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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김정일 회담, 왜 성사되지 않았을까?
[변진일 칼럼] 성사되지 않은 이유에 대한 몇 가지 가능성
 
변진일 (코리아리포트
주목받았던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2박 3일 방북이 헛스윙으로 끝난 느낌이다.
 
확실시됐던 김정일 총서기와의 회담이 작년에 이어 또다시 성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카터 전 대통령은 총 3번의 방북 동안 김 총서기와는 한 번도 대면하지 못했다.

후계자인 김정은은 무리더라도 김 총서기는 이번에 틀림없이 만날 것이라 예상했으나, 의외의 결과였다. 지난해는 김 총서기의 방중과 시기가 겹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총서기가 줄곧 평양에 머물러 있었다. 총서기가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은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카터 전 대통령은 선대 김일성 주석의 친구이며, 북한에게 있어서는 전쟁 회피로 연결됐던 제네바 합의를 중재한 '은인'이기도 하다. 또한,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이 러브콜을 보낸 미국의 전 대통령이기도 하며, 오바마 민주당 정권의 '원로'적 존재다.
 
이 같은 중요한 손님이 서방측 전(前) 지도자 3명과 함께 방북해 '김 총서기와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열망하고 있는데도, 냉담하게 거절하는 것은 유교의 예로도 어긋난다. 더구나, 고령의 카터 전 대통령에게 있어서 이번 방북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왜 만나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봤다.

 
1. 건강 문제일까?


가능성은 적다. 김 총서기가 2008년 8월에 쓰러진 이래, 건강 불안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 1월에 6번, 2월에 10번, 3월에 7번, 4월에 9번 시찰에 나서는 등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22일)까지, 멀리 떨어진 함경북도 풍계리에 있는 핵실험장과 무수단리 미사일 기지를 담당하고 있는 제264부대 시찰하러 갔다 오기도 했다. 건강상의 문제는 없었을 터이다.


2.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가 아니었기 때문?


이것 또한 가능성이 적다. 분명 카터 전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파견하지 않았다. 전(前) 국가원수들의 친목클럽인 '더 엘더스'의 단장으로서 방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백악관도 미국 국무성도 '개인적인 방북에 불과하다'며 관련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대통령 특사라면 다르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김 총서기가 꼭 접견해야 할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카터 전대통령은 방북보고 및 김 총서기의 메시지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서울에도 들렀지만, 이 대통령도 무례하게도, 카터 전 대통령과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재작년 8월 방북한 클린턴 전 대통령도 '특사'가 아닌, '사적인 방문'이었다. 하지만 김 총서기는 회담에 응한 것뿐만 아니라, 국방위원회 이름으로 저녁 식사 모임까지 열었다. 클린턴 장관의 남편으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큰 영향력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카터 전 대통령이 노쇠하긴 했으나 민주당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나름대로 영향력은 있을 것이다.


3. 미국의 새로운 경제제재 발동에 반발했기 때문에?


북한이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받아들인 직후, 오바마 정권은 북한 금융기관 '뱅크 오브 이스트랜드(별명 동방은행)'를 새로운 금융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것도 회담이 성사되지 않은 하나의 이유일지 모른다.

미국이 '뱅크 오브 이스트랜드'에 금융제재를 가한 것은, 북한 무기수출입업체 '그린 파인 어소시에이티드'사의 상거래에 협력했기 때문이었다.
 
제재를 적용한 미 재무성은 일찍이 "북한의 위법행위를 통한 제재 회피 시도를 철저히 조사해 적발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김 총서기가 이에 대한 반발 의사 표시로 미국에서 온 손님을 문전박대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북한이 미국의 금융제재나 유엔 제재 해제를 갈망한다면, 반대로 카터 전 대통령이나 '더 엘더스'의 멤버들을 후하게 대접해 오바마 정권과 국제사회를 설득하게끔 하는 편이 어떻게 생각해도 북한에게 득이 된다. 
 
그렇게 본다면, 이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1~3번까지도 아니라면, 김 총서기가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4. 카터 전 대통령의 역할을 과대평가하지 않았다? 
 

김 총서기는 카터 전 대통령을 '과거의 인물'로 보고, 오바마 정권의 '중개인'으로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일전에 쓴 경험을 맛보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작년 12월, 북한은 오바마 정권에 일정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민주당 리처드슨 미 뉴멕시코 주지사의 방문을 받아들였고, 당시 김계관 제1외무차관은 국제원자력기관(iaea) 감시요원의 영변 우라늄 농축시설방문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또한, 핵연료봉을 한국에 매각할 의사를 일방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오바마 정권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북미 협의에도, 6자 회담 재개에도 응하지 않았다.

이번에 북한은 스파이 혐의로 구금돼 있는 한국계 미국인의 석방을 연기했다. 그 이유는, 2년 전 클린턴 방북 때, 불법입국 혐의로 구속된 미국인 여성 저널리스트 2명을, 또한 지난해 카터 방북 때도, 미국인 선교사 1명을 미국 요청에 따라 석방했지만, 오바마 정권으로부터 그 어떠한 '대가'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도적 차원에서 석방한 3명이 모두 귀국 후 공공연히 북한을 비판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 방문 이후, 북한은 미국인 2명을 석방했지만, 오바마 정권은 오히려 2주 후, 핵미사일 계획과 관련됐다하여 북한 무역회사에 자산동결 및 거래 금지 등 제재조치를 취했다. 이 같은 과거 사례를 통해, 김 총서기는 어떤 의미로는 카터 전 대통령의 현 정권에 대한 영향력의 한계를 깨달았을 수도 있다.


5. 가장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혹시, 3번째 핵실험과 icbm(대록탄도탄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강행하기 위해 일부러 피한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북한에게 내년은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다. 강성대국이란, 사상, 군사, 경제면에서 대국이 되는 것이다. 사상적으로는 완성됐다하더라도, 경제면에서는 아직 한참 멀었다. 그러나, 군사적인 면에서는 앞으로 한발자국 내딛으면 될 정도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핵실험을 성공시키고, icbm을 손에 넣으면, 군사대국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북한이, '핵보유국'으로서, '군사대국'으로서 대등한 입장에서 미국과 교섭에 임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면, 2009년에 이은 또 한번의 핵, 미사일실험의 연내 실시를 고려하고 있을 수 있다. 
 
미국 국가정보국 제임스 클래퍼 국장은 올해 1월, 미국 상원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은 2006년과 2009년에 대포동 2호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작은 통신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킨다는 목표에는 실패했지만, icbm과 관련한 많은 기술을 성공리에 실험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한, 대포동 2호에 대해서도 "발사는 실패했으나, 2009년 실험은 2006년보다도 더욱 완성된 성능을 보였다"고 언급했다.
 
국장은 또한, "만약 icbm이 만들어진다면, 대포동 2호는 미국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며, 대포동 2호와 관련된 기술을 수출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북한이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icbm용 기지로 보이는 제2 미사일 기지를 건설 중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미사일 기지에 대해 로버트 월러드 미 태평양군 사령관은 2월 단계에서 '발사탑 공사가 끝난 듯하다"고 언급했다.
 
또다시 핵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할 작정이라면, "김 총서기와 만나 핵포기와 미사일 개발 단념을 이끌어내고 싶다"는 목적을 가지고 북한을 방문한 카터 전 대통령을 김총서기가 만날 리가 없다.
 
만난다면,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립서비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회담 후에 핵미사일 실험을 강행이라도 하면, 이는 카터 전 대통령의 체면을 구기게 만드는 일인데다,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회담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대로 빈손으로 보내기는 어렵다는 판단에서,  카터 전 대통령의 귀국 직전에 '한국과 미국, 그리고 6자회담 관련국과 언제라도, 어떤 의제에서도 무조건적으로 교섭할 의향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메시지의 숨은 뜻을 살펴보면, '그럼에도 한국과 미국이 응하지 않고 타협을 거부한다면, 핵억지력을 높이겠다'고 하는 말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에서 가지고 온 것이 이 메시지 뿐인지, 오바마 대통령 앞으로 온 또다른 메시지는 없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일단 조금 더 상황을 관망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 글은 4월 2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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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5/04 [02:11]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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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이는 유교의 예에도 어긋난 거고 명박이는 무례한 거고... 뚱띠이 11/05/04 [17:12]
북한이 안 만나준 이유에 대해선 좌악 그 이유를 가늠해보고 명박이에 대해서는 '무례하게도'라늠 문장으로 단 두줄...

정일이는 실드쳐 줄 필요가 있는 거고, 명박이는 그냥 까면 끝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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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기사는 항상 이래... 11 11/05/05 [14:34]
개정일이 쉴드 쳐주기...
그냥 북한 가서 살아라...
남쪽에서 시끄럽게 하지 말고... 수정 삭제
인공위성을 성공시킨 나라다 오마니나 11/05/05 [19:58]
알면서 모른 체 시치미를 깝니까?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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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도쿄에서 태어남. 메이지가쿠인대학 영문과 졸업후 신문기자(10년)를 거쳐 이후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1980년 북한 취재 방문.
1982년 한반도 문제 전문지 '코리아 리포트' 창간. 현재 편집장.
1985년 '고베 유니버시아드'에서 남북공동응원단 결성, 통일응원기 제작.
1992년 한국 취재 개시 (이후 20회에 걸쳐 한국방문).
1997년 김영삼 대통령 인터뷰
1998년 단파 라디오 "아시아 뉴스" 퍼스낼리티.
1999년 참의원 조선문제 조사회 참고인.
2003년 해상보안청 정책 어드바이서.
2003년 오키나와 대학 객원교수.
2006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인터뷰

현재 "코리아 리포트" 편집장, 일본 펜클럽 회원.
니혼TV, 후지TV 등 북한전문평론가, 코멘테이터로 활약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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