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일본 지바현 이치카와시에서 영국인 영어강사 린제이 앤 호커(당시 22세)양 살해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강간치사, 살인,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용의선상에 올랐던 이치하시 다쓰야(30) 용의자는 가택조사를 온 경찰관을 밀치고 맨발로 뛰쳐나간 후 2년 7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도주극을 펼쳤다. 그런데 체포되기까지의 생활이 참 극적이다.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의 한 무인도에 숨어 뱀 등을 잡아먹으며 연명하는가 하면, 잡히지 않기 위해 바늘과 실로 스스로 얼굴을 성형하는 등의 대담함도 보였다. 결국 그가 체포되기까지의 생활을 스스로 정리한 수기는 '체포되기까지- 공백의 2년 7개월 기록'라는 타이틀을 달고 지난달 26일 일본 전국 서점에 발매됐다. 이치하시 용의자는 책 발매에 대해 "저지른 죄에 대한 참회"라는 입장을 밝히며 "수익금 전액을 피해자 가족에게 전달하겠다"라고 했지만, 사랑하는 딸을 잃은 피해자 부모들은 이런 상황이 달가울리 없다. 린제이 양의 부모는 "재판도 진행되기 전에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혐오스럽다"라며 무거운 죄질은 둘째치고 흥미로운 소재라면 일단 '상업화' 시키고보는 일본 사회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치하시 용의자의 수기가 'tv 드라마화'까지 될 수 있다는 예상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일본의 일간지 '사이조'는 유력 방송국 프로듀서의 말을 빌려 "이미 책 발매전부터 드라마화는 논의 중이었다"며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 tv아사히는 책이 발매되던 날 저녁, 뉴스 프로그램 '보도 스테이션'을 통해 이치하시 용의자가 생활했던 무인도의 현지 모습을 방송했다. 또 이치하시 용의자의 유류품 등이 압수되기 전의 모습을 독점 중계하기도 했다. 이는 책을 발매한 출판사와의 제휴가 없으면 불가능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일본에서는 이미 살인 지명수배 후 15년간 도주생활을 펼친 범인의 수기를 바탕으로한 드라마가 2002년 방송돼 20%가 넘는 시청률을 보이는 등 인기를 끈 바 있다. 최근 낮은 시청률에 고전하고 있는 일본의 각 방송사들이 이번 드라마화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드라마화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2002년 방송된 드라마의 경우는 발생 후 이미 15년이 지난 사건을 토대로 했고 유족들의 반대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며 유족들의 반대 또한 격렬하다. 또 피해자가 외국인인만큼 섣부른 드라마화는 사건을 국제 문제로 발전시킬 위험도 있다. 논란의 한 가운데에는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려는 방송국과 '주는대로 받아먹는' 것에 익숙한 소극적 일본 여론의 무관심이 존재하고 있다. 결국 남는 것은 유족들의 분노다.
▲ 지난 달 26일 발매된 책 ''체포되기까지- 공백의 2년 7개월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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