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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처음 본다는 나가노 사람들
마쯔시로 터널의 조선인 비극의 현장을 가다
 
최경순(일본 전문 번역
한국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즐거운 체험을 하나 소개한다.

나가노(長野)현 고쇼쿠(更埴)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은 1년 중 봄을 빼곤 외지인의 왕래가 뜸해 늘 조용하다고 한다. 봄만 되면 살구꽃이 온 마을을 뒤덮는 장관을 연출하는데 이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드는 인파로 마을 전체가 주차장이 되다시피 해 주민들은 가급적 돌아다니지 않고 차량이용도 자제해 가며 외지인들을 맞는다고 한다.

그곳에 살고 있는 노리코 씨와의 만남이 내겐 즐겁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녀는 편물(編物)을 가르치며 작품활동을 하는 편물디자이너이다. 해마다 전시회도 여는데, 기계편물이 아닌 온전히 수작업을 고집하며 틀 앞에 앉아 실을 걸고 한 올 한 올 엮듯 짜내려 간다. 편물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 역시 자신의 손으로 실을 고르고 색을 맞춰 한 줄 한 줄 짜면서 자신이 원하는 천이나 소품이 만들어질 때 어린 아이처럼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 편물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의 첫 작품~!! 벽걸이)       ©최경순
나는 난생 처음 틀 앞에 앉아보았다. 베틀 앞에 앉은 내 모습은, 누렇게 바랜 옛사진 속의 아낙네가 21세기에 환생한 것 같았다.
 
처음이니 간단한 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노리코 씨는 내가 고른 실로 가로와 세로에 기본 틀을 내어주곤 방법을 일러준다. 정말 놀랄 일이 벌어졌다. 알려준 대로 해보니 신기하게도 작품(!)이 나온다. 의외로 쉬웠다.
 
호호호~! 큭큭~! 나는 주변 의식도 하지 않고 소리내어 웃고 또 웃었다. 너무나 신기하고 재미가 있어 창피한 줄도 모르고 큰소리로 웃다가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노리코 씨는, 혼자 즐거워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무척 행복했었노라고 후에 말해주었다.

내 마음대로 고른 실을 걸고 잡아당기니 한 줄 한 줄 늘어나면서 모양이 나오는 게 신기했다. 혼자 신나하면서 몇 시간을 꼬빡 틀 앞에 앉아 보냈다.
 
그날 밤이 되어서야 가격으로 따질 수 없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숄이 탄생했다. 재미 들린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편물하는 곳을 찾아 정식으로 배워보리라 다짐했다. 내친 김에 다음 날 벽걸이를 하나 더 만들었다.
 
일본적인 색깔인 감색(난 늘 이 색을 보면 일본의 색이라는 생각이 든다)을 주제로 만든 벽걸이에는 뜰에서 꺾어온 나뭇가지를 중간중간에 끼워가며 나름대로 멋을 내보았다. 노리코 씨로부터 감탄 섞인 칭찬도 들었다. 서울에 돌아와 여기저기 수소문 해봤지만 손으로 짜는 편물하는 곳은 결국 찾지 못했다.

노리코 씨는 아날로그를 끝까지 고수하는 편물작가다.
그녀는 양의 몸에서 깎아낸 양털을 조금씩 손으로 비틀어 물레에 감아 원사를 만들고 자연에서 얻어지는 재료를 염료로 쓰고 있었다. 양파껍질을 모아 달인 물이나 정원에 핀 꽃과 풀로 천연염색을 하는 순수 아날로그파다. 그 집안엔 늘 양털 뭉치가 날아다니곤 했다. 난 지금도 양파껍질을 벗길 때마다 노리코 씨를 생각한다.

고쇼쿠를 잊을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노리코 씨 말로는, 그 동네를 찾은 ‘첫 한국인’이 崔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고쇼쿠 사람들에겐 한국하면 최상이 떠오를 것이라고 했다. 노리코 씨 집에 며칠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놀러왔고 그들의 제안으로 마지막 전날은 ‘특별연주회’를 열어주어 내게 뜻깊은 추억을 선물했다. 우리의 거문고 비슷한 고토(琴)를 노리코 씨의 이웃 분(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이 들고 와 연주, 기라쿠보(氣樂房:노리코 씨의 거처 겸 편물을 지도하는 곳의 이름)는 작은 콘서트홀이 되었다.
 
▲ 노리코 씨의 편물전시회 포스터. 유미코 씨가 디자인했다.    ©최경순


몇 곡의 연주가 끝나 뭔가 답례하고 싶은 마음에 한국서 가져간 한복을 보여줬다. 어딜 가나 그 나라의 민속의상은 인기 짱이기 마련. 다들 만져보고 앞태를 보자~ 뒷태를 보자~ 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보낸다(일본인들은 칭찬에 후하다. 작은 것이라도 온갖 표정을 다 지으며 호들갑스럽다 싶을 만큼 추켜세워 준다). 기왕 입은 김에 한국의 예의범절이나 알려주자는 생각으로 앉을 때의 자세며 입었을 때의 마음가짐, 절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도 열심히 따라 해보더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숙연해진다.”고 한다.

나는 조금 과장해서 말했다. “그게 바로 어른 공경하는 마음.”이라고.

유미코 씨 집에서 입어본 적이 있는 정식 기모노와의 차이(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느낌이지만)를 말해주었다. 기모노를 입었을 때의 숨 막히는 고통(!)과 좁을 수밖에 없는 보폭의 한계에 비해, 한복을 입으면 넉넉해지는 마음을 그들이 알 수 있을까마는.,,

그 자리에 모였던 일본인 중 누군가가 찍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그날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아무튼 내가 다녀간 이후, 그곳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부쩍 늘었다고 노리코 씨가 전해주었다. tv에서 한국 관련 얘기만 나오면 귀가 쫑긋 해진다고 하니 고쇼쿠를 방문한 보람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 편물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의 첫 작품~!!  숄)    ©jpnews


나가노에서 또 한 가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노리코 씨는, 나가노에 온 이상 꼭 보고 가야할 곳이 있다면서 마쯔시로 조잔(松代 象山) 지하 갱을 알려주었다. ‘마쯔시로 대본영(松代 大本營)’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2차 세계대전 중 패배를 감지한 일본 군부가 연합국 측에 ‘마지막 타격’을 주기 위해 군사시설을 만들려던 곳이었다. ‘대본영’이라는 명칭은 천황 직속 군대의 최고통수기관을 말하는데, 당시 이곳에 황거(皇居)와 정부 관청, 방송국 등 천황제 국가를 통치하는 중추기관을 모두 이곳으로 옮긴다는 계획이었다.
 
▲ 마쓰시로 대본영 터널 내부모습. ©jpnews


나가노를 당시 이 공사는 지역 주민들에게조차 철저히 감추고 비밀리에 발파작업을 시작했다. 바둑판을 연상케 하는 지하터널은 총연장 약 6km의 규모로 패전 당시엔 이미 80%가 완성된 상태였다고 한다.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는 500미터 터널엔 발파를 위해 박아둔 쇠 봉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고 돌무더기를 실어 나르는 달구지 바퀴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 갱의 공사를 위해 7천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강제로 끌려와 가혹한 노동을 착취당했다는 점이다. 내가 그 터널에 들어갔을 때 마침 어느 일본인 해설사의 설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루 1만 명이 투입되었고 그 중 7천 명 정도가 조선인이었다.
 
그들은 암반을 뚫고 발파시키는 가장 힘든 작업을 밤낮 2교대로 강요당했으며 강냉이와 쌀을 7:3으로 섞은 밥과 무 한 조각으로 하루를 버티거나 나무껍질 등을 벗겨 연명하곤 했다니, 그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사진가 요코야마 가즈아키(横和明, 사진전 ‘어둠으로부터의 증언’이라는 사진전을 열어 마쓰시로 본영과 조선인 위안부의 집을 세상에 알렸다)의 사진 중에는 조선인의 피맺힌 한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다. 터널 벽에 선명한 한글로 새긴 자신의 이름과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웁니다’ 등의 문구에서 그들의 고통이 짠하게 전해져 왔다.
 
▲ 마쓰시로 대본영,  피와 눈물로 새긴 한글이 선명하다.    ©jpnews


게다가 더욱 기가 막힌 건, 조선에서 끌려간 20대 초반의 위안부가 그곳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지하 갱 주변에 있던 ‘위안소(慰安所)’가 ‘역사의 증거’인 셈. 내가 그곳을 방문했던 당시, 나 몰라라 하는 일본 정부를 대신해 시민단체가 나서서 위안소를 보존하기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가칭 ‘또 하나의 역사관 마쯔시로’ 건설실행위원회>. ‘위안소’ 건물을 해체, 보존하기 위해 모금운동을 펼치고 있었으며 비참하게 죽어간 조선인 희생자의 추도비를 세우기도 했다.
 
▲ 사료관으로 쓰이고 있는 ‘위안소’...건물을 보존하기 위해 해체된 자재는
보관 중이며 그 자리에 사료관이 대신 서 있다(2001년 당시). 안에는 갱을
만들 당시의 여러 사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최경순



이 글을 쓰면서 8년 전 그곳을 방문했을 때 가져온 안내책자의 전화번호로 연락을 하니 다행히 연결이 되었다. 일본의 강제연행, 강제노동의 사실을 알리기 위해 지금도 일본의 그 민간단체가 활동 중이라고 한다. 구로사키라는 여성과 통화하던 중,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 오래 얘기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도 모금은 계속되고 있고 한국 ‘나눔의 집’에서도 모금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경기도에 있는 ‘나눔의 집’으로 연락해 보았다. 마쓰시로 ‘위안소’를 위한 모금은 아니었지만 생존해 계시는 ‘그 분’들을 위한 모금 창구는 늘 열려있다고 한다.
마쓰시로는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나가노 현 마쓰시로 터널을 찾아가보고 싶다. 나가노현에 사는 노리코 씨도 만날 겸.

샐러드와 함께 정원에 자라고 있는 허브잎을 따서 차로 내주던 운치 있고 호사스러웠던 아침식사가 그립다.

“노리꼬상~ 오겡키데스까?”

 
■ 그 외 마쓰시로 대본영 관련 사진
 
▲ 안내책자 표지. 마쓰시로 터널 사진     ©요코야마 가즈아키(横山和明/사진가)

▲ 마쓰시로 터널 도면 ©jpnews

 

나눔의 집 http://www.nanum.org/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원당리 65 tel:
tel: (031)768-0064 fax: (031)768-0814

후원계좌
예금주:나눔의 집
1)할머님들의 생활, 복지, 증언활동을 위한 후원
농협 163-01-407551
국민은행 248-01-0041-484

2)할머님들을 위한 전문요양시설 건립에 필요한 '땅 한평 사기운동'후원
농혐 221157-51-032241

3)일제강점기 때 강제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중국거주 '위안부' 피
해자 돕기. 현재 중국에는 14명의 피해자 할머니가 살고 계시다고 한다.
농협 221157-51-027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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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7/02 [01:39]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수작업의 진수가... 살모사 09/07/02 [10:53]
요즘은 수작업의 예술품이 별로 없지요. 모두 컴퓨터나 기계화가 되어버려 예술혼도 마치 기계화가 되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수가 없군요. 그런 면에서 노리코상의 수작업은 너무도 소중한 발견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작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수정 삭제
터널속 한글 인생에 쉼표를.. 09/07/03 [18:09]
어둠속에서 먹지도 못해 허기졌을텐데도
단단한 돌에 저렇게 한글로 새긴걸 보니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눔의집 구좌번호 적어갑니다.. 수정 삭제
한국사람은 모두 나쁜사람이란 이미지를 안갖았으면 합니다 중요한건 09/07/20 [22:41]
솔직히 전세계적으로 한국인들은 아주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죠.
외국에서 추태부리며 큰소리로 떠들고 소란피우고.욕하고 사기치고.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끔 좋은사람은 있다는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수정 삭제
좀 늦게 알았네요... jango 09/07/24 [22:52]
마쓰시로 터널? 꼭 가보고 싶네요... 수정 삭제
헐..대본영.... 우드 09/08/27 [17:24]
언젠가 가봐야겠군요..ㅠㅠ 좋은기사 감사합니다... 수정 삭제
뭐가 솔직히 입니까?? 한국인 10/06/21 [17:16]
추태부리고 큰소리로 떠들고 소란피우고 욕하고 사기치는건 짜장벌래들이 본좌급아닙니까?? 누구 맘대로 나쁜 이미지 운운하시는지.. 수정 삭제
널리퍼뜨려져서 어쩌자는 것 인지... 침묵 하는 좌파 수장" 14/07/10 [15:34]
대학 에서 직조" 를 전공했지만. 무지개" 는 자연 에서 발생되는 판타지한 칼라" ... 미술계 좌파들이 장악 하고 있어서 넘싫어.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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