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은 휴대전화를 이용한 시험 부정 행위로 연일 난리다.
대학교 기말시험에서 모바일 인터넷을 이용해 일부 대학생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한다. 이 일로 일본은 시험에서 최신 기술에 대한 보완책을 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하여 논란이 뜨겁다. 역시 시험은 모든 학생들에게 공포의 대상이고 컨닝은 세계 공통의 문제인듯 싶다.
나는 지난 2월 26일과 27일 양일간 침사, 구사, 안마지압마사지사 3개 부문 국가 시험을 치뤘다. 진작 모바일 인터넷 컨닝 방법을 알았더라면 조금 덜 긴장했을 것을... 그러나 내가 이번 시험을 치루면서 느낀 것은 컨닝보다는 '개인의 상황을 인정하는 시험 시스템'이었다.
이번에 내가 치룬 시험은 침사, 구사, 안마 지압 맛사지사의 3개 부문의 시험이다. 침사와 구사의 경우 대략 각각 6-7천여명이 응시하고 안마사의 경우 약 2천여명이 응시하는 시험이다. 일본의 경우 이들 부문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3년 간의 양성시설(전문학교나 일반대학, 맹학교 전공과, 국립 직업 재활센터등)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응시할 수 있다.
일본의 특성상 응시자의 약 30% 정도가 시각장애인이다. 문화적, 역사적으로 일본은 침구와 같은 이료(의료와는 다르다) 부문은 시각장애인이 많이 진출하고 있는 부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여러가지 보완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침사, 구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전체 국가 시험에서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선 시험 시간이 비장애인과 비교하여 1.5배로 늘어난다. 그리고 장애의 특성에 맞는 요구를 할 수 있고 거기에 맞는 문제지가 제공된다. 저시력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글자 크기가 16 포인트 정도되는 확대 문제지가 제공된다. 물론 16 포인트로도 어려운 응시자들은 초대형 확대 문자도 제공 받을 수 있다.
또, 전혀 시력이 없거나 있더라도 문자 식별이 어려운 시각장애인들은 점자 문제지를 요구할 수 있다. 또한 나와 같이 중도에 실명한 사람들 중에는 점자를 읽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은 음성 문제지를 요구할 수 있다. 작년까지는 녹음테이프 형식으로 문제가 제공되었으나 올해부터는 '데이지포맷'이라는 국제 표준화된 음성 도서 형태로 문제가 제공되어 사용하기 매우 편리했다.
나의 경우는 이 데이지와 점자 문제지를 동시에 요구했다. 해부학이나 생리학, 동양의학 등 전문 용어가 많은 시험이라 듣는 것 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용어를 조금 더디더라도 읽을 수 있는 점자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문제 뿐이 아니었다. 답안을 제출하는 경우에도 비장애인들은 ocr 체크 답안지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지만 저시력 시각장애인들은 체크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냥 문제지에다가 동그라미를 체크하는 방법으로 답안을 제출할 수 있다.
나는 점자로 답안을 제출했다. 점자의 경우 일반 점필(나무로 만든 판<'점판'이라한다>에 송곳 같은 도구<'점필'이라 한다>)의 경우는 특별히 신청하지 않아도 되나 나처럼 점자 타이프의 경우 특별 기구 사용 신청을 하면 내가 원하는 타이프를 들고 시험에 응시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이런 것은 시험 응시원서에 매우 꼼꼼하게 신청하도록 되어 있다.
시험과 관련있는 사항 뿐 아니라 시험 시간이 오전 2시간(장애인은 3시간), 오후 2시간(장애인은 오전과 동일)씩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험 시간 중 약을 복용해야 하거나 하는 응시자들은 약을 지참한다거나 하는 신청도 별도로 할 수 있다.
이번 시험 장소가 매우 더워서 시험 기간 중 갈증을 느껴 중도에 물을 마실 수 있는지를 물어 보았으나 응시 원서에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 당했다. 어찌보면 물 마시는 단순한 것 까지도 신청을 해야하는 면에서는 조금 정나미가 떨어지는 바도 없지는 않지만, 그런 사소한 것까지 체크하는 면에 대해서는 부러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시험에서 장애인등 특별한 사람의 요구를 들어 주는 것은 비단 침사, 구사등의 국가 시험에만 국한 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론 이번시험을 치루기 위해 3년 전 교육기관에 입학 할 때도 같은 경험을 했다. 당시 나는 점자를 읽을 수도 쓸 수도 없었다. 그런 나를 위해 학교에서는 논문이나 필기 시험을 대신 읽어 주고 나는 구두로 서술하는 방법으로 시험을 치룰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시험을 치루면서 문제를 읽고 내가 말한 내용을 일본어로 써주는 것을 학교 교사들이 했었는데 당시 나는 일본어가 서툰 상태였다. 더욱이 일본어를 배우면서 문자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대충 사람들의 발음을 흉내내는 방법으로 얼버무리는식의 일본어였다.
그 날도 대강 얼버무리는 일본어로 시험을 치루었는데 소논문에서 진땀을 흘려야 했다. 당시 소논문을 담당했던 분은 나중에 알고 보니 학교 내에서 가장 까다롭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내가 말을 하면 음소 하나 하나 다시 물어가며 "타입니까? 다입니까?"라는 식으로 발음 하나하나를 물어 오는 것이었다.
아무튼 일본어도 제대로 모르면서 용감(?)하게 시험을 치룰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이와 같은 개인적 상황을 인정해 주는 시험 시스템 덕분이었다. 입학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같이 입학을 했던 친구들은 모두 15명이었는데 그중에 점자도 문자도 활용이 불가능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그래서 나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서 언제나 담당 교사에게 음성 문제를 요구했고 교사들은 나 한 사람을 위해 녹음테이프로 문제를 제공해 주었다.
만일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우선 해당 학생에게 점자 교육을 먼저 시키고 학교측의 시험 방침을 따르도록 하지는 않을까? 어느 것이 더욱 효과적인 교육 방침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 차이를 인정해 주는 면에서 내겐 일본의 시스템이 조금 더 적합한 느낌이다.
사실 이런 일은 참 많다. 이번에 일본에 와서 알게된 한 외국인 친구가 일본에서 꽤 유명한 대학교의 석사 과정에 응시했다. 그 친구도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시험에 컴퓨터로 응시 할 수가 있었다. 문제를 읽거나 답을 쓸 때 컴퓨터가 편리하다는 이유를 학교측에서 받아 들인 것이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들이 각계에 진출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2년 전에는 사법고시 사상 최초로 시각장애인이 합격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그런 장애인 한사람 한사람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노력이 더욱 가능할 수 있도록 사회적 시스템이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인을 위해서 대학의 특례입학 제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상황에 맞도록 시험에 응시 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가 부여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물론 그 결과에 대한 냉정한 공평함도 장애인 스스로 받아 들여야 함은 물론이다.
사회가 장애인 등 어려움을 간직한 이들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공평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이번 일본에서 시험을 치루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신경호(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