘은 최근 akb48 관련 기사로 인해 소송소동에 휘말리고 있다. 하지만 이 기사도 그녀들이 소속돼 있는 프러덕션 사장의 노리개가 되고 있다는 주장을 한 akb48 보호자의 육성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오보라 보기 힘든 구석이 있다.
특히 월간 문예춘추의 경우 지난 10년간 오보소동에 휘말린 적은 딱 한번을 제외하고 없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딱 한번이 이명박 대통령이 후쿠다 야스오 전 수상에게 했다는, 이른바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라는 '독도발언'이었다.
즉 월간 문예춘추가 오보소동에 휘말린 사례는 최근 10년간 오직 두번, 그것도 전부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 발언에서 불거져 나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발언의 진위여부를 떠나 이 기사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의 대담한 외교적 전략을 일본정부도 배워야 한다"는 식으로 호평하는 일본 독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앞서 등장한 익명의 저널리스트는 "(기사가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말하자면) 이명박 대통령이 아무리 그런 말을 해도 주변 정황상 (후텐마 기지가) 한국으로 이전될 리가 없다"며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오바마 대통령이나 그 주변 측근들이 한국을 다시 봤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말한다.
즉 기사를 쓴 오키(?) 씨는 물론 보통 일본인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이번 후텐마 발언이 상당한 임팩트가 있는 훌륭한 외교전술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대정부 질문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이번 후텐마 발언 사태가 과연 어떤 식으로 정리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