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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에 관심이 없었던 이유
투명한 나라! 한국?
 
구로다 후쿠미

내가 한국에 관심을 갖기시작했던 80년대 초반, 일본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일반서민에게 어떤 느낌으로 비치고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한국분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정말 죄송한 이야기지만 '투명한 나라'라고 해야할까, '그 존재조차 실감하는 것이 불가능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84년 11월 26일 아사히신문 지면에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이 진행한 '한일공동여론조사'의 흥미로운 결과가 게재되었다.
양국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물은 것이다.

<한국쪽 회답>

질문: 일본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1. 36년간의 고통  31%

2. 교활하다          10%

3. 경제발전           8%

4. 36년의 기억     5%

5. 혐오감              4

6. 우호적               4

7. 잔혹하다            8
 

<일본쪽 회답>

질문: 한국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1. 김치,한국요리 등 먹는 것         8

2. 민족의상,춤,문화                   8%

3. 일본이 침략하고 학대한 것      4%

4. 서울 올림픽                                 4%

5  싫다                                     3%

그 외 전쟁,군사문화,38선 각        3%

재일한국인에 대해                       2%

특별히 없음                                34%


▲ 지금과 80년대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사진은 꽃남 일본 방문시 하네다 공항에 마중나온 일본팬(한국 유학 경험 있음)     ©jpnews
당시 한국에서 일본이라고 하면 약 40%의 사람들이 일본식민지 시대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한편,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빈약하다.


1위가 한편 8%라는 게 놀랍다. 또 '김치, 불고기'라고 해도 '한국의 식문화'를 가리킨다고 말하기 어렵다. 요즘처럼 한국가정요리나 궁중요리 등이 폭넓게 알려지기 훨씬 예전의 일이다. 불고기라고 해도 극히 일본적인 불고기 밖에 없었다.

그래도 당시 일본인은 그런 '고기집'을 다니는 것 밖에 한국을 실감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실정이었다.

또 2위를 차지한 '민족의상'이라고 한 부분에서, 당시는 그런 옷을 볼 기회가 그렇게 많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기껏 해봤자 조선고등학교 여학생의 교복을 떠올리는 게  다였을 것이다.  

'이코노믹 애니멀'이라고 불리며 상승곡선일변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일본인은 한국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한국은 일본 보다 20년 정도 뒤떨어져 있죠?'라고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누구라도 이 정도의 인식 밖에 없었다.

현재와 달리 한국 관련 서적도 적었고, tv 프로그램에서 한국 관광이나 맛집, 연예나 공예 등 문화적인 것이 거론된 적도 거의 없었다.

한국관련 화제를 말한다면 '전후보상 문제','재일한국인차별문제''지문날인거부'의 문제, 또 아니면 '김대중사건' 등, 어둡고 어려운 문제만이 떠돌던 시대였다. 이런 것으로는 사람들 기분이나 호기심이 한국을 향할 리가 없었다.

한국에는 말할 것도 없이 풍요롭고 매력 넘치는 문화와 전통이 있다. 게다가 '아시아의 이태리'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인의 기질은 밝고 정이 두텁다.

'tv라고 하는 매스미디어가 보다 이런 옆나라의 매력을 소개해주었다면, 일본인의 한국관은 크게 바뀌었을텐데・・'

나는 그렇게 바랐으나, 프로그램 제작하는 쪽에서 보자면, 한국보도에는 소극적으로 될 수 밖에 없는 큰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nhk가 '한글 강좌'라고 하는 지극히 진지한 어학강좌를 개시할 때도 '한국어'로 할 것인지 '조선어'로 할 것인지 7년간이나 머뭇거렸던 것처럼,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생기는 '다루기 어렵다'는 인식이 한국을 항상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여기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기업이 이것을 두려워했다.

만약 만일, 프로그램 내에서 표현을 둘러싸고 커다란 문제로 발전했을 경우, 광고주인 기업이 표적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책임문제를 물어 '불매운동'이라도 전개되면 기업 존속까지 걸리게 된다. 그렇다면 '일부러 불 속의 밤을 줍는 일' 같은 것을 하지 말고 어쨌거나 '한국을 테마로 삼는 것을 피한다'는 분위기였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이런 사정때문에 오랜 기간, 일본인은 한국의 생생한 문화나 사람들의 생활 모습 등을 알 기회가 없었다. 다른 외국과 비교해도 극단적으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인은 한국의 존재를 실제로 느끼는 것이 불가능했고 그 존재에 자신들이 무신경해서 그렇다는 것 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있었던 것이다.  (번역 김현근)


(이하 원문) 

 

透明な国〜韓国

 

私が韓国に感心を持ち始めた80年代初頭、日本に於いて韓国と言う国は、一般庶民にどんな風に映っていただろうか。

このようなことを申し上げるのは韓国の皆さんの心情を思うと、誠に申し訳ないが、「透明な国」とでも言おうか、「その存在すら実感することのできない国」であった。 
84年11月26日の朝日新聞誌面に、東亜日報と朝日新聞が行った「日韓共同世論調査」の興味深い結果が記載されている。

お互いの国についてどのようなイメージを持っているかを問うたものである。 


<韓国側の回答>

問い:日本といえば何を思い浮かべますか?

1 36年間の苦痛 31%

2 ずるい  10%

3 経済発展  8%

4 36年の記憶 8

5 嫌悪感  5

6 友好的  4

7 残酷  4

特になし  8 
 

<日本側の回答>

問い:韓国といえば何を思い浮かべますか?

1 キムチ・韓国料理など食べ物 8
2 民族衣裳・踊り・文化             8%

3 日本が侵略・虐待したこと     4

4 ソウルオリンピック                 4

5 嫌い                                         3% 

その他 戦争・軍事色・38度線 各 3

 在日韓国人のこと                      2

 特になし                                     34 


当時韓国では日本といえば約4割の人達が日本植民地時代のことを思い描いたことになる。一方、日本人の韓国に対するイメージは貧弱だ。

一位がわずか8%というのは驚きだ。また「キムチ・焼き肉」といっても「韓国の食文化」を指しているとは言いがたい。今日のように韓国家庭料理や宮中料理などが広く知られる遙か昔のことである。焼き肉といっても、極めて日本的な焼き肉でしかなかった。

けれども当時の日本人はそんな「焼き肉屋」を通してしか韓国を実感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が実状だ。

また二位の「民族衣裳」といったところで、当時はそのような衣裳を目にする機会がそうあったとも思えない。せいぜい朝鮮高校の女学生の制服を思い浮かべるのが関の山だったのではないだろうか。

むしろ、本当の第一位は34%も占めている「特になし」という回答だと見るべきだろう。 

「エコノミックアニマル」と呼ばれ、右肩上がりの経済成長を遂げていた日本人は韓国にさしたる関心をもっていなかった。「韓国って日本より20年くらい遅れているんでしょう?」と人々は私に尋ねた。誰もがこの程度の認識でしかなかった。 

現在のように韓国関連の書籍も数少なく、テレビ番組で韓国の観光地やグルメ、芸能や工芸といった文化的なことなどが取り上げられることもほとんど無い。

韓国関連の話題と言えば、「戦後補償の問題」、「在日差別撤廃」、「指紋押捺拒否」の問題、はたまた「金大中事件」など、暗く、難しい問題ばかりが取り沙汰されていた時代だ。

これでは人々の気持ちや好奇心が韓国に向かう筈もなかった。 

韓国には言うまでもなく豊かで魅力あふれる文化や伝統がある。その上「アジアのイタリア」と称されるほど、韓国人の気質は陽気で人情に厚い。

テレビというマスメディアがもっとこのような隣国の魅力を紹介してくれたなら、日本人の韓国観は大いに変わるだろうに・・」

私はそう願ったが、番組制作の側からすると、韓国報道には消極的にならざるを得ない大きな理由があった。

それはNHKが「ハングル講座」という極めて真面目な語学講座を開始するにも「韓国語」か「朝鮮語」かで7年も逡巡したように、分断国家であることから起こる「扱いにくさ」が韓国には常につきまとっていたからである。 

ことに番組を提供する企業がこれを恐れた。
もし万一、番組内での表現を巡って大きな問題に発展した場合、スポンサーである企業が槍玉に上がらないともかぎらない。責任問題を問われ「不買運動」でも展開されたなら企業の存続にも関わる。だとすれば「あえて火中の栗を拾う」ような事をせず、とにかく「韓国をテーマにすることは避ける」という風潮であった。「さわらぬ神に祟りなし」ということだ。 

こうした事情から長い間、日本人は韓国の生き生きとした文化や人々の暮らしぶりなどを知る機会に恵まれずにいた。


他の外国にくらべて極端に情報がなかったことで、日本人は韓国の存在をリアルに感じ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し、その存在に自分たちが無頓着であることにさえ気づかずに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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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6/19 [22:36]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80년대의 일본이 본 한국... 살무사 09/06/20 [13:12]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구로다 후쿠미씨가 쓴 내용처럼, 일본인에게 있어 80년대의 한국은 그다지 친하고 싶지 않은 이웃나라였죠. 극히 일부만 시민운동차원에서 정치적으로 관심을 가졌었고.
87년도인가, 베트남 보트피플 취재차 고토열도에 가니 그 섬 사람들 왈, 한국인도 쌀밥을 먹어요? 하고 물어서 기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그 시대의 일본인들은 한국인에 대해 무관심이라고 할까, 무지하다고 할까 양쪽 다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한일양국의 관계를 보면 그 당시와 비교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구로다씨 같은 분이 있어 발전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수정 삭제
일본 신사들에 그렇게 많다는 '도래인'들, 백제촌, 신라향이 있는 데도 mimesis 09/06/21 [06:15]
전반적인 정보는 '모른다'가 될 수 있는 것인지, 그냥 '모르고 싶다'쪽이 혹시 가까운 것은 아닌지...북한을 그렇게 의식하면서 남한을 모른다는 것은 일본 츠 교과서만 봐도 이해가 잘 가질 않는다. 크게 떠오르느 것이 없다는 그 말 그대로라고 이해하면 되는 것인지....?!? 수정 삭제
구로다 feynman 09/06/21 [14:54]
씨의 말은 아마도 대중일반의 일본인들을 말하는 것 같은데요. 물론 교과서에서 북한문제도 나오고 백제촌 신라향이 있다고는 해도 그게 80년대 당시의 한국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몰랐을 수도 있죠. 일본정치인이나 교수들은 한국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보통의 일본인들은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이상 몰랐을 수도 있었다고 보네요. 수정 삭제
한일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에 있을 뿐! 지금이다가아닌.. 09/06/21 [17:42]
긴 역사를 보면, 우리 쪽에서 그쪽에 관심을 갖지 않은 세월이 훨씬 길었을 것입니다. 고려조에서 조선조를 거치면서 늘 '왜구'로나 기억했을까...그러다 해외의 움직임에 몽매했던 이 땅의 권력자 혹은 지도자들의 패착으로 임진병자의 난 뒤로 그쪽과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호시탐탐 노력대는 먹이감으로 전락하여 수모를 겪어온 셈입니다. 그 수모의 극단이 '강도일본의 35년여에 걸친 침탈'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마음속에서까지 완벽하게 극복해내지 못한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이웃이란 싫든좋든 가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건 중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와 그쪽의 관계라는 것도, 때로는 무력에, 때로는 경제력에, 때로는 문화력 등에 의해 끊임없이 재설정되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40년대와 80년대가 다르고, 20세기와 21세기가 다릅니다. 아직까지 상상이긴 하지만, 우리로부터 수준높은 시민민주주의가 흘러들어가고, 차원이 다른 방위력과 경제력이 일본과 짝을 이루고, 높은 문화적 상상력이 아시아를 뒤덮을 때, 그때는 또 다른 모습으로 교류사가 변경될 것입니다.

메이지 유신, 러일전쟁 이후로 콧대가 높아진 일본적 관점으로만 보아선 결코 아시아인, 세계인의 마음을 얻진 못할 것입니다. 우리 또한 저들에게 핍박받았던 경험만으로 모든 것을 기억할 이유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우리 세대의 분투를 기반 삼아, 또다른 차원으로 전개해나갈 새 세대의 발흥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수정 삭제
가장 중요한 것을 빼셨네여........ 부성 09/06/22 [16:32]
일본이 한국이라는 존재를 알수 없었던 것은 여기서 언급한것도 해당되겠지만.........가장 핵심은 일본 국민의 무의식이던 자의식이던 스스로 한국을 회피하고 있다는겁니다....본인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전쟁이나 죄악들에 대해선 생각조차도 하고싶지 않았던거죠....지금도 그런것에 대해선 미디어나 언론이나 교육 정부조차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지만.....일본국민 스스로 알려고 하지않는 의식 더 강하다고 봅니다. 설령... 안다고 해도 책임과 반성은 커녕 왜곡하며.. 무시하는 태도로 나오는것이 많다고 생각됩니다.......언제나 일본에겐 한국은 껄끄러운 나라죠......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수정 삭제
요즘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많이 올라왔기 때문에 관심 좀 갖는 사람이 있는 자살골 09/06/23 [10:32]
나라가 경제적으로 부강해지면 자연스럽게 주목받게 돼있음.... 수정 삭제
전쟁을 하지 않았으면 cnhyun 09/06/24 [02:21]
우리나라는 과거부터 안좋은 감정이 60%네요 그래서 지금도 일본측이 우리에게 영토같은 주장을 하면.. 옛날의 침략땜에 국민들은 안좋은감정들이 있어서.화납니다 그리고 일본 우파세력기사들을 보면 비난하고 사과하면 좋을텐데 안하고 더욱 한국이 일본을 안좋게 생각하게됨 올림픽 유치때도 서양기자 질문이 한국침략때 잔혹한 짓을 했는데라는 질문에..우리나라 국민이 어떻게 했는지 다아는데 (우파)도쿄시장이 서양보다는 매우 착하게 침략했다는 글을보고 많이 논란이었져. 수정 삭제
구로다? 까는 소리 하고 계시네 Power User 09/09/20 [11:42]
일본이 한국에게 관심이 없는것은.. 자신들이 한국을 침략하고 괴롭혔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서 그런것 아닌가??

무의식중에서라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싶겠지! 수정 삭제
좋은 내용에 감사드립니다 선돌이 09/09/20 [20:42]
한국인의 대일열등감을 보여주는 통계군요..부끄럽습니다..한일은 일수대의의 가까운 나라인데 한국정치인들이 반일감정과 반일교육을 오랫동안 시켰기 때문입니다 수정 삭제
재미있는거 알려 드릴까요 ? 10/02/28 [07:06]


쿠로다씨 !

일본은 몇년전 방문했을 때 보니까 .중국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는 책이 엄청 많더라구요 .중국이 발전하기 시작할때 였죠 !

일본 한국에 대해 관심없다가 발전하기 시작하니까 혐한 하면서 책도 나오고 하던데요 1

일본은 예전 부터 미국이나 유럽 - 자기보다 우월한 상대에게만 관심 있지 않습니까 ? 예전 조선 통신사를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불러 들이고
네덜란드 사람들을 맞아 들여 새로운걸 배우고
미국에서 함선을 끌고와 무역하라고 협박할때도 그렇구 늘 대담하게 저항 또는 맞서기 보다는 받아들이는 편이쟌아요 !

좀 약한거 가타요 일본 민족은 .. 한국 사람은 쓸데 없는 것에 화내는데

일본민족 자체가 약해서 전쟁 후에 - 역사도 바꾸고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것만 기억하는거 같아요 -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는 아닌거죠 .
하지만

중국과 한국은 기억하죠 많은 걸 빼앗기고 죽임을 당하고 착취를 당했으니까..
그런데 일본 정부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 일본인중에 사실을 알아도 자기 편할대로 왜곡하거나 이용하는 사람들은 있던데

앞으로 아시아 시대가 올 수정 삭제
이 일본인.. 생각보다 너무 뻔하구나,, 10/09/02 [03:17]
무슨말이 하고 싶으신지 너무 보이네요..
오래간만의 글치곤 내용이 부실한게
마음이 좀 급하셨나요? 수정 삭제
내가 일본사람들한테서 들은 것 경험자 10/09/02 [12:50]
2000년대로 진입하기 전까지 한국은 일본에 비해 경제적으로 너무나도 비참할 정도로 못살았다. 그래서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1988 서울올림픽 이후에 갑자기 졸부가 되어 기고만장 해져버린 한국인들이 동남아 관광을 할때 현지인들에 대한 멸시와 냉대를 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대일본제국과 경제적으로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수준으로 올라가면 쇳가루같은 일본인들은 자석같은 한국인들에게 달라붙게 될 것이다.

※ 大韓帝國(대한제국)이라는 것은 大日本帝國(대일본제국)을 모방해서 만든 국호라고 들었음. 그래서 솔직히 대한민국이라는 국명이 그다지 자랑스럽지는 않음. 일본인들이 제멋대로 바꿔버린 KOREA를 원래의 영문표기인 COREA로 바꿨으면 좋겠음.) 수정 삭제
이 어린 녀석들 댓글들에게 13/01/14 [17:05]
여기는 문화칼럼이지 정치칼럼이 아닌데 왜케 흥분해서 그러냐? 니네가 이 칼럼리스트를 욕한다고 변하는 건 없다. 어리석은 시키들아, 화를 낸다고 욕을한다고 도덕을 들먹인다고 해결되는 건 없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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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후쿠미(1956년 7월생)
여배우,에세이스트



도쿄도 출신, 도호가쿠엔대학연극과졸업

영화, TV 드라마 등에서 배우로서 활약하는 한편, 일본 연예계 최고의 한국통으로도 알려짐.

TV 코멘테이터 및 한일관련 이벤트에 다수 출연, 강연 활동 등에도 활발히 하고 있다.


99년 'Welcome to Korea 시민협의회' 일본측 홍보위원

'2002년 FIFA 월드컵 일본 조직 위원회(JAWOC)' 이사 취임

01년 1월부터 2년간, 서울에 있으면서 한일공동개최 월드컵에 대해서 생활인의 시점에서 정보발신을 계속

02년 3월 '서울의 달인 최신판'을 간행, 동시에 한국에서도 한국어로 번역,출판되었다. 그 외 저서 다수

04년 9월 오차드홀에서 진행된 '겨울 연가 클래식 콘서트'에서는 첫 사회 겸 통역을 담당.

같은 해 12월에는 한국 SBS 제작 드라마 '유리화'에도 출연.



黒田福美 女優・エッセイスト


東京都出身。桐朋学園大学演劇課卒業。


映画・テレビドラマなどで俳優として活躍する一方、芸能界きっての韓国通として知られる。
テレビコメンテーターや日韓関連のイベントにも数多く出演、講演活動なども活発におこなっている。


99年、「Welcome to Korea 市民協議会」の日本側の広報委員、

「2002年FIFAワールドカップ日本組織委員会(JAWOC)」の理事に就任。
01年1月から2年間、ソウルにも居を構え、日韓共催のW杯に向けて生活者の視点で情報発信を続け

02年3月に「ソウルの達人最新版」を刊行。同時に韓国でも韓国語に翻訳され出版される。他著書多数。
04年9月にオーチャードホールで行われた「冬のソナタクラシックコンサート」では初の司会兼、通訳を務めた。

同年12月には韓国SBS制作のドラマ「ガラスの華」に出演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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