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피뉴스] 동일본 대지진 보도로 인해 일본서 그리 화제가 되진 않았지만, 연휴 기간 중이었던 지난 5월 3일, 미국 뉴욕 타임즈가 내부고발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자료를 인용, 일본인 납치 사건에 관련한 내용을 보도했다. 그런데 이 보도 내용이 다소 놀라웠다.
재일 미국 대사관이 미국 정부에 타전한 것으로, 일본 정부 고위간부가 "납치피해자 일부는 북한에게 살해됐고, 일부는 생존했다"고 미국에게 설명했다는 내용이 담긴 미 공식 전보문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기서 나오는 일본 정부 고위간부가 납치피해자 가족연락회(가족회)로부터 큰 신망을 얻고 있는 사이키 아키타카 전 아시아대양주 국장(현 인도 대사)라는 사실을 알고는 더욱 놀랐다.
전보문에 따르면, 사이키 당시 국장이 2009년 9월 18일 캠벨 미 국무차관보와 도쿄에서 회담했을 때 이 같이 언급했다고 한다. 본인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 회담기록이 3일 후인 21일에 공식 전보문으로 워싱턴에 타전된 듯하다.
평론가 다하라 소이치로 씨는 2009년 4월 24일 tv 생방송에서 납치문제를 다뤘을 때 "북한이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8명은, 사실 외무성 측도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 발언에 '가족회' 측이 "납치 피해 가족들의 마음을 짓밟는 이야기"라며 격노했다.또한, 아리모토 게이코 씨(역자 주: 북한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인, 북한 측은 1988년에 사망했다고 밝히고 있다.) 부모가 다하라 씨를 제소하기도 했다. 이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에는 일개 평론가가 아닌 외교관, 그것도 납치 문제 담당 교섭 책임자가 말한 (그러나 공식석상에서는 결코 말하지 못했던) '발언'이다. 당연히 '문제 발언'이라고 반발하리라 생각했으나, 아무래도 불문에 부칠 듯하다.
다하라 씨의 경우와 달리, 사이키 당시 아시아대양주국장이 "그렇게 말한 적 없다"며 발언 그 자체를 부정했다. 또한, 후임 스기야마 신스케 현 아시아대양주국장도 가족회 측에 인도 대사인 사이키 씨로부터의 전언이라며 "그런 말한 적 없다"고 전했다고 한다.
이에 가족회와 납치피해자 가족들은 납득이라도 한 걸까.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말 했다"고 할 리가 있겠는가. 부정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사이키 씨가 "그런 말한 적 없다"고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주일 미국대사관이 말하지도 않은 사실을 미 본국에 타전한 것이 된다. 만약 그렇다면, 외무성은 미 대사관에 항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외무성은 '위키리크스'건에 대해 기본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해두고 있어, 이 건 또한 무시하고 지나갈 듯하다.
전보문의 내용과 같이, 실제로 당시 캠벨 국무차관보는 일본을 방문해 18일에 도쿄에 체류, 사이키 씨와 회담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회'나 납치구출 의원 연맹은 일의 진상을 구명해야 되지 않을까. 더구나, 만약 '사이키 발언'이 '다하라 발언'은 서로 일맥상통하고 있다.
당시 나카소네 히로후미 외상은 다하라 씨 발언에 대해 "매우 유감이며, 크게 오해를 살 수 있는 발언이다. 외무성은 안부를 알 수 없는 납치 피해자들이 모두 생존해있다는 입장이며, 이 같은 전제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다하라 씨 발언은 전혀 잘못된 사실이기 때문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하루라도 빨리 납치 피해자들을 귀국시키고자 노력하는 이들에게 실례가 되는 이야기다"라고 발언했다.
그런데 "오해를 불러 일으킬 만한, 실례되는 이야기"를, 그것도 외무성 공식견해와도 상충되는 발언을 외무성 고관이 언급했다고 한다면, 이것은 매우 큰 문제가 아닐까.
민주당 아리타 요시후 참의원은 트위터(5일)를 통해 사이키 씨를 "일본에 불러들여야 한다"고 언급했는데, 나도 이와 같은 생각이다. 일시 귀국시켜 가족회 구성원들에게 이 일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
사이키 씨는 아시아대양주국 심의관을 거쳐 2006년부터 1년간 주미 공사로 부임했고, 2007년에 아시아대양주국장으로 승진, 3년 이상을 납치문제와 북핵문제에 종사해왔다. 이 가운데, 미국 북한 담당관들과도 접촉해 납치문제와 핵문제를 협의해왔다.
이런 가운데 미국 관리들의 발언을 체크해보니,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지, 가족회에 있어서 몹시 신경쓰이는 발언을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부시 정권 하에서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2007년 3월 28일, 하원 외교위원회 공청회에서 "(납치문제) 해결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에게는 행복한 일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또한, 전임자인 제임스 케리 미 국무부 차관보도 이해 4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핵에 가장 위협받는 것은 한국도 아닌, 중국도 아닌, 일본이라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비핵화 실현에는 일본의 공헌이 꼭 필요하며, 납치문제로 일본의 정치가가 힘겨운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올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더구나, 클린턴 정권 당시 국무부 북조선 담당관이었던 케니스 퀴노네스 씨도 2007년 9월에 한국 언론의 인터뷰에서 "저는 북한이 일본에 돌려줄 납치피해자가 이 이상 있으리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평론가 등 민간인의 발언이라면 무시해도 좋다. 하지만 전 정부고관의 발언이라면, 어떤 근거로 그렇게까지 단언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아사히 신문이 전한 오키나와 기지 교섭에 관한 외교전보문에서 노출됐듯이, 외무성 관리는 때로는 어느 나라 외교관인지 알수없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만약 자국 국민에게는 숨기고 교섭상대국에게는 본심을 말한다면, 이는 배신행위다.
어제는 납치피해자가족회와 납치구출 의원연맹 등이 주최한 '북한 납치피해자 구출 호소 집회'가 도쿄도 내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납치피해자와 특정 실종자에 대한 정부의 납치자 인증이 늦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사이키 발언'을 추궁하는 목소리가 나와도 될 법한데, 그렇지 않을 걸 보면 참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