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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 아지센 라멘과 10년 우정
[당그니의 규슈여행기(5)] 여행은 잊고있던 기억을 끄집어낸다
 
김현근
◆ 당그니의 규슈여행기
1. 일본 어디서든 전철에선 쉿!
2. 구마모토 가정집에서 말고기회 먹다
3. 오래되고 소박한 여관은 이런 것!
4. 일본인의 아침식사와 화석캐기 체험
 
거친 바다, 돌고래가 숨었다.

백악기의 화석이 묻혀 있다는 고쇼노우라섬을 떠나 다시 아마쿠사 본 섬으로 돌아온 우리는 야생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돌고래를 보러 나갈 수 있는 해안가에 도착. 그러나, 차 밖으로 나오자 제대로 서있기가 힘들 정도로 강풍이 불었다. 바다가 노했나? 왜?

▲ 거친 바다에 야생돌고래를 포기            ©당그니

이 정도 파도가 거칠면 야생돌고래를 볼 수 있는 소형선박은 바다로 나갈 수가 없다. 나 혼자 여행을 왔다면 돌고래와 상관없이 지구가 격렬하게 숨을 뿜어대는 이곳에서 한참동안 찬 바람에 맞서 서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족들과 함께 온 마당이라서둘러 문을 닫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나는 먼 바다를 볼 때마다 동해바다 생각이 난다. 20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돌아다녔던 시절에 대한 기억때문인지, 제주도도 두 번이나 가보았지만 신작로를 길게 따라 차가 지나갈 때면 떠오르는 것은 동해바다다. 여행이란 아무튼 잊고 있던 기억을 묘한 형태로 끄집어낸다.
▲ 여행이란 잊고있던 기억을 묘한 형태로 끄집어낸다    ©당그니

가족들이 슬슬 배가 고픈 눈치였다.

이 날 묵을 여관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근처에 가까운 식당이 카레집이라고 한다. 구마모토까지 와서 카레를 먹을 순 없었다. 30분쯤 가면 라면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리로 향했다. 한 25분 정도 갔을까. 구마모토에서 가장 큰 라면 체인점인 아지센 라면집이 보였다.

■ 돈코츠 라면 중 하카타 라면 다음으로 유명한 것이 구마모토 라면

아지센 라면(味千ラーメン).

예전에는 케이카(桂花)라면이라는 체인점이 아지센라면과 경합을 벌였는데, 도산해서 지금은 아지센 라면이 구마모토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아지센라멘        ©당그니
▲ 구마모토 라멘              ©당그니

구마모토 라면을 시켰다.

일본 전국적으로 지역명을 딴 유명한 라면이라고 하면 '삿포로 라면(된장맛)'과 '하카타 라면(돼지뼈국물맛)'이 유명하다.

후쿠오카의 하카타라는 지명을 딴 하카타 라면은 돼지뼈로 우려낸 국물로 유명한데, 이런 라면을 '돈코츠(豚骨) 라면'이라고 부른다. 이 돈코츠 라면 중 하카타라면 다음으로 유명한 라면이 '구마모토 라면'이다.  

구마모토 라면이 하카타 라면과 다른 점은 면이 하카타 라면보다 면이 굵고, 마유, 얇게 썬 마늘이 들어간다. 먹어보니 도쿄에서 먹던 돈코츠라면 보다 깊은 맛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규슈여행에 동행하기로 한 사코다 씨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사준 음식이 구마모토 라면이었다.정확하게 9년 전인 2002년 1월 14일. 우리는 도쿄 세이부 신주쿠역 개찰구 앞에서 만났다.

유학생활 1년차인 내가 어찌저찌해서 겨우 그림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구한 시점이었다. 그해 겨울 잠시 한국에 다녀온 나는 대학선배로부터 2년간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돌아간 일본사람이 있다며 소개해줬다. 

그는 그날 "일본 라면 별로 안 먹어 봤죠?"라고 내게 첫 인사를 건네며 당시만 해도 아지센 라면 체인점과 경쟁하던 케이카(桂花)라면 도쿄분점으로 나를 데려갔다. 사코다 씨도 99년 9월부터 2001년 8월까지 2년간의 한국유학을 다녀온 마치고 도쿄로 돌아온지 6개월이 안된 시점이었다.

한국이라는 공통 화제를 가진 우리는 서로 한국어와 일본어를 가르쳐주기로 하고 종종 만나기로 했다. 월드컵도 욘사마도 없던 그때,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벌써 10년이 됐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꾸준히 만났는데 가끔 사코다씨는 연말이 되면 자신의 고향인 구마모토에 같이 가자고 했다. 한반도와의 인연이 많은 곳이라는 이야기가 술잔이 돌면서 더해지기도 했다. 아마, 사코다 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결혼 10주년 여행의 행선지는 전혀 다른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 타이피엔       ©당그니

아지센 라면집에서 구마모토 명물이라는 '타이피엔'도 하나 시켜보았다.

당면이 들어간 음식인데, 해물이 풍부하게 들어가 있고 국물이 아주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을 냈다. 솔직히 그동안 먹었던 일본 라면과 달리 느끼하지도 않고 맛이 깔끔해서 한국사람 입맛에 아주 잘 맞는 맛이 아닐까 생각했다. 중국복건성의 향토요리가 일본에 전해진 음식인데, 구마모토에 오시면 반드시 '타이피-엔(太平燕)'을 드셔보시길.

■ 에도 초기 최대의 농민반란인 '아마쿠사, 시마바라의 난' 격전지

배를 채우고 여관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어 근처 유적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해안가를 따라 가까운 곳에 토미오카성(富岡城)이 있었다.
▲ 토미오카성         ©당그니

일본 열도의 끝자락에 있는 아마쿠사는 16세기 중엽부터 포르투칼 등 서양과의 교류가 빈번하게 이루어지면서 신식무기, 항해술, 인쇄술등과 함께 선교사, 천주교인들도 많이 들어오게 됐다. 에도막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영토확장에 혈안이 되어 있던 전국시대 다이묘들은 천주교에 대해 그리 적대적이지 않았으나, 에도시대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쇄국령과 함께 금교령이 내려지고 천주교인 색출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영주에 의한 가혹한 세금 징수와 식량난으로 참다 못한 이곳 농민들은 천주교도들과 힘을 함께 1637년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일명 '아마쿠사・시마바라의 난'으로 불리는 이 봉기는 이곳 아마쿠사와 바다 맞은편 나가사키로 이어지는 시마바라 반도의 주민들이 같이 일으켰다.

약 4만명의 천주교군인은 16살에 불과한 천주교도 소년인 아마쿠사 시로(天草四郎)를 총대장으로 맞아 싸웠으나 도쿠가와 막부의 12만 대군에 의해 전원 몰살을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우리가 이 날 방문한 이 곳 토미오카성은 바로 막부측 거점이 되었던 곳으로 반란군이 함락시키려고 3차례 공격을 했으나 가라쓰번의 필사적인 방어로 지켜진 곳이다. 막부측으로서도 도쿄에서 1200킬로 이상 떨어진 이곳의 반란을 막지 못하고 무정부상태가 된다면 막번체제의 근간이 무너지게 되는 셈이었다. 150년간의 전국시대, 노부나가, 히데요시로 인한 통일. 임진왜란, 그리고 세키가하라 합전을 거쳐 들어선 겨우 안정을 찾아가던 일본이었다.

생각해보면, 반란이 일어난 1637년은 도쿠가와 막부가 눈엣가시로 여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자식, 히데요리를 멸족시킨 오사카 여름 전투(1615년)로부터 불과 22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막번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각 지역의 다이묘를 동원해 12만명의 대군을 이곳에 보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 토미오카성       ©당그니

실제 성터를 올라와 보니...꽤 높은 곳에 위치해있음을 알 수 있었다.

▲ 토미오카성       ©당그니

바다와 인접해 있고 언덕 정상에 있어 공격하기에 쉽지 않다.

▲ 토미오카성에서 내려다 본 마을             ©당그니

멀리 토미오카성 아래 마을이 보인다.

바다와 육지, 소금기, 거센 파도와 학정. 반란, 포루투칼, 남만풍, 천주교 등 이런 잡다한 것들이 강풍과 뒤섞여 얼굴을 때렸다. 사진을 몇장 찍다가 이내 난 기념관으로 들어와버렸다.

성 정상에는 기념관이 있는데, 역사적인 것보다 아마쿠사의 앞바다의 풍요로운 자연에 대해 더 어필을 하고 있었다. 정작 농민군들이 최후를 마친 곳은 이곳이 아니라 바다 건너 시마바라의 히라죠라는 성이니까.

▲ 토미오카성      ©당그니

▲ 토미오카성 전시관에서 본 갑옷           ©당그니

일본  성이나 전시관 어디를 가도 쉽게 눈에 띄는 갑옷. 고쇼노우라 공룡전시관에서도 이런 갑옷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토미오카성 전시관에도 있었다.

성 구경을 끝내고, 여전히 시간이 남아 아마쿠사의 또 다른 명소인 오에성당(大江天主堂)으로 향했다.

▲ 오에성당               ©당그니

오에성당은 메이지시대이후 천주교가 자유를 얻게 된 뒤 1932년 프랑스 선교사 카르니에 신부가 사재를 털어 건설한 것이다. 12월 말이라 그런지 아직 크리스마스 때 불을 밝혔던 전구가 달려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무렵은 5시. 이미 문을 닫은 시점이었으나 안에 있던 수녀님이 우리들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주셨다. 일본 남단의 역사는 이렇게 천주교와 얽힌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이 전 인구의 극히 일부분만을 차지한다는 사실이 역설적이었다.

▲ 교회 옆에 있던 무덤        ©당그니

교회 옆에 있던 무덤. 날씨가 추워서 조금만 둘러보고, 이날 최종 목적지인 다케우치민숙(竹内民宿)여관으로 향했다.

▲ 둘째날 묵은 다케우치민숙(竹内民宿)       ©당그니

여관에 도착했다.
▲ 우리가 둘째날 묵기로 한 방    ©당그니

▲ 유카타. 여관에서 편하게 입는 옷  ©당그니

방안은 여전히 썰렁했다. 그러나..

아마쿠사만의 근사한 식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미 소금구이. 아마쿠사만의 각종 해산물. 우리 일행은 간단한 목욕을 끝내고 서둘러 식당에서 마주 앉았다.

▲ 당그니 규슈여행기 구마모토     ©jpnews

여행기 6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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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1/30 [08:51]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행문... moony0822 11/02/04 [07:16]
의 아기자기함이 잘 느껴집니다.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마지막 사진에 있는 흙바른 생선의 해프닝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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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http://www.dangunee.com/
카 페: http://cafe.daum.net/dangunee

펴낸 책: 일본대중문화(드라마,영화,만화,애니,소설)에세이와 일본어를 결합시킨 [도쿄를 알면 일본어가 보인다 2](10/21출간),[에세이로 다시 시작하는 일본어](12/10출간) 등 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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