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닲은 러브스토리를 그리는 만화가는 왠지 청순할 것 같고, 명랑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는 통통튀는 매력을 가지고 있을 것 같고…
그런데, 가끔 만화가의 사진이나 실제 생활이 공개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독자들은 자신의 상상과 현실의 커다란 차이에 큰 실망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지금 만화보다 더 리얼한 삶을 살고 있는 만화가가 있어 화제다.
자칭 20세(그것도 몇 년째), 실제나이 불명, 패션컨셉 ‘갸루’, 거주지 도쿄 시부야 근방 어딘가, 목욕은 한달에 한번, 주요식사는 맥도날드 햄버거, 야채 섭취는 햄버거의 양상추, 취미 선탠하기 등등.. 이 독특한 이력을 가진 만화가 ‘하마다 브리트니’가 바로 그녀이다.
일본의 출판사 쇼가쿠칸(小学館)에서 발간하는 주간 만화잡지 ‘빅 코믹 스피릿’에 갸루들의 일상을 담은 코믹 만화 ‘파갸루’를 2007년부터 연재중인 인기만화가 ‘하마다 브리트니.’ 그녀는 실제 자신이 ‘갸루’이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만화의 에피소드를 뽑아내고, 독특한 말투와 끼로 방송가를 누비는 엔터테이너로서도 활약을 하고 있다.
‘갸루’란 원래, 영어의 girl(가-루), 어린소녀가 변해서 생긴 말로 현재는10~20대의 시부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여성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갸루에서 다시 갈라져 나온 분류로는 검게 태닝한 피부의 ‘쿠로갸루’, 만화 속 공주님 같은 차림의 ‘히메갸루’ 교복을 벗고 섹시한 스타일을 표방하는 ‘오네갸루’ 등 수많은 종류가 있지만, 그 중에서 여기저기 어떤 갸루족에 속하지도 못하고 어설프게 흉내만 내는 갸루를 ‘중도한파(일본어로 ‘어중간’의 의미)’의 ‘파’를 따서 붙여 ‘파갸루’라고 일컫고 있다.
하마다 브리트니는, 만화 제목이기도 한 ‘파갸루’의 의미를 설명해주면서 갸루에게는 ‘정점’이 있다는 재미있는 표현을 했다.
‘갸루의 정점’이란 갸루 중에서도 제일 윗 단계라고 추앙받는 갸루들, 예를 들어, 갸루의 잡지 ‘팝틴’의 표지를 장식하는 모델이라든지, 시부야 쇼핑몰 109(갸루들의 패션집결지가 되는 곳이다)의 점원 등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특히, 요즘은 tv에서도 맹활약을 하고 있는 ‘마쓰와카 츠바사(예전 팝틴 모델, 현재는 카리스마 갸루 모델로 불리움)’나 ‘키노시타 유키나(예전 쇼핑몰 109 점원, 현재는 탤런트로 활약중)’ 등 인기많고 스타일 좋은 갸루들이 바로 그 ‘정점’이라고 한다.
많은 10대 ~20대 일본 여성들이 ‘갸루의 정점’을 동경해 ‘갸루’ 세계에 발을 내딛지만, 누구나 ‘정점’이 될 수는 없는 법. 앳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조숙한 패션, 갸루의 상징인 완벽한 웨이브가 실패한 헤어스타일, 부자연스러운 메이크업 등 2% 부족한 모습을 보이게 되고 이런 어설픈 ‘파갸루’들의 일상, 실패담 등을 엮어 만화로 연재되고 있는 것이 하마다 브리트니의 인기 최고 만화 ‘파갸루’인 것이다.
파갸루, 하마다브리트니만나다
2009년 8월, 도쿄 오모테산도(表参道)에 있는 하마다 브리트니의 소속 사무실 에버그린 엔터테인먼트에서 그녀를 만났다. 원래는 만화를 그리는 작업실에서 그녀의 일상을 보고 싶었지만, 집도 없고 작업실도 없이 패스트푸드점과 패밀리 레스토랑을 떠돌아 다니는 ‘홈리스 만화가(!)’라는 설명에 어쩔 수 없이 연예인 소속사 사무실로 약속을 잡게 되었다.
사실, 하마다 브리트니는 tv에서 워낙 자주 봤던 연예인급 만화가라서 인터뷰 가는 길에도 ‘어떤 사람일까?’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일본어가 아닌 독특한 ‘갸루 언어’를 사용하는 그녀이기에 ‘인터뷰 하는데 소통에 문제는 없을까?’ 걱정도 되고, 한 달에 한 번 목욕한다고 들었는데 ‘이 무더운 여름, 냄새는 괜찮을까(!)’하는 엉뚱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메우고 있을 뿐이었다.
하마다 브리트니를 비롯, 스무명 남짓의 연예인을 관리하고 있는 에버그린 엔터테인먼트는 전체적으로 그린 옐로우 톤으로 꾸며진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사무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노란색 소파가 보이고, 거기에 만화가 ‘하마다 브리트니’가 환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실제로 만난 하마다 브리트니는 신장 150cm가 될까말까한 자그마한 몸, 옆으로 돌려쓴 야구모자에 금발로 탈색한 머리, 전신 태닝으로 까무잡잡한 피부, 깜빡 거릴때마다 무거워보이는 접착 속눈썹, 진한 화장에 ‘이예~스’ 갸루들만의 독특한 말투로 인사를 건네는 것이 영락없는 시부야 갸루의 모습이다.
최근 tv프로그램 프로젝트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그녀는 그래서인지 마치 연예인 같은 조막만한 얼굴에 미소를, 작은 손으로는 ‘브이’를 그리며 ‘처음 뵙겠습니다. 하마다 브리트니입니다. 이~ 예스’ 라며 인사를 건넸고, 최근 며칠간 머리를 감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우선 ‘하마다 브리트니’라는 이름은 일본인의 이름이 아닌 것은 분명하고, 어떻게 만들어진 이름인지 궁금했다. 이에 브리트니는 자신이 만화가로 데뷔할 당시, 실명이 너무 촌스럽다고 생각해 (브리트니는 본명에 대해 ‘메이지 시대 이름’이라고 한마디로 일축했다) 고민하다가, 평소 좋아하는 헐리우드의 셀레브리티의 이름에서 따오기로 결정. 마돈나, 힐튼, 비욘세, 브리트니 등 여러 후보 중에서 하마다가 가장 좋아했던 ‘브리트니’를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작명법도 엉뚱하지만, 원래 브리트니는 처음부터 만화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정통 만화가 지망생도 아니었다고 한다. 중, 고등학교 시절, 남들처럼 만화를 보는 것은 좋아했지만 그려본 적도, 그리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대학에서도 만화와는 무관한 애견미용을 전공했고 졸업후에도 애견미용사를 꿈꾸는 날들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도라에몽’의 작가, 콤비만화가 ‘후지코 후지오’의 멤버 ‘후지코 후지오a’의 반생을 그린 만화 <만화의 길>을 우연히 읽게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그녀의 인생은 180도 전환, 만화가의 길에 뛰어 들게 되었다.
만화가의 꿈을 키운 브리트니는 일본 만화가 양성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이 때 사건이 터져 버렸다. 브리트니가 학교에 입학한지 반년만에 학교 내 만화 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으로 뽑히는 대단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사실, 6년간 공부해도 데뷔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수두룩한 만화학교에서, 단 6개월 만에 최우수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그녀가 엄청난 운을 가지고 있거나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6개월만에 ‘최우수상’을 수상하게 된 브리트니는 자신만만하게 수상 작품을 들고 일본 3대 만화 출판사 중 하나인 쇼가쿠칸에 직접 찾아가게 된다.
브리트니에게 최우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은 ‘강아지와 강아지를 키우는 남자, 둘 사이를 질투하는 여자’라는 미묘한(?) 삼각관계 러브스토리 만화. 갸루 차림의 만화가지망생이 느닷없이 찾아와 충격적인 작품을 내미는데 출판 담당자가 뒤로 넘어간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러나 보는 눈이 있던 담당자는 ‘갸루 만화가’ 하마다 브리트니에 관심을 갖게 되고 ‘갸루’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줄 것을 부탁하게 되었다고 한다.
‘갸루’ 만화로, ‘갸루 만화가’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된 브리트니. 그렇다면 브리트니는 어쩌다 ‘갸루’가 된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그녀가 갸루에 눈을 뜨게 된 것은 학창시절 집에 놀러온 오빠의 여자친구 때문. 10살 위인 오빠의 ‘갸루’ 여자친구가 브리트니의 머리를 말아주고 화장을 해주면서 브리트니도 서서히 ‘갸루’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동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의외로 브리트니의 만화 ‘파갸루’를 즐겨보고 팬레터를 보내오는 팬들이 대부분 ‘아저씨들’이다. 얼핏 10~20대들이 공감할 것 같은 내용이지만, 연재중인 잡지 ‘빅 코믹 스피릿’ 의 주독자층이 원래 아저씨들인데다, 10대, 20대들에게는 갸루들의 생활을 그리고 있는 ‘파갸루’ 내용이 ‘일상적’이기 때문에 젊은 층보다는 오히려 아저씨들이 ‘파갸루’의 팬을 자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독자층이 아저씨들이다 보니, 브리트니 만화에는 단어의 뜻을 설명하는 ‘주석’이 달리게 되었다. 같은 일본인이라도 알아듣기 힘들다는 갸루들만의 독특한 말투와 단어선택을 그대로 넣다보니, 설명의 필요를 느껴 주석을 넣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브리트니 만화만의 특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현재 브리트니는 ‘파갸루’를 연재하면서 잡지 편집자와 대담형식으로 중년 남성 독자들의 인생상담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가장 최근에 했던 상담은 ‘회사에서도 잘리고 죽고 싶다’는 한 남성독자의 상담으로, 브리트니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앞으로 하고싶은 일을 생각하라’고 충고해주었다고 한다. 비록 전문 컨설턴트는 아니지만, 때로는 ‘모자란 듯’ 때로는 ‘엉뚱한 듯’한 긍정적 마인드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홈리스만화가하마다브리트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방송 출연도 많고, 잘 나가는 만화가가 왜 집도, 작업실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것일까? 만화가 데뷔 전에는 돈이 없어서 집을 못 구했다고 치자, 하지만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떠돌이 삶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질문에 브리트니는 “제가 그리고 있는 만화가 갸루에 대한 스토리이기 때문에, 생활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어요. 실제 시부야 갸루들과 같이 떠돌면서 그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고 있는거죠”라며 홈리스 생활방식에 대해 일말의 후회조차 없다는 듯이 당당하게 말했다.
즉, 금전적으로는 충분히 독립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지금의 그녀를 만들어준 만화 ‘파갸루’를 위해 홈리스 생활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시부야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많은 갸루들과 소통을 위해서는 필연적인 선택이었던 것. 그런데 어디 이뿐인가, 잘 씻지도 못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지도 못한다.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도 가지 않고 식사는 언제나 1일 1식 이상 햄버거로 때운다. 맥도날드가 갸루들의 집결지이기 때문이다.
생활패턴 역시 하루 단위가 아닌 일주일 단위로 돌아간다. 주간 만화에 연재하고 있기 때문에, 해가 뜨고 지는 것에 관계없이 마감까지 만화를 그리고 마감이 지나면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tv 출연 연예활동까지 늘어난 요즘, 눈코뜰새 없이 바쁘지만, ‘만화’를 그리는데는 한치의 타협도 없이 활동하고 있는 그녀, 하마다 브리트니.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이는 홈리스 만화가 ‘하마다 브리트니’는 철없는 갸루, 아무 생각없어 보이는 캐릭터, 운좋게 뜬 반짝 스타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방송계, 만화계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아 직접 노크할 수 있는 용기와 홈리스 생활까지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만화’에 대한 열정, 프로의식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터뷰하면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한국 만화를 본 적은 없지만, 겨울연가, 천국의 계단 등 한국 드라마를 보고 펑펑 울었다”는 브리트니. ‘독특한 캐릭터로 한국에 진출해보는 것은 어떠냐?’는 질문에 “진짜요?”라며 진지하게 눈을 반짝거리는 하마다 브리트니. 그녀는 아마 이 세상에서 만화가와 만화 작품의 이미지가 가장 닮아있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