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회는 조금 무거운 이야기였으므로, 이번에는 가벼운 느낌으로 갈까합니다.
한국에서 꽤 영화를 봤습니다.
특히 한류 이후, 일본 영화전문지 등에서도 한국영화를 다루는 일이 많아지면서 제 친구들도 '구로(제 닉네임), 한국영화 칼럼을 써줘'라는 의뢰도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한국영화 전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라고 할 정도의 식견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큰소리 치는 것'도 양심에 찔려서...
또 원고료가 싸니까 적자이기 일쑤입니다만, 이것을 스스로의 과제라 생각하고 족쇄를 채우다보면 몇번이고 서울의 영화관을 가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발견'도 있다는, 원래 배우답지 않게 취재하는 사람 근성이 고개를 들게 됩니다.
어쨌거나 서울에 갈 때마다 영화를 많이 보았습니다.
출국 직전까지 영화를 볼 수 있는 김포공항 영화관에는 꽤 신세를 진 셈입니다.
그런데, 한국 영화관에서 제가 가장 놀란 일은 '엔딩 크레딧'을 마지막까지 상영하지 않는 것입니다.
'엔딩 크레딧'이란 곧바로 '종료'(end) 표시가 나온 다음, 출연자나 스태프, 협력자 등의 이름이 연이어서 스크린에 표시되는 자막을 말합니다.
영화 라스트 컷부터, 그 엔딩 크레딧 종료에 이르는 과정에서 음악은 최고조에 이르며, 어둠 속에서 영화의 여운을 반추해보면서 관객은 한번 더 감동을 새롭게 하고, 다른 사람 눈을 신경쓰지 않고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물론 감독도, 이 엔드 마크부터 시작되는 관객의 마음속 여운을 음악과 영상으로 어떻게 컨트롤할 것인가, 계산하고 있을 것입니다.
본편은 물론이거니와, 여기서 감동을 반추하는것이 그 영화의 인상을 크게 결정하는 일도 있습니다.
「the end 」
아아, 이렇게 써놓고 보니, 얼마나 깊은 여운이 있는 문자입니까.
이 문자를 신호로 음악이 크게 울리고 동시에 관객은 더욱 고양되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준비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하드보일드한 주인공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서, 코드의 옷깃을 세우거나 하는 것입니다. 일본이라면요...
그런데, 한국의 영화관에서는 이런 '엔딩 마크'가 나오든지 안나오든지 극장의 불이 켜지기 시작합니다. 밝아진 극장에서 뿌옇게 된 스크린에는 아직도 희미하게 엔딩 크레딧의 편린이 비쳐지고 있으나, 누구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안내원이 출구를 알리고, 손님들은 서둘러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나갑니다.
그 가운데서 '고집스럽게 마지막까지 보고 말거야'(라고 하는 것이 감독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라고 제가 의자에 앉아 있으면 '팟'하고 스크린의 영상이 먼저 꺼지고 맙니다.
정말로 이것에는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도 익숙해지지가 않아요.
반대로, 일본에 있는 한국 분들은 엔딩 크레딧이 자연스럽게 끊길때까지 누구 한 사람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는 일본 영화관을 '왠지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감독이라면, 되도록 마지막까지 착석해주기를 바랄 것이고, '마지막 음악이 사라질때까지가 영화라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영화인'이기도 한 영상기사가 솔선해서 영상을 끝내는 것만큼은 참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스크린 쿼터의 규제가 개정될 때, 그렇게 많은 영화인들이 항의시위를 하는 한국에서, 이 점에 관해서는 누구도 둔감하다는 게 일본인인 저로선 상당히 신기한 일입니다. 뭐라고 딱 이해가 안가는 것이기도 하죠. (번역 김현근)
日韓映画館事情
前回はちょっと重い話題だったので、今回は軽めにいきましょうか。
韓国では随分と映画を観ました。
特に韓流以降、日本の映画専門情報誌などでも韓国映画を扱うことが多くなり、私の友人からも「クロ(私のニックネーム)、韓国映画のコラム書いてよ」などという依頼が舞い込んだわけです。
とはいっても、私に韓国映画全般を云々できるほどの見識もなく、さりとて「はったりをかます」には良心があるわけで・・。
それで選んだ道が、いち早く現地で上映されている映画を観てきて、報告がてらそれを記事にするという方式でした。
原稿料が安いので足がでるばかりでしたが、このような「かせ」を自分にはめてみるとしげしげとソウルの映画館に通うことにもなり、そこから見えてくる「思いがけない発見」もあるかという、生来の俳優らしからぬ取材者根性が頭をもたげたのであります。
とにかくソウルに行くたびに映画を見まくりました。
出国直前まで映画を観ていることができる、金浦空港の映画館にはずいぶんお世話になったものです。
ところで、韓国の映画館で私が一番驚いたことは「エンドロール」を最後まで上映しないということです。
「エンドロール」とはまさしく「終了」(end) の表示が出てから、出演者やスタッフ、協力者などの名前がズラズラとスクリーンに表示される字幕のことです。
映画のラストカットから、このエンドロール終了に至る過程で音楽は最高潮に盛り上がり、暗闇のなかで映画の余韻を反芻しながら観客はもういちど感動を新たにし、人目を気にせず嗚咽を漏らすのです。
もちろん監督だって、このエンドマークから続く観客の心の余韻を、音楽と映像とでどうコントロールするか、計算しているはずなのです。
本編もさることながら、ここでの感動の反芻がその映画の印象を大きく決定することもあります。
「the end 」
ああ、このように記してみても、なんという深い余韻のある文字でしょうか。
この文字を合図に、音楽の高鳴りと共に観客は更に高揚し、ぼうだの涙を振り絞る準備をするか、はたまたハードボイルドな主人公になりきって席を立つべく、コートの襟を立てたりするのであります。
日本でなら・・・。
ところが、韓国の映画館ではこの「エンドマーク」が出るやいなや劇場の客電が付きはじめます。明るくなった劇場でぼやけたスクリーンにはまだうっすらとエンドロールの片鱗が映じていますが、誰も見向きもしません。誘導員が出口を示し、客達はバタバタと席を蹴立ててゆきます。そんななか、「意地でも最後まで観てやるぞ」(というのは監督の意図をちゃんと受け止めたいという思いからですが)と私が椅子に座っていると、「ブチッ!」とスクリーンの映像のほうが先に途絶えるのです。
本当にこれにはビックリしました。いまでも慣れません。
反対に、日本にいる韓国人の方々はエンドロールが自然と途切れるまで、誰一人席を立たない日本の映画館を「気味が悪い」と思うのでしょうか?
私が監督だったなら、できれば最後まで着席していただきたいと願うでしょうし、「最後の音楽が消え入るまでが映画なんだ」と申し上げることでしょう。
ましてや、「映画人」である映写技師が、率先して映像をオフることだけは勘弁して欲しいなと思うにちがいありません。
スクリーンクウォーターの規制が改定された時、あれほど映画人達がデモをした韓国で、この点に関しては誰もが無頓着なことが、日本人の私としては、はなはだ不思議。しっくりこないのでありま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