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스를 보다 보니, 일본의 백화점 업계를 비롯한 기업들에서 한국의 인재를 스카웃하려고 노력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시부야 한복판에 있는 세이부 백화점까지 문을 닫는 등 일본의 백화점 업계가 부진에 빠지면서, 여전히 성장 일로인 한국의 백화점 영업 전략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서란다.
<동양경제> 같은 일본의 경제전문지에서는 한국의 저력이 무엇인지를 커버스토리로 다루기도 한다. 핸드폰이나 평면 tv 등 삼성과 lg에서 만드는 전자제품도 이제는 일제의 명성을 능가한다. 전체적인 경제 규모나 첨단 분야 등에서는 아직 미진하지만, 과거와는 다르게 일본과 한국의 경제적 격차가 급속하게 좁혀지는 기분이 든다.
문화 역시 그렇다. 최근 카라와 소녀시대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주로 40, 50대 여성에서 시작했던 한류가 점차 폭을 넓혀가면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동방신기, 소녀시대 등은 단지 예쁘다, 귀엽다, 를 넘어서 멋지다, 따라 하고 싶다 등 동경과 선망의 대상으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지금의 한류는 단지 일본문화와 다른 무엇, 특색 있는 무엇만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듯 문화적인 면에서도 한국의 성장은 눈부시다. 그리고 동시에 눈여겨볼 점은 일본의 정체 혹은 후퇴다.
10년 이상을, 1년에 한 두 번 이상은 일본에 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본에 가면 뭔가 새로운 것이 있었다. 서점에 가면 사고 싶은 책, 새로운 자료가 그득했다. 20세기에는 더더욱 그랬다.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영화, 구할 수 없는 음반 등을 찾아 간다와 신주쿠 등을 헤맸다. 인터넷을 통해서 해외에서 직접 dvd와 cd를 구할 수 있게 된 후에도, 새로운 트렌드를 감지하고 자료를 구하기 위해서 일본에 가는 일은 꼭 필요했다.
그런데 조금 시들해진다 싶더니만, 올해는 확연히 달랐다. 서점에 가서 책을 보면서도, 뭔가 미진했다. '인비테이션' '스튜디오 보이스' 등 즐겨 보던 잡지들은 폐간됐고, 새로운 잡지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탈리아 호러나 카타스트로피 등 특정 분야나 주제를 치밀하고 파고드는 책들은 여전히 있었지만, 보는 순간 새로운 무엇은 그다지 없었다.
예전에는 일본에 다녀오면, 새로 구한 자료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젠 그런 즐거움도 줄었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한국은 일본 이상으로 정보들에 민감해지고 활발하게 새로운 것들을 섭취하게 되었다. 새로운 트렌드라면, 한국도 크게 뒤처지지는 않는다.
이번 일본에 가서 분명하게 느낀 점이라면, 일본 사회가 정체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시스템은 살아 있고, 세세한 분야를 파고드는 실력은 뛰어나지만 새로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흐름이 둔화되었다는 것.
시부야의 북오프에서 2007년에 나온 <브루터스>를 한 권 샀다. 'cool japan'이라고 세계에서 일본 문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퍼지고 있는가를 특집으로 다룬 호였다. <매트릭스> <킬 빌> 등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등 대중문화에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고 파리에서 성황리에 일본 문화박람회가 매년 열리는 등 21세기 들어 한참 일본문화가 각광받을 때였다. <브루터스>에서는 그런 상황을 꼼꼼하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브루터스>에서, 앞으로 이런 일본문화의 상품이나 아티스트가 인기를 끌 것이라고 예측한 부분은, 거의 다 틀렸다. 한마디로 이후 일본문화는 점점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갔다고도 할 수 있다.
it와 핸드폰 업계에서 일본 기업이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를 흔히 '갈라파고스 효과'라고 말한다. 자국 시장에만 갇혀 안주하면서, 글로벌한 흐름을 읽지 못한 채 자멸해가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경제도 그렇지만, 문화 역시 그렇다. '국민 애니메이션'이 된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은 나올 때마다 성공을 하지만, 뭔가 새로운 작품이 있던가? 만화에서는? 소설에서는? <1q84>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늘 쓰던 소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만화에서도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등 기존의 히트작들이 여전히 강력하다.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작품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새롭게 사회적 신드롬을 만들어내는 작품이 일본 대중문화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안정적으로 수작들이 만들어지고, 그런 작품들이 소비되고 생산되는 시스템도 굳건하지만 파괴력은 점점 미미해지는 것이다. 드라마도, 영화도,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기가 힘들다. 한결같은 재미는 있지만.
일본에서 신칸센을 수출할 때, 가장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내세운다고 한다. 오차를 몇 초 안으로 줄일 수 있는 정교한 기술력이라고. 그런데 정작 신칸센을 사야 하는 국가들에서는, 그런 기술력이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하긴 인도나 이집트 같은 곳에서, 정시 출발 도착이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일정 속도 이상을 내고, 가격이 적당하면 되는 것이다.
<시마 사장>을 보면, 인도에서 한국 전자제품이 일본을 누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일본은 최고의 제품을 팔겠다며 선전할 때, 한국은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현지용 제품을 만들어냈다고. 즉 소비자, 대중의 요구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끊임없이 혁신을 거듭했기 때문에 한국의 전자제품이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기술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소비자의 욕망을 읽지 못하면, 편리하게 만들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일본은 주로 해외 시장보다는 안전한, 이미 잘 알고 있는 자국 시장을 겨냥한 문화상품을 만들어낸다. 또한 오타쿠나 단카이 세대 등 특정 집단이나 계층을 집중적으로 노린 안정적인 작품에 주력한다. 그러다보니 기술적으로 뛰어나지만, 기존의 성공법칙이나 규칙을 답습하는 작품들만이 양산된다.
새로운 무엇인가가 등장하는 것은, 언제나 파격과 일탈이다. 지금 대중이 좋아하지는 않지만, 뭔가 새로운 것을 제시하고 밀어붙일 때 문화 지형이 바뀌고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문화는 고여 있을 때, 썩어 들어간다. 끊임없이 흐르고, 새로운 것들과 이종교배하고, 기이한 것들이 스며들었을 때 문화는 발전한다. 그것이 때로는 사회를 바꾸기도 하고. 그렇다면 지금 일본은, 고여 있는 상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