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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친의 아버님을 만나다! (6부)
일본 여친에게 프로포즈 받다 (6부)
 
박철현 기자
(이 글은 연재물이므로 처음부터 읽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점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타쿠(1부)
헌책방(2부)
걱정(3부)
이별(4부)
한국남자(5부)
 
'사귀자'는 고백과 함께 첫 키스를 나눈 11월 11일부터, 아내가 나와 같이 살고 싶다고 말한 12월 12일까지,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났다.
 
물론 하루종일 만난 건 아니다. 쥬오센(中央線) 서쪽 m시의 부동산 회사에 다니고 있던 아내가 오후 6시에 일을 마쳤기 때문에, 우리의 데이트는 오후 6시 이후부터 가능했다.
 
당시 도쿄 n구에 위치한 일본어 학교의 오전 클래스를 다니고 있던 나는 오후 1시에 수업이 끝났기 때문에 오후 6시까지 할 일이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기엔 아직 일본어가 많이 부족했었고, 그렇다고 놀러 다닐만큼 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지금도 그다지 풍족한 건 아니지만 그땐 정말 120엔짜리 죠지아(georgia) 캔 커피 하나 사는데도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다.
 
그랬던 나에게 jr 열차 노선표에 적혀있는 기본요금 130엔, 그리고 역 하나 통과할 때마다 20엔, 혹은 30엔씩 올라가는 살인적인 교통비는 "풋! 놀러 간다고? 닥치고 공부나 할래?"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던 것이다.
 
하루 용돈을 최대 1000엔으로 설정했던 나는, 6개월 단기어학연수를 온 파릇파릇한 20살 여동생들이 디즈니랜드, 오다이바, 시부야, 오모테산도, 롯본기, 아사쿠사 등 도쿄 시내의 주요 관광 스폿(spot)을 찍어대는 게 얼마나 부러웠던지 모른다. 동생들도 바보가 아니다. 그녀들은 나의 애절한 마음을 눈치해고 간혹 이렇게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오빠! 오늘 롯본기 클럽에 갈껀데 같이 가! 오늘 좀 질펀(?)하게 놀껀데. 호호호"
"아..그래? 미안하다. 오빠도 가고 싶은데, 오늘 공부할 게 좀 있어서. 하하하"

 
나도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어색한 웃음으로 떼울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틀에 박힌 문답을 몇번 거치고 나면, 언젠가부터 파릇파릇한 이쁜이 동생들이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거 어디선가 많이 봐 왔던 시츄에이션이다. 2000년 3월, 군대를 무사히 제대하고 수많은 꿈에 부풀어 복학했던 그때, 처음엔 그토록 친절했던 체리향기 나던 새내기 여자후배들이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 내 주위에서 사라져(fade out) 갔던 그 시절. 그걸 그대로 복사한 듯한 느낌, 혹은 데자뷰(dejavu).
 
그런데, 이렇게 가난하고 찌질했던 복학...아니 유학생이었던 나도 아내만큼은 매일같이, 돈 걱정없이 만날 수 있었다. 

 
여기엔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기본적인 교통비가 하나도 들지 않았다는 것. 일본 전철은 일정기간 동안 정기권을 끊어 놓으면 그 구간 안에서는 자유롭게 승하차가 가능한데, 아내의 회사가 있던 쥬오센 m역은 내 정기권 구간, 즉 k역과 n역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앞에서 말했다. 연애는 예상치 못했던 우연적 요소가 들락날락거려야 한다고. 아내의 회사가 하필이면 내 정기권 구간에 있었다는 우연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렇게 자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숫자의 신(神)이 시간을 넘어 공간마저 연결시켜 준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데이트 자체에 드는 비용이 아주 저렴했다는 것이다.

 
11월 10일 첫 데이트 때 갔었던, k시에서 제일 유명한 스파게티 가게에서의 에피소드다. 일본에 와서 2개월만에 처음으로 5천엔이라는 거금을 찔러 넣고 나간 나는, 아내가 가게에서 가장 비싼 2300엔짜리 시후드 호렌소(시금치) 녁키 스파게티를 시키는 것을 보고 가슴이 찢어졌다.
 
'스파게티가 이렇게 비싸다니!'라는 절망감에 허우적거리면서 제일 싼 건 차마 못 시키겠고, 밑에서 두번째였던 1200엔짜리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시켰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오싹했던 땀방울을 실시간으로 느껴가며 이후 시나리오를 생각해 봤지만, 어떤 경우를 생각하더라도 자금적으로 위험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만난지 2시간만에 3500엔을 쓰는 셈인데, 남은 시간을 과연 1500엔으로 버틸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에 빠졌다.

 
또 이 불안감은 제멋대로 확장한다. 어느새 내 머리속은 '돈을 더 가지고 오려면 기숙사를 들러야 하는데, 무슨 핑계를 대고 갈까' 라는 이유만들기 작업으로 충만해 있었다. 당연히 까르보나라의 맛 따윈 느낄 수 없었고, 이때의 트라우마(trauma) 때문에 나는 지금도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는 절대 안 먹는다.
 
이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와! 정말 맛있다. 이런 데를 왜 그동안 안 온걸까? 다 오빠 때문이야. 정말 고마워" 라고, 진심으로 기뻐했다. 겉으로는 아내를 따라 웃음을 지었지만, 내 머릿속은 '역시 기숙사의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내서 널어야 한다는  게 제일 좋겠지?'라는 핑계 시뮬레이션 작동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 먹고 계산을 하는 순간, 처음으로 진심어린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동기들끼리 술먹고 더치페이(割り勘, 일본어로 '와리깡'이라고 한다) 하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남녀간의 연애, 그것도 첫 데이트다, 내가 5천엔짜리를 점원에게 건네려고 하자 아내가 2500엔을 계산대에 올려 놓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오빠, 내가 200엔 더 낼께"
 
처음엔 무슨 말인지, 또 어떤 상황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내쪽을 쳐다보며 1,2초 정도 멀뚱거리고 있으니, 아내는 그런 내 모습을 '니가 왜 200엔을 왜 더 내?'라는 식으로 해석했는지 이렇게 덧붙인다.
 
"오빤 가난한 유학생이잖아. 늙은이 유학생. 하하. 난 회사원 ol(office lady)이니까 200엔 정돈 괜찮아"
 
그러니까 아내는 2300엔짜리를 시켜놓고 2500엔을 내면서 1200엔짜리를 시킨 나에게 1000엔만 내라는 의도로 그런 행동을 취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멀뚱멀뚱'을 정확한 더치페이를 하자는 것으로 받아들인 아내는 200엔 정도는 회사원인 당신이 더 낸다고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 준 것이다.
 
'기숙사 베란다 바깥에서 보일테니까 역시 세탁물을 적당히 꺼내서 말리는 시늉을 해야 겠지?'라는 불과 몇분 전의 고민은 순식간에 허공속으로 사라졌다.
 
물론 아내는 나중에 한국에서는 남자들이 주로 데이트 비용을 전액 낸다는 사실을 알고선 무릎을 쳐가며 억울해 했다.
 
"아! 그럴 줄 알았으면 진작 좀 많이 뜯어 먹을건데. 너무 아쉽다. 오빤 왜 그런걸 안 가르쳐 줘?"
"일본에 왔으니 일본 관습에 따라야지"
"자, 그럼 오빠도 한국에서 데이트할 때 돈 다 내고 그랬어?"
"음... 그랬던 것 같아"
"우리도 한국에서 만났음 좋을 뻔 했다. 그지?"
"..........-_-"
 
아무튼 이렇게 경제적 여유가 충족되니 당연히 하루 용돈 1000엔만으로도 매일같이 만날 수 있었다. 문제는 학교가 파한 1시부터 아내가 일을 마치는 6시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때우냐는 것이다.

 
처음엔 m역 인근에 있는, 도쿄에서도 넘버5에 들 정도로 유명한 i공원을 돌아보거나 최신 유행을 선도하던 k 거리에서 사람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잘 흘렀다. 하지만 이것도 하루이틀이지 이내 지겨워졌다.
 
일주일 정도 지나서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람구경도 질렸고, 다리도 피곤해. 시험도 있고 하니 그냥 공원벤치에 앉아서 공부나 할래"라고 말하자, 아내는 "회사 근처에 햇볕 잘 드는 공원이 있어"라고 대답했다. 날씨가 쌀쌀해지던 시기라 '햇볕의 유무'는 상당히 중요하다. 아내는 간단한 약도를 그려가며 공원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다음날 수업을 끝마치고 아내가 그려준 약도를 참고해 가며 m역 중앙상점가를  걸어가다 보니, 아내의 말마따나 정말 따뜻한 햇볕이 내려쬐는 공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 k시 공민관에서 바둑을 두셨던 분들. 사진은 2004년의 겨울에 찍은 것으로 시기적으로 이번 회의 약 3년 후에 촬영한 것이 된다.  © 박철현 / jpnews
 
그런데 정작 내 마음을 헤집어 놓은 것은 공원 바로 옆의 3층짜리 조그만 건물에 붙어있던 '바둑(囲碁, 일본어로 '이고'라고 읽음)라는 간판이었다.
 
무언가에 끌리는 듯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 '囲碁'라고 적혀있던 불투명한 유리문의 도어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15평 남짓 될까?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대여섯과 젊은이 두서넛의 바둑돌 놓는 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내딴에는 조심스럽게 연 것이었는데, 중앙에서 다른 이의 바둑을 선 채로 보고 있던 묘한 기품을 느끼게 하는 할아버지 한 분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서 오세요. (사이) 처음 보는 얼굴이네"
"아...네. 안녕하세요. 여기는 바둑을 두는 곳인가요?"
"......?"
"저는 '박'입니다. (바둑돌을 놓는 손짓을 하며) 그러니까 여기는 바둑을 둘 수 있는 곳인가요?"
"(사이) 아! 외국인? 어디서 왔나? 중국? 아니면 한국?"

 
바둑용어 따윈 배웠을 리가 없는 어설픈 내 소개와 일본어를 반복해서 들은 후에야 할아버지는 내가 외국인임을 눈치챘다. 그리고 기원내의 모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목소리는 더듬거린다.
 
"...한, 한국에서 왔는데요"
 
신분을 밝히자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터졌다.
 
"오! 조훈현 9단의 나라에서 왔군. 아참, 이젠 이창호 9단이 최곤가?"
"여긴 중국인은 온 적 있지만, 한국인은 처음인거 같은데?"
"한국이면 류시훈 7단 알겠군. 여기 근처에 살거든. 그래서 축제 때는 일부러 와서 지도기도 줘두지"
"한국바둑 정말 센 바둑이지. 아마 제일 강하지 않나?"

 
그나마 고유명사가 많이 나와서 대강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말 자체는 무진장 빨랐다. 당시만 하더라도 학교에서 배우는 정식(?) 일본어와 아내의 여성스러운 일본어 및 존대어를 배우고 있던 나에게 있어 이들의 반말 속사포는 너무나도 신선했다.
 
내가 찾아간 곳은 물론 '기원'이었고, 제일 먼저 말을 걸었던 할아버지가 기원의 원장으로 카운터 옆 벽에는 그가 아마 9단(?)임을 나타내는 인가증 비슷한 게 걸려 있다.

 
기료는 시간에 상관없이 500엔. 커피는 처음 한잔만 서비스로 주고, 이후엔 100엔을 내야만 했다. 대신 녹차는 무료로 마실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500엔이 부담스러웠긴 했지만, 그렇다고 쎄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지난 몇년간 잊고 있었던 바둑의 재미를 이국땅의 색다른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다는 흥분에 비한다면 결코 비싼 것이 아니다. 또한 저자거리의 생생한 일본어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도 컸다.
 
"그래. 박상이라고 했지? 박상은 얼마나 두나?"
 
정적을 깬 것은 원장 할아버지였다. 한국에서 기원바둑으로 4급정도 두었었지만, 3년정도 두지 않았던지라 5급정도 둔다고 말했다. 그러자 날 쳐다보던, 호기심과 기대에 가득찼던 눈빛들은 싸그리 실망으로 바뀌었다.
 
"아! 그래? 그렇구만. 다 잘두는 게 아닌가 보네..."
"5급이면 여기선 다 접어야 할 것 같은데..."

 
아저씨들은 이런저런 혼잣말을 내뱉으며 조용히 자기네 자리로 돌아가 다시 청아한 바둑돌 소리를 냈다. 잠시 소란스럽던 기원의 공기는 이내 잠잠해졌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멀뚱'거리며 서 있자, 원장 할아버지가 자리를 권해서 앉으라고 하더니만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9점 정도 깔아보지"
 
이런... 서능욱 9단하고 지도 다면기를 뒀을 때도 7점 깔았다. 한때는 3급 수준이라는 말까지 들었던 적도 있는데, 9점을 깔라니. 이런 모욕은 오랜만이다. 9점 접바둑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오른쪽 손을 활짝 폈다.
 
"5점?"
"네. 5점"

 
원장 할아버지는 지긋이 웃으면서 그러라고 하신다. 하지만 포석이 지나고 중반전 들어서면서 그의 착점 스피드가 점점 느려지더만 엄청난 장고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속기를 즐겨두는 나역시 오랜만에 장고를 하기 시작했다. 밀고 밀리는 접전이 계속되자 주위의 어른들이 하나둘 바둑판 주위로 몰려들더니 쑥덕거린다.
 
"5점? 5점 깔았다고? 9점이 아니고?"
"엄청난 바둑이잖아. '급'이 아닌거 같은데"

 
그랬었다. 일본식 단급제도로 따졌을 때 내 바둑실력은 5급이 아니었다. 원장 선생과의 이 바둑은 2집 차이로 아깝게 패했지만, 그는 내 개인 바둑용지를 만들어 주면서 "아마 4단"이라고 적어 넣었다. 한국의 5급이 일본에 와서 순식간에 아마 4단이 돼버린 것이다.

 
꿈에서나 그리던 '단(段)'을 이렇게 쉽게 획득하다니......
 
원장과의 바둑이 끝나자 서로 두고 싶다고 말을 걸어 온다. 아마 3단을 상대로 두판을 내리 이기고, 아마 5단하고도 2승 1패를 기록했다. 한국의 기원 아저씨들에게 단련된 싸움바둑이다.

 
실력만 엇비슷하다면, 모양을 중시하는 일본바둑에 질 리가 없다. 빈삼각이 수시로 등장하는, 일단 끊고 보는 무뢰배 바둑을 온실속의 화초바둑이 어떻게 당해낸단 말인가? 
 
'띠리링 띠리링...' 
 
아마 5단 아저씨와 4번째 대국을 진행하고 있을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 아내였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6시 15분이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내가 딱 그 꼴이다. 아마 5단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복도로 나왔다.
 
"지금 나 공원인데 없네. 공원 잘못 찾은거 아냐?"
"아니 나 지금 공원 옆에 기원이야"
"기원? 기원이 뭐야?"
"바둑이라고 씌여져 있잖아. 옆 건물."
"아! 고바쇼(碁場所), 근데, 거기서 뭐해?"
"뭐하긴. 바둑 두지"

"오빠, 바둑도 둘줄 알어?"
"응 그냥 좀... 근데 어떡하지. 나 지금 막 새로 두기 시작해서 한 40분 정도 걸릴꺼 같은데"
"아냐. 내가 그리로 갈께"
"어?! 그래주면 고맙고"

 
아내는 금세 기원으로 올라왔다. 원장선생께 양해를 구하더니만 아주 자연스러운 거동으로 내 옆에 보조의자를 가져 와 조심스럽게 앉았다. 그러고는 바둑이 끝날 때까지 약 40분간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고, 아니, 미동조차 하지 않고 바둑을 지켜봤다.

 
그런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마 5단과의 4번째 대국을 지고 말았다. 2승 2패. 마음같아서는 결승전을 두고 싶은데, 아내가 옆에 있어서 좀 미안했다. 보니까 상대도 결승을 두고 싶은 눈치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아내가 내 눈을 보더니 씨익 웃으면서 말한다.
 
"한판 더 둬도 돼"
 
이 세상의 모든 바둑두는 남자들의 로망이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아내가 오셀로의 고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때는 물론 지금도 바둑은 전혀 모른다.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바둑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두는 바둑을, 그것도 기원까지 와서 아무 말도 안하고 40분이나 쳐다 본다는 것은 고문에 버금가는 행위라는 것을. 
 
이건 연인사이라면 아예 상상조차 하지 말아야 할 금기중의 금기다. 그런데, 아내는 그 바둑을 한번 더 해도 된다고, 그것도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말도 안되는, 바둑소설에서도 나오지 않을법한 거짓말 같은 상황이 연출되다니.
 
아내에게 미안해졌던 것일까? 빨리 바둑을 끝내야 한다는 성급한 마음이 앞서 버린 5번째 바둑은 포석부터 판을 잘못 짜는 바람에, 중반부터 무리하게 상대 대마를 몰다가 결국 내쪽 대마가 잡혀 버려 금세 승부가 났다.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기료 500엔을 지불한 후 밖으로 나오자 마자 아내는 물어왔다.
 
"오빠, 대단하다. 못하는 게 없네. 바둑은 누구한테 배운거야? 실력은 어느 정돈거야?"
"어...어. 막내삼촌한데 배웠고, 실력은...음. 솔직히 모르겠어. 한국과 많이 다르네"
"평균적으로 봤을 때 센건가?"
"그것도 모르겠어. 아까 기원에서는 센 축에 속한 것 같은데..."

 
아내는 귀가하는 전철안에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고는 역에서 내리자 뭔가 결심한 듯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오빠..."

"응?"
"있잖아. 우리 아빠 한번 만나보지 않을래?"
"헉! 지금?"
"응. 지금"

 
아내의 눈빛은 조심스러웠지만 단호했다.
 
"그래. 알았어. 근데, 이럴 줄 알았으면 패션 좀 신경쓸 걸 그랬다"
"아냐. 괜찮아. 보기 좋아. 어차피 옷도 없잖아(웃음)"

 
아내의 얼굴이 펴졌다. 나중에 들었지만, 아내는 이날 당신의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아버지에게 소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를 만나기 전에 2명의 남자친구를 사귀었지만 가족들에게 소개시킨 적이 없었다. 

 
몇년씩 사귄 남자친구들도 소개하지 않았는데, 만난지 아직 채 한달도 안된, 게다가 외국인 유학생을 갑자기 들이대는 것도 그다지 상식적인 건 아니다. 이런 비(非)상식은 아내의 다음 말에서 절정을 달렸다.
 
"그런데 난 안 갈꺼니까. 일단 오빠 혼자 가봐"
 
이 무슨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리인가. 자기 아버지를 만나는 건데 자기는 안가고 나만 만나라니. 도무지 상황파악이 되질 않았다. 아내는 어이없어 하는 내 표정을 적당히 즐긴 후 깔깔거리며 설명했다.
 
"아빠가 10년정도 공민회관 바둑교실에 다니는데, 금요일은 오픈교실이라고 해서 아무나 다 참가할 수 있고, 또 공짜거든. 오늘 금요일이잖아. 난 잘 모르겠는데, 오빠 바둑 둘 줄 아니까 우리 아빠 얼굴도 볼 겸해서 혼자 슬쩍 갔다와 봐. 외국인이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가면 아마 인기 좋을꺼야. 말도 잘 못하는 외국인이 바둑두러 왔다 그러면 사람들 좋아하지 않겠어?"
 
아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한번쯤 뵙고 싶어졌다. 미래는 어찌될 지 모르지만, 미리 바둑으로 좀 친해 놓으면 나중에 득이 되면 되었지 손해볼 일은 없다는 계산이 나름대로 선 것이다.
아내는 근처 커피숍에서 책 읽고 있겠다고, 다 끝나면 전화하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결정적으로 나는 장인어른의 얼굴을 모른다.
 
"괜찮아. 들어가보면 알게 돼. 나만 믿고 가봐"
 
k시 공민관 안에 들어서자 바둑 오픈교실을 알리는 조그마한 화살표 간판이 서 있다.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가슴 한켠에는 여전히 '이 무슨 자다니 남의 다리 긁는 황당무계한 짓이란 말인가!'라는 생각을 해가며 조금씩 발걸음을 옮겼다.
공민관 유리창 건너편으로 보이는, 웃는 낯으로 손을 흔드는 아내가 얼마나 미워보이던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자 접수대에서 중년의 아주머니가 빳빳한 종이를 건네며 "여기에 이름과 급수를 적어요"라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아까의 기원보다 훨씬 넓고 쾌적한 분위기다. 여기서도 녹차는 자유롭게 드시라는 종이가 걸려 있다. 한자로 이름을 적어 넣고, 급수란엔 아마 4단이 아니라 그냥 1급이라고 적어 넣었다.
 
기원에서는 아마 4단이라고 평가해 줬지만, 아마 4단보다 1급이 역시 격이 있어 보인다. 자리를 잡고 앉아, 녹차를 마시면서 1급을 위해 정진했었던 젊은 날의 기억들을 되살려 보고 있던 그때,
 
"박상? 한국에서 왔나 보네요. 내가 1급인데 한판 둘까요?"
 
상념을 깨는 부드러운, 아니 어딘가 고집스러움도 들어가 있는 목소리를 가진 초로의 노인이 내 앞에 앉았다.

 
그 순간 나는 녹차를 쏟을 뻔 했다. 그리고 아내의 "들어가 보면 알게 돼"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앞에 앉은 60대 노인은 아내의 판박이였다. 아니 아내가 이 분의 판박이라고 해야 맞을테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표를 봤다. 다카하시 유우지, 급수는 1급이라 적혀 있다. 100% 아내의 아버지다.
 
당황한 나머지 나는 장인어른의 손을 양손으로 덥썩 잡았다. 그리고 외쳤다.
 
"넷!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래뵈도 신병교육대 조교 출신이다. 우렁찬 내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주위 테이블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린다. 저 멀리에서는 아예 돌이 튀고, 녹차를 마시던 중년 샐러리맨은 쿨럭거렸다. 장인어른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날 쳐다보았다.

 
그 표정은 분명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라는 느낌이었고, 나중에 장인어른은 "정말 황당했지만 외국인이라서 그런갑다 했었지"라고 웃으며 회고했다.
 
그렇게 장인어른과 나의 첫바둑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장인의 바둑실력은 내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4,5급 정도되면 형세판단은 물론 도중에 계가도 해 보고 그런다. 미세한 바둑이 되면 잘 모르지만, 10집 정도 차이는 충분히 알게 되는데, 장인은 그런 게 안되는 것 같았다. 하긴 9급 바둑이 계가한다는 말, 들어본 적이 없다. 
 
바둑자체는 시시했다. 장인도 내 실력이 위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일까, 돌을 던질까 말까 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옆에서는 장인의 바둑친구가 우리 바둑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끝나면 장인과 두고 싶다는 제스츄어를 취하면서 말이다.
 
바로 그 때 내 손이 잘못 나갔다. 약 10집정도 되는 양선수 끝내기 자리를 놔두고 13집 후수자리로 손이 간거다. 마침 그것은 보고 있었던지 장인이 옳다구나 라며 10집 선수 끝내기를 처리한다. 그리고 나는 장인의 웃음띤 얼굴을 보는 순간, 비열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져 주자. 이왕이면 아슬아슬하게'
 
승부의 세계에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짓이고, 물론 내 성격과도 맞지 않다. 하지만 뇌회로는 그렇게 돌아갔고, 손은 그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장인과 나는 어느새 매판이 10집 이내로 승부가 나는 엄청난 라이벌 관계가 되어 버렸다. 난 지금도 그때 장인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박군은 포석과 중반전은 엄청나게 강한데 끝내기는 왜 그리 약한 거야.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저나 끝내기가 너무 세신 것 같아요. 하하하 (속여서 죄송합니다. 흑흑흑)"

 
그날부터 매주 금요일은 장인과 바둑을 두는 날이 되어 버렸다.

 
어렸을 때 워낙에 가난했던 지라 친구들 다 다니는 학원을 가지 못해 그냥 머리회전이나 하라고 막내삼촌이 가르쳐 주었던 바둑이 십수년이 지나 이런 힘을 발휘할 줄이야.
 
하루만에, 아니 단 몇시간만에 장인과 친해진 것을 보고 아내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내심 걱정했는데, 역시 오빠라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주가 지난 12월 12일,  아내는 장인어른께 남자친구(나)와 동거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처음으로 아내의 집을 방문했다. 
 
그때 문을 열어주던 장인의 황당했던 표정을 난 지금도, 아니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7부 : 일본인 여친의 아버지 "자네가 좀 가르쳐주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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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7/19 [05:06]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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